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76
176회. 죽을 쒔으면 내가 먹어야지
그러나 끝내 태을 선인은 연적하에게 “검을 팔 생각이 없느냐”고 묻지 못했다.
검사에게 검은 그의 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호를 떠나는 거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그런 결례도 없었다.
“사형, 뭘 그렇게 보십니까?”
태무 선인은 아까부터 태을 선인이 옆자리를 힐끔거리자 궁금했다.
“아니, 그냥. 연 소협의 검이 어느 문파의 법보였을까 궁금해서.”
“연씨의 것이라고 한 것 같던데요.”
“나도 안다. 그 연씨가 어느 문파에 속한 연씨인지를 좀 생각해 보았다.”
“사형, 법보의 인연은 하늘이 내리는 겁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끙! 누가 뭐라고 하더냐. 그냥 내력이 궁금하다 이거지.”
듣고 있던 태령 선인이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연 소협은 녹림의 사람인데 어째서 선기(仙氣)가 느껴지는 걸까요?”
“스승이 도문 출신일 수도 있다. 녹림은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태무 선인의 말에 태령 선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정도로 도력이 깊은 이가 녹림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딱히 짚이는 게 없는지라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 뒤로 곤륜삼선은 유명교와 정의맹에 대한 의견을 나누다가 숙소로 올라갔다.
***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자리에서 일어난 곤륜삼선은 식당으로 내려가 식사를 마쳤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연적하는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곤륜삼선은 그와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무하객잔을 떠났다.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이 식당으로 내려온 것은 정오가 지나서였다.
눈이 퉁퉁 붓도록 늘어져 있던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서도 한동안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았다.
잠시 후 연적하가 요란하게 하품을 했다.
“하아암! 확실히 객잔 주인이 괜찮은 것 같아. 늦게까지 자다가 나와서 먹어도 뭐랄 사람도 없고.”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세상 돌고 돌아 봤자 결국은 잠자리와 먹는 게 전부 아닙니까? 이런 이치를 모르고 평생 헛꿈을 좇는 것이지요.”
“맞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내 옆에 심 노인 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다른 사람들은 입만 열면 천하창생이 어쩌고……. 아주 뜬구름 잡는 소리들만 해 대서.”
“그런 거 다 부질없는 소립니다. 나부터 살고 천하창생이지. 내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 걸 두고 죽 쒀서 개를 준다는 겁니다.”
“내 말이! 죽을 쒔으면 내가 먹어야지. 안 그래?”
“그래서 제가 공자님께 객잔을 권한 겁니다.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살아야지요.”
“이야! 맞아. 배부르고 등 따시게. 바로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두 사람은 죽이 맞아 그 뒤로도 한동안 객잔과 주루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
하남성.
정주.
대연상방.
팔월.
찌는 듯한 더위 속에 대연상방의 정문으로 일 남 일 녀가 들어섰다.
청운검 남궁천과 화용독심 남궁연이다.
두 사람은 곧바로 남궁세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전각으로 향했다.
“예?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고요?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남궁천이 놀란 눈으로 창천대 대주 척사검 남궁진을 바라보았다.
“숙부님께서는 무당산에 계시다. 중상을 입으신 뒤에 무당산에서 치료를 받고 계셨던 것 같다.”
“부상은 어느 정도나 된다고 하던가요?”
“처음에는 거동조차 힘들 정도였지만 이젠 거의 회복되신 것 같다. 아무튼 잘 왔다. 그렇지 않아도 너희들에게 알려 주려고 했는데 연락이 닿아야지.”
“당장 무당산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우리도 네가 돌아오기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남궁진의 얼굴에 모처럼 혈색이 돌았다.
검왕 남궁벽이 건재하니 복수는 물론 남궁세가의 재건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해서다.
***
정주.
정의맹 정주 지부.
설차수와 유근식, 진설하의 귀환으로 정주 지부가 떠들썩했다. 중책을 맡고 떠난 지 무려 팔 개월 만에 돌아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지부장 승운검객 마천덕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내가 지금 뭘 잘못 본 건 아니겠지?”
설차수, 유근식, 진설하의 얼굴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나 예상했던 반응이다.
셋 중에 가장 연장자인 설차수가 대표로 말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지난 팔 개월간 직접 목격한 것들만 기록한 것입니다.”
“나야 자네들을 믿으니까 그러려니 하겠지만. 솔직히 총단의 다른 분들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어. 이건, 너무, 뭐랄까, 허황된 이야기들이라고.”
“예,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 이런 보고서를 썼다고? 십두마병을 죽이니까 마물로 변했다? 마물의 능력은 절정고수도 감당하기 어렵다? 그런데 마물을 연적하가 죽이니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미치겠군. 좀 더 현실성 있게 썼어야지.”
그러자 진설하가 끼어들었다.
“지부장님, 그나마도 많이 줄여서 쓴 거예요. 키가 일 장이 넘는 괴물을 보신 적 있어요? 그런 괴물이 입에서 불을 뿜는 건요? 어떤 건 뱀 몸통에 커다란 날개가 달린 것도 있었어요.”
“돌아 버리겠네.”
마천덕이 괴로운 듯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았다.
맹주의 특명으로 셋을 보냈더니 결과라고 가져온 게 이 모양이다.
한참 동안 머리를 쥐어뜯던 마천덕이 고개를 쳐들었다.
“하아! 여하튼 수고들 했다. 이건 맹주님께 바로 올리도록 하마. 뭐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니 알아서 잘 판단하겠지. 그건 그렇고 지내 보니 녹림의 총순찰이라는 사람은 어떻더냐? 소문처럼 정말 잔인무도하냐?”
설차수와 유근식, 진설하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끔뻑거렸다.
“잔인무도하다니요?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설차수는 마천덕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으르거나 돈을 밝힌다고 하면 모를까? 잔인무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 까닭이다.
“몰랐느냐? 그의 지시로 삼장이 몰락했다. 특히나 그의 외가격인 백가장은 멸문지화를 당하기까지 했지. 그래서 그의 비위를 거스르면 혈육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이 떠돌아 다니고 있는데.”
“삼장의 몰락은 그들이 쓸데없는 고집을 피워서 그렇게 된 겁니다. 백미주와 와룡장의 연씨들이 연적하를 죽이려고 창고에 십 년간 가두었다고 하더라고요. 그에게 사죄를 했으면 용서해 줬을 겁니다.”
“그럼 백미주와 와룡장만 건드렸어야지. 백가장과 양가장까지 망하게 할 건 없었잖아.”
“백가장과 양가장이 와룡장을 끝까지 도우니까 연적하도 화가 났겠지요.”
“설차수, 너 인마. 녹림도와 함께 지내더니 편을 들어 주는 거냐? 이러니저러니 해도 삼장은 우리 정의맹의 일원이었다. 다른 데 가서는 그런 말 하지 마라. 괜히 욕만 먹는다.”
설차수는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제가 본 그는 잔인무도와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알았어. 다른 사람들은? 너희도 차수와 생각이 같으냐?”
불만 가득한 얼굴로 듣고 있던 진설하가 나섰다.
“지부장님, 그는 세상 때가 묻지 않은 사람이에요. 누가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조용히 살 사람이라는 건 보증할 수 있어요.”
“저도 설 사형과 진 사매 말에 동의합니다.”
유근식까지 연적하를 좋게 말하자 마천덕은 인상을 찡그렸다.
무림의 동도들이 욕하는 연적하를 왜 저렇게 싸고도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쯧! 세상 물정 모르는 것들…….’
아직 젊어서 그런지 자기들의 생각만 옳은 줄 안다.
어차피 녹림은 정의맹의 적인데 굳이 편까지 들 이유는 없지 않은가.
“잘 들어. 너희들이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때로는 시류에 순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살인강도들도 자기 집에서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일 수 있다. 너희들은 그에게서 좋은 면을 보았겠지만, 나쁜 면을 본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입조심들 해. 그만 나가 봐.”
진심이 담긴 그의 충고에 설차수, 유근식, 진설하는 반박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
보봉현.
하가촌.
오봉산채로 돌아온 연적하와 심통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하가촌에 내려갔다.
물론 객잔과 주루를 사기 위해서다.
하지만 하가촌처럼 작은 마을에서 객잔과 주루를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존에 있던 객잔 하나는 주인이 죽어도 안 팔겠다고 했다.
주루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코딱지만 한 마을에 객잔과 주루를 만들기도 그랬다.
오늘도 연적하와 심통은 사해루에 죽치고 앉아 객잔과 주루의 인수 방법을 두고 고민했다.
그때 본의 아니게 끌려 나와 있던 촌장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저어, 두 분. 저희 하가촌은 손바닥만 해서 새로 객잔과 주루를 만들어 봤자 파리만 날릴 겁니다. 꼭 객잔과 주루를 하고 싶으시다면……. 더 큰 도시로 가시는 건 어떠신지요?”
“…….”
시름에 잠겨 있던 연적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생각해 보니 어차피 꼭 하가촌일 이유는 없었다.
“심 노인.”
“예.”
“촌장님 말대로 큰 도시는 어때? 내가 한곳에만 있으면 되는 거 아냐?”
“사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너무 번잡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공자님은 유유자적하게 놀고먹는 걸 원하시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그러자 눈치를 보고 있던 촌장이 끼어들었다.
“꼭 도시가 아니라도 좋은 곳이 많습니다. 풍광이 수려한 곳에도 객잔이나 주루는 있으니까요.”
촌장은 어떻게든 이 두 사람을 하가촌에서 내보내고 싶었다. 하씨들이 잘 운영 중인 객잔과 주루를 두 사람에게 넘기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데 ‘풍광이 수려한 곳’이라는 말에 연적하가 넘어가고 말았다.
“맞아, 맞아. 경치 좋은 곳에 객잔이 있으면 일석이조지. 하가촌보다는 나을 것도 같은데?”
“그렇기는 합니다.”
연적하의 마음이 동한 걸 안 심통은 반대하지 않았다.
촌장의 말대로 이 좁은 하가촌에 객잔과 주루를 짓는 건 무리였다.
하가촌에서 다른 곳으로 장소를 바꾸자 촌장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두 분께서 정말 객잔과 주루를 운영하시려고요?”
그는 혹시나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장사란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누구라도 장사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특히나 객잔과 주루는 장사에 닳고 닳은 사람들도 손을 놓고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녹림 고수들이 그런 부잡스러운 일을 할 리가 없고. 왜 하려는 거지?’
그러자 연적하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운영은 무슨. 그냥 놀고먹으려고 사는 거예요. 심 노인이 그러는데 그거 하나 사 두면 평생 빈둥거릴 수 있다더라고요. 게다가 객잔 주인이 되면 좋은 것도 많잖아요. 아무 때나 먹고, 아무 방이나 들어가 자고.”
‘헉!’
기막힌 말에 촌장은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돈은 모으기가 어렵지 날아가는 건 한순간이다.
저런 마음으로 하는 객잔의 끝이 어떨지, 말만 들어도 결과가 훤히 보였다.
“예, 예……. 그럼 더욱 풍광 좋은 곳을 사셔야지요.”
그는 그냥 이 두 녹림 고수를 하가촌에서 치우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돈을 다 털어먹고 다시 오봉산채로 돌아가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제발 하가촌에 눌러앉겠다는 소리만 하지 마라.’
촌장은 연적하와 심통이 적당한 지역을 논의할 즈음,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