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97
197회. 전쟁의 서막
남직례성.
남경.
정의맹.
정의맹 총단은 하나의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거의 독립된 마을이라 할 정도로 넓은 지역에 걸쳐 있다.
칠파이문과 무림 세가를 위한 ‘특별거주구역’과 각 지역의 패주와 그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명문 정파들을 위한 ‘일반거주구역’이 분리되어 있다.
그 구역에도 들지 못하는 잡다한 문파들은 객점이나 민가를 이용해야 했다.
남궁세가 사람들은 특별거주구역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다른 사대세가와 뭔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남궁세가가 머무르고 있는 다섯 채의 전각에는 남궁세가 사람들뿐이었다. 심부름을 하는 잡부나 찬모 등이 없어서 말 그대로 잠만 자야 하는 형편이다.
특별거주구역과 일반거주구역의 차이는 단 하나다. 정의맹에서 일꾼들을 배치시켜 주면 특별이고, 없으면 일반이다. 그러니 남궁세가는 특별 거주구역에서 일반거주구역의 대접을 받고있는 셈이다.
이른 아침.
그렇게 푸대접을 받고 있는 남궁세가의 거주구역으로 세 명의 노도사가 발걸음을 했다.
곤륜삼선들이다.
가장 큰 전각 앞에서 태을 선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계시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청운검 남궁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신지요?”
“우리는 곤륜에서 온 사람들이외다. 가주님을 만나 뵙고 싶어 왔소만.”
“아, 오르시지요.”
남궁천이 곤륜삼선을 방으로 안내했다.
검왕 남궁벽은 상석에 앉아 있다가 세 원로 고수들과 눈이 마주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남궁벽입니다.”
남궁벽은 남궁세가의 가주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공손했다. 곤륜삼선의 탈속한 기도에 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어서다.
“빈도는 태을……이라 하오.”
태을 선인은 스스로 선인이라 말하기 멋쩍어 도호(道號)만 소개했다.
대사형인 태을 선인이 그렇게 하자 다른 두 명의 도사들도 도호만 간단히 밝혔다.
“태무외다.”
“태령이라 합니다.”
상석에 앉아 있기 민망해진 남궁벽은 세 도사들의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앉으시지요. 연아, 네가 가서 차라도 내와야겠다.”
남궁벽의 말에 남궁연이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일꾼이나 찬모가 없으니 뭐든 남궁세가 사람들이 직접 해야 했다.
“곤륜파에서 오셨다고요?”
남궁벽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 도사를 보았다.
새외의 곤륜파에 대해서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만나 보기는 처음이었다.
태을 선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그렇습니다. 장문인의 명으로 천하를 떠돌던 중에 이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아, 무슨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태을 선인이 태령 선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태령 선인이 품에서 추마팔괘판을 꺼내 남궁벽에게 보여 주었다.
남궁벽이 의아한 눈으로 추마팔괘판을 보자 태을 선인은 그간 있었던 일을 말했다.
“……황산의 대별산채에서 연 공자를 도와 마물을 처치하고 정의맹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정의맹에서는 아무도 마물의 위험성에 대해 말하지 않더군요.”
“예, 총사가 좌도방문의 사술쯤으로 말을 해서요.”
“들었습니다. 천하에서 오직 남궁세가만이 마물의 실체를 알고 있는 것 같더군요.”
“부족한 자식들이 연적하와 일 년여간 동행하면서 목격했다고 하니 믿어야지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청운검 소협과 화용독심 소저가 어려운 일을 해냈다지요?”
“그런데 강호 경험이 적다는 이유로 칠파이문과 무림 세가에서 믿어 주지 않아 조금 답답하게 됐습니다.”
“그럴 겁니다. 저희도 도사지만 마물을 보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했거든요.”
“사실 저도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닙니다. 자식들의 말이니 믿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지요.”
담담한 눈으로 남궁벽을 보던 태을 선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곤륜파는 새외에 있지만 천하의 안위를 위해 힘닿는 데까지 도울 생각입니다. 그런데 오늘 조직을 편성하고 출정한다지요?”
“예, 오전에 네 개의 대(隊)로 나누고, 늦어도 정오경에는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첫눈이 내리기 전에 유명교의 예봉을 꺾자는 게 중론인지라.”
“하나로 뭉쳐도 쉽지 않을 텐데 네 개로 나눈다니 걱정스럽습니다. 마물은 방술사들의 사술이 아닌 실재하는 힘입니다. 그런 마물의 마기를 파괴하려면 법력이나 법보가 있어야 하고요. 정의맹에서는 그에 대한 별도의 준비를 하지 않았겠지요?”
“다른 분들이 칠파이문의 무공으로 파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서요.”
“허면 칠파이문에서는 이번에 법사들을 초빙하지 않은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삼시이멸 구충망형 사바하(三尸以滅 九蟲亡形 娑婆訶)…….”
답답해진 태을 선인은 습관적으로 ‘세 개의 충을 없애고 아홉 가지 벌레가 사라진다’는 옥추경 구령삼정주의 주문을 외웠다.
남궁벽이 태을 선인의 안색을 살피다가 슬쩍 물었다.
“칠파이문이나 무림 세가의 정순한 고력으로 마물을 상대할 수는 없습니까?”
“만류귀종이라 했으니 극에 이른 분들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허나 그런 분들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 분들이 마물을 처리할 동안 얼마나 죽어 나갈지 생각해 보십시오.”
“천하십대고수들의 공력으로 마물을 쉽게 처리하기 어렵겠습니까?”
“잡스러운 요괴라면야 일검에 양단할 수도 있겠지요. 허나 우리가 본 마물들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천하십대고수라 해도 최소한 반 시진(1시간)은 걸릴 것입니다.”
“고작 십두마병의 처리에 반 시진이나 걸린단 말입니까?”
“그것도 다른 방해가 없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만약 유명교도들이 마물을 돕는다면 그 이상 걸리거나, 처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유명교도와 마물이 협력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마물의 생각이야 알 수 없지만, 유명교도들은 저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마물을 돕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마물을 십두마병의 변신이라 생각할 테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남궁벽은 일이 간단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천하십대고수 중 정의맹에 참여한 사람은 자신을 포함해 넷이다. 소림사의 원공 선사와 무당파의 태허 진인은 연로해서 은거하다시피 한 상태였다.
나머지 넷은 사파의 고수들이니 있어 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솔직히 그들은 뒤통수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되는 적이다.
고민하던 남궁벽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세 분이 황산에서 마물을 처리했다고 하셨는데요. 제가 법력이나 법보에 대해 몰라서 여쭙는 것인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셨는지요?”
태허 선인은 그의 말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
천하십대고수가 반 시진 걸릴 일을 법사들은 얼마 만에 처리할 수 있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우리 세 사형제는 무공과 법술 양쪽에 능해 일다경(약 20분) 정도 소요됐습니다. 법술에만 능하다면 그보다 오래 걸릴 겁니다. 물론 법보가 뛰어나다는 전제하에 말이지요.”
“아!”
남궁벽은 그야말로 신세계를 보는 것 같았다.
저 세 노도사들이 천하십대고수보다 더 빠르게 마물을 처리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칠파이문에서 이런 사실을 알면 세 노도사를 모셔 가려고 안달을 할 게다.
남궁벽은 자신을 도와 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다.
정의맹에서 찬밥 신세인지라 타인에게 손 내밀기가 민망했던 것이다.
***
아침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 둘 총단에 있는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맹주의 인사가 끝나자 총사 신기수사 제갈승운이 연단 위로 올라갔다.
“무림 동도 여러분! 이제부터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네 개의 대로 나눌 것입니다. 각 대의 대주님들을 소개해 드릴 테니, 원하시는 곳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척마대 대주는 의천검존께서 맡아 주시기로 했습니다. 멸사대는 무극상인, 의기대는 검왕, 천추대는 무상도제십니다.”
“우와아!”
평소 얼굴 보기도 힘든 천하십대고수들이 대주라는 말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군웅들은 싸우기도 전에 이미 승리한 것처럼 들떴다.
“대주님들께서는 각 대의 깃발 앞으로 이동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갈승운의 말에 네 명의 천하십대고수들이 천천히 걸음을 떼어 놓았다.
척마대, 멸사대, 의기대, 천추대는 기존에 있는 조직들이다. 당연히 이미 삼사십 명의 정예 고수들이 깃발 아래 모여 있었다.
그러나 의기대의 깃발 주변은 텅 비어 있었다.
의기대원들이 은하장에서 몰살을 당한 뒤로 재배치를 미루어 온 탓이다.
군웅들은 의기대 깃발 아래 홀로 선 남궁벽을 보며 가볍게 술렁거렸다.
남궁세가의 멸문과 의기대의 몰살이 묘하게 어우러져 불길해 보였던 것이다.
실제로 드문드문 ‘저주’라는 말이 사람들 속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창설된 뒤로 두 번이나 몰살을 당했으니 그런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네 명의 대주들이 자리를 잡자 제갈승운이 다시 말했다.
“이제 여러분이 네 개의 대에 지원할 시간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의맹에서는 그것을 각 문파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지원하고자 하는 대의 앞쪽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제갈승운의 말이 끝나자 군웅들은 잠시 눈치를 살폈다.
대주들의 무위와 그들과 관계된 문파를 가늠해 보고 가장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서다.
군웅들이 계산만 하자 제갈승운은 제갈세가 쪽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제갈세가의 고수 삼십 명이 보란 듯 천추대 앞으로 이동했다.
천추대 대주 무상도제가 제갈승운을 힐끔 보고는 피식 웃었다. 이중에서 천추대가 가장 뛰어나다고 공인한 것이나 다름없어서다.
가장 머리가 좋다는 제갈세가의 선택에 군웅들이 천추대 쪽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칠파이문과 무림 세가들은 일반 문파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반 시진쯤 지났을까?
구백여 명의 무림인들이 네 개 대 앞에 도열했다.
네 개 대의 인원을 확인한 제갈승운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세 개 대에 각각 삼백여 명의 무림인들이 모였다.
그 말은 의기대에 지원자가 없다는 말이다.
사실 자발적인 지원을 밀어붙여서 관철시킨 사람은 제갈승운이었다.
명분은 좋았다.
그는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싸우게 하자’고 했다.
전쟁을 이끌어 가는 총사가 그러자니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각 대의 능력에 맞게 임무를 줄 테니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의기대 쪽을 보던 제갈승운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기대 깃발 앞에는 남궁세가 사람들 스물다섯과 늙은 세 명의 도사가 전부였다.
삼백 명이 넘는 다른 대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양새다.
‘쯧! 그러게 조용히 물러나시지 왜 꾸역꾸역 무림 세가 대접을 받으려고 하십니까.’
그런데 외외로 남궁벽의 안색이 밝았다.
당연한 결과 앞에 의기소침해 있을 줄 알았는데 실실 웃기까지 한다.
제갈승운은 그것을 남궁벽의 마지막 허세라고 믿었다.
‘아직은 무당파를 믿고 그러시겠지만……. 무당파만 믿고 가기에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곧이어 구경만 하고 있던 칠파이문과 무림 세가들이 천천히 움직였다.
의천문, 청성파, 전진파, 팽가가 척마대에 합류했다.
화산파, 공동파, 점창파, 당가는 멸사대로 갔다.
소림사, 무극문, 모용세가는 천추대로 이동해 제갈세가의 옆에 섰다.
기존의 대(隊)를 맡고 있던 문파들이 자기 자리로 간 것이라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최종 결과를 확인하던 제갈승운이 눈을 가볍게 찌푸렸다.
천추대 쪽으로 갈 거라고 생각한 선우세가가 무당파와 함께 의기대 깃발 아래서 있었다.
무당파야 남궁벽과 혼인으로 맺어졌으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선우세가가 왜 저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지 모르겠다.
‘쯧! 선우담 가주가 지난밤에 의리 어쩌고 하더니만 기어코 사고를 치는구먼.’
속으로 혀를 차던 제갈승운은 이내 공력을 끌어 올려 소리쳤다.
“무림 동도 여러분!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저 간악한 유명교를 처단합시다! 우리 손으로 쓰러진 무림의 정기를 바로 세웁시다! 척마멸사!”
“척마멸사!”
“척마멸사!”
군웅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열렬히 화답했다.
그렇게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