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11
211회. 나는 아직 건재하다
어떤 사안에 대해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면 사람들은 그에게 해결책을 기대한다.
신기수사 제갈승운처럼 똑똑한 사람이 그러면 더욱 그렇다.
특히나 제갈 가문은 진법과 기관지학, 술법 등에 정통하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은연중에 그에게 기대를 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일각마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풍뢰도 장강호뿐 아니라 소림사 장문인 무법선사와 모용세가 가주 경천일검 모용황까지도 제갈승운을 힐끔거렸다.
천하십대고수 무상도제 장무덕만 별다른 동요 없이 일각마인을 요모조모 뜯어볼 뿐이었다.
그러나 제갈승운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처음 마물의 보고를 접했을 때, 그것이 집단 환각이라고 생각했다.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할 때 그게 정답이었다.
그래서 남몰래 여러 종류의 부적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막상 일각마인을 보니 부적으로 손이 가지 않았다.
눈앞에서 괴성을 지르고 있는 일각마인은 환각 따위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벌써 소림사 고수들의 입에서 염불 소리가 흘러나왔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저건 현실이다.
현명한 사람은 나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안다고 했던가.
제갈승운은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제야 사람들은 저 마물이 그의 능력 밖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도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자신들도 정의맹 총단에서는 마물을 사술이라고 주장했었기 때문이다.
마귀의 형상을 한 탓일까?
그다음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소림사의 무승들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종교인을 향한 시대의 요청인지도 모르겠다.
열 명의 나한이 자발적으로 일각마인을 향해 달려갔다.
뭔가를 찾듯 사방을 둘러 보던 일각마인의 눈이 장강호에게서 멈췄다.
일각마인의 시커먼 눈에서 광채가 번득였다.
그때 자리를 잡은 열 명의 나한이 순차적으로 일각마인을 덮쳤다.
소나한진의 순서대로 나한들은 공격과 방어를 풀어 갔다.
나한들의 쇠지팡이가 일각마인의 몸통에 박혔다.
퍼퍼퍼퍽-.
마치 바위를 때리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한차례 후려치고 뒤로 빠지려는 나한들에게 일각마인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마치 사람이 파리 떼를 쫓을 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쉬잉- 쉬잉-.
손톱 끝에서 일어난 열 개의 강기가 나한들의 몸을 갈랐다.
나한들은 미처 피하고 말고 할 틈도 없었다.
쩌억. 쩍-.
나한들의 몸이 가로 세로로 갈라져 나갔다.
단 한 번의 손짓에 소림사의 무승 열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때부터 지옥도가 펼쳐졌다.
일각마인은 장강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며 팔을 휘저었다.
그럴 때마다 대여섯 명의 천추대 고수들이 토막 났다.
당랑거철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대경실색한 천추대 고수들은 더 이상 일각마인의 앞을 막지 않았다.
일각마인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장강호의 양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일각마인의 목표는 자신인 것 같았다.
‘감히 마물 주제에!’
장강호는 자신의 애도를 강한 힘으로 움켜 잡았다.
그가 막 일각마인을 향해 움직이려는 순간 한 걸음 빠른 사람이 있었다.
마침내 천하십대고수 무상도제 장무덕이 움직인 것이다.
부친이 마물을 덮쳐 가자 장강호는 씩씩거리면서도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쩌엉-.
장무덕의 도가 일각마인의 등을 찍었다.
그런데 뒤로 튕겨 난 사람은 오히려 장무덕이었다.
장무덕이 놀란 눈으로 자신의 도와 멀쩡한 일각마인의 등짝을 번갈아 보았다.
설사 바위라 해도 갈라졌을 공격이었는데, 일각마인의 몸은 멀쩡했다.
장강호에게 한눈을 팔고 있던 일각마인이 천천히 돌아섰다.
마치 급할 것 없다는 식이다.
본래 일각마인의 빛과 같은 속도를 모르는 천추대원들은 내심 안도했다.
칼날 같은 손톱에서 나오는 강기만 주의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들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느긋하게 돌아섰던 일각마인이 한순간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유령처럼 장무덕 앞에 나타난 일각마인은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손을 휘둘렀다.
상대가 장무덕이 아니었다면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쉿- 쩡!
장무덕은 급히 도를 세워 손톱을 막았다.
쉬익-.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편 손이 그의 허리를 쓸어 왔다.
“감히!”
장무덕이 버럭 소리치며 풍산도를 펼쳤다.
콰자자자작-.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도기가 일각마인의 몸을 난타했다.
도기는 마치 태풍처럼 일각마인의 몸을 휘감아 돌았다.
일각마인의 몸이 한순간 움찔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이어 일각마인의 손톱이 도기를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추대가 장무덕과 일각마인의 싸움을 넋 놓고 바라볼 때다.
물러났던 유명교 교도들이 다시 밀물처럼 천추대를 덮쳤다.
일각마인이 장무덕을 점찍자 안심하고 다시 공세를 펼친 것이다.
천추대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설상가상이 따로 없었다.
천하십대고수의 빈자리는 너무도 컸다.
무법선사와 장강호, 모용황에게 네 명의 백두마군은 벅찬 상대였다.
결국 소림사 제자들이 대나한진으로 세 사람을 지원했다.
소림사 제자들까지 빠져나가자 십두마병들이 성난 사자처럼 전장을 휩쓸었다.
일다경(약 20분)쯤 지났을까?
정신없이 일각마인을 몰아치던 장무덕은 서서히 이성을 되찾았다.
사실 일각마인은 다른 천하십대고수들에 비하면 수월한 상대였다.
단단한 몸과 마기로 뿜어내는 강기, 그리고 빠른 속도가 전부였으니까.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넘을 수 없는 벽일 것이다.
그러나 천하십대고수인 장무덕은 달랐다.
그는 일각마인의 속도에 익숙해지지자 주변을 돌아볼 여유까지 갖게 됐다.
‘저런, 쯧!’
그 짧은 시간 동안 천추대는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백여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파도에 모래성이 깎여 나가듯 계속해서 줄어드는 모습이다.
소림사의 대나한진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전멸당했을 상황.
‘하아! 실패다.’
유명교가 어떻게 알고 밤중에 기습을 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력의 대부분을 잃다니 기가 막혔다.
장무덕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기는 물론 도강까지 쓰고도 일각마인을 죽이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만약 그가 곤륜삼선에게-검왕 남궁벽이 그랬던 것처럼-‘최소한 반 시진은 싸워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더라면 좌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장무덕의 곁에는 일각마인의 전투력을 예측해 줄 사람이 없었다.
무력감에 빠진 장무덕은 대나한진 속에서 싸우고 있는 장강호에게 전음을 날렸다.
-후퇴해라. 그 사람들만이라도 살려야 한다!
생존자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달아나라는 말이다.
천추대 대주인 자신이 일각마인에게 잡혀 있으니 천추대를 이끌 사람은 맹주밖에 없었다.
곧이어 ‘보중하시라’는 아들의 대답이 들렸다.
천추대를 떠넘겨서 그런지 장무덕은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죽어라!”
장무덕의 도에서 눈부신 강기가 뻗어 나왔다.
마침내 그를 천하십대고수의 자리에 올려 준 풍뢰도법이 펼쳐졌다.
도강이 벼락처럼 일각마인의 머리로 떨어졌다. 건위천이라는 수법이다.
뒤이어 지면에서 도강이 소용돌이 치며 일각마인의 몸을 찍어 댔다.
건위천에 이은 곤위지다.
그리고 마지막 삼 식인 뇌풍항까지 장무덕은 숨 쉴 틈도 없이 쏟아 냈다.
쿠쿠쿠쿵-.
도강에 난타당하는 일각마인의 몸에서 연신 우렛소리가 들렸다.
혼신의 힘으로 최후 절기를 펼치고 난 장무덕이 일각마인을 노려보았다.
풍뢰도에도 죽지 않으면 포기할 생각이었다.
포기하는 게 맞았다.
자신에게는 그 이상의 수단이 없었으니 말이다.
난타당한 뒤에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던 일각마인의 두 팔이 하늘을 향했다.
“크라라라라라라-.”
장무덕은 자신의 귀에 빠드득 소리가 들리도록 이를 갈았다.
일각마인은 마치 ‘나는 아직 건재하다’고 조롱하는 것 같았다.
한 식경 넘도록 도기와 도강으로 때리고, 베고, 찔렀는데 이런 결과라니!
탄식하던 장무덕은 풍운보를 펼쳐 바람처럼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천히 후퇴하는 천추대를 향해 유명교도들이 개떼처럼 덤비고 있었다.
장무덕은 일각마인을 포기하고 유명교도들에게 달려갔다.
어차피 죽이지 못할 마물과 싸우느니 천추대원 한 사람이라도 살릴 생각이었다.
장무덕이 유명교의 배후를 치자 백두마군들이 다시 그에게 붙었다.
그때다.
뒤에서 혼자 소리를 질러 대던 일각마인이 갑자기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웬일인지 일각마인은 더 이상 장무덕이나 장강호에게 집착하지 않았다.
그저 유령처럼 이리저리 자리를 바꾸며 마구잡이로 손을 휘둘렀다.
“으악!”
“컥!”
어둠 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일각마인이 유명교까지 공격하자 백두마군들은 교도들에게 후퇴를 명했다.
유명교가 떨어져 나가자 천추대는 더욱 빠른 속도로 전장을 벗어났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빈 들에 일각마인의 포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크라라라라라라-.”
***
서비하(西飞河).
천추대의 생존자들은 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정신없이 달아났다.
다들 하얗게 질린 얼굴들이다.
어둠 속에서 사람의 몸이 성둥성둥 잘려 나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선두에서 달리던 사람들은 더 이상 유명교나 일각마인의 추격이 없자 멈춰 섰다.
그러는 사이에 뒤쳐졌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합류했다.
장무덕을 끝으로 더 이상 오는 사람은 없었다.
장무덕이 참담한 눈으로 끝까지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둘러보았다.
일흔둘.
고작 하룻밤 사이에 삼백이십팔 명이 사망한 것이다.
잠시 후 그의 곁으로 무법선사와 장강호, 모용황, 제갈승운이 모였다.
장무덕이 제갈승운을 보며 말했다.
“총사, 당신의 고견을 듣고 싶군. 이 싸움 아직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건 사 대가 한자리에 모여 봐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갈승운은 다소 도발적으로 대꾸했다.
그는 마치 오늘의 피해가 자신의 책임인 양 쳐다보는 사람들 시선에 짜증이 난 상태였다.
맹주인 장강호가 불쾌하다는 얼굴로 제갈승운을 힐끔 보았다.
감히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이자 자신의 부친인 무상도제에게 말대꾸라니?
그러다 문득 ‘사 대’라는 말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총사께서는 혹 다른 삼 대도 우리처럼 유명교의 기습을 받았다고 생각하시오?”
“오늘 서비하에 온 유명교도는 삼 백여 명에 달했습니다. 백마사에 모인 전력의 절반이지요. 그렇다면 나머지 삼백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른 삼 대 중에 하나를 노리고 있다?”
“십두마병과 백두마군, 그리고 일반 교도들의 무위를 고려하면 그런 것 같습니다.”
일각마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천추대는 기습에 밀렸지만 크게 위태롭지 않았다. 그건 저들의 전체적인 무위가 뛰어나지 않다는 방증(等證)이었다.
“오늘 보니 저들이 우리 행로를 알고 기다린 것 같은 느낌인데. 그게 가능하오?”
“우리 쪽에서는 사 대의 대주님들만 정확한 행로를 알고 계십니다. 대주님들이 누설했을 리 없으니 금의위의 누군가가 유명교 쪽에 정보를 팔아먹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래 관인들 하는 짓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갈승운은 금의위에서 주도적으로 벌인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유명교 토벌에 적극적이던 황실에서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탐욕에 눈이 먼 누군가의 일탈 정도로 여겼다.
사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건 정의맹 내에서도 왕왕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