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23
223회. 저 싸움 좋아하는 사람 아니에요.
이시화는 한쪽에서 모닥불을 쬐며 연적하가 일하는 걸 빤히 보았다.
그가 만든 장작더미는 전부가 굵직굵직한 통나무.
한눈에 봐도 그동안 아빠가 가지고 와서 팔던 것보다 좋았다.
연적하가 나무 두 짐을 묶는 데 걸린 시간은 일각(15분)이 넘지 않았다.
도중에 모닥불을 피우지 않았다면 훨씬 일찍 끝났으리라.
그가 나뭇단을 묶고 모닥불로 오자 이시화가 말했다.
“와아! 진짜 잘한다. 오라버니, 차라리 나무꾼을 하는 게 어때요?”
“네가 아직 몰라서 그러는데 나는 그냥 뒷짐 지고 서 있기만 해도 돈이 생겨.”
“쳇! 말도 안 돼. 세상에 그런 직업이 어디 있어요?”
“진짜라니까. 사람들이 나만 보면 알아서 그냥 돈 주고 그랬어.”
물론 오봉산채에 있을 때의 일이다.
이시화는 사촌 오빠가 하도 진지하게 말해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밤늦게까지 일해도 돈을 못 버는데. 어떻게 하면 오라버니처럼 잘 벌 수 있어요?”
“너 싸움 잘해?”
“아뇨.”
“그럼 좀 힘들겠다.”
“오라버니가 가르쳐 주면 안 돼요?”
“야! 이게 하루 이틀 배워서 될 거 같아? 나도 십 년이나 걸렸어.”
이시화는 십 년 걸렸다는 말에 매달리지 않았다.
사촌 오빠가 석장촌에 십 년이나 있을 리 없으니 포기한 것이다.
“그만 내려가자.”
연적하는 양쪽 어깨에 하나씩 나뭇단을 지고 이시화를 앞세워 하산했다.
연적하가 나뭇짐을 마당에 가볍게 내던졌다.
‘쿵’ 하는 소리가 나자 방에 있던 이우석이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건 뭐냐?”
이시화가 연적하를 대신해 재빨리 나섰다.
“어제 장작 마음대로 썼다고 오라버니가 산에서 해 온 거예요.”
“쯧! 괜찮다니까. 뭘 그런 걸 다. 그건 그렇고 적하는 잠시 들어와 보거라.”
“예.”
연적하는 손을 탁탁 털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앉아 있던 이우석은 연적하와 눈이 마주치자 변명하듯 말했다.
“겨울철에는 일이 없어서 석장촌 남자들은 거의 집에 틀어박혀 있다. 나가 봐야 술이나 도박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거든.”
“아, 예.”
“숙모와 유화는 칠순 잔치 준비를 거든다고 다른 집에 갔다. 참, 형양현에 머무르고 있다지?”
“예.”
“미안하다. 외숙이랍시고 하나 있는 게 가난해서 대접도 제대로 못 하고.”
“괜찮아요. 대접은 다른 데서 잘 받고 있으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이우석은 연적하가 엉뚱하다는 걸 알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시화가 방으로 들어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여름이면 밖에서 기다릴 텐데 겨울이라 그냥 들어온 모양이다.
단칸방 생활에 익숙한 이우석은 크게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아까 촌장님을 만나고 왔다.”
이시화는 안 듣는 척하며 숨소리도 내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언니의 혼사 문제로 집안이 한바탕 뒤집혔으니 그럴 만도 하다.
“혼사를 할 수 없다고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으시더구나.”
“안 받아들인다고요?”
“친척인 형양 현령까지도 오기로 했다면서 그냥 강행하겠다고 하시더라. 오히려 너를 설득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저를 설득하시게요?”
“내가 딸자식이 거부한 혼사를 밀어붙일 사람으로 보이느냐?”
“…….”
연적하는 알쏭달쏭한 얼굴이다.
기대했던 답이 없자 이우석은 씁쓰름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촌장님은 절대 번복할 생각이 없으신 것 같은데. 차라리 야반도주라도 해 버릴까? 어차피 없는 살림, 어딜 간들 이만큼 못 살까.”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웬 야반도주예요? 괜히 외숙이 빚 갚기 싫어서 달아났다고 소문만 날걸요? 관부에 신고할지도 몰라요.”
“그럼 어쩌라고?”
“무슨 걱정이에요? 그렇게 혼사를 하고 싶으면 혼자 하라고 하세요. 외숙은 안 한다고 통보하셨죠?”
“오늘 낮에 그렇게 말했다.”
“그럼 됐어요. 혼자 혼례식 한다고 설치다가 망신이나 당해 보라지.”
“하아! 그렇게 쉽게 끝날 일이 아니다. 오늘 보니 촌장님이 유화를 강제로라도 끌고 갈 것 같더라.”
“그럴 일 없어요.”
이우석이 미심쩍은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갑자기 그의 인생에 뛰어 들어와 큰소리 탕탕 쳐 대는데 영 불안하기만 하다.
“솔직히 우리는 촌장님께서 밀어붙이면 따라갈 수밖에 없다. 너는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 석장촌에서는 석씨가 왕이야. 그의 집안에서 장정 대여섯 명만 보내도 우리는 막지 못해. 아무래도 야반도주가 최선인 것 같다.”
이우석은 말을 하다가 자신의 주장에 심취해 벌써부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럴 필요 없다니까 그러시네요. 정 그냥 있기 뭐하면 유화의 계례(머리에 쪽을 지고 비녀를 꼽는 성인식)라도 열어 주자고요.”
“계례?”
뜬금없는 소리에 이우석이 눈을 끔뻑였다.
물론 유화의 나이가 열여섯이니 계례를 할 나이는 지났다. 보통 있는 집 여자들은 십오 세에 계례를 치르곤 하니 말이다.
“혼례식 날에 유화의 계례를 하자는 말이냐?”
“예.”
“네 마음은 알겠다만 촌장이 바보도 아니고 그걸 그냥 구경할 리가 있겠느냐? 집은 난장판이 되고, 유화는 혼례식에 끌려 갈 게다.”
“외숙, 내 칼은 장식이 아니에요. 아무도 유화 몸에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을 거예요.”
연적하가 허리에 달린 검을 툭툭 쳐 보였다.
그래도 이우석은 여전히 불안한 얼굴이다.
괜히 그러다 조카가 관부에 잡혀갈 것 같은, 전에 없던 걱정이 추가됐다.
“그러지 마라. 야반도주를 하면 아무도 다치는 일 없이 잘 끝날 텐데 뭐하러.”
“촌장 친척이 현령이라면서요? 평생 관부를 피해 다닐 각오가 되어 있어요? 내가 촌장이래도 관부에 고발할 텐데?”
이우석의 입에서 무거운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돈이라도 돌려주고 달아나면 모를까?
빚이 있는 상태에서 야반도주하면 분명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문득 이우석은 연적하가 원망스러웠다.
천 냥이라는 거금이 있으면서 왜 모른 척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가 빚만 갚아 준다면 거리낌 없이 야반도주를 할 텐데 말이다.
“계례가 괜찮겠죠?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준비는 내가 해 줄 게요.”
순간 이우석은 버럭 소리를 내지를 뻔했다.
분명히 촌장이 뒤엎어 버릴 계례를 왜 자꾸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빚이나 갚아 줄 일이지.
“우리 형편에 계례를 하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놀릴 게다. 그런 데 쓸 돈이 있으면 빚부터 갚으라고 할걸?”
이우석은 넌지시 빚 이야기를 꺼냈다.
하나 마나 한 계례에 돈을 쓰느니 내 빚이나 좀 갚아 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연적하는 듣지 못한 척 딴소리를 했다.
“암만 생각해도 계례가 딱이네요. 촌장이 혼례식에 손님들 끌어모을 때, 계례로 맞불을 놓는 거예요. 두고두고 기억에 남도록 내가 성대하게 열어 줄게요.”
결국 이우석은 빚 청산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했다.
야반도주가 안 된다면 계례를 하든 말든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뭘 하든 촌장이 그 판을 뒤엎어 버릴 테니까.
“마음대로 해라.”
자포자기한 이우석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어차피 혼례식 날에 누구도 집 밖에 나갈 수 없을 테니 뭐라도 하긴 해야 했다.
‘손님이라고 해 봐야 가족들밖에 없으니 유화에게 비녀나 주면 끝나겠지.’
물론 훈훈하게 끝날 거라는 보장은 전혀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적하야.”
“예?”
“혹여 나중에 일이 잘못되더라도 절대로 싸울 생각은 하지 말거라.”
“외숙, 저 싸움 좋아하는 사람 아니에요.”
그러자 구석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이시화가 입이 간지러웠는지 한마디했다.
“오라버니, 십 년 동안 싸움하는 것만 배웠다면서요.”
“무공 수련을 했다는 거지.”
“순 거짓말쟁이. 돈 버는 법 가르쳐 달라니까 싸움 잘하냐고 물어봐 놓고서.”
“그래서 촌장이 유화 잡아가도 구경만 하라고?”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촌장님이 사람들 보내면 막을 자신은 있어요?”
“야! 너 내가 나무하는 거 봤지? 그 사람들이 나무보다 더 튼튼할 것 같아?”
“나무랑 사람이 같아요?”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사람이 더 쉬워.”
나무를 상대할 때는 자신의 경지가 투영되지만, 사람은 그의 수준에 맞추면 된다. 그러니 연적하 입장에서는 사람보다 나무가 더 어려웠다.
“헉! 사람 토막 내는 게 더 쉽다고요?”
“누가 토막을 낸대? 말이 그렇다는 거지.”
두 사람 대화를 듣고 있던 이우석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조카는 낭인 생활을 오래한 것 같다.
‘싸울 생각 말고 빚이나 좀 갚아 주지. 야반도주가 최선인데…….’
촌장의 혼례식부터 유화의 계례까지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
하남성.
개봉.
금의위 지부.
대회의실.
금의위 정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 둘이 마주 앉았다.
개봉의 남진무사 동유수와 남경의 남진무사 지일강이었다.
두 사람은 총기(總旗, 소기들을 지휘) 시절에 같은 지부에서 일한 적이 있어 알고 있는 사이였다.
그럼에도 회의실 분위기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정의맹의 멸사대와 천추대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게 사실이오?”
지일강의 물음에 동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멸사대는 생존자가 싶다섯이나 부상자를 빼면 고작 서른다섯이 남았고, 천추대는 생존자가 일흔둘이지만 부상자를 제외하면 쉰둘이라 하더이다. 두 개 대를 합한 숫자가 여든일곱이오. 네 개의 대가 모두 모이면 오백사십오 명. 그들은 유명교를 당해 내지 못할 게요.”
“허어! 어쩌다가 이런 일이. 지휘사께서는 유명교가 일패도지 당하지 않게 정의맹 쪽 정보를 흘리라 하셨는데. 정의맹의 전력이 그토록 약할 줄이야.”
“나도 유명교 힘이 예상 밖으로 강해 깜짝 놀랐소. 처음부터 정의맹은 유명교의 상대가 아니었던 거요. 유명교 힘이 그처럼 강할지 누가 알았겠소.”
“일방적인 싸움이 될까 봐 정의맹 쪽 정보를 흘렸는데,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격이 되고 말았구려. 정의맹에 반격할 힘이 남았는지나 모르겠소. 동 대인이 보기에는 어떻소?”
동유수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고 보오. 정의맹에서는 유명교의 십두마병도 막아 내지 못하고 있소. 비록 급습당했다고 하나 유명교 숫자가 월등히 많았던 것도 아니오. 거의 대등한 숫자의 전투에서 정의맹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소. 수적으로 뒤진 상태에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게요.”
“허면 이대로 정의맹이 무너지고 유명교 손에 무림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거요? 그랬다가는 우리 남진도 북진의 꼴을 면치 못하게 될 게요.”
지일강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동유수를 보았다.
결정을 내린 건 지휘사이지만 본래 실패의 책임은 아랫사람들이 지는 법.
이번 일을 계기로-유명교 현장 법사의 암살 실패로 주저앉았던-북진에 다시 힘이 실릴 수도 있었다.
실제로 벌써부터 북진에서 지휘사를 뻔질나게 찾아간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파가 정의맹 편에 서면 전력이 다시 대등해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동유수가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문제라도 있소?”
“사파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파천마군이 이번 일을 수수방관하고 있어서.”
파천마군의 이름이 나오자 지일강은 입을 다물었다.
파천마군은 관인을 뉘 집 개처럼 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녹림의 마두라 해도 관부와는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그만은 달랐다.
“허어! 그자는 만나기도 어렵지만, 설사 대면한다 해도 회유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던데. 아무래도 우리 남진의 운도 다한 것 같소.”
그러자 동유수가 묘한 얼굴로 한마디 했다.
“최근 들은 정보에 의하면 파천마군이 ‘녹림의 칼’을 어느 한 사람에게 일임했다고 하오.”
“헛! 정말이오? 그 사람이 대체 누구요?”
“녹림 총순찰 연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