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96
196회. 관인을 멀리하지 마시오
다음 날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 식당으로 내려간 연적하는 뜻밖의 방문자들을 보고 멈칫했다.
개봉성 안찰사 부사 천량지가 낯익은 군관 하나를 대동하고 와 있었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던 천량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 공자, 그동안 별래무양 하셨소?”
“아, 예. 그런데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찰사 부사가 아침부터 자신을 찾아올 일이 없어서다.
“소식 들었소이다. 사기꾼들을 잡으셨다고요. 축하의 말씀을 드리려고 찾아왔소.”
말을 하면서 천량지는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축하를 빙자해 찾아온 것을 그가 불쾌해하지는 않을까 염려돼서다.
관과 무림은 강물과 우물물처럼 서로 침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교류가 전혀 없지는 않다.
천량지는 연적하의 정체를 알아낸 뒤로 객잔에 관심을 쏟아부었다.
물론 녹림 총순찰과 교분을 다지기 위해서다.
정사파를 막론하고 무림의 고수들과 알고 지내면 은근 도움이 된다.
마치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라고나 할까.
더구나 연적하는 녹림에 몸담고 있지만 흉악한 도적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하게 살아 보겠다고 버둥거리다가 사기나 당하는 무림 고수다. 그로서는 비벼 볼 여지가 많은 상대인 셈이다.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건 어떻게 아셨대?”
“연 공자의 일이라 여기저기 알아 보고 있던 중에 들었소이다. 참, 알고 계시오? 낙양에서만 그놈들 때문에 자결한 사람이 열 명이 넘소. 충격으로 일가족이 목숨을 끊은 집도 있더이다.”
“진짜 나쁜 놈들이네요.”
“나에게 넘겨주면 눈이 내리기 전에 참수를 할 수도 있소만…….”
천량지가 말끝을 흐렸다.
그가 직접 복수를 하겠다고 해도 말릴 생각은 없었다.
“참수요? 그런 나쁜 놈들을 쉽게 죽이면 안 되죠.”
“아, 지당하신 말씀이오. 피해자들이 생전에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참수는 좀 아니지요.”
천량지는 얼른 말을 바꾸었다.
연적하가 멀뚱멀뚱 바라보자 어색해진 천량지는 빈자리를 가리켰다.
“잠시 앉으십시다. 연 공자의 고견을 듣고 싶소.”
그렇게 사기꾼을 핑계로 천량지는 연적하와의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편안하게 대화가 오갈 즈음, 천량지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연 공자, 이 세상을 움직이는 두 개의 축이 있소. 그게 무엇인지 아시오?”
“뭔데요?”
“그건 바로 관부와 무림이오. 사실 강물이니 우물물이니 서로 나누려고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렇소? 그건 마치 강호와 보통 세상을 구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외다. 강호와 보통 세상이 어디 따로 떨어져 있답디까? 자기 인생에서 한 걸음 더 강하게 내디디면 바로 강호가 아니오?”
연적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자신이 남수경에게 한 말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맞아요. 세상에서 강하게 한 걸음 내디디면 강호죠. 이야! 관리라서 그런지 말씀 잘하시네요!”
“하하! 역시 연 공자와는 이야기가 잘 통할 줄 알았소이다. 관과 무림도 마찬가지외다. 예부터 알게 모르게 서로 많은 왕래가 있었소.”
“그래요?”
“무관들의 태반이 무가나 무림 방파 출신이외다. 그들이 사문과 절연이라도 하지 않은 이상, 오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오?”
“그렇구나.”
연적하는 천량지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처음으로 관인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 제법 재밌기도 했다.
“연 공자께서도 나 같은 관인을 멀리하지 마시오. 비록 연 공자에게 큰 도움은 못 되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나을 테니까.”
“…….”
연적하가 알쏭달쏭한 얼굴로 바라보자 천량지는 급히 말을 이었다.
“강호에서는 하오문과 개방의 정보력을 으뜸으로 치오만, 사실 관부의 정보력이 더 뛰어나다오. 천하에 관인이 깔려 있지 않은 곳이 없지 않소?”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기꾼들이 낙양에서 죄를 짓고 온 걸 알아낸 것만 봐도 보통은 아니었다.
“내가 이곳에서 연 공자를 알게 된 것도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오.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라도 나를 불러 주시오. 내 능력이 닿는 범위 내에서 아낌없이 돕겠소이다.”
하고 싶은 말을 우르르 쏟아 낸 천량지는 연적하를 은근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순간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감돌았다.
“저를 돕겠다고요?”
“그렇소.”
“공짜로?”
“당연한 말씀을. 우리 사이에 어찌 사례를 받겠소.”
천량지는 은근슬쩍 ‘우리 사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하면 ‘아무 사이도 아닌 것’이 곧 ‘특별한 사이’로 둔갑하는 까닭이다.
“아이고! 고마워라.”
연적하는 천량지가 왜 자신에게 그런 호의를 보이는지 알지 못했지만, 사양하지 않았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다. 연적하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소리다. 녹림에서 세상살이를 익힌 그에게 공짜는 ‘좋은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한 게 하나 있거든요. 유명교와 정의맹이 전쟁을 한다 어쩐다 하고 있잖아요?”
“나도 들었소.”
“혹시 언제, 어디서 싸움이 일어나는지 알아요?”
“흠!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디서인지는 대략 알고 있소이다.”
“어디서 싸울지 안다고요?”
연적하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큰 기대 없이 물어봤는데 알고 있다니?
“그렇지 않아도 그들이 벌이는 싸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중이외다. 해서 유명교와 정의맹 양측에 사람들을 부지런히 보내고 있었소.”
“어디서 싸운대요?”
“유명교에서는 하남성에서 정의맹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려 하고 있소.”
“확실해요?”
“유명교 고수들이 정주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걸 보면 틀림없소. 만약 남직례성에서 싸울 생각이었으면 벌써 움직였을 것이오.”
“그런 걸 정의맹에서도 알까요?”
“아마 잘 모를 게요. 정의맹과 관계된 사람들이 죄다 남경으로 가서. 그들의 눈이라고 해 봐야 개방이 전부인데, 그들도 지금은 거의 남경에 몰려 있으니……. 그런데 녹림은 어떻게 하려는지 혹 알고 계시오?”
천량지가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시간 내서 연적하를 찾아온 이유 중에 하나가 녹림의 동향을 엿보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천량지는 전형적인 관인이었다.
유명교와 정의맹 정보를 흘려 주고 녹림의 정보를 얻으려고 하니 말이다.
“총채주님이 자꾸 나더러 알아서 하라는 걸 보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는 생각 같아요. 그 노인네가 은근 게으르다니까. 자기가 할 일을 너무 미뤄.”
천량지의 눈이 번득였다.
고위 관리인 그는 연적하의 말속에서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었다.
“하하. 그래서 연 공자는 어쩔 생각이시오?”
그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처음에는 단순히 녹림의 이 인자와 교분을 가지려고 시작한 대화다. 그런데 파천마군이 그에게 전권을 맡겼다는 걸 알고 나자 입안이 말랐다.
“어쩌긴요. 누구 좋으라고 내가 뛰어다녀요? 한 번 그랬으면 됐지. 두 번은 안 해요.”
“한 번 그랬다는 건 무슨 말이오?”
“총채주님 부탁으로 얼마 전에 산채를 한번 청소해 준 적이 있거든요.”
“아!”
천량지는 속으로 ‘최근에 녹림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용은 모르겠지만 청소라고 하는 걸 보니 사람을 꽤 쳐 낸 모양이다.
“거의 일 년 가까이 개고생을 했는데. 또 속아 넘어가면 내가 바보죠.”
“하하! 맞는 말씀이오. 처음은 몰라도 어찌 두 번이나.”
“그렇죠? 그래서 나도 모른 척하려고요. 조용히 객잔에나 처박혀 있어야지.”
“잘 생각하셨소. 돈을 되찾았으니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오? 만약 개봉에 나오실 생각이 있다면 알아 봐 드릴 수도 있소만.”
안찰사 부사 입장에서 천량지는 연적하가 조용히 지내기를 바랐다.
“개봉은 객잔이 최소한 이만 냥 정도 하던데요?”
“그건 사기꾼들이 최고급 객잔만 보여 줘서 그런 거요.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객잔이 비싼 것처럼 여기게 만든 뒤에, 바가지를 씌운 것이오.”
물론 보통은 시세보다 싼 값에 남의 건물을 팔고 달아난다. 하지만 상대가 호구다 싶으면 그 와중에 바가지까지 씌우기도 했다.
“그럼 얼마면 사는데요?”
“개봉성이라도 이 정도 수준의 객잔은 칠팔천 냥이면 충분할 거요.”
“이런 젠장! 내 이 사기꾼 놈들을!”
연적하는 화가 치밀어 오르자 탁자를 ‘쾅!’하고 후려쳤다.
천량지는 연적하가 흥분을 가라앉히기를 기다렸다 다시 물었다.
“내 개봉성에 객잔을 알아봐 드리리까?”
“괜찮아요. 여기가 딱 좋아요.”
연적하는 다른 객잔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
객잔에서 가까우면서도 으슥한 곳에 있는 효자암이 수련 장소로 적당했다.
“허면 남초결에게 객잔을 사는 것은 어떻소? 사오천 냥이면 인수가 가능할 것 같던데.”
계산대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수경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저어, 잠시 제가 끼어들어도 될까요?”
천량지가 살짝 양미간을 찌푸렸다.
감히 이 자리가 어떤 자리라고 남수경이 끼어든단 말인가!
천량지의 불쾌한 표정을 본 군관 임사성이 남수경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친구! 어서 와. 끼어들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일은 곧 친구의 일이라고.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친구에게 물어보려고 했었어.”
친구라는 말에 임사성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지나쳐 계산대로 걸어갔다. 마치 볼일이 있어서 계산대 쪽으로 움직인 것처럼 말이다.
천량지 역시 반색을 하며 빈자리를 가리켰다.
“하하! 이제 보니 남 소저가 연 공자의 친구였구려. 그런 줄 알았으면 진즉에 모셨을 텐데. 어서 앉으시오.”
“네, 실례 좀 할게요.”
이전 같으면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남수경은 당당했다. 무림의 기인인 연적하가 자신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걸 알아서다.
“할아버지 생각은 아직 모르겠지만 나는 객잔을 팔고 싶지 않아요.”
“…….”
천량지는 머쓱한 얼굴로 딴청을 했다.
“대신에 이러면 어떨까요? 연 공자와 할아버지가 지금처럼 함께 객잔의 주인이 되는 거예요.”
연적하가 의아한 눈으로 남수경을 보았다.
“함께 주인이 되라고? 어떻게?”
“객잔 값의 반을 할아버지에게 드리고 공동으로 운영하면 되잖아요. 어차피 할아버지는 건강이 안 좋아서 혼자서 운영을 못 하세요.”
남수경은 그런 식으로라도 연적하를 곁에 잡아 두고 싶었다.
만약 천량지가 연적하에게 다른 객잔을 소개하면 그는 미련 없이 떠날 것이다. 그녀는 고작 객잔의 소유권 문제로 연적하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오! 그것도 좋은 생각이오. 남 소저의 말대로 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떻소? 계약서는 내가 사람을 시켜 제대로 작성해 드리리다.”
천량지는 어떻게든 연적하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러자 연적하가 애매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좋은 것 같긴 한데, 친구 할아버지가 찬성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 노인네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잖아.”
“아니에요. 사기꾼들이 잡혀 온 뒤로 할아버지도 미안해 하고 계세요. 전에는 반신반의해서 모질게 대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아니더라도 남수경은 이 계약에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할아버지는 객잔의 운영과 소유를 자신에게 맡기다시피 한 상태였다.
만약 반대하면 떼를 써서라도 무조건 성사시킬 생각이다.
“친구 할아버지가 반대하지 않으면 나는 찬성! 어차피 객잔 관리는 친구가 알아서 잘할 테니까. 난 놀고 먹을 곳만 있으면 돼.”
남수경이 그런 연적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놀고먹겠다는 사람이 왜 늘 효자암에 나가 검술을 연마하는지 모르겠다. 그 돈이면 평생 개봉에서 유흥을 즐겨도 되는데 말이다.
점심 무렵.
천량지가 보낸 관인 앞에서 남초결과 연적하는 공동소유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에 수결을 마친 남초결이 멋쩍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험, 험. 코딱지만 한 객잔에 주인이 둘이나 되다니. 이게 뭐라고.”
툴툴거리는 말과 달리 남초결은 내심 기뻤다.
연적하가 부자에다 무공까지 뛰어나다는 걸 아는데 싫어할 이유가 있나!
‘잘된 일이야. 암.’
손녀를 위해서도 그가 객잔에 있는 게 좋다.
전에는 그가 먹는 것만 봐도 눈에 거슬렸는데 이젠 괜히 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