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27
227회 정말 뼈다귀가 갈리고 싶은 건가!
형양현.
현청.
유시 말(오후 7시).
지방의 현령(정7품)은 금의위 남진 무사(종2품)와 평생 가도 만날 일이 없다.
그러나 살다 보면 종종 예외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형양현 현령 석강월은 마치 새색시처럼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리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금의위 남진무사 동유수.
나이는 자신보다 어려 보였지만 눈빛은 마주보기도 두려울 정도로 형형했다.
퇴청 시간이 지나도록 동유수는 묵묵히 차만 마셨다.
분명히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을 텐데 말이다.
미치도록 궁금했지만 석강월은 감히 묻지 못하고 어색한 미소만 흘려 댔다.
그때 문 밖에서 관원의 음성이 들려 왔다.
“영감, 정주부 안찰사 서 대인께서 오셨습니다.”
안찰사가 왔다는 말에 석강월의 얼굴은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애처롭게 변했다.
금의위 남진무사에 안찰사까지 아무래도 형양현에 변고가 생긴 모양이다.
석강월은 동유수에게 묵례를 올린 뒤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과연 대청마루로 오르고 있는 사람은 연례행사에서 봤던 서경진이었다.
“어이쿠! 대인, 어서 오십시오. 미리 언질을 주셨다면 영접이라도…….”
그러나 서경진은 석강월의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품계가 높은 남진무사 동유수는 서경진을 보고는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서경진이 반가운 얼굴로 동유수에게 습을 했다.
“동 대인, 오랜만에 뵙습니다. 개봉에 계시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그간 별래무양 하셨습니까?”
“하하. 덕분에 잘 지냈소. 안색이 좋은 걸 보니 지낼 만하신 모양이오?”
고위층일수록 금의위와 만날 일이 많다.
특히나 서경진과 같은 안찰사는 업무상 금의위와 자주 얽힐 수밖에 없다. 금의위가 직접 나설 때도 있지만 안찰사를 통해 정보 수집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다.
동유수와 서경진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 석강월도 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착석했다.
석강월은 안찰사와 남진무사의 앞이라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식은땀만 흘렸다.
‘형양현에 역도가 숨어들었구나!’
그게 아니라면 금의위와 안찰사가 한자리에 모일 리가 없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목이 날아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잔뜩 긴장한 석강월은 동유수의 입만 뚫어져라 보았다.
그때 서경진이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예까지 행차하시었소? 흉흉한 일이 아니라면 좋겠는데.”
석강월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안찰사의 말을 들어 보니 동유수가 그를 이곳으로 부른 모양이다.
동유수가 차갑게 식은 차를 단숨에 들이마시고는 석강월을 힐끔 보았다.
지은 죄도 없이 뜨끔한 석강월은 목을 길게 빼고 눈만 끔뻑거렸다.
“좋다면 좋은 일이고, 아니라면 아닌 일이니 잘 들어 주시오. 지난해에 황상의 명으로 북진에서 모종의 일을 추진한 적이 있소. 그런데 그만 실패를 하지 않았겠소? 그 일로 고관 셋의 목이 날아갔소.”
말과 함께 동유수가 손날로 제 목을 그었다.
삭탈관직이나 참수 둘 중에 하나겠지만 누구도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 뒤 그 일은 우리 남진으로 넘어왔소. 만약 남진에서 이번 일에 실패하면, 다시 북진으로 넘어갈 거요. 이 바닥이 본래 그러니까.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실패의 책임을 떠안게 될 테고.”
석강월과 서경진의 얼굴이 굳었다.
책임 운운하는 걸 보니 자신들에게 하는 말이 분명했다.
최소한 삭탈관직, 심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참수당할 수 있다는 소리다.
동유수가 무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황상께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일이니 상벌은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오. 나는 이번 건이 두 사람에게 좋은 일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오.”
멍하니 듣고 있던 서경진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동 대인,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 아니, 안 듣고 관여하지 않으면 안 되오?”
석강월이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두 사람의 반응에 동유수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형양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 두 사람 역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오.”
서경진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건의 배경이 형양현이라면 그의 말이 맞았다.
“하아! 기왕 그렇다면 좋은 쪽으로 되도록 해야겠지요. 내용이나 좀 말씀해 주시구려.”
문득 동유수가 석강월에게 시선을 돌렸다.
“석 현령, 그대도 같은 생각인가?”
“예? 예, 소관도 잘 해결되도록 분골쇄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순간 동유수가 서탁을 ‘쾅’ 소리가 나도록 후려쳤다.
“그러겠다는 사람이 왜 그런 짓을 해! 정말 뼈다귀가 갈리고 싶은 건가!”
한순간 석강월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왜 갑자기 그가 자신에게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유 없이 사람을 몰아세울 자리가 아니므로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대, 대인, 소관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동유수는 석강월에게서 시선을 거둬 창밖으로 돌렸다.
그는 금의위의 고위급답게 강약의 완급 조절에 능한 사람이었다.
금방이라도 한 대 후려칠 기세로 화를 내더니 이내 담담하게 운을 뗐다.
“두 사람은 당금 무림의 상황을 아시오?”
뜬금 없는 그의 말에 서경진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혹 정의맹과 유명교의 쟁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소. 그 싸움에서 정의맹은 괴멸의 위기에 빠졌소. 유명교는 사교요. 사교의 손에 무림이 떨어진다면 천하가 어찌 되겠소?”
“혼란스러워지겠지요.”
서경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정도는 상식인지라 딱히 고민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해서 우리 남진에서는 사파가 정의맹의 편에 서기를 바라오.”
“아!”
서경진은 금방 동유수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정사파가 힘을 합쳐 유명교를 몰아내는 게 황상의 뜻인 모양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리다. 사파의 종주인 녹림과 정의맹이 연합하도록 만드는 게 나의 임무요.”
동유수의 말에 석강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과 자신은 눈곱만큼의 관계도 없었기 때문이다.
서경진도 그렇게 생각했던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대인의 말씀은 알겠소이다. 그런데 형양현과 그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녹림의 총채주인 파천마군은 녹림의 운영을 총순찰인 연적하에게 맡겼소. 즉 다시 말해 연적하가 정사파 연합의 결정권자라는 말이오.”
“…….”
서경진과 석강월은 ‘그래서 뭐?’라는 표정으로 동유수를 보았다.
“파천마군은 관인과 상종도 하지 않는 자요. 그에 반해 연적하는 말이 통할 여지가 많은 사람이고. 해서 그를 회유하는 것에 이번 일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할 수 있소.”
서경진은 여기서 왜 갑자기 연적하 이름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해진 그가 한마디 하려는 순간이다.
“연적하가 그의 외숙을 만나러 형양현에 와 있소. 그런데 하나뿐인 그 외숙에게 고약한 일이 생겼지 뭐요.”
“고약한 일이라니요?”
서경진이 화들짝 놀란 눈으로 동유수를 보았다.
“석 현령의 재당질이 석장촌의 촌장인데, 그자가 석 현령을 앞세워 강제로 며느리 삼으려는 여자가 있소. 그 여자의 부친이 바로 연적하의 외숙이오. 석 현령, 알겠나? 당신 재당질이 강제로 밀어붙이는 혼례식 상대가 바로 연적하의 사촌동생이란 말이다!”
“헉! 내일의 혼인이 강제로 하는 것이었습니까? 저, 저는 몰랐습니다.”
“며칠 전에 형양현의 객점에서 연적하를 만났다. 그에게 혼인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지. 내 은밀히 알아보니 정말 촌장이라는 자가 강압적으로 벌인 일이더군. 연적하의 말 한 마디면 석장촌은 물론, 당신도 자다가 고혼이 될 수 있어. 아니, 이제는 그가 아니라 금의위에서 당신을 죽이려고 할 거야.”
“사, 살려 주십시오! 제가 혼사를 막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래도 아직 기회가 남아 있으니까. 내일 당신 재당질이 강행하는 혼례식 때, 연적하의 외숙도 따로 계례를 한다고 하더군. 당신이 어디에 참석해서 누굴 축하해 줘야 하는지 알겠지?”
“예, 예.”
동유수가 이번에는 서경진을 보았다.
“연적하가 사촌동생의 계례에 참석할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하더이다. 그는 촌장의 횡포에 심한 모멸감을 느낀 것 같았소. 외숙의 집이 가난해서 생긴 일이니 그럴 만도 하지. 내가 안찰사까지 보자고 한 이유를 아시겠소?”
“잘 알겠습니다. 그런 자리라면 빠질 수 없지요. 반드시 참석하여 확실하게 그의 눈도장을 받아 두겠습니다. 그리고 석 현령.”
“예.”
“당신 재당질의 죄는 내 따로 엄중히 물을 거야. 몰랐다면 모를까? 민정을 살펴야 하는 내가 알고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행여나 재당질에게 미리 언질을 줄 생각은 하지 말게. 그가 달아나기라도 하면 당신이 책임지게 될 테니까.”
“그런 놈은 재당질도 뭣도 아닙니다. 석씨 가문의 수치이니 뜻대로 하십시오.”
석강월은 제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 바싹 엎드렸다.
이야기가 대충 정리되자 동유수는 서경진과 함께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넋을 잃고 앉아 있던 석강월은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갔다.
***
석장촌.
마침내 운명의 날이 밝았다.
석장촌의 아낙들은 아침부터 촌장 집으로 향했다.
마을의 큰 행사이니 일손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촌장 석일함은 흐뭇한 눈으로 집을 둘러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죄다 모였는지 눈 닿는 곳마다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버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꽃단장을 한 아들이 서 있었다.
“왜 나왔느냐? 식은 조금 있다가 할 텐데.”
“궁금해서 나와 봤습니다. 그런데 사돈댁은 아직 안 보이는 것 같네요?”
“곧 사람을 보내 모셔 와야지. 계례니 뭐니 나름 바쁜 모양이더라.”
“너무 심하게는 하지 마십쇼. 그래도 사돈이 될 텐데.”
“허허. 이놈. 벌써부터 사돈댁 편이냐?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할 놈일세.”
민망해진 석우대가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그 낭인 조카가 행패나 부리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정주에서 낭인들을 좀 불러왔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도 있지 않더냐. 낭인은 낭인으로 다스리면 되니 신경쓸 것 없다.”
“그런데 마을 사람만 가득하고 다른 손님은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혼례가 오시 초(오전 11시)니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다. 본래 높으신 분들은 딱 정해진 시간에 오지 않더냐?”
잠시 아들과 더 이야기를 나누던 석일함이 근처에 있던 석인중, 석양수 형제에게 손짓했다.
“부르셨습니까?”
“슬슬 시간이 됐으니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신부를 모셔 오거라.”
“알겠습니다.”
석씨 형제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석인중과 석양수는 낭인 셋을 이끌고 조용히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
석씨 형제를 따라가던 낭인 중에 하나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보슈. 신부 될 여자가 그렇게 예쁘다는데 사실이우?”
석양수가 불쾌하다는 듯 쏘아 붙였다.
“예쁘면 어떻고 안 예쁘면 어떻소? 남의 여자에게 신경쓰지 마시오.”
“얼마나 예쁘길래 강제로 혼례를 치르는지 궁금해서 그러지.”
낭인의 말이 살짝 짧아졌지만 석양수는 감히 따지지 못했다.
부지런히 앞만 보고 걷던 석인중이 멈칫거렸다.
지금쯤 한적해야 할 이우석의 집 근처에 사람들이 오락가락해서다.
심지어 골목에는 관군들까지 쫙 깔려 있었다.
관군을 본 낭인들의 걸음이 느려졌다.
분위기가 이상하자 석양수가 석인중을 힐끔 쳐다보았다.
“형님, 혹시 현령님이 직접 신부를 데려간다는 말이 있었소?”
“그럴 리가. 그랬다면 백부님이 우리를 보냈겠느냐?”
그도 맞는 말인지라 석양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낭인들은 골목에 깔린 관군을 핑계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석인중과 석양수만 이우석의 집으로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