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31
231회. 관을 봐야 눈물 흘릴 놈들
새해 벽두부터 유명교와 정의맹에 관한 소문이 무림을 강타했다.
유명교가 정의맹을 쳤다!
칠리하촌에 모인 정의맹이 괴멸 직전이다!
남직례성 리신현 서비하와 숙주의 천문산에 마물이 나타났다!
마물의 퇴치를 위해 정의맹에서 명망 있는 술법사들을 초빙하고 있다!
정의맹은 해체될 것이다!
그러다 이월에 접어들자 ‘정파와 녹림이 힘을 합친다’는 소문이 돌았다.
***
낙양.
백마사.
접인전(接引殿).
손님 접대용 전각에 백두마군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정파와 사파가 힘을 합칠 거라는 소문 때문인지 모두가 똥 씹은 얼굴이었다.
“이 모두가 연적하에게 포상금을 걸어서 생긴 일이 아니오!”
“그러게 왜 가만히 있는 도적놈을 건드려서 일을 키운 건지 원.”
“가만히 있다니요? 그놈이 우리 십두마병들을 죽인 걸 잊었나요?”
“고작 십두마병 몇 때문에 녹림이 정파와 손잡게 생겼으니 하는 말 아니오!”
“어허! 흥분하지 맙시다. 소문이 그렇다는 거지 정말 정파가 녹림과 손을 잡겠소? 강호행이다 뭐다 해서 그동안 싸워 온 세월이 있는데?”
“궁지에 몰린 쥐가 살려면 무슨 짓을 못 하겠소? 연적하의 머리에 포상금을 거는 게 아니었소. 아닌 말로 감정만 건드렸지 실효가 없는 일이 아니오? 십두마병도 감당 못 하는 자를 누가 상대한다고?”
“그때는 찬성하더니 왜 이제 와서 그런 소리요?”
“말은 바로 합시다. 하겠다고 해서 그냥 지켜봤지 언제 찬성했다고 그러시오?”
백두마군들은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언성을 높였다.
무산낭랑 이매화와 혼세검마 척진경, 그리고 월하선자를 다른 백두마군들이 비난하는 형국이었다.
보다 못한 환영신마 웅재귀가 나섰다.
“자자, 아직 확실하게 드러난 건 없으니 그만들 합시다. 파천마군이 쉽게 정파에 붙을 위인도 아니지 않소? 정의맹에서 불리해지니 괜히 수작 부리는 것일 수도 있소. 파천마군과 만나 보면 알 것 같은데. 그건 어찌 되었소?”
웅재귀가 혼천혈귀 강상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파천마군과 만나 보겠다고 한 지 꽤 시일이 지나서다.
강상피가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직 만나지 못했소. 파천마군이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아는자가 없어서……. 정주에서 잠깐 얼굴을 비친 뒤로 감감무소식이오. 아무래도 우리 쪽에서 찾을 것 같으니 그냥 숨어 버린 것 같소.”
“정말 우리를 피하는 거라면 소문이 맞다는 거 아니오?”
“꼭 그렇지만은 않소. 원래 파천마군은 자기 행적을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니오. 정주제일루에서 요란을 떤 게 오히려 이상한 거요.”
그말에 웅재귀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이럴 때 교주님이 계셨어야 하는데.”
“…….”
옥신각신하던 백두마군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교주가 있었다면 정파와 녹림이 손을 잡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백두마군들이 소문에 휘둘리는 것은 아직 교주를 찾지 못해서다.
***
개봉.
화상촌.
연적하는 정주에서 돌아온 뒤로 평소처럼 객점과 효자암을 오락가락했다. 마치 강호의 소문과 자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점심 무렵.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려는 연적하에게 남수경이 다가왔다.
“연 공자, 이거 어때요?”
말과 함께 남수경이 들고 있던 판때기를 빙그르 돌렸다.
판때기에 ‘남연객점’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남연객점? 객점 이름이야?”
“네, 그동안 이름이 없어서 좀 불편했잖아요. 손님도 많이 늘고 해서 만들어 봤어요. 이름이 있어야 손님들도 다시 찾기 쉬우니까.”
“괜찮네. 그런데 무슨 뜻이야?”
“척 보면 모르겠어요? 남씨와 연씨잖아요. 우리 성을 따서 만든 거라고요.”
“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적하가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자 남수경은 금세 실망한 얼굴이다.
“그게 끝이에요? 다른 소감은 없어요?”
“아이고 됐네요. 객점 이름에 무슨 소감씩이나.”
“쳇! 난 이 이름 짓는다고 며칠 밤을 고생했는데. 동업자 정신이 좀 부족한 거 아니에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이름이 꽤 좋은데? 입에 척척 감기고. 그럼 난 이만 간다.”
연적하가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그가 외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천노도 심통이 식당으로 내려왔다.
“공자님은 나가셨느냐?”
“네. 효자암에 꿀이라도 발라 놨어요? 왜 그렇게 매일같이 가는 거예요?”
남수경은 평소와 달리 톡 쏘아붙였다.
그가 간판 이름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은근 화가 난 것이다.
“흐흐. 툴툴거리는 걸 보니 공자님과 잘 안되나 보구나. 공자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몇 번이나 말했느냐. 친구로 만족하래도.”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대체 누구예요?”
“궁금하면 공자님께 직접 물어보거라.”
“몇 번 떠봤는데 안 가르쳐 주더라고요.”
“그럼 나도 말해 줄 수가 없다.”
심통이 실실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남수경이 뭐라고 떠들었지만 그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심통이 향하는 곳은 효자암이다.
얼어붙은 숲을 지나자 바로 자그마한 초막이 보였다.
초막은 추위와 햇볕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해 전보다 더 추레했다.
바위 끝에는 여느 때와 같이 연적하가 황하를 향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초막 앞에서 햇살을 쬐고 있던 녹담평이 급히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심통은 그를 본체만체 지나쳤다.
“공자님.”
“왜?”
“제가 어제 칼을 찾으러 개봉에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파와 정파가 손을 잡네 마네 아주 난리도 아니더라고요? 혹시 알고 계신 게 있습니까?”
“날 풀리면 정주로 갈 거야.”
“예? 왜요?”
“정의맹을 도와주기로 했거든.”
연적하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심통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헛! 소문이 사실이었습니까? 아니 그런 중요한 얘기를 왜 이제야 하시는 겁니까?”
“안 물어봤잖아.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말을 해.”
“사파와 정파가 손을 잡는 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요? 천지가 개벽을 할 일입니다!”
“다 쓸데없어. 사파는 정파든 꿍꿍이가 따로 있어서 오래갈 것 같지도 않던데 뭐.”
“그래도 사파와 정파가 연합을 한다는 게 어딥니까? 원수에서 동맹이 되는 건데요. 무림의 역사상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정의맹도 깨지는 마당인데 사파와 정파의 동맹이 얼마나 갈 것 같아? 아무 의미 없다니까.”
“그때 정주에서 파천마군 님과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셨던 겁니까?”
“나보고 자기 대신 칠리하촌에 가 달래. 그래서 날 풀리면 그러겠다고 했지. 그게 전부야.”
“대신이라고요? 그럼 십이마군과 녹림은요?”
“십이마군 중에 여섯과 삼십육 채에서 열 명씩 보내기로 했어.”
“칠십이 채가 아니라 삼십육 채라고요?”
삼십육 채면 녹림의 딱 절반이다.
그나마도 열명씩이면 그냥 생색만 내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삼백육십 명이면 정의맹의 절반은 넘으니까, 그 정도로 만족하래.”
“파천마군 님이 정의맹을 전폭적으로 도울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알았어? 괜히 무리하지 말고 싸우는 시늉만 하다 오래.”
“흐흐. 파천마군 님다운 말씀이시네요. 주루에 갔더니 사파와 정파가 연합한다는 소문이 쫙 퍼져 있어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심통은 사파와 정파의 연합이 단지 ‘보여 주기식’임을 알고 웃었다.
하기야 사파가 뭐 아쉬울 게 있다고 다 망한 정파와 연합을 한단 말인가!
“칼은 잘 고쳐졌어?”
“그러저럭요.”
심통이 애매한 얼굴로 유엽도를 매만졌다.
부러진 유엽도를 다시 붙이는 데 자그마치 두 달이나 걸렸다.
일반 대장장이들은 손을 못 대겠다고 해서 관청에 소속된 대장장이에게 뒷돈까지 줘 가며 다시 만들었다.
한동안 개봉에 드나들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때 문득 연적하의 시선이 심통의 옆구리에 있는 금강저로 향했다.
“금강저에 대해서는 좀 알아봤고?”
“예, 그런데 딱히 이렇다 할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심통은 자신의 금강저가 특별하다는 걸 알고 짬짬이 내력을 조사하고 다녔다.
하지만 유명한 사찰의 승려들도 금강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법보인 것 같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참!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정의맹에서 법보를 모으고 있답니다. 천 하십대고수들로도 안 된다는 걸 알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거지요.”
“쯧! 미련한 사람들. 파천마군 님이 욕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니까.”
“본래 정파 놈들은 남의 말 절대 안 듣습니다. 오죽하면 ‘관을 봐야 눈물 흘릴 놈들’이라고 하겠습니까?”
“법보는 좀 모았대?”
“전혀요. 그게 어디 구한다고 구해지는 물건입니까? 있다해도 도관이나 사찰의 보물일 텐데요. 정의맹 내부에서 말들이 많으니까 시늉만 하는 것 같습니다.”
“따로 술법사들을 모집한다고 하니 지난번처럼 맥없이 당하지는 않겠지. 또 같은 일을 당하면 그게 어디 사람이야? 물고기지.”
“흐흐. 맞습니다.”
두 사람이 한창 정의맹을 두고 시시덕거릴 때다.
멀리서 나뭇가지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통이 뒤쪽을 힐끔 돌아본 후에 무덤덤하게 말했다.
“또 금의위 놈이 찾아왔습니다. 여기를 무슨 자기집 안방처럼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툴툴거리면서도 심통은 녹담평의 뒷덜미까지 잡아끌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잠시 후 금의위 남진무사 동유수가 다가왔다.
“역시 오늘도 이곳에 나와 계시는구려. 그간 잘 지내셨소?”
“그럭저럭요.”
“강호에 정사파 연합의 소문이 파다하더이다. 드디어 연 공자께서 칼을 뽑기로 한 것이오?”
“아직 정해진건 아니에요. 하지만 동 대인의 부탁도 있고 해서,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어요. 객점 생활이 무료하기도 하고.”
연적하는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마치 동유수의 부탁으로 정의맹을 돕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파천마군과 남궁연, 심통과 같은 인물들과 어울리는 와중에 생활의 지혜가 생긴 모양이다.
“고맙소! 부디 정의맹을 도와주시기 바라오. 이번에 정의맹을 도와주면 그 은혜를 잊지 않으리다.”
동유수는 싱글벙글했다.
드디어남진에서 추진하던 일에 성과가 나타날 모양이다.
“아, 그리고 석장촌의 일은 잘 해결됐소이다. 촌장과 그의 아들은 각각 장 삼십 대를 맞고 옥에 갇혔소. 육 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게 될 게요. 외숙은 빚을 다 갚았고, 봄이 되면 형양현에 점포 낼 것처럼 말하더이다. 혹 연 공자께서 자금을 지원해 주셨소?”
“아뇨.”
“그것참. 형양현에 점포를 내려면 일이천 냥으로는 안 될 터인데…….”
“날파리가 꼬였나 보네요. 대체 누가 고작 나무나 해다 파는 외숙에게 거금을 대줬을까나.”
연적하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세상에 공짜가 없으니 외숙의 배경을 노리는 누군가의 짓이리라.
동유수는 연적하가 불쾌해 하자 급히 말했다.
“내가 알아보고 누군지 몰라도 쓸데없는 짓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하리다. 그래도 괜찮겠소?”
“괜찮고 말고요. 외숙의 집은 도와줘도 내가 도와줘요. 그러니 속 보이는 짓 하지 말라고 하세요.”
동유수는 연적하의 말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보통은 유명세를 이용해서 얻어 낼 걸 다 얻어 내는데 그는 달랐다.
“공자에게 배워 가는구려. 외숙의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해 드리리다.”
연적하가 동유수를 힐끔 보았다.
뭘 배워 간다는 건지 모르겠다.
외숙의 하는 짓이 뻔뻔해서 골탕 좀 먹으라고 그런 건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