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78
178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거간꾼이 망설이고 있는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에게 넌지시 말했다.
“보셨다시피 객잔은 본래 비쌉니다. 이곳도 이만 냥 달라는 것을 겨우 만 이천 냥에 맞춘 겁니다. 어디 가서도 만 이천 냥으로는 객잔을 살 수 없습니다. 산속이나 사막에 있는 거라면 모를까.”
연적하와 심통은 반박하지 않았다.
오후 내내 객잔들을 보고 다녔기에 대충 시세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심통이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던 손을 뗐다.
번민에서 헤어 나온 그의 얼굴은 마치 해탈한 사람처럼 빛났다.
녹림은 길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습과 강탈에는 늘 반격이 따르기 마련이니 순간의 판단이 생사를 좌우한다.
그런 생활이 길어지다 보면 매사를 즉흥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결단이 빠르고, 추진력이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심통은 전형적인 녹림도였다.
‘더러워도 인정하자. 지금 공자님과 나의 돈으로는 이 정도 수준의 객잔밖에 살 수가 없다. 일단 공자님의 꿈만이라도 이뤄 드리자.’
물론 객잔이 형편없다는 건 알고 있다.
자신의 주루도 당분간 포기하는 마당에 그런 정도야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이게 최선이고, 나중의 일은 그때 가서 또 해결하면 된다.
“공자님.”
심통의 눈빛을 본 연적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마.”
“지금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 안 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굳이 지금 하지 않아도 돼.”
“숙수만 구해 놓으면 앞으로 계속 빈둥거릴 수 있습니다. 방이야 사람 사서 청소하면 되고요.”
“심 노인.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이 객잔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공자님의 꿈인 객잔을 한다는 게 의미가 있는 겁니다. 상태야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객잔이 공자님 인생의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말이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갔지만 연적하는 왠지 납득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객잔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객잔은 그저 자신을 놀고먹게 하는 보조 수단일 뿐이다.
연적하는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더럽고 우중충한 실내와 퀴퀴한 냄새는 여전했지만 충격은 덜했다.
“…….”
심통은 연적하가 갈등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귀가 얇은 그이니 몇 마디만 더하면 내키지 않더라도 따라올 것이다.
심통이 주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객잔의 장점 같은 게 있다면 말해 보거라.”
“황하에서 삼 장(약 9미터) 거리에 있는 객잔은 저희 객잔뿐입니다. 낮에는 황하의 수려한 경관을 즐길 수가 있고, 밤이면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쉴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한적한 곳에 있다 보니 흑도 방파에서 보호비를 걷으러 오지도 않습니다.”
사실 황하는 물빛이 탁해 수려함과 거리가 멀다.
게다가 객잔이 있는 곳은 급류 지역이라 ‘졸졸’이 아니라 그보다 격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흑도 방파에서도 포기할 정도로 손님이 들지 않는 곳이다.
거간꾼이 한마디 거들었다.
“아침에 물안개 피어오르는 경관을 보시면, 정말 일품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겁니다.”
물안개로 흙탕물을 가려 줘야 겨우 볼만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정도 물안개면 앞이 보이지 않아서 그야말로 무용하다. 물론 외지인들이 그런 것까지 생각할 리는 없지만 말이다.
연적하는 처음의 완강한 기세를 버렸다.
심통과 객잔 주인, 거간꾼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그 정도 장점이라면 더러움을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아! 심 노인, 일단 하루 묵어 보고 다시 얘기하자.”
“그러시지요. 깨끗한 방을 두 개 준비해라. 그리고 너도 이곳에서 묵을 것이냐?”
심통의 물음에 거간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밤이 늦어 하루를 묵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제 경비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곳은 방값이 싸서 며칠 묵어도 상관없으니까요.”
“알겠다. 내일 아침에 다시 이야기하자. 그건 그렇고, 주인장?”
“예?”
“우리는 아직 저녁을 먹지 못했다. 식사가 되느냐?”
“그게 신선한 재료가 다 떨어져서 지금은 조금 곤란합니다. 아침에 사다가 만들어 드리면 안 될까요?”
“대단한 요리를 하라는 게 아니다. 그저 간단한 소면이어도 상관없다. 빈속으로 잘 수는 없지 않느냐. 준비해서 올려라.”
“아, 예. 그 정도라면 바로 해 드리겠습니다.”
귀찮아서 쉬려고 했던 주인은 심통의 명령에 얼른 태세를 전환했다. 뭐라도 입에 처넣기 전에는 포기할 것 같지 않아서다.
잠시 후 주인이 소기회면 세 그릇을 내왔다.
돼지고기, 양고기 등뼈로 낸 기름 진 국물에 아기 손바닥만 한 크기의 면 조각과 야채가 때깔 좋게 어우러져 있었다.
연적하는 면 한 조각과 야채를 건져 올렸다.
야채는 주인의 말대로 시들했지만 어차피 고기 국물에 끓인 것이라 신경 쓰지 않았다.
오후 내내 객잔을 본다고 돌아다녀서 그런지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갔다.
식사를 마치자 거간꾼은 주인을 따라 이 층 숙소로 올라갔다.
차를 마시던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하고 계십니다. 솜씨 있는 숙수만 불러다 놓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산채보다야 낫겠지?”
“어이쿠! 당연하지요. 산채가 어디 사람 살 곳입니까? 객잔 주인을 하라면 죄다 산에서 내려간다고 아우성일 겁니다.”
“그렇기는 해.”
산적들에게 ‘객잔 주인 할래? 산채에서 지낼래?’ 물어보면 누구라도 객잔 주인을 한다고 할 것이다.
한동안 시시덕거리던 두 사람은 주인의 안내를 받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들어간 연적하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동안 좀 치웠는지 방은 처음 봤을 때보다 상태가 조금 나았다. 아니, 어쩌면 어느새 적응돼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아침.
연적하는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주인과 거간꾼의 말대로 경관이 뛰어난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오오!”
하늘이 객잔 주인을 도왔나 보다.
강물 위로 물안개가 살짝 피어오른 강변의 경관은 극상이었다.
마치 구름이 객잔 옆을 휘감아 도는 것 같았다.
연적하는 강변을 걷다가 거대한 바위를 발견했다.
그것은 오봉산 제일봉에 즐겨 앉아 수련하던 바위를 닮아 있었다.
묘한 인연이 느껴진다.
훌쩍 바위 위로 몸을 날렸다.
바위에 올라서니 삼 장(약 9미터)쯤 아래로 물안개가 흘러가는 게 보였다.
급류가 부딪치는 곳이라 그런지 바위 아래에서 물소리가 요란했다. 아무래도 지난밤에 들었던 소리의 진원지가 이곳인 모양이다.
뒤쪽이 무성한 숲으로 가려져 마치 깊은 숲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객잔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동안 모아 둔 돈을 허튼 데 쓰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무위도식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객잔은 그 모두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하나의 방편에 불과했다.
“공자님, 일찍 나오셨군요. 어떻습니까? 제 말대로 경관이 일품이지요?”
연적하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간꾼이 서 있었다.
“그렇네요. 객잔보다는 바깥 풍광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글쎄, 그렇다니까요. 이렇게 싼값에 나온 객잔은 없습니다. 사 두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전 주인이 게을러서 그렇지 열심히만 하면 금방 돈방석에 오르실 겁니다.”
연적하는 피식 웃었다.
돈을 벌려고 사는 게 아닌데, 거간꾼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보다.
연적하가 다시 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간꾼은 ‘자살 바위’ 위에 서 있는 연적하를 한동안 보다가 조용히 돌아섰다.
일다경(약 20분)쯤 지났을까?
경치를 구경하던 연적하는 바위에서 내려와 객잔으로 걸어갔다.
객잔에 들어가자 벌써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객잔 주변 풍광이 마음에 들었던 연적하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잠시 후 심통은 주인이 수결한 계약서를 연적하에게 공손히 바쳤다.
연적하는 계약서를 곱게 접어 품 안에 넣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뭔가를 소유하는 순간이라 가슴이 뭉클했다.
객잔의 전 주인이 머리를 꾸벅 숙였다.
“축하드립니다. 공자님. 이제 주인이 되셨으니 지난밤의 숙박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장사가 잘돼서 돈을 많이 버시기 바랍니다.”
“고향으로 내려가신다고요? 먼 길 잘 가시기 바랍니다.”
“그럼 저는 이만 떠나겠습니다. 가족을 먼저 보내고 저만 남아 있었는데, 이제 홀가분하군요.”
“어르신, 공자님, 저도 이만 가 볼까 합니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아무 때나 연락 주십시오.”
심통에게 따로 수수료를 받은 거간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이어 전 주인과 거간꾼이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연적하는 주인 된 자의 도리로 객잔 입구까지 나가 그들을 배웅했다.
고작 두 사람을 보낸 것뿐인데 갑자기 객잔이 텅 빈 느낌이다.
사실 텅 빈 건 과장이 아니었다.
연적하와 심통을 제외하면 외부인이 없었으니까.
전 주인과 거간꾼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연적하는 객잔으로 들어갔다.
“심 노인,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야?”
“그야 당연히 개봉성에 가서 솜씨 좋은 숙수를 구해야지요.”
“돈이 남았어?”
전 재산인 만 이천 냥을 다 털어 넣었는데 어떻게 숙수를 고용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흐흐흐. 제가 누굽니까? 저런 놈들 눈탱이 치는 건 일도 아니지요. 가격 흥정을 대비해서 만 이천 냥이라고 했던 겁니다. 객잔 운영에 돈이 들어갈 것 같아서 따로 오백 냥을 빼놓았습니다.”
“오오! 잘했어. 역시 심 노인이야.”
연적하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오백 냥이면 숙수를 고용하고 몇 년은 안정적으로 굴러갈 수 있으리라.
한편 개봉성으로 가고 있던 거간꾼과 객점 전 주인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거간꾼, 황소가 먼저 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핫! 이게 웬 횡재래? 만 이천 냥이라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객점 전 주인, 석인이 음흉한 얼굴로 황소에게 물었다.
“황 형, 소삼을 어떻게 할까?”
“뭐? 그 말은 설마?”
“셋이서 만 이천 냥을 나누면 한사람 앞에 사천 냥이야. 하지만 둘이 나누면 육천 냥이지.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선택은 자네가 하라고.”
순간 황소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과 석인, 소삼, 이렇게 셋은 함께 다니며 사기를 치며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석인이 소삼을 내치자고 제안한 것이다.
하기사 가장 나이 어린 소삼은 버려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기는 하다. 그 정도 바람잡이야 어디를 가도 쉽게 구할 수 있었으니까.
황소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대로 개봉을 뜰까?”
“역시! 자네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먼. 내 고향을 정주라고 했으니까, 정주만 빼면 되겠네. 어디로 가서 떵떵거리며 살아 볼까? 복양? 제녕?”
“정주만 아니면 돼!”
한동안 키득거리던 황소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런데 무림인들 같던데 괜찮겠지?”
“이 사람아. 우리가 무림인들 등쳐 먹은 게 하루 이틀이야? 뭘 그런 걸 다 걱정해? 그놈들은 머리에 똥만 들었다고. 그 늙은이, 꼴에 무림인이라고 허세 부리던 거 생각해 봐. 그자들은 평생 우리를 못 찾아. 천하가 이렇게 넓은데 무슨 수로 찾아? 몇 년 지나면 우리 얼굴도 잊을걸?”
“그렇겠지? 육천 냥이면 평생 놀고 먹어도 되겠군. 이 돈으로 뭘 한다?”
“정 할 게 없으면 작은 촌구석에 객잔이라도 지어.”
“어이쿠! 객잔은 말도 꺼내지 마. 그나저나 아까 그 객잔 주인은 누구야? 자네는 알아?”
“모르지. 알 게 뭐야. 수 년간 주인도 없이 방치된 객잔이었는데.”
“진짜 주인이 돌아오면 볼만하겠네.”
“아까 그 늙은이가 가짜 계약서 들고 개봉부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겠지. 그것까지 봐야 하는데. 쩝.”
석인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황소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네는 정말 나쁜 놈이야.”
“어이! 황 형, 누워서 침 뱉지 말자고.”
키득거리던 두 사기꾼은 갈림길이 나오자 동쪽으로 방향을 꺾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