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82
182회. 그런 뜻입니다
남초결은 남아 있던 돈만 챙겨서 마치 야반도주라도 하듯 조용히 개봉을 떠났다.
행여나 삼보방의 녹담평이 알아채고 사람을 붙일까 봐 그렇게 한 것이다.
화상촌으로 가는 동안 남초결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숙수와 일할 사람들을 구해야 할 텐데…….’
지난 이 년간 병치레를 하느라 수중에 현금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급하게 떠나느라 재산을 처분하지도 못해 당장 쓸 돈이 부족했다.
그래도 좋아하는 손녀를 보니 근심이 날아갔다.
녹담평이라는 놈에게 그간 얼마나 시달렸는지 생기가 넘쳐흘렀다.
“그렇게 좋으냐?”
“네.”
“허면 진즉에 좀 말해 주지 그랬느냐? 그랬으면 더 빨리 화상촌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할아버지 몸도 안 좋으신데 그런 얘기를 어떻게 해요.”
“쯧쯧! 그랬구나.”
남초결은 속이 답답했지만 애써 털어 버렸다.
녹담평에게 따진다거나 복수를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쉬엄쉬엄 걷다 보니 저 멀리 화상촌이 나타났다.
막상 화상촌에 도착하자 남초결은 좀 착잡해 보였다.
무려 이 년간이나 닫아 두었던 객잔은 또 어떤 모습일지 암담했던 것이다.
‘그냥 그때 장이유에게 싸게 넘길 걸 그랬나.’
신기한 눈으로 좌우를 살피던 남수경이 말했다.
“이쪽 길은 한산했는데 사람들이 좀 많네요? 할아버지, 우리 객잔도 잘될 것 같지 않아요?”
“그렇구나.”
아닌 게 아니라 강변으로 향하는 길에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의아해진 남초결은 마침 옆으로 지나치던 봇짐장수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시오. 뭐 좀 물읍시다.”
“예?”
“상인 같은데 왜 이쪽 길로 가는 거요?”
“그야 황하를 건너기 위해서지요.”
봇짐장수가 뭘 그런 걸 묻냐는 얼굴로 남초결을 보았다.
“나루터는 저 아래쪽으로 옮긴 것으로 아는데, 다시 옮겨 온 거요?”
“아, 하류 쪽은 한 달 전에 다 부서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랬구려. 감사하오.”
남초결은 왠지 찜찜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장이유가 한 말 때문이었다.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
손녀의 부름에 남초결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
“아니다. 장이유가 이상한 소리를 한 게 떠올라서.”
“뭐라고 했길래요?”
“객잔을 누가 운영하고 있다나 뭐라나.”
“할아버지 객잔을요?”
“그래.”
“혹시 파셨어요?”
“그럴 리가 있느냐? 그랬으면 너에게 객잔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하지 않았을 게다.”
슬슬 마음이 불안해진 남초결은 속도를 올려 마을을 관통했다.
숲속으로 난 길을 한참 따라가다 보니 저 멀리 눈에 익은 객잔이 보였다.
“할아버지, 객잔에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어요!”
“…….”
남초결은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곧이어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어느 인간들이 뻔뻔하게 남의 객잔을 차지하고 장사를 하는 걸까?
객잔 문을 열고 들어간 남초결은 계산대에 있는 노인에게 따지듯 물었다.
“노인장, 당신이 여기 주인이오?”
“어이쿠! 그럴 리가요. 저는 그저 계산대를 지키는 늙은이일 뿐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왜 찾으시는 겁니까?”
화상촌의 셈 빠른 노인, 상일운이 의아한 눈으로 손님을 보았다.
“지금 당장 이곳의 주인을 불러오시오.”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자칭 이 객점의 주인이라는 사람에게 확인할 게 있어서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상일운은 뒤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상도를 불렀다.
“상도야, 가서 연 공자님 좀 모셔 오거라.”
“예.”
상도는 대답과 동시에 부리나케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굳은 얼굴로 서 있던 남초결이 물었다.
“연 공자라는 사람이 이곳의 주인이오?”
“예,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헌데 무슨 일로 그러시는 겁니까?”
“곧 알게 될 게요.”
남초결은 객잔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래도 사람을 사서 청소를 했는지 낡았지만 깨끗했다.
한 시진 넘게 걸어오느라 피곤했던 남초결은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점소이가 새파랗게 어린 청년 하나를 데리고 왔다.
남초결이 청년을 쏘아보자 상도가 얼른 연적하에게 말했다.
“공자님, 저분들이 공자님을 모셔 오라 했습니다.”
“어, 그래? 가서 일 봐.”
“예.”
상도가 뒤로 물러나자 연적하는 노인과 젊은 처자에게 다가갔다.
“저를 찾아왔다고요?”
남초결은 맹한 얼굴의 청년이 다가오자 바로 언성을 높였다.
“자네가 이곳 주인이라고? 뻔뻔하구먼! 내가 팔지도 않은 객잔을 누구에게 샀다는 건가!”
“석인이라는 전 주인에게 샀는데요?”
“전 주인이 석인이라고? 헛소리하지 말고 좋게 말할 때 나가게! 그렇지 않을 시에는 개봉부에 고발하여 물고를 낼 터이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끔뻑이던 연적하가 물었다.
“그런데 노인장은 누구신데 저에게 나가라 마라 하는 겁니까?”
“누구냐고? 허! 내가 이 객잔의 주인이네.”
“그럴 리가 없는데.”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남수경이 끼어들었다.
“저어, 공자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객잔은 우리 할아버지 거예요. 이 년 전에 몸이 안 좋으셔서 객잔 문을 닫아 두었어요.”
“에? 닫아 두었다고요? 그럴 리가. 분명히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아니에요. 정말 우리 할아버지가 이 년 전에 몸도 안 좋고, 손님도 없어서 닫았어요.”
“…….”
우두커니 서 있던 연적하가 상도에게 손짓했다.
“예?”
“심 노인 데리고 와.”
“예.”
상도가 이번에는 이 층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곧이어 심통이 잠에서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내려왔다.
“공자님, 저를 찾으셨습니까?”
“심 노인.”
“예?”
심통은 뒤늦게 연적하의 심각한 얼굴을 발견하고 눈치를 살폈다.
“이 노인장이 객잔 주인이래. 이 년 전에 몸이 안 좋아서 닫아 둔 거라는데?”
“그, 그럴 리가요. 분명히 석인이라는 사람에게 샀는데. 공자님도 함께 계셨지 않습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남초결은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계약서 좀 봅시다.”
일 층 식당의 탁자 주변에 남초경, 남수경, 연적하, 심통이 둘러앉았다.
탁자 중앙에는 두 개의 문서가 놓여 있었다.
연적하가 가지고 있던 계약서와 남초결의 집문서였다.
남초결이 가르치듯 찬찬히 설명했다.
“당신들이 가진 계약서에는 석인이라고 적혀 있지만, 집문서에 적힌 이 남초결이라는 이름을 보시오. 내가 남초결이라오. 내가 객잔을 비운 틈에 석인이라는 사기꾼이 당신들에게 팔아먹은 거요.”
이를 악물고 있던 연적하가 나직이 말했다.
“심 노인. 당장 개봉에 가서 그 세 놈을 데리고 와.”
“예.”
심통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남아 있는 세 사람 사이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우두커니 앉아 있던 남초결은 다시 집문서를 품 안에 갈무리했다.
“허어. 개봉에 가서 그들을 잡아 오려면 꽤 시간이 걸릴 텐데…….”
왕복하는 데만 꼬박 한 시진(2시간)이다.
거기에 세 사람까지 잡아 오려면 저녁이나 돼야 돌아올 것 같아서 해 본 소리다.
연적하가 찻잔을 집으며 중얼거렸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반 시진쯤 지났을까?
객잔 문을 벌컥 열고 심통이 들어왔다.
남초결과 남수경은 그가 두고 간 게 있어서 다시 돌아온 줄로 알았다.
“공자님. 아무래도 당한 것 같습니다.”
“당하다니?”
“개봉에 그 셋이 없습니다.”
“없다고?”
“예. 소삼이라는 놈은 한 달 전에 갑자기 주루를 그만두었답니다. 개봉의 하오문을 쑤셔 보니 소삼과 황소, 석인은 함께 어울려 다니던 놈들이라고 합니다. 셋 다 외지인인데 개봉에 온 지는 일 년이 채 못 된답니다.”
듣고 있던 남초결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저 노인과 청년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 같았다.
‘고작 반 시진 만에 개봉에 가서 그 많은 것을 알아보고 왔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노인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너 이놈. 네놈이 그놈들과 짜고 우리에게 사기를 친 것은 아니냐? 객잔이 팔리자마자 찾아와 주인 행세를 한다는 게 영 수상하다! 바른대로 말하면 살려 주겠지만 거짓말을 한다면 사지를 잘라 돼지 먹이로 주겠다.”
깜짝 놀란 남초결이 펄쩍 뛰었다.
“그 무슨 망발이오! 나는 장이유가 객점에 일이 생긴 것 같다고 해서 겸사겸사 확인하러 왔던 거요!”
남초결은 손녀에 관한 이야기가 껄끄러워 장이유를 앞세웠다.
“장이유란 놈은 또 누구냐!”
“그는 만덕상방의 행수요. 어제 그가 나를 찾아와 객잔 주인이 바뀌었다고 알려 줬소.”
“만덕상방이라고? 기다려라. 내 장이유란 놈을 데리고 오겠다.”
심통이 다시 밖으로 튀어 나갔다.
이번에는 한 식경(약 30분) 만에 돌아왔는데, 그의 어깨 위에는 정말 장이유가 있었다.
심통은 장이유를 내려놓자마자 살기등등한 얼굴로 물었다.
“너 어제 저 늙은이를 만나 무슨 말을 했느냐?”
갑자기 끌려온 장이유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더듬더듬 말했다.
“개, 객잔을 누군가에게 팔아 놓고, 왜 또 나에게 팔려 했냐고 따졌습니다.”
“그러니까 저 늙은이가 객잔을 팔았다는 소리냐?”
“남 어르신과는 그저께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날 저에게 객잔을 팔겠다고 했는데, 제가 확인하러 와 보니 새 주인이라는 사람이 영업을 하고 있어서……. 항의를 했던 겁니다.”
심통은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자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장이유를 노려 보았다.
그러자 남초결이 떨고 있는 장이유에게 얼른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해서 이분이 자네를 데리고 온 걸세. 연 공자라는 분이 석인에게 속아 만 이천 냥에 객잔을 산 것 같네.”
“헉! 이 객잔을 만 이천 냥이나 주고 샀다고요?”
남초결은 대답 대신 계약서를 가리켜 보였다.
조심스럽게 계약서를 펼쳐 읽은 장이유가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아! 요즘 대도시에 이런 사기가 극성이라는 말은 들었습니다. 주인 행세를 하며 집을 팔아먹고 달아나는 자들이 있다고 하던데…….”
듣고 있던 심통이 버럭 소리쳤다.
“개소리하지 마라! 네놈들 모두가 짜고 한 짓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
“어이쿠! 절대 아닙니다. 저는 만덕상방의 행숩니다. 제가 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만덕상방인지 만떡상방인지는 모르겠고. 여하튼 너희 놈들 전부 의심스럽다. 공자님이 객잔을 사자마자 나타난 것도 그렇고.”
“처,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저는 그저 나루터가 옮겨졌다기에 객잔을 다시 사려 했던 것뿐입니다.”
“조용.”
마침내 연적하가 입을 열었다.
흉악한 얼굴로 다그치던 심통은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심통이 찌그러지자 남초결과 남수경, 장이유도 덩달아 눈치를 살폈다.
“누가 뭐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나는 만 이천 냥에 이 객잔을 샀습니다. 사기인지 아닌지는 소삼, 황소, 석인에게 직접 듣겠습니다.”
“저어 공자님, 그 말씀은?”
남초결이 불안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자꾸 ‘샀다’는 말을 강조하는 걸 보니 느낌이 싸했다.
“노인장은 객잔을 안 팔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에게 객잔을 샀습니다. 맞죠?”
“예.”
“그런 뜻입니다.”
‘이런 날강도 같은 놈.’
남초결은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어영부영 넘어가려는 분위기로 보인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이제는 돈을 주고 샀다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개봉부에 고발을 해야겠구나.’
늙은이가 무림인 같아서 마음에 걸리지만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심 노인.”
“예.”
“그놈들 잡아 와. 꼭 산 채로 데려와야 해.”
“명대로 하겠습니다!”
심통은 얼마나 마음이 급한지 짐도 꾸리지 않고 그대로 객잔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