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09
209회.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벽호방 방주 일무원과 대부방 방주 강성오는 막운한 행수를 납치하자마자 영하(颖河, 부영을 사선으로 관통하는 강) 건너 동쪽으로 달아났다. 혹시 뒤따를지도 모를 의기대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하루 거리를 이동해 점촌(일무원의 고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멈췄다.
그리고 점촌에 꼭꼭 숨어 의기대가 부양을 떠나기만 기다렸다.
점촌의 폐가.
강성오가 꽁꽁 묶여 있는 막운한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어이 막 행수. 우리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감히 대놓고 정의맹에 물자를 공급해?”
사실 이건 그의 억지였다. 대부분의 상방이 정의맹이나 유명교 측과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잡혀 온 막운한으로서는 그저 용서해 달라고 빌 수밖에 없었다.
“살려 주십쇼. 그들이 하도 사정해서 딱 한 번 납품했을 뿐입니다.”
“딱 한 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놈이 의기대와 계약한 것을 우리가 모르는 줄 아느냐? 하여간 장사꾼 새끼들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니까.”
“용서해 주십쇼. 저는 단지 물건만 조금 팔았을 뿐입니다.”
“그게 문제라는 거다! 정의맹 놈들이 왜 네놈들이 가져다준 것들을 먹고, 입고, 치료하겠느냐? 그게 다 우리 유명교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냐? 네놈들이 아니면 시작도 하지 못했을 싸움이란 말이다!”
“앞으로는 절대 그들과 거래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늦었다.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가 하는 새끼들 같으니. 네놈도 일벌백계라는 말을 알고 있지? 정의맹과 붙어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천하에 보여 줄 것이다.”
유명교에 자신의 충성심을 보여 주기 위해 강성오의 두 눈은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그때 벽호방 방주 일무원이 찾아왔다.
“강 방주, 의기대가 부양을 떠났다고 하오. 역시 그들은 낙양으로 가는 모양이오.”
일무원은 의기대의 목적지가 낙양 백마사인 줄 알고 있었다. 유명교가 백마사에서 행사를 열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하하하! 거 보시오. 내가 뭐랬소. 놈들이 서두르는 기색으로 보아 급하게 이동 중인 것 같다고 하지 않았소? 우리를 찾으러 다닐 시간이 있을 리가 없지.”
“허면 이제 부양으로 가도 되는 거요?”
일무원의 얼굴이 기대로 차올랐다.
의기대가 아니라면 부양에서 벽호방과 대부방의 행사를 막을 방파는 없었다.
“그러십시다. 천천히 가서 태평상방에 합의금이나 받아 냅시다.”
의기대가 부양을 떠났다는 말에 막운한은 고개를 툭 떨구었다.
이제 의기대도 사라졌으니 태평상방은 돈 뜯길 일만 남은 셈이다.
막운한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백팔 명분의 식료품과 상비약을 납품하기로 했다가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다.
의기소침해 있는 막운한에게 일무원이 말했다.
“막가야. 정의맹이 이길 거라고 생각해 그들과 계약을 맺은 것 같은데, 착각이다. 십두마병만 돼도 칠파이문의 장문인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걸 아느냐? 허면 백두마군님들은? 고작 천하십대고수 몇 명이 당해 낼 수 있을 것 같아? 어림없는 소리. 상인이라는 놈이 대세의 흐름을 그렇게 몰라서야. 네놈은 줄을 잘못 서도 한참 잘못 섰다.”
“일 방주님, 상인들은 예전부터 정사파를 가리지 않고 물건을 팔았습니다. 왜 저에게 이러십니까?”
“평상시라면 누가 뭐라겠느냐? 전쟁 중 적에게 대놓고 물건을 대 준 상방이 있더냐? 그런 눈치로 어떻게 행수까지 됐는지 모르겠군.”
“방주님, 제가 잡혀 왔으니 다른 상방이 벌써 계약했을 겁니다. 무림인들이 힘을 앞세워 윽박지르면 상인들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의기대의 뒤를 봐 준 상방은 앞으로도 우리의 적이니까. 그들은 이번 전쟁이 유명교의 승리로 끝나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
앞뒤 꽉 막힌 일무원의 말에 막운한은 땅이 꺼져라 탄식했다.
“하아! 우리 태평상방의 뒤에 천검문이 있다는 걸 잊었습니까?”
“흥! 네놈은 우리가 천검문의 대사부 이철산을 신경이나 쓸것 같으냐?”
말과 달리 일무원의 눈빛이 한순간 흔들렸다.
천검문의 대사부 파산도 이철산.
그의 도법은 이미 일류의 경지에 달해 도기를 뿜어낸다고 했다.
어디 무공뿐이랴!
이철산의 의형이 녹림 총순찰 연적하라는 소문도 있다.
물론 천검문에서 그 부분에 대해 함구해 진위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우리 태평상방과 천검문은 의로 맺어졌소. 이 대협이 이 일을 방관할 것 같습니까? 태평상방의 호위 중에 이 대협의 제자가 한둘이 아닌데.”
“그래 봤자 소용없다. 네놈은 우리 뒤에 누가 있는지 잊었느냐?”
“…….”
막운한의 얼굴이 굳었다.
‘설마 낙양에 올라가지 않은 십두마병이라도 있다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이철산이 와 준다 해도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부양으로 향하는 관도.
이십여 명의 남녀 무림인들이 굳은 얼굴로 걸어가고 있었다.
막운한 행수를 구하러 가는 태평상방의 무사들이다.
그 속에는 심통과 이철산의 모습도 보였다.
선두에서 걷고 있던 한채연이 이철산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면 연 오라버니 좀 신기하지 않아요?”
“뭐가?”
“그동안 소식이 없다가 불쑥 심 노인을 보낸 거 말이에요. 막 행수를 구하러 가기 위해서 우리가 움직이는 때에 딱 맞춰 왔잖아요.”
“그런가?”
이철산이 구천노도 심통을 힐끔 보았다.
“심 노인, 한 매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심통은 피식 웃었다.
아무 말이나 쏟아 내는 걸 보니 어지간히 심심한 모양이다.
그때 문득 지난해 낙양 무진객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연적하가 말했다.
“지난밤 꿈자리가 뒤숭숭했어.”
“아 예에, 어제도, 그제도 늦게 일어나셨습니다만.”
“심 노인, 육신통이라고 알아?”
“예? 어디가 아프시다고요?”
“됐어, 이 무식한 인간아.”
육신통은 불가에서 말하는 여섯 가지 특별한 능력이다.
신족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이라 불리는데 가히 반신의 경지에 들지 않으면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딴청을 부렸다.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도 고작 스무 살로 가능한 게 아니었으니까.
“심 노인.”
“예.”
“산채에 사람 좀 보내서 별일 없는지 알아봐. 우리가 머무는 곳 알려 주고.”
그때 풍연초와 탁고명은 사해상방의 방주에게 당해 거의 죽을 위기에 빠져 있었다.
만약 연적하가 알아보라고 하지 않았으면 그들은 죽었을 것이다.
‘연 공자는 정말 육신통의 경지에 이른 건가?’
갑자기 심각해진 심통의 얼굴을 보고 있던 이철산이 말을 돌렸다.
“하하. 그냥 해 본 소리입니다. 그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네. 자네 말을 들으니 갑자기 떠오르는 일이 있어서.”
심통은 개봉의 사해상방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때 연 공자께서 알아보라 시키지 않았다면 풍 형제와 탁 형제는 죽었을 걸세. 이번에도 연 공자님은 꿈자리가 뒤숭숭했다고 형제들에 대해 알아보라 하셨네. 자네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일에 빠질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말일세.”
“…….”
이철산은 물론 한채연, 하소백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장난으로 시작한 말이었는데 결론이 기이하다.
넋을 잃고 듣던 이철산이 물었다.
“연 형님에게 정말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는 걸까요?”
자신은 헛되게 나이만 먹었다고 생각한 심통이 조금 퉁명스럽게 답했다.
“구천현녀에게 직접 무공을 배우셨다는데 무엇인들 못 하시겠는가.”
가만히 듣고 있던 하소백이 끼어들었다.
“그럼, 혹시 우리도 이번에 굉장히 위험한 거 아니에요? 막 행수의 납치가 우리 생각보다 더 큰 일이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아닌가요?”
그러자 한채연이 하소백의 등짝을 ‘퍽’ 하고 때렸다.
“어머! 너는 왜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그러니. 부정이라도 타면 어쩌려고.”
“아니 전에도 풍 오라비와 탁 오라비가 위험했다고 해서. 이번 일도 의외로 위험한 걸 수 있잖아요. 아니면 다행이지만.”
“아니야,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런 생각은 입 밖에 꺼내지도 마. 그렇죠? 심 노인?”
“나도 지난번은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설마 같은 우연이 두 번이야 일어나려고. 아무리 강호가 험난하다 해도 그럴 수는 없지. 암.”
심통은 애써 부정했다.
귀밑에 검은 터럭이 나다 말다 해서 애가 타는데 누군 벌써 육신통이라니!
“거봐. 아니라잖아. 심 노인은 경험이 많아서 그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야.”
한채연이 띄워 주자 심통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이 맛에 무림의 노기인들이 젊은 사람들과 함께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
화상촌.
효자암.
신시 초(오후 3시).
남수경은 따듯하게 데운 소흥주 한 병과 육포 조각을 들고 연적하를 찾아갔다.
그는 오늘도 효자암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황하를 보고 있었다.
“연 공자, 향설주(香雪酒, 소흥주의 종류로 단맛이 난다)를 가져왔어요.”
“어? 뭘 그런 걸다.”
말과 달리 연적하는 실실 웃으며 냉큼 남수경 앞으로 왔다.
“날씨가 추워서 덥혀 왔는데 괜찮죠?”
남수경은 연적하가 한서불침의 몸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굳이 계절에 맞게 덥혔다.
그래야 사람 사는 맛이 난다고 생각해서다.
추위와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고 아무렇게나 먹어서야 무슨 인생의 낙이 있겠냐 말이다.
남수경이 연적하의 잔에 공손히 술을 따랐다.
친구라고 하지만 솔직히 그녀에게 연적하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어, 따뜻하고 달달해서 좋은데? 향설주라고?”
“네. 내가 보니까 연 공자는 가반주(加飯酒)나 원홍주(元紅酒)보다 향설주를 더 마시더라고요.”
“쳇! 소흥주면 소흥주지 무슨 종류가 그렇게 많대.”
“후훗! 뒤끝이 조금 쓴 게 가반주와 원홍주예요. 단맛이 나는 게 향설주고.”
“그렇구나. 앞으로 어디 가면 향설주를 달라고 해야겠네.”
“그런데 연 공자는 소흥주만 마시는 것 같던데 왜 그런 거예요?”
“소흥주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누구요?”
남수경은 살짝 실망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관심을 보였다.
“있어, 그런 사람.”
“아니 대체 누구기에 말도 못 해요? 우리 사이에.”
은근 섭섭해진 남수경이 입술을 삐죽였다.
친구 사이에도 쉽게 하지 못할 말이라니 더 궁금했다.
“누가 나에게 여아홍을 주기로 했거든. 그날을 바라며 비슷한 소흥주를 마시는 거야. 알겠어?”
“그럼 차라리 여아홍을 마시지 왜 소흥주를 마셔요?”
“여아홍은 소중하니까.”
“쳇! 널린 게 여아홍인데 뭐가 소중하다고.”
“어허! 누군가를 위해 땅에 고이 묻어 둔 여아홍을 꺼내는 거라고. 그 사람의 짠한 마음을 생각하면 그런 소리 못 할 텐데.”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누구냐고요? 누군지 알아야 정말 소중한지 아닌지를 알죠.”
“나중에 알게 될 거야.”
끝까지 연적하가 털어놓지 않자 남수경은 포기하고 화제를 돌렸다.
“참! 그거 알아요? 유명교 사람들이 백마사를 떠났대요.”
“그게 뭐 어때서?”
“아니 녹림의 총순찰씩이나 된다면서 왜 그렇게 둔해요. 그들이 왜 백마사를 떠났겠어요? 정의맹과 싸우려고 나간 거잖아요. 드디어 정의맹과 유명교가 한판 붙게 된 거라고요.”
“친구는 무림의 일에 관심이 많구나?”
“관심이 아니라, 객점을 운영하다 보면 세상 돌아가는 일이 절로 귀에 들어온다고요. 연 공자야 매일 나와 있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연 공자는 누가 이길 것 같아요?”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알면 이런 촌구석에서 객잔이나 하고 있겠어?”
“피이! 하기야 자기 입에 맞는 소흥주가 뭔지도 모르고 마시던 분이 어련하실까. 자아, 속 버리지 않게 안주나 드세요.”
남수경은 길게 찢은 육포를 연적하의 입에 욱여넣었다.
잔뜩 찡그린 연적하의 얼굴을 보니 그제야 속이 조금 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