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73
173회.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 줘
둘이 죽게 되자 다섯 명의 십두마병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일단 음산귀와 옥불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본 후에 공격을 재개하려는 생각에서다.
그 순간 연적하는 도망치기에 급급한 이무진을 슬쩍 살폈다.
‘한 놈 더 죽일까?’
과거에 십두마병들을 하나씩 처리해 온 것은 일행들의 안위를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라서 주변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십두마병들과의 싸움을 난장판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그래야 십두마병들의 집중적인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설마 마물들이 합공을 하지는 않겠지?’
마물들은 생김새나 내는 소리가 완전히 달라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가장 먼저 즉사를 한 옥불의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으드드득.
추혼혈도 이무진과 무쌍귀와 무영귀는 옥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몸이 쩍쩍 갈라지니 그럴 만도 하다.
잠시 후 옥불의 몸을 찢고 화염마인이 튀어나왔다.
“캬아아아!”
키가 일 장(약 3미터)이나 되는 화염마인의 등장에 이무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십두마병이 눈앞에서 마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보니 한순간 멍했다.
설상가상이라고 이번에는 음산귀의 몸이 뒤틀어졌다.
이무진이 화염마인과 음산귀에게 신경을 팔 때 연적하가 그를 덮쳤다.
연적하의 검 끝에서 검기가 빛살처럼 뻗어 나갔다.
뒤늦게 이무진은 도로 검기를 쳐 냈다.
츠츠츠-.
부서진 검기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하지만 연적하의 속도는 늦춰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속하는가 싶더니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곧이어 이무진의 머리 위로 세 가닥 검기가 쏟아져 내렸다.
공중에서 숨 돌릴 틈도 없이 구천세법 칠 식 용조할지(龍爪割地)를 펼친 것이다.
연적하의 저돌적인 공격에 이무진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옆에 있는 마물을 무시하고 자신에게 죽자 사자 달려드니 환장할 노릇이다.
“이놈이!”
이무진의 도신에 광망이 맺혔다.
콰앙. 쾅.
이무진은 전신 공력을 도에 담아 검기를 부쉈다.
‘으윽!’
어찌나 검기에 실린 힘이 크던지 상체가 조금씩 뒤로 밀리는 느낌이다.
그 와중에 한 가닥 검기가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파앗.
팔뚝에서 피가 튀었지만 확인할 틈도 없었다.
연적하가 마치 동귀어진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저돌적으로 달려든 까닭이다.
뒤늦게 독심귀랑 양소란과 혈검, 무쌍귀, 무영귀가 이무진을 도우려고 움직였다.
그러나 연적하가 한발 빨랐다.
이무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며 검을 내리그은 것이다.
놀란 이무진이 황급히 도로 쳐 냈지만 연적하의 검은 튕겨 나지 않았다.
가가각- 성동.
떨어져 내리던 기세 그대로 연적하의 검은 이무진의 팔을 잘라 버렸다.
“악!”
이무진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연적하의 검이 무방비 상태인 이무진의 목을 베었다.
스걱.
이무진의 머리는 눈을 부릅뜬 상태에서 몸통과 분리되어 땅에 떨어졌다.
순간 양소란의 검에서 일어난 검기가 광풍처럼 연적하에게 밀려갔다.
“이 악마 같은 놈! 우리가 너에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느냐!”
하지만 연적하는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뒤로 훌쩍 물러났다.
두 번째 마물이 튀어나와서다.
“크라라라라-!”
정수리에 외뿔이 돋아난 일각마인 특유의 목 울음소리가 대별산채를 뒤흔들었다.
음산귀의 몸에서 나온 일각마인은 한차례 괴성을 내지른 뒤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순간 화염마인과 일각마인의 시선이 교차했다.
하지만 두 마물은 서로에게 눈꼽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연적하는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아니겠지?’
최소한 마물들이 상잔까지는 아니더라도 경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서로를 본체만체하다니?
곧이어 마물들의 시커먼 눈이 약속이라도 한 듯 연적하를 향해 움직였다.
“캬아아!”
“크르르…….”
‘헉!’
연적하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설마 저 마물들의 눈에는 자신이 가장 흉악한 적으로 보이는 것일까?
정말 자기들끼리는 싸우지 않는다고?
이렇게 되면 난장판을 만든 게 아니라 강적만 잔뜩 불러낸 꼴이 되고 만다.
“아하하.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 줘.”
쩌저저적.
때마침 머리가 잘린 이무진의 몸통에 균열이 갔다.
또 다른 마물 하나가 나올 조짐이다.
연적하는 어쩐지 불길한 느낌에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화염마인과 일각마인의 몸이 천천히 그를 향해 돌아갔다.
확실히 마물들은 자신의 주적이 누군지 아는 것 같았다.
가장 먼저 화염마인이 움직였다.
“캬악! 칵!”
연적하를 향해 괴성을 내지르던 화염마인이 쿵쾅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일각마인이 꺼지듯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머리 위쪽에서 전해지는 섬뜩한 느낌에 연적하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역시나 오 장(약 15미터)쯤 높이에서 일각마인이 낫처럼 휘어진 손톱을 휘두르고 있었다.
휘이이잉-. 휘잉-.
두 개의 반월형 강기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연적하는 황급히 검으로 강기를 잘라 냈다.
뒤이어 화염마인의 한 아름이나 되는 주먹이 떡메처럼 내리꽂혔다.
연적하는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라 가까운 전각 지붕으로 피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무진의 몸에서 일각마인 하나가 더 튀어나왔다.
“크라라라라-!”
때마침 하늘을 보고 울부짖던 새로운 일각마인과 연적하의 시선이 만났다.
“젠장! 이렇게 되면 완전히 망하는 건데.”
역시나 새로운 일각마인이 섬전처럼 쏘아 왔다.
연적하는 일각마인을 피해 마당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두 일각마인과 화염마인은 마치 합공이라도 하듯 연적하에게 몰려갔다.
한편 마물들 덕분에 양소란과 혈검, 무쌍귀, 무영귀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연적하와 마물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너무도 빠른 움직임에 끼어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자칫 화염마인의 손발이나 반월형 강기에 맞기라도 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까닭이다.
십두마병들이 주저할 만큼 연적하와 마물들의 움직임은 빨랐다.
마물들의 포효에 놀라 튀어나온 도적들 눈에는 그림자만 번쩍거릴 정도였다.
구석에서 지켜보는 부채주인 귀영살도 연파강은 화염마인의 주먹이 맨땅에 구덩이를 만들 때에야 한 번씩 놀랄 뿐이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십두마병들은 쉽게 싸움에 끼어들지 못했다.
저 끔찍한 마물들이 자신을 동료로 인지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어 더 그랬다.
마물의 눈에 인간은 비슷하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저 싸움 속에 안전의 보장도 없이 뛰어든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렇다 해도 마냥 구경만 할 수도 없는 노릇.
아까부터 기회를 엿보던 무쌍귀가 순간의 틈을 노리고 싸움에 뛰어들었다.
무쌍귀는 도신합일의 수법으로 연적하의 등판을 향해 쏘아 갔다.
연적하가 좌우측에서 짓쳐 오던 일각마인들을 막 떨쳐 낸 직후였다.
쉬이익.
날카로운 예기가 등 뒤로 밀려오자 연적하는 무작정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러자 정면에 버티고 서 있던 화염마인이 두 손을 와락 뻗어 연적하를 잡으려 했다.
유년기를 창고에서 보낸 연적하는 또래에 비해 체형이 작다. 그가 종종 소년 취급을 받는 것에는 그런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화염마인의 거대한 두 다리는 그에게 기둥이나 마찬가지였다.
연적하는 화염마인의 사타구니로 몸을 날렸다.
‘게으른 당나귀처럼 구른다’는 나려타곤(懶驪打滾)이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촤아악.
연적하가 빠져나간 자리에 무쌍귀가 들어섰다.
어쩌면 무쌍귀는 화염마인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화염마인은 무쌍귀를 동족이나, 같은 편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크륵!”
화염마인이 거칠게 손을 휘둘렀다.
그 속도는 가히 전광석화와 같아서 무쌍귀의 반응을 초월했다.
퍼억.
연적하를 노리다 화염마인의 손바닥에 정통으로 맞은 무쌍귀가 낙엽처럼 날아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화염마인은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땅바닥에 떨어져 피를 토하고 있는 무쌍귀에게 무영귀가 달려갔다.
“쿨럭! 쿨럭!”
무쌍귀가 기침을 할 때마다 검붉은 피가 퍽퍽 터져 나왔다.
“괜찮소?”
“…….”
그러나 어찌나 충격이 컸던지 무쌍귀는 눈을 꽉 감고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저 정도면 누가 봐도 중상이다.
무영귀는 곤혹스러운 눈으로 무쌍귀를 내려 보다가 양소란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여기까지인 듯하오. 일행의 상처가 중해 데리고 돌아가야겠소.”
양소란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십두마병 일곱이 와서 셋이 죽고, 하나가 중상을 입었다.
나머지 둘로 연적하를 죽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일곱으로도 하지 못한 일을 둘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무영귀가 무쌍귀를 부축해 조용히 사라졌다.
양소란의 눈치를 살피던 혈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총호법, 우리 둘로는 무리인 것 같은데.”
“알아요. 하아! 저 마물이 무쌍귀를 공격할 줄은 몰랐네요. 그것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수를 썼을 텐데.”
“그러게 말이오. 그래도 이번 일로 하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구려. 저 마물은 우리 편도 아니라는…….”
양소란이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건 정말 뜻밖이네요.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었는데.”
마물들이 십두마병들인지라 내심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하지만 방금 무쌍귀가 당하는 걸 보니 덧정이 떨어졌다. 저들은 과거의 십두마병들과 조금의 관계도 없다. 생김새대로 완전히 새로운 존재들이다.
그걸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도 무쌍귀는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마물들과 연적하의 싸움을 지켜보던 양소란이 돌아섰다.
“가요. 이 싸움의 승자가 누가 되든 우리에게는 좋을 일이 없으니.”
마물과 연적하 양쪽 모두가 적이니 남아서 구경할 이유는 없었다.
머뭇거리던 혈검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총호법은 마물들과 연적하 중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 같소?”
막 떠나려던 양소란이 다시 몸을 돌렸다.
“연적하가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오래가지 못할 거예요. 마물들은 그가 손쓸 틈을 주지 않고 있어요. 그의 무위가 하늘에 닿은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인간인 이상 마물들의 체력을 따라가지는 못할 거예요. 누군가 그를 도와 시간을 벌어 준다면 혹 모를까.”
“구천노도 심통이라는 늙은이가 올 수도 있지 않소?”
“그 늙은이는 마물들의 상대가 되지 못해요. 마물들의 일 초 반 식도 버티지 못할 거예요.”
혈검은 그녀의 말에 공감했지만, 그냥 떠나자니 너무 아쉬웠다.
“그렇다면 연적하의 최후를 확인하고 가는 게 낫지 않겠소? 당주님도 궁금해할 것 같은데…….”
“아직도 모르겠어요? 연적하 다음이 누구 차례라고 생각하나요? 저 마물들은 어쩌면 이 산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다 죽이려 할지도 몰라요.”
“헛!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오?”
“내 말 믿어요. 순서의 차이일 뿐이에요. 마물들은 인간과 공존할 뜻이 없어 보이니까.”
“…….”
그 말에는 혈검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확실히 마물들은 인간을 발톱의 때만도 못하게 여기고 있었다.
과거의 동료에게도 가차없이 살수를 쓰는 걸 보라.
끝까지 보지 못해 아쉽지만 혈검은 결국 양소란과 함께 떠나기로 했다.
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른 마물들의 다음 목표가 되고 싶지 않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