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71
171회. 내 재주도 쓸 만한 것 같지 않아?
둘째 날.
십두마병들은 첫날보다 더 긴장한 상태로 연적하를 기다렸다.
하루를 꼬박 괴롭혔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올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해가 질 때까지 연적하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음산귀가 채주인 추혼혈도 이무진에게 따지듯 물었다.
“연적하가 오고 있기는 한 거요? 다른 곳으로 가 버린 게 아니냐 이 말이오.”
“서하촌에 아직 심통이라는 늙은이와 마차가 남아 있소. 연적하가 이 근방에 있다는 소리요. 놈은 분명 어딘가에서 우리를 보고 있을 게요.”
그 말에 독심귀랑 양소란이 동의를 표했다.
“맞아요. 심통과 마차가 있다면 연적하도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 어딘가에 숨어서 우리가 지치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지요. 본래 이런 식의 싸움은 드러난 사람이 불리한 법이에요.”
“허면 이대로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거요?”
“다른 방법이 있나요? 잠들면 목을 베어 갈 테고, 흩어지면 각개격파를 당할 텐데.”
예리한 양소란의 지적에 음산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해는 완전히 떨어져서 캄캄한 밤이 되었다.
부채주 귀영살도 연파강이 수하들과 함께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곳곳에 불을 밝혔다.
산처럼 쌓인 장작을 보고 있던 이무진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밤새 어제와 같은 짓을 하려니 벌써 삭신이 쑤셔온다.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언제 연적하가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것을.
“자자, 흩어지지 말고 최대한 경계를 하십시다. 방심하면 후회할 틈도 없이 끝나고 말 테니까.”
이무진의 말에 십두마병들은 다시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
십두마병들 만큼이나 답답한 사람은 연적하다.
오늘도 하루 종일 황산을 찾아 헤맸지만 인가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최근 대별산채가 황산 주변의 마을을 지나치게 약탈해 생긴 일이었다.
해가 지자 연적하는 노숙할 자리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때 토실토실 살이 오른 산돼지 한 마리가 숲에서 튀어나왔다.
연적하는 바람처럼 달려가 단숨에 때려잡았다.
그간 나무 열매만 따 먹은 탓에 산돼지를 보고 눈이 돌아갔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잡아 놓고 생각하니 요리할 길이 막막했다.
그는 일단 남궁천이 늘 가지고 다니라며 품에 찔러 넣어 준 부싯돌로 불을 피웠다.
그리고 주변에서 죽은 나무를 끌어 모아 불을 크게 키웠다.
여기까지는 심통이나 설차수 일행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요리와 담쌓고 살아온 연적하는 거대한 산돼지가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아 몰라.”
결국 그는 산돼지를 모닥불 위에 던져 넣고 손을 털었다.
내장을 빼낸다는 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반 시진(1시간)쯤 지났을까?
살과 기름이 타들어 가면서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연적하는 새까맣게 탄 부위를 버리고 안쪽의 살점만 뜯어 먹었다.
입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버리는 게 훨씬 많았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날이 밝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까닭이다.
소금이 없어 싱거웠지만, 그래도 고기라서 그런지 속은 든든했다.
잠시 후 그는 부드러운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를 잘라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길게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화용독심 남궁연이 떠올랐다.
그녀는 어디쯤 갔을까?
정주에 가면 무슨 일을 할까?
반년 이상 함께 생활하다 헤어져서 그런지 전과 달리 몹시 허전했다.
***
식현.
함정진.
다정객점.
술시 무렵(오후 7시-오후 9시).
삼 남 이 녀가 창가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저녁 식사 후 차를 마시고 있는 남궁천, 남궁연 남매와 설차수 일행이다. 목적지가 같은지라 다섯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창밖을 보던 유근식이 무심코 말했다.
“지금쯤이면 연 소협과 심 노선배님도 오봉산으로 가고 있겠지요?”
“당연하지. 연 소협이 어디 허튼소리를 할 분이시냐.”
설차수의 말에 진설하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설 사형. 대별산맥은 산도 많고 깊잖아요. 연 소협은 길눈이 좀 어두운 것 같던데, 잘 찾아가셨나 모르겠어요?”
“길눈이 어둡다고?”
“네, 몇 달 전 장호진에 들렀을 때요. 강변에서 물수제비를 같이하고 돌아오는데, 길을 영 모르시더라고요.”
“아니 그 손바닥만 한 마을에서 길을 모른다고? 그게 말이 돼?”
“진짜 모르는 눈치던데요. 그래서 제가 앞장서서 간 걸요?”
“에이! 설마. 마을이라고 해 봐야 오십 가구도 안 되던데. 아무리 길 눈이 어두워도 그건 아니지. 너를 놀려 먹으려고 그러셨을 게다.”
설차수는 진설하의 말을 일축했다.
바보도 아니고. 객잔도 없으리만큼 작은 마을에서 누가 길을 잃는단 말인가!
“그런가?”
설차수가 강경하게 나오자 진설하는 수긍했다.
연적하와 같은 고수가 그 쉬운 걸 모른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다.
그날 밤.
남궁연은 조용히 침상에서 일어났다.
이 시간이면 늘 연적하와 따로 만났기에 쉬 잠이 오질 않았다.
때마침 뒤척이고 있던 진설하가 말을 걸었다.
“잠이 오지 않으세요?”
“조금 그러네요.”
“저도 그런데. 차라도 한잔 마시고 올까요?”
“좋아요.”
남궁연과 진설하는 모처럼 의기투합해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달빛이 밝아 불을 밝히지 않아도 환했다.
차를 마시기로 했던 두 사람은 주방에서 술병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태연하게 서로의 잔을 채웠다.
진설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연 소협이 걱정되세요?”
“조금요.”
“잘 해내실 거예요. 아시잖아요.”
“그럴 거라 믿어요.”
“소저.”
문득 진설하가 남궁연을 보았다.
“네?”
“연 소협 좋아하시죠?”
“…….”
남궁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히 좋아한다.
하지만 왠지 그 간단한 대답을 쉽게 할 수 없었다.
가만히 남궁연의 눈을 응시하던 진설하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기침과 사랑은 감출 수가 없다고.”
“그런가요.”
“연 소협이 은월을 거부했다고 말할 때, 소저가 행복해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알았지요. 그냥 친하기만 한 게 아니었구나!”
순간 남궁연의 표정이 가볍게 굳었다.
자신이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유명교에 가문이 무너지고, 어머니는 죽었다.
부친마저 생사가 묘연한 암울한 상황에서 한가하게 행복이라니?
진설하는 남궁연의 급변한 모습에 자신이 실수라도 한 줄 알고 급히 사과했다.
“기분 나쁘게 들렸다면 죄송해요. 그냥 저 혼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아니에요. 그렇게 보였다면 제가 처신을 잘못한 거예요.”
남궁연의 말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자신이 아직 행복을 추구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당연하다.
그 모습을 본 진설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역시 그녀는 범인(凡人)이 아니다.
모든 걸 남녀 간의 일로 해석한 자신의 경박함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
황산.
대별산채.
셋째 날.
아침 해가 떠오르자 십두마병들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이런 개만도 못한 자식!”
“씨벌 놈! 어디 있느냐! 그만 처나와라!”
“숨어서 보고 있는 것 다 알고 있다! 사람이라면 나와!”
“나오라고! 이 새끼야!”
사파에서 굴러먹던 십두마병들인지라 체면 따위는 버린 지 오래다.
아무리 무림 고수라 해도 이틀이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이젠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두통이 밀려오자 이무진은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제는 피가 마르지만 물러설 수 없다.
기호지세(騎虎之勢)라는 말처럼, 이미 십두마병은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여기서 멈추면 십두마병은 반드시 놈에게 잡아먹힌다.
‘연적하가 저 문밖에 굶주린 호랑이처럼 웅크리고 있다’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다른 십두마병들도 같은 생각인지 눈알이 살기와 광기로 번들거렸다.
양소란이 초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실로 악마 같은 놈이로다. 기력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설 수가 없으니…….”
아무리 피곤해도 십두마병들은 눈을 붙이지 못했다.
언제 연적하가 잠입해 목을 자를지 모르는 판국에 잠은 사치였다.
***
헤매고 다니던 연적하가 마을을 발견한 건 사흘째 되던 날 정오(낮 12시) 무렵이다.
그런데 마을 초입이 어째 눈에 익었다.
번화가를 걸어가던 연적하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저게 왜 여겠어?”
앞에 무하객잔의 간판이 보였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다시 서하촌으로 온 모양이다.
혹시나 싶어 객잔으로 들어가자, 역시나 낯익은 주인이 반갑게 맞이 했다.
“어서 오십쇼. 금방 오신다더니 일이 많았나 봅니다?”
“어, 약간요?”
머뭇거리던 연적하는 그동안 못 먹은 요리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때마침 식사하러 나왔던 구천노도 심통이 급하게 달려왔다.
“아이쿠! 공자님,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그는 다친 곳은 없는지 연적하의 아래위를 부지런히 살폈다.
“어, 그냥, 어쩌다 보니…….”
“그런데 얼굴에 그 숯 검댕은 뭡니까?”
연적하는 손으로 얼굴을 이리저리 문질러 닦아 내려 했다.
하지만 손이 더러워서 그런지 시커먼 숯 검댕은 더 번질 뿐이었다.
그걸 본 심통은 속으로 ‘킥킥’거리며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이무진이란 놈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직 못 만났어.”
“예? 그럼 다른 십두마병들은요?”
“그들도 못 봤어. 황산이 어디 갔는지 안 보이더라고.”
“황산이 가긴 어딜 간다고 그러십니까? 혹시 길을 잃으셨던 겁니까?”
“어, 괜찮아. 산돼지도 잡아먹고 잘 놀다 왔으니까.”
“허! 서하촌에서 동북쪽으로 반 시진만 올라가면 바로 황산이라고 하던데. 그걸 못 찾으신 겁니까?”
“가 보니까 산이 많더라. 심 노인도 말만 들어서는 못 찾을걸?”
“아니 그럼 바로 돌아오셔서 길 안내를 따로 세우지 그러셨습니까?”
“산이라는 게 말이야.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 그래도 영 이상한 곳으로 가지 않고 서하촌에 다시 온 걸 보면, 내 재주도 좀 쓸 만한 것 같지 않아?”
“허! 재주라고요? 보통 사람은 한 시진이면 돌아왔을 겁니다. 큰일이 난 줄 알았는데 그나마 다행이네요. 대별산채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참에 그냥 접고 오봉산으로 가시지요?”
“그럼 안 되지. 마을 사람 하나를 고용해서 다시 찾아가 볼 참이야.”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총채주님께서도 뭐라고 하지 않으실 겁니다.”
“약속했으면 지켜야지.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피해?”
“사흘이나 개고생하셨으면 어려운 일은 맞지요.”
“어허. 그게 왜 개고생이야? 자연 속에서 호연지기를 기르고 온 거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점소이가 음식을 내왔다.
사흘 만에 제대로 된 요리를 본 연적하는 걸신들린 사람처럼 먹어 댔다.
심통은 식사를 하는 내내 ‘가지 마시라’고 만류했다.
십두마병들이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한 대별산채에 무리해서 갈 이유가 없어서다.
그러나 연적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심통은 ‘길을 잃어 못 갔다’고 놀릴 게 뻔했다.
계속 그런 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그냥 한번 갔다 오는 게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