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95
195회. 이건 이기어검이 아니야
아직 식사 시간이 아닌지라 객잔 식당은 텅 비어 있었다.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은 평소 즐겨 앉던 창가 자리에 마주 앉았다.
심통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행낭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일만 오백 냥입니다.”
“수고했어.”
“제가 조금만 빨랐으면 몇백 냥은 더 찾을 수 있었는데. 아쉽게 됐습니다.”
“그놈들을 어디서 찾은 거야?”
“제녕에서요. 사흘 내내 기루에서 놀다가 객잔에서 쉬고 있는 걸 잡았습니다.”
심통은 정주에서 복양, 하택에 이르는 여정을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그래도 잡은 게 어디야. 관인들은 아예 손도 못 쓰는 것 같던데.”
“그놈들이야 제 구역이 아니면 모른 척하니, 누가 때려잡아 오기 전에는 못 잡지요.”
“그건 그렇고 무림첩으로 세상이 뒤숭숭하다면서? 정말 그랬어?”
“아! 말씀도 마십쇼. 정의맹은 남경, 유명교는 정주에 자기들 세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가는 객잔마다 무림인들로 가득하더군요.”
“정말 전쟁이 나는 분위기야?”
“이번에는 그럴 것 같습니다. 정의맹도 그러기 위해서 십두마병들을 조사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치고 십두마병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없는 거 같아서.”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객점에 드나드는 상인들은 유명교와 무림첩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어쩌면 설차수 일행의 보고가 묻혔을 수도 있습니다. 정의맹의 수뇌부는 칠파이문과 무림 세가의 가주들 아닙니까? 그 완고한 늙은이들이 마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리가 없지요. 보나 마나 사술이라고 생각할 게 뻔합니다.”
“남궁천 형님과 남궁연 누님이 직접 목격했는데도?”
“이전이면 모를까? 요즘은 남궁세가를 무림 세가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의맹에서 남궁세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그럼 큰일인데.”
“우리에게는 나쁜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정의맹 놈들도 한번 당해 봐야 합니다.”
심통은 마두답게 정의맹이 손해 보는 상황을 오히려 좋아했다.
“내가 정의맹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 남궁세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까 봐 그러는 거지. 그분들도 남경으로 갔을 거 아냐.”
“그렇게 신경이 쓰이시면 정의맹에 가셔서……. 험, 그건 아닌가.”
심통은 머쓱한 얼굴로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은 연적하가 도와주러 간대도 정의맹에서 거절할 게 분명했다.
척마멸사를 입에 달고 다니는 칠파이문에서 녹림 총순찰을 받아들일 리가 없지 않은가! 등 뒤에서 칼질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참! 그런데 저 사기꾼 놈들은 언제까지 살려 두실 생각이십니까?”
“오래가지는 않을 거야. 녹담평도 보통이 아니거든.”
“눈알을 굴리는 게 그래 보이더군요. 그런 놈은 기를 완전히 꺾어 놓든지, 죽이든지 해야 뒤탈이 없습니다. 삼년상도 그래서 시키신 거겠지요?”
“응? 그냥 효도 좀 해 보려고 시킨 건데?”
“아, 정말 잘하셨습니다. 삼 년 뒤에도 온순해지지 않으면 제가 죽여 버리겠습니다. 공자님의 친우를 위해서라도 그러는 편이 나을 겁니다.”
두 사람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상도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어, 공자님.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슬슬 음식을 내올까요?”
“아니. 효자암에 다녀와서 먹을게.”
연적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루 세 차례 입수를 시키라고 했으니 가서 확인할 시간이었다.
***
연적하와 심통은 효자암으로 나갔다.
황소와 석인의 허리에 밧줄을 묶고 있던 녹담평이 꾸벅 인사를 올렸다.
연적하는 그를 지나쳐 간이 의자에 앉았다.
하얗게 질린 황소와 석인의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속이 시원했다.
사람들이 이래서 복수를 하나 보다.
준비를 마친 녹담평이 연적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작해도 되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연적하는 알아서 하라는 듯 별다른 지시 없이 묵묵히 바라만 보았다.
쭈뼛거리던 녹담평은 황소와 석인을 차례대로 효자암에서 밀어냈다.
“악!”
“으악!”
황소와 석인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윽고 ‘풍덩’ 소리와 함께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밧줄 끝을 잡고 있는 녹담평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제 잠시 후면 다시 줄을 감아야 한다.
사기꾼들은 누가 동료를 위해 죽어 줄 테냐는 질문에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한 놈을 죽여야 한다는 소리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느 한쪽을 조금 늦게 감으면 된다.
오른쪽? 왼쪽?
그가 고민하고 있을 때다.
“흐흐흐. 공자님, 저 애송이 잔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옵니다. 끌어 올리기 힘드니까 어느 한 쪽을 죽이려나 본데요?”
“말했잖아. 본래 그런 놈이라고.”
“그래도 최소한 사나흘은 갈 줄 알았는데 빠르네요.”
“…….”
‘사나흘’이라는 말에 녹담평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건 둘 다 사나흘은 살려 둬야 한다는 소리였다.
‘지독한 새끼들…….’
차라리 그냥 죽이지 왜 이렇게 여러 사람을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녹담평은 이를 악물고 양쪽 손목을 돌렸다.
밧줄이 한 바퀴 감길 때마다 저리더니 나중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양쪽 팔뚝에 한 아름씩 밧줄을 감자 축 늘어진 사기꾼들이 달려 올라왔다.
녹담평은 서둘러 팔뚝에서 밧줄을 풀어냈다.
시퍼렇게 죽어 있던 팔뚝에 조금씩 피가 통하자 그제야 손이 떨렸다.
‘씨벌! 이런 게 외공 수련에 도움이 될 리가 없잖아.’
지친 그는 황소와 석인의 숨이 붙어 있는지 확인할 여유도 없었다.
잠시 후 한숨 돌린 녹담평은 간이 의자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 돌아갔는지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때마침 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삼보방 방도들이 먹거리를 들고 나타났다.
녹담평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직 따듯한 만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막 뜯어 먹으려다 말고 가까이 있는 방도, 송강에게 말했다.
“저 두 놈 살아 있는지 확인해 봐.”
송강은 즉시 황소와 석인에게 달려가 둘의 목덜미를 더듬었다.
“살아 있습니다.”
“어휴! 원수 같은 새끼들. 콱 죽여 버릴 수도 없고.”
투덜거리던 녹담평은 만두를 뜯어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 댔다.
***
다음 날.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 식사를 마친 연적하와 심통은 효자암으로 나갔다.
녹담평이 다시 황소와 석인의 몸을 묶어 바위 아래로 떠밀었다.
황소와 석인은 익숙해졌는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녹담평은 다시 낑낑거리며 두 사람을 끌어 올린 뒤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물에서 건진 사기꾼들보다 녹담평이 더 괴로운 얼굴이다.
걷어 올려진 그의 양팔은 피멍이 들어 본래 색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탈진한 녹담평 대신 삼보방의 송강이 튀어나와 밧줄을 정리했다.
한차례 소동이 지나자 연적하는 바위 끝에 걸터앉았다.
챙-.
검 집에서 검이 뽑혀 강물 위를 선회하다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다시 낚시가 시작된 것이다.
검신에 꿰어 펄떡이는 물고기를 보던 심통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공자님, 드디어 이기어검을 연성하신 겁니까?”
그러자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답했다.
“이건 이기어검이 아니야.”
“예? 아니라고요?”
심통이 의아한 얼굴로 연적하와 물고기가 꿰어 있는 검을 번갈아 보았다.
분명히 검이 저 홀로 날아가 물고기를 잡아 오는 걸 보았는데?
“그럼 뭡니까? 설마 그게 비검술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이런 비검술이 어딨다고? 이건 일종의 접인술이야.”
“접인술이라니요? 그런 접인술은 없습니다. 공자님이 뭘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이기어검입니다.”
“심 노인이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심통이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펑펑 두들겼다.
“아이고! 이기어검 맞다니까요! 삼척동자도 그게 이기어검이라는 걸 알 겁니다.”
“어허! 아니래도 그러네. 할 줄 아는 내가 알지, 심 노인이 알겠어?”
“두 눈으로 보았다면 누구라도 이기어검이라고 말할 겁니다. 녹가야!”
“예?”
초막 앞에서 쉬고 있던 녹담평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네놈도 공자님의 검공을 보았겠지?”
“예”
녹담평이 심통과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하루 종일 바위에서 이기어검으로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데 못 볼 리가 있나.
‘씨벌! 공력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왜 이기어검으로 물고기를 잡는 건지. 원.’
“네놈은 그게 접인술이라고 생각하느냐? 이기어검이라 생각하느냐?”
“그야 당연히 이기어검입지요.”
“보십시오. 저놈도 이기어검이라 말하지 않습니까? 누가 봐도 그건 이기어검이라니까요.”
연적하가 안쓰럽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쯧쯧! 안목이 그렇게 없어서야. 그러니 매일 하수 소리를 듣는 거지. 이건 접인술에 불과해. 이기어검은 이런 게 아니야.”
심통이 기막힌 얼굴로 물었다.
“그럼 대체 뭐가 이기어검입니까?”
“진기를 이용한다고 해서 다 이기어검은 아니야. 올라가고[昇] 내려가고[降] 떨어지고[離] 합쳐지는[合] 승강이합(乘降離合)은 접인술에 불과해.”
“그럼요?”
“진기로 만물에 응하는 게 어검술의 시작[眞氣應物 漸入御劍]이라고 했어. 만물이 뭔지 알아? 우리 눈에 보이는 이 모든 게 만물이라고. 기로 만물에 응하면 승강이합을 넘어서게 될 거야.”
“그걸 넘어선다고요?”
심통은 머릿속이 엉클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이 볼 때는 진기로 승강이합을 하는 게 어검술이다. 아니, 세상의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어검술을 넘어선다니?
왜?
“공자님, 진기로 승강이합을 하는 게 어검술입니다. 그게 전부라고요.”
“어허! 검술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뭘 그게 전부래? 분명히 천둔검법에 그렇게 나와 있다고. 진기로 만물에 응하는 게 어검술의 시작이라니까.”
“아닌데…….”
심통은 답답했지만 천둔검법이 그렇다니 반박할 수도 없었다.
‘대체 천지상인은 공자님에게 뭘 가르쳐 준 거지?’
이기어검의 실마리를 얻으러 갔다가 괜히 이상한 걸 배운 느낌이다.
“그래서 황하에 계속 검을 던지시는 겁니까? 이기어검을 터득하시려고?”
“당연하지. 나는 진기로 만물에 응하는 게 뭔지 알고 싶다고. 여기서 계속 승강이합을 하다 보면 슬슬 실마리가 보이겠지.”
“공자님, 산꼭대기에 오른 사람이 위를 본다고 뭐가 보이겠습니까?”
“하늘이 보이잖아.”
“공자님은 그 하늘로 올라가겠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게 심 노인의 한계야. 구천현녀도 하계에 내려오는데 내가 하늘에 오르지 말라는 법 있어?”
“정말 우화등선이라도 하시려고요?”
“우화등선은 개뿔. 그냥 이기어검이나 터득하려고 그런다니까.”
“하아! 이기어검은 이미 쓰고 계시다니까요. 이기어검으로 낚시라니! 그게 될 법한 소리입니까? 이건 소 잡는 칼로 지렁이를 썰고 있는 겁니다.”
대화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던 녹담평은 슬쩍 뒤로 물러났다.
자신보다 어린 연적하가 심통에게 쥐뿔도 모른다고 말하는 걸 보니 부러웠다.
아직 검기조차 다루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삼 년 동안 여기서 죽어라 무공을 익히면 나아지려나?’
녹담평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힘껏 말아 쥐었다.
순간 팔뚝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윽!’
무공은커녕 이러다가 팔 병신이 될지도 모르겠다.
녹담평은 살기 어린 눈으로 기절해 있는 두 사기꾼을 노려 보았다.
‘저놈들이 빨리 죽어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텐데…….’
아무래도 점심때부터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 더 물을 먹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