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81
181회. 팔리지도 않는 객잔을 어디에 쓴다고
처음 대화를 이끌어 간 사람은 혼세검마 척진경과 환영신마 웅재귀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월하선자와 무산낭랑 이매화도 적극성을 띠었다.
특히나 이매화의 경우 십두마병의 문제는 잊은 듯 정의맹의 문제에 매달렸다. 그녀의 무산소축이 정의맹 남경 총단과 가장 가까워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월하선자 역시 비슷한 이유로 대화에 뛰어들었다. 무산소축이 최전선이라면 그다음이 바로 은하장, 월하교당, 광명장원인 까닭이다.
그에 반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악불 방천각, 혼천혈귀 강상피, 적월 공취산은 수동적이었다.
사실 그들은 정의맹과 뚝 떨어져 있어 위기를 체감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결론은 쉽게 도출되지 않았다.
“비무대회를 핑계로 모인 정의맹을 남경에 묶어 둬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산소축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봐요. 무산소축에서 그들의 예봉을 꺾어야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할 거예요.”
이매화는 유명교가 무산소축에 저지선을 만들기를 바랐다.
그러자 웅재귀가 반론을 제기했다.
“저들이 합비로 간다는 보장이 없는데 어떻게 예봉을 꺾는단 말이오? 차라리 호남성으로 끌어들여 일거에 쓸어버리는 게 낫다고 보오.”
“흥! 정의맹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면서 호남성으로 끌어들이자고요? 그들이 우리가 가라는 대로 가 준답니까?”
이매화가 날카롭게 받아쳤다.
웅재귀의 말은 무산소축을 포기하자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동을 시작하면 대략의 경로가 눈에 드러날 게 아니오? 그러니 우리가 어디서 싸울지를 충분히 숙고할 수 있다는 게요.”
두 사람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다른 백두마군들은 각자의 이해에 따라 두 사람의 의견을 지지하거나 반박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도 실질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웅재귀가 이매화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무산소축에서 정의맹을 막겠다는 건 그녀의 욕심일 뿐이다.
‘교도들을 그 좁은 곳에 몰아넣고 뭘 하자는 건지.’
정의맹에서 언제 공격해 올지 알고 그곳에 교도들을 대기시킨단 말인가?
결국 웅재귀는 절충안을 내놓기로 했다.
“허면 이렇게 하십시다. 무산소축으로 갈 교당은 가시고, 나머지 교당은 일단 낙양에 모이는 것으로.”
“그러십시다.”
“그게 좋겠소.”
백두마군들은 웅재귀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막상 어디로 갈 거냐는 질문 앞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무산소축으로 가겠다는 교당이 없었다.
이매화가 씁쓸한 표정으로 강상피와 공취산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무산소축에서 싸우자고 하더니 낙양으로 간단다. 말만 번지르르 했지 소신 대신 대세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낭랑께서는 어찌하시겠소?”
웅재귀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이매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어쩌긴요. 나 혼자 무산소축에서 정의맹과 싸울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정의맹의 예봉을 꺾었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당신은 분명 오늘의 결정을 후회하게 될 거예요.”
웅재귀는 질린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뒤끝이 강한 여자다.
그런 웅재귀를 빤히 보며 이매화가 말했다.
“당신은 정의맹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고 했지요? 그들의 코앞에 남궁세가를 몰살한 무산소축이 있는데, 과연 피해 가려 할까요? 정의맹의 수명을 연장시켜 준 건 당신이라는 것만 기억해 두세요.”
“남궁세가는 이미 무림에서 잊혀진 가문이오. 정의맹에서 그들의 복수를 위해 무산소축부터 칠 거라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외다. 정의맹의 입장에서 보면 무산소축을 건드리는 건 타초경사(打草驚蛇)에 불과하오. 그보다는 오히려 빠르게 하남으로 진격해 와서 세를 구축하려 할 게요.”
“그야 두고 보면 알겠지요. 누구 말이 맞을지는.”
이매화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정의맹이 어디로 올지 뻔한데 그 천금 같은 기회를 이렇게 흘려 버리다니. 웅재귀의 쓸데없는 고집이 정의맹을 살려 준 셈이다.
***
개봉.
바다처럼 새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청명한 가을의 정오.
사업을 말아먹고 은거하다시피 고향집으로 돌아온 남초결은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나갔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거리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던 그는 배가 출출해지자 가까운 반점으로 걸어갔다.
반점은 가게 밖에도 의자와 탁자를 내놓았다.
나이 들어 답답한 게 싫어진 그는 바깥의 자리에 앉아 회면을 주문했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반갑게 알은척을 했다.
“남 어르신? 아이고 이게 얼마 만입니까?”
뒤를 힐끔 돌아보던 남초결의 눈가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상대는 만덕상방의 행수 장이유였다.
그와는 이 년쯤 전에 객잔 인수 문제로 협상을 한 적이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 까맣게 잊고 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장 행수 아니오?”
“예, 장이유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뭐 그럭저럭. 만덕상방은 어떻소?”
“저희는 요즘 바빠서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건강은 좀 괜찮아지셨습니까?”
장이유는 남초결의 안색을 살폈다.
이 년 전 그가 객잔을 처분하려고 한 이유 중 하나는 건강이 나빠져서였다.
“이제 겨우 다닐 만한 정도라오.”
“다행입니다. 식사를 하러 나오셨나 봅니다. 마침 저도 먹어야 하는데.”
말과 함께 장이유는 남초결의 맞은 편에 걸터앉았다.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아, 참! 남 소저는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장이유는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남초결에게는 유일한 혈육이 하나 있다. 사망한 아들 내외가 남긴 손녀 남수경이다. 미모가 출중해서 그녀를 보기 위해 객잔을 찾은 손님도 많았다.
“그 애는 요즘 다관에 나가 일을 배우고 있소.”
“객잔은 어쩌시고요?”
“그 팔리지도 않는 객잔을 어디에 쓴다고.”
남초결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객잔 옆에 있던 나루터가 옮겨 가면서 손님이 뚝 끊겼다. 때마침 건강까지 나빠져 객잔을 처분하려 했지만 팔기도 쉽지 않았다.
눈앞의 장이유도 그 당시 객잔을 인수하겠다던 상인 중 하나였다.
그때 그가 부른 가격은 오천 냥.
자신이 육천 냥 아래로는 팔지 않겠다고 해서 흥정은 흐지부지 깨졌다.
지금이야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사천 냥에라도 처분하고 싶다.
하지만 이 년이나 방치해 흉물이 되었을 테니 살 사람도 없으리라.
‘근처를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데 뭐…….’
남초결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자 장이유가 조금 뜻밖이라는 얼굴로 말했다.
“팔리지 않는다고요? 설마요? 요즘 산서성으로 올라가는 상방은 그리 다닌다고 들었습니다.”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오? 그쪽으로는 사람이 오가지 않은 지 오래 됐는데.”
“아닙니다. 저도 최근에 들었는데 그쪽이 맞습니다. 혹시 아직도 객잔을 처분할 의향이 있으십니까?”
“그렇기는 한데……. 상태가 그때만 못할 게요. 그동안 몸이 좋지 않아서 내려가 보질 못한지라.”
남초결이 장이유를 힐끔 보았다.
정말 그가 객잔을 매입하겠다고 하면 사천 냥에라도 넘길 생각이었다.
“하하. 어르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조금 불안하군요. 객잔 상태를 확인하고 가격을 조정하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때처럼 너무 후려치지만 마시구려. 정 안 팔리면 손녀에게 줘 버릴 거요.”
“어이쿠! 염려 마십시오. 저 그렇게 양심없는 사람 아닙니다. 댁은 여전히 그곳이시지요?”
“그렇소. 아무 때나 찾아오시구려.”
“예,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남초결은 장이유와 식사를 마치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남초결의 행복한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오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녀가 피멍이 든 얼굴로 돌아온 것이다.
“헉! 수경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어?”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남초결에게 남수경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이 년 전부터 저를 따라다니던 남자가 있어요. 삼보방의 소방주 녹담평이라는 자인데……. 제가 계속 만나 주지 않으니 오늘은 기어코 다관까지 와서 손찌검을 하네요. 자기와 만나지 않으면 때려죽이겠다는데, 어쩌면 좋아요? 흑흑.”
“여자가 싫다고 하면 그만이지 제 놈이 뭔데 너를 때려? 당장 개봉부로 가야겠다!”
“소용없어요. 관부는 무림인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대요.”
“누가 그래?”
“다관 주인이 그랬어요. 가 봐야 소용없을 거라고.”
“허…….”
남초결은 기가 막혔다.
세상이 아무리 미쳐 돌아가도 그렇지, 왜 가만히 있는 여자를 때려죽이겠다고 설쳐 대냔 말이다.
“할아버지, 우리 그냥 개봉을 떠나면 안 돼요?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정말 그에게 맞아 죽을지도 몰라요.”
“삼보방은 대체 뭐하는 곳인데 그렇게 무도하단 말이냐?”
“개봉에 있는 기녀들을 관리하는 곳인데 무서운 사람들이 많아서 아무도 못 건드린대요.”
“끙!”
침음성을 흘리던 남초결은 대청 의자에 주저앉았다.
하나뿐인 손녀라 애지중지 키웠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불행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이번에는 장이유가 찾아와 화를 버럭 냈다.
“어르신! 객잔을 팔고서 왜 또 저에게 판다고 하셨습니까? 우리 만덕상방이 그렇게 우스워 보였습니까? 아니면 벌써 노망이라도 나신 겁니까! 인생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남초결은 장이유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무슨 소리요? 객잔을 팔았다니? 내가 지난 이 년 동안 집 밖에 나간 적이 없는데, 무슨 수로 객잔을 팔았다는 소리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십쇼. 제가 주인이라는 청년을 직접 만나 봤습니다.”
“정말 화상촌에 있는 내 객잔이 맞소?”
“예! 어제 오후에 가서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숙수까지 고용해서 제대로 영업을 하고 있더군요. 하여튼!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곧 저승에 가실 노인네가 인생 그렇게 살지 마십쇼!”
하마터면 사기당할 뻔했다고 생각했던지 장이유는 펄펄 뛰었다.
“내가 안 팔았다니까!”
“어르신이 안 팔았으면 그럼 남 소저가 팔았습니까? 누군가 팔았으니 그자가 주인 행세를 하는 거 아닙니까!”
남초결은 일순 반박하지 못했다.
한순간 정말 손녀가 몰래 팔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다관에 다니는 게 힘들었나?’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터무니없는 상상이었다.
주인이 자신인데 손녀가 무슨 수로 객잔을 팔아 치운단 말인가?
그가 멍하니 서 있자 장이유는 ‘쾅!’ 소리가 나도록 대문을 닫고 가 버렸다.
그날 오후.
다관에서 녹담평에게 시달리던 남수경이 견디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장 행수가 한 말을 두고 고민하던 남초결은 손녀를 대청으로 불렀다.
“수경아.”
“네.”
“혹시 너 화상촌에 있는 객잔……. 아니다.”
손녀와 눈이 마주치자 남초결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신이 키웠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손녀는 그런 짓을 할 만큼 교활하지 않다. 오히려 맹하다 싶을 만큼 순수한 아이였다.
‘장 행수가 뭘 잘못 알고 그러는 거겠지.’
찜찜하지만 그렇게 결론 내리기로 했다.
아니, 설사 손녀가 객잔을 팔았다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녀에게 줄 것이었으니 말이다.
한편 남수경은 할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오해를 했다.
할아버지가 “화상촌에 있는 객잔으로 가자”는 말을 하려다 만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가요! 할아버지. 제가 객잔을 해 볼게요. 손님이 없어도 좋아요. 개봉에서 그자에게 해코지 당할까 봐 떨며 살고 싶지는 않아요.”
남초결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이유의 말도 있고 하니 이참에 돌아가 객잔을 점검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