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18
218회. 정말 고모 아들이세요?
이유화는 너무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촌장 집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누가 와서 집에 불이 난 것 같다고 했다.
깜짝 놀라 달려와 보니 이게 웬일?
어린 여동생과 낯선 청년이 마당에서 불장난을 하고 있지 않은가!
“누구신데 남의 집에서 불장난을 하고 있어요? 촌장님을 모시고 와서 따져 볼까요?”
석장촌은 관부가 멀어 촌장의 입김이 센 곳이다.
촌장의 말 한마디면 동네 장정들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올 것이었다.
“네가 시화 언니구나? 자매가 닮아서 처음 봤는데도 알아보겠는데? 맞지?”
“그보다 누구시냐고요! 정체부터 밝혀 주시죠!”
구경하려던 이시화는 언니가 너무 흥분한 것 같자 얼른 끼어들었다.
“언니, 사촌 오빠래.”
“사촌은 무슨! 친척이 모두 죽었는데.”
기막힌 소리에 발끈한 이유화가 쏘아붙였다.
“고모 아들이라는데?”
“우리한테 고모가 어디 있다고 고모래! 이 바보가! 그러니까 속아 넘어가지!”
“몰라. 있다는데?”
“뻔한 거짓말에 왜 속아! 이봐요! 왜 있지도 않은 고모의 아들이라고 그랬죠? 어른이 오면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왜 했어요? 원하는 게 뭐예요?”
동생을 야단친 이유화가 연적하에게 따지듯 물었다.
연적하는 모닥불에 습관적으로 손을 비비며 태연하게 말했다.
“너도 아직 애잖아. 아빠 오면 알 거야. 내가 진짜 고모 아들인지 아닌지 말야.”
“흥! 누가 누구보고 애래요! 그쪽도 그렇게 나이 먹은 것 같지도 않구만.”
말과 함께 이유화는 연적하를 꼼꼼히 살폈다.
그나마 청년의 인상이 순하고 눈빛도 맑아 조금 안심되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하필 부모님이 산에 올라가셨을 때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이유화, 이시화 자매와 연적하의 대치 아닌 대치가 계속됐다.
그러는 동안 촌장의 집에서 장정 둘이 찾아왔다.
남자들은 따질 듯 쳐들어왔다가 연적하의 무장 상태를 확인하고는 곁불만 쬐었다.
문득 연적하가 맞은편의 남자를 빤히 보았다.
“아저씨.”
“날 불렀소?”
“이 마을은 촌장이 남의 집에 막 사람을 보내서 지켜 주고 그래요?”
“항상 그런 건 아니오.”
“그럼 왜 여기에 있어요? 우리 외숙의 친척이라도 돼요?”
“아직 소협의 신분을 몰라서 혹시나 싶어 함께 있어 주는 거요. 보다시피 이 집에는 어른이 없잖소.”
“어른이 왜 없어요? 아저씨 눈에는 저기 어른이 안 보여요? 곧 혼인도 한다던데?”
연적하가 이유화를 가리켰다.
남자가 떨떠름한 얼굴로 연적하와 이유화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럴 때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순간 이유화의 인상이 싸늘하게 굳었다.
느닷없이 모르는 남자가 혼인 운운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어쩌면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봐요! 여긴 그쪽 집도 아닌데 왜 다른 사람에게 뭐라고 해요? 집 주인인 우리가 가만히 있는데.”
“나는 사촌 오빠니까 그런 말 할 수가 있지. 외숙이 오면 다 알게 된다니까 그러네.”
연적하가 계속 사촌 오빠라고 하자 이유화의 표정도 조금 복잡해졌다.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저렇게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정말 내가 모르는 고모가 있었나? 아닌데…….’
분명 백숙부(큰아버지)와 한 분 있던 고모는 혼인도 하기 전에 병사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무슨 고모 아들이란 말인가!
그때 연적하가 마지막 남아 있던 나무 뭉치를 모닥불 안에 던져 넣었다.
그걸 본 이유화는 속이 상했다.
저건 부모님이 내다 팔려고 마당 한쪽에 쌓아 두었던 장작이었다.
그 귀한 걸 고작 마당에서 모닥불로 사용하다니!
“이봐요. 우리한테 왜 그러는지 몰라도. 그 장작은 부모님이 힘들게 해 오신 거라고요. 그걸 그렇게 막 태워 버리면 어떻게 해요.”
“시화가 떨어서 불을 피워 준 거야. 괜히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이까짓 장작값보다 더 큰 돈이 깨질 수도 있다고.”
듣고 있던 이시화가 눈을 동그랗게 치뜨고 소리쳤다.
“어! 아저씨! 아까는 더 좋은 나무를 준비해 주겠다고 했잖아요!”
“누가 안 해 준대?”
“근데 왜 안 해 줄 것처럼 말해요?”
그제야 연적하는 저 두 자매가 장작에 상당히 집착하고 있음을 알았다.
자신에게야 별것 아니지만 그녀들에게는 인생의 소중한 부분인 모양이다.
“알았어. 내가 장작 훨씬 좋은 것으로 채워 준다니까. 오빠 말 좀 믿자.”
거듭 약속한 연적하가 갑자기 남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저씨들.”
“왜 그러시오?”
“거기서 곁불 쬐려면 장작 만들어 놔요. 장작 해다 줄 생각 없음 대문 밖으로 나가시고.”
“그게 무슨 억지요?”
남자, 석양수가 조금 불쾌한 얼굴로 청년을 보았다.
칼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조금 지켜보다 보니 만만히 보여서다.
“억지는 무슨. 내가 쓰고 채워 주기로 했으니 내 장작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아저씨들은 왜 공짜로 불을 쬐는데?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시나?”
“…….”
노골적인 연적하의 말에 석양수는 함께 온 친형 석인중을 힐끔 보았다.
본때를 한번 보여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묻는 것이다.
석인중이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칼을 가진 사람에게 맨손으로 덤벼들 정도로 생각이 없지 않았다.
쪼그리고 앉아 곁불을 쬐던 석인중이 천천히 일어섰다.
“소협의 말이 맞는 것 같소. 우리는 바깥에 나가 있겠소. 유화야,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를 부르거라. 대문 밖에 있을 테니.”
“네.”
이유화가 답하자 남자들은 미련 없이 밖으로 나갔다.
“쳇! 일은 무슨. 사람을 뭐로 보고. 그나저나 외숙은 왜 이렇게 안 와? 혹시 호랑이에게 물려 간 거 아냐?”
되지도 않는 그의 헛소리에 어린 이시화가 한마디 했다.
“흥! 방산에는 그런 거 없거든요! 늑대라면 모를까.”
“어이쿠! 늑대가 사실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데. 떼로 몰려다니면서 소도 잡아먹고, 사람도 잡아먹거든.”
“…….”
이시화가 흠칫 놀란 얼굴로 언니를 보았다.
연적하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엄마 아빠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시화야. 모르는 사람하고 말하지 마. 네가 받아 주니까 자꾸 거짓말을 하는 거야.”
“응. 근데 엄마 아빠 괜찮겠지?”
“당연하지. 촌장님이 산에도 사람을 보냈을 거야.”
가만히 듣고 있던 연적하가 불쑥 물었다.
“야, 마을 촌장이 외숙 엄청 챙겨 주는 것 같다? 뭐 얻을 게 있다고 그래? 촌장이 보살이야? 아님, 네가 그 집 며느리라도 되어 주는 거냐?”
“닥쳐요!”
급기야 이유화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빽 내질렀다.
큰소리가 나자 나갔던 남자 둘이 낮은 울타리 위로 연신 기웃거렸다.
“깜짝이야. 별것도 아닌 말에 왜 화를 내고 그래? 그리고 사촌 오빠에게 닥쳐요가 뭐야. 내가 못 할 말을 했어? 아님 나쁜 말을 했어? 촌장이 왜…….”
“제발 그 입 좀 다무시라고요.”
이유화가 파르르 떨자 이시화가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언니 참아. 받아 주지 말라면서 왜 그래. 이봐요! 아저씨! 우리 언니가 그 집에 팔, 아니, 시집가는 거 알면서 약 올리려고 그러는 거죠? 사람이 못됐어.”
그제야 연적하는 대충 사정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유화가 저렇게 펄펄 뛰는 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어차피 누구나 한번 하는 혼인, 촌장집이면 나름 괜찮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간다는 게 좀 그렇지만.
그는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생각을 곧바로 쏟아 냈다.
그게 녹림의 방식이었다.
“혼인은 누구나 한두 번 하는 건데 뭘 그래. 시집갈 때 낯설어서 울지만, 막상 가고 나면 웃는다고 하더라.”
이시화가 바깥의 눈치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이 답답한 아저씨야. 그것도 상대 나름이죠. 신랑이 마흔다섯이라고요. 아! 춥다. 언니! 불 좀 가까이서 쬐면 안 돼? 우리 마당이니까 우리는 쬐도 되잖아. 응?”
여우 같은 이시화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 짧은 시간, 이유화는 모든 걸 내려놓은 얼굴로 동생 손에 이끌려 나왔다.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두 자매와 연적하가 마주 섰다.
한참 동안 불꽃을 보고 있던 이유화가 물었다.
“정말 고모 아들이세요?”
그때 ‘쾅!’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대문을 열어젖히고 중년의 남녀가 들어왔다.
이우석과 그의 처 장소미였다.
“누구냐! 나에게 조카가 어디 있다고 그따위 헛소리를…….”
버럭 소리치던 이우석은 연적하와 눈이 마주치자 말끝을 흐렸다.
청년의 여리여리한 얼굴선과 부드러운 눈매가 눈에 익어서다.
눈썰미 좋은 장소미는 청년이 자신의 딸들과 닮았음을 금방 알아차렸다.
연적하가 이우석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외숙. 첨 뵙네요. 연적하라고 합니다.”
“험, 험, 안녕하시오? 내 형제자매 중에 자손을 남기고 죽은 이가 없는데, 어째서 나를 외숙이라 부르는 거요?”
“혹시 기억나십니까? 제 어머니 이름이 이부용인데.”
“…….”
이부용이라는 말에 이우석은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 되었다.
이부용은 자신이 일곱 살 때 죽은 바로 아래 여동생이다.
어느 날 안 보여 찾으니 부모님은 ‘죽어서 뒷산에 묻었다’고 했다. 자고 일어나면 사람이 죽어 나가던 시절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부용의 아들이라니?
그러고 보니 어릴 때의 부용과 닮은 듯도 하다.
연적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외조부와 외조모가 집 앞을 지나가던 무인에게 팔았다고 하더군요. 어머니는 자기가 고아인 줄 알고 죽었는데, 어쩌다 보니 저는 내막을 알게 됐네요. 가만히 있어도 알려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부용이 아들이구나. 눈매를 보니 알겠다. 잘 왔다. 잘왔어.”
이우석이 거친 손으로 연적하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연적하는 어색했지만 손을 잡아 빼지 않고 머쓱한 얼굴로 기다려 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장소미가 웃으며 한마디 했다.
“조카님, 잘 왔어요. 나는 조카님이 우리 애들과 닮아서 단번에 알아봤다니까요. 씨도둑질은 못 한다더니 어쩜 그렇게 닮았대요?”
장소미는 허리에 칼까지 찬 장성한 조카가 어려워 ‘조카님’이라 했다.
부모가 연적하를 조카로 인정하자 이유화와 시화 자매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다.
그러나 이내 이시화는 방긋방긋 웃으며 떠들어 댔다.
“나도 사촌 오빠인 줄 알았다니까요. 언니는 안 믿었지만 난 첫눈에 느낌이 왔어요.”
담장 밖에서 지켜보던 석씨 형제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떠들썩한 인사가 끝나자 이우석은 연적하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
석장촌.
촌장의 집.
촌장 석일함 앞에 세 남자가 마주 앉았다.
이우석의 집에 보냈던 석양수, 석인중과 석일함의 아들 석우대다.
석일함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흐음! 그러니까 정체불명의 낭인이 하나 흘러들어 왔는데, 알고 보니 이 씨의 외조카였다고?”
석인중이 석씨 형제를 대표해 답했다.
“예, 이 씨에게 또 다른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 씨의 혈육은 다 병사하지 않았나?”
“들어 보니 이 씨가 어릴 때, 그의 부모가 집 앞을 지나가던 무사에게 여동생을 팔았다고 합니다. 여동생의 아들이 찾아온 거고요.”
“그런 일이 있었구먼. 그래도 혈육이 그리웠던 모양이지?”
“혈육이니까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석우대가 불안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아버지, 저도 오늘 마을 어귀에서 그 청년을 봤습니다. 제법 깐깐해 보이던데, 이러다 괜히 제 혼사만 무산되는 거 아닙니까?”
석우대는 애간장이 타들어 가는 얼굴이다.
고작 혼인을 보름 앞에 두고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으니 그럴 만도 하다.
“흥! 무산되다니? 석장촌에서 이 씨가 혼사를 틀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석일함이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냉소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