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80
180회.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
팔월 말.
정의맹에서 조용히 무림첩을 돌렸다.
‘남경의 총단에서 추계비무대회를 개최하니 많은 참여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누가 봐도 특별할 것 없는 무림첩이건만 대륙에 전운이 감돌았다.
뜬금없이 추계비무대회라니?
게다가 고작 비무대회를 위해 무림첩을 돌린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천하가 술렁거렸지만 정의맹은 그에 대한 어떤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정의맹에 속한 문파들도 이상했다.
그들은 갑자기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정예를 추려 남경으로 보낸 것이다.
강호가 정의맹의 무림첩으로 술렁거리고 있을 때, 화상촌도 소란스러웠다.
잘 사용하던 나루터가 하루아침에 박살이 났기 때문이다.
제법 크게 만들어진 선착장은 팔뚝만 한 나뭇조각 하나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가루가 됐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박해 있던 배들이 부서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서둘러 선착장을 다시 만들었다.
그러나 새로 지어진 선착장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결국 개봉부에서 관인들까지 나와서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누가?’, 그리고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선착장을 만들되 이번에는 밤새 지키기로 했다.
마침내 세 번째 선착장이 완공되었다.
그날 밤.
화상촌의 장정 십여 명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선착장을 지켰다.
자정(밤 12시) 무렵에 일이 터졌다.
어디선가 일진광풍이 불어와 단숨에 선착장을 박살 내 버린 것이다.
순박한 촌민들은 하늘이 노했거나 귀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부정 탄 게 확실한 선착장을 버리고 상류에 있는 선착장으로 배를 옮겼다.
다음 날부터 연적하가 구매한 객잔에 하나 둘 손님이 들기 시작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식당으로 내려간 연적하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주 좋아.”
낯선 얼굴들이 셋이나 보이고 있다.
어제의 손님들이다.
심통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효과를 보니 만족스럽다.
그때 상도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자님, 아침마다 드시던 것으로 내올까요?”
“어.”
상도가 돌아가는 걸 보고 있던 연적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런 게 바로 객잔 주인의 좋은 점이다.
산채에 있을 때는 무조건 찬모들이 만들어 주는 것을 먹어야 했다.
옆자리 손님들의 말을 들어 보니 상인인 것 같았다.
무심코 듣고 있는데 ‘정의맹에서 무림첩을 돌렸다’는 말이 나왔다.
순간 저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텁석부리와 주먹코를 한 상인이 눈에 들어왔다.
사십 대로 보이는 텁석부리가 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정의맹이 드디어 싸움을 시작하려나 보네. 오랫동안 잘 참았지.”
“모르지. 진짜 비무대회만 하고 끝낼지도.”
“이 사람아. 그걸 말이라고 하나? 지난 몇 년간 비무대회를 연 적이 없는데, 갑자기 추계비무대회가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물론 나도 이상하긴 하지만. 무림인들 엉뚱한 짓 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이어야지.”
“이번엔 틀림없대두. 말을 들으니까 남경으로 가는 사람들 분위기가 장난 아니래. 죄다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들 같더래.”
“흠! 그럼 정말 이번에는 무슨 일이 나기는 날 모양이네.”
“잘됐지 뭐. 그들은 싸우라고 해. 우리는 돈만 벌면 되니까.”
사람들이 떼로 움직이면 상방은 돈을 번다. 먹거리와 생필품, 의약재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는 까닭이다. 그러니 상인들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가 아니었다.
동감이라는 듯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던 주먹코가 문득 말했다.
“아, 참! 그런데 왜 하류에 있던 나루터를 없앴는지 아나? 그쪽 물길이 훨씬 좋은 것 같던데? 이쪽도 쉬어 갈 객잔이 있어서 나쁘지는 않지만.”
“그쪽 나루터에 일들이 많았던 모양이야.”
“무슨 일?”
“선착장이 계속해서 부서지고 그랬다나 봐. 귀신의 장난이라는 말까지 하더라고.”
“그래? 별스러운 일이 다 있구먼.”
“별스러운 것으로 치면 유명교를 못 따라가지. 자네도 괴물 이야기 들어 봤나?”
상인들 이야기가 유명교 괴물로 옮겨 가자 연적하는 관심을 끊었다.
마침 상도가 소고기볶음과 살짝 데친 청채, 양으로 만든 탕 요리 등을 내왔다.
연적하는 가끔 창밖을 내다보며 묵묵히 식사를 즐겼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천 형님과 연 누님도 남경으로 가고 있겠네?’
정주에서 남경으로 간다면 개봉에는 들를 일이 없을 것이다.
그 점이 살짝 아쉬웠다.
개봉에 들른다면 모셔다가 객잔 자랑을 좀 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
정주.
천하제일루.
점심때부터 천하제일루는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하릴없는 한량들이 평소처럼 기웃거리다가 경비 무사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중원상방 대행수 임해수의 셋째 아들 임소찬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안으로 들어가려다 제재를 당하자 임소찬이 버럭 소리쳤다.
“야! 너 지금 실수하는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 나 임소찬이야! 임소찬!”
정주에서 중원상방의 비위를 거스르면 장사하기가 어렵다.
평소 깍듯하던 정주제일루가 뻣뻣하게 나오자 임소찬은 발끈했다.
그러나 경비 무사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임 공자, 오늘은 유명교에서 전세를 냈기에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내일 다시 찾아 주십시오.”
유명교라는 말에 임소찬이 움찔했다.
정주제일루 전체를 빌릴 정도면 보통 위치가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가 한풀 꺾인 음성으로 물었다.
“유명교의 어느 분이 전세를 낸 거요? 누구인지나 알고 갑시다.”
좌우를 살피던 무사가 속삭이듯 말했다.
“백두마군님들의 모임이오.”
“…….”
임소찬은 그 말을 듣자마자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십두마병만 해도 정주가 들썩거릴 텐데, 무려 백두마군들이라니 당연하다.
정주제일루 칠 층.
주인 장보옥이 조마조마한 얼굴로 계단에 서서 창가 쪽을 힐끔거렸다.
오 남 이 녀가 앉았는데 하나같이 범상치 않다.
광명장원의 환영신마 웅재귀, 은하장의 혼세검마 척진경, 초월산장의 혼천혈귀 강상피, 신월사의 악불 방천각, 일원도관의 적월 공취산, 무산소축의 무산낭랑 이매화, 월하교당의 월하선자.
‘한 사람만 나타나도 정주가 뒤집힐 판국인데…….’
아랫사람들이 실수라도 할까 봐 직접 나와서 시중을 들고 있는데 후회막급이다.
이렇게 숨통이 막힐 줄 알았으면 나 몰라라 하고 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곱 명의 백두마군들은 한동안 말없이 술만 마셔 댔다.
그들의 얼굴에는 최근 무림의 심상치 않은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방천각이 먼저 말했다.
“신월사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무림의 일들을 잘 알지 못하오. 오는 동안에 별소리를 다 들었는데 누가 속 시원하게 말씀을 좀 해 주시오.”
멀리 사천성에서 온 방천각의 우는 소리에 이매화가 입을 열었다.
“제가 잘 안다고 할 수 있으니 요약해 드릴게요. 그렇지 않아도 그 일과 관계해서 나눌 이야기도 있으니.”
이매화는 최근 강호를 떠도는 괴담과 십두마병의 사후 변화에 대해 털어놓았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요?”
방천각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유명교는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내부적인 결속력이 약하다.
백두마군들은 대체로 독불장군처럼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거기에 유명교 특유의 신분 상승 방법이 불을 질렀다.
십두마병, 백두마군에 오르는 동안 그들은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게 됐다.
그것은 ‘누군가를 죽여 초능을 얻는 원리가 십두마병과 백두마군에게도 적용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주가 실종되자 그들은,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를 의심했다.
백두마군들의 집회를 특정 교당에서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웅재귀가 이매화를 거들고 나섰다.
“믿기 어렵겠지만 낭랑의 말은 사실이오. 나의 수하들도 같은 소리를 했소.”
보다 못해 척진경도 한마디 보탰다.
“모두 사실이외다. 얼마 전에 내 수하들과 낭랑의 수하들이 그렇게 죽었소.”
방천각이 반신반의한 얼굴로 척진경을 보았다.
“누가 감히 십두마병들을 죽였다는 말이오?”
“몇몇 백두마군들이 녹림 다섯 곳에 십두마병을 심었었소. 그런데 파천마군이 그게 못마땅했던 모양이오. 그는 총순찰을 보내 다섯 개 산채와 수채를 정리했소. 그 과정에서 십두마병이 여럿 희생됐고.”
“아니 왜 가만히 있는 녹림을 건드린 거요? 당신들은 교당만으로 부족했소?”
방천각은 백두마군들이 은밀하게 세를 확장하려다가 일을 벌인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외다. 우리는 본교가 한 일들을 녹림의 짓으로 돌리려고 했던 거요. 더 나아가 녹림을 통해 수도사를 사들일 생각이었소. 그런데 그게 틀어지고 만 거요.”
“허!”
방천각이 기가 막힌 얼굴로 척진경과 이매화를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그 생각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닌지라 비난할 수가 없었다.
“허면 강호에 떠도는 그 괴상한 소문이 다 사실이라는 거요?”
“그래요. 내가 거느린 십두마병들은 그 일로 심란해 하고 있어요.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그게 초능의 부작용인지…… 알고 싶어해요. 이것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분이 있나요?”
이매화가 백두마군들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그때 척진경이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런 건 교주님께 물어보면 될 거라고 생각하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소.”
“교주님이 사라지신 지 벌써 이십 년이 넘었어요. 그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뒤로 넘기지 마세요. 십두마병의 일은 곧 우리들의 일이니까요. 우리가 그처럼 마물로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이매화의 반박에 척진경이 인상을 찌푸렸다.
교주밖에 모르는 일을 자꾸만 거론하니 답답할 뿐이다.
“낭랑, 내 당신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오. 허나 교주님이 계시지 않으니 그 문제는 덮어 두자는 거요.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어 봤자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밖에 더 되겠소?”
“…….”
이매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지만 당장 척진경의 말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의 다툼을 보고 있던 웅재귀가 중재를 했다.
“두 분 말씀이 모두 맞소. 십두마병의 일은 곧 우리의 일이오. 허나 우리 역시 이유를 모르니 이 자리에서 논할 문제는 아닌 것 같소. 그보다는 정의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그러자 곧바로 월하선자가 냉소를 쳤다.
“흥! 이 모두가 연적하라는 놈 때문이에요. 그놈이 본교를 만만하게 보고 건드리니까, 정의맹도 주제를 모르고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간 거죠.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고, 지금이 딱 그 꼴이에요.”
월하선자는 엉뚱하게 연적하에 대한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냈다.
와룡장 자리에 월하교당을 세워 참월검객 연무룡에게 복수를 끝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다시 유명교를 적대시하니 여간 눈에 거스르는 게 아니었다.
이야기가 자꾸 겉돌려 하자 척진경이 다시 나섰다.
“나도 그놈에게 원한이 있소. 허나 당분간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고 보오. 정의맹이 무림첩을 돌린 지금, 녹림과 척을 질 수는 없으니까.”
척진경의 지적에 월하선자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지금은 고수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정의맹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