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33
233회.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싸움은 음식이 하나 둘 나올 때쯤에야 끝났다.
잠시 후 상체를 피로 물들인 다섯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방금 혈전에서 승리한 황룡수채 채주 혈해마도 적무인이 기막힌 눈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보았다.
웬 늙은이 하나와 앳된 얼굴의 청년 하나가 자신들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탁자를 보니 자신들이 먹던 음식은 절반도 남지 않았다.
물론 심통이 같은 걸 주문한 걸 모르기에 착각을 한 것이다.
적무인의 오른팔인 귀도 마인걸이 살기를 뚝뚝 흘리며 탁자로 다가갔다.
“이 미친 것들. 뒤지려고 환장을 했구나. 왜 남의 음식을 처먹고 있느냐?”
구천노도 심통이 입안에 음식을 가득 물고 말했다.
“쩝, 쩝. 싸우느라 고생들 했다. 어디 소속이더냐?”
너무도 태연자약한 심통의 물음에 마인걸은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인걸이 뒤쪽에 있던 적무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소속을 묻는 걸 보니 아무래도 녹림 같아 손부터 쓰기가 어려웠다.
적무인 역시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녹림도라 해도 자신은 무려 황룡수채의 채주다.
보아하니 십이마군도 아닌데 자신의 앞에서 저따위 행동이라니?
은근 부아가 난 그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황룡수채의 채주 혈해마도인데, 귀하는 누구시오?”
적무인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는 상대의 대답 여하에 따라 피를 볼 생각이었다.
방금까지 칼부림을 해서 그런지 애쓰지 않아도 금방 혈기가 치솟았다.
“노부는 구천노도 심통이오.”
순간 적무인은 황급히 살기를 흩트리고 눈을 내리깔았다.
늙은이가 심통이면 게슴츠레한 눈으로 앉아 있는 청년은 당연히 연적하다.
“혹시 총순찰님이십니까?”
연적하는 시선을 음식에 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적무인과 마인걸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황룡수채의 채주인 적무인입니다.”
“속하는 황룡수채의 마인걸이라 합니다.”
나머지 셋은 감히 이름을 밝히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허리를 접었다.
인사가 끝나자 심통이 물었다.
“적 채주, 누구와 싸운 거요?”
과거의 심양각이라면 적무인과 말을 섞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오늘날 구천노도의 위명은 혈해마도를 압도하고 있었다.
적무인 역시 그걸 알기에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비록 심통이 녹림에서 아무런 직위도 가지지 않았지만 그를 존중했다.
“정주에 있는 금검문이외다. 이전부터 자주 부닥쳤는데 오늘 만난 김에 제대로 손을 좀 봤소. 문주를 죽였어야 하는데 그게 좀 아쉽소.”
묵묵히 닭다리를 뜯고 있던 연적하가 입을 열었다.
“사파와 정파가 연합을 하기로 했는데 누굴 죽인다고? 아예 시작부터 초를 치겠다는 거야?”
“아,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아니긴 개뿔. 내 귀에 뚫린 구멍이 장식인 줄 알아? 황룡수채라고 했지? 총채주님이 들으면 아주 좋아하겠어. 연합을 하기도 전에 초를 팍팍 쳐 대니.”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오십 대 후반의 적무인은 아들뻘에 불과한 연적하에게 쩔쩔맸다.
때마침 그때 소청이 음식을 내왔다.
주방에서 막 나온 소청은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지 연신 눈알을 굴렸다.
굶주린 호랑이처럼 펄펄 날뛰던 무인들이 의기소침한 얼굴로 서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분위기가 싸한 걸 느낀 소청은 음식을 내려놓고는 급히 자리를 떠났다.
문득 연적하가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부터 인상들 팍팍 쓰고 있는데 이거 우리가 새로 주문한 음식들이야. 그쪽이 먹던 거 훔쳐 먹은 거 아니니까 눈에 힘 좀 빼.”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런 뜻으로 본 게 아닙니다. 대접을 해도 시원치 않은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싸움의 여파로 그렇게 보였을 겁니다.”
“가 봐.”
“예, 아무쪼록 좋은 시간 되십시오.”
적무인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다른 자리로 옮겼다.
반점에서 일어났던 소란은 그렇게 정리됐다.
연적하와 심통이 식사를 마칠 즈음이다.
거리에서 또다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칼부림을 벌였다.
이번에는 사망자까지 나왔다.
처절했던 싸움이 끝나자 누군가 시체를 어깨에 짊어지고 사라졌다.
창밖을 내다보던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난리 났네.”
“공자님은 아직 잘 모르시겠지만 쌓인 원한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피차 해묵은 원한들이 어디 한두 개라야 말이지요.”
“심 노인도 원수가 많아?”
“좀 됩니다.”
“몇 명이나 돼?”
“열 명? 아니 스무 명쯤 되나? 하여튼 좀 있습니다.”
“자랑이다.”
“자랑이라기보다는 그만큼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해 주십쇼.”
“아이고, 말이나 못하면.”
고개를 젓던 연적하가 물었다.
“저렇게 마주치면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인데 천지맹이 잘될까?”
“잘될 리가 있습니까? 오히려 이참에 얼씨구나 하고 원수를 갚으려 할 겁니다. 천지맹이 대체 누구 대가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게 나쁜 쪽으로만 생각해?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도 있잖아. 상황이 안 좋으면 원수라도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거지.”
“믿고 등을 맡길 수 없는 놈들이니 그렇지요. 솔직히 우리 녹림의 입장에서는 유명교나 정파 놈들이나 오십보백보 아닙니까?”
“그러니까 착하게 살아. 어떻게 된 사람이 세상천지가 다 원수야. 나 봐. 한때는 정의맹과도 같이 일을 한 사람이라고. 누구와 달리 난 원수가…….”
없다고 말하려면 연적하는 말을 흐렸다.
문득 큰어머니 백미주와 배다른 형제들이 생각나서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을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원수가 없으시다고요? 그럴 리가요. 유명교에서 공자님 목에 포상금까지 걸었는데 그런 말씀이 나옵니까?”
“아, 그렇군. 내가 유명교 생각을 깜빡했네.”
연적하는 피식 웃으며 음식으로 손을 뻗었다.
백미주와 배다른 형제들에 비하면 유명교는 아무것도 아닌 느낌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
칠리하촌 서편.
허름한 가옥.
이 남 일 녀가 마주 앉아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연무백, 연승백과 연설주다.
연무백과 연승백은 정의맹 정주 지부 소속으로 참여했고, 연설주는 며칠 전에 합류했다.
상방에서 일하던 연설주가 정의맹에 합류한 것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다.
“……적하의 법보는 우리 연씨의 보물이야. 무공도 우리 가문의 것이지만, 특히나 법보는 연 숙부님 거라고. 그건 오봉산에서 빼앗긴 거니까 돌려받지 않으면 안 돼.”
연설주의 말에 연무백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과거 숙부인 연무도가 상행에 나갔다가 적하에게 검을 빼앗긴 적이 있다.
연설주는 그 검을 돌려받기 위해 여기까지 쫓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적하는 지금 녹림의 총순찰이다. 더구나 숙부님도 돌아가셨는데…….”
“오라버니, 지금 칠파이문에서 법보 수집에 공을 들이고 있는 거 몰라요? 평범한 술사들도 법보 하나만 들고 있으면 대접받는 시대라고요. 오라버니들 무공에 법보를 가지고 있어 봐요. 적하가 저렇게 유명해진 것도 숙부님의 법보 덕분이잖아요.”
“…….”
연무백과 연승백은 반박하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정의맹에 연적하의 법보가 대단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른바 와룡검.
곤륜삼선이 목격한 연적하의 검에 적힌 글자로 인해 생긴 이름이다.
그건 확실히 연무도의 검이었다.
무슨 기연으로 연무도의 검이 법보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연승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 다른 건 몰라도 와룡검은 돌려받는 게 맞지 않아? 연 숙부가 그 녀석에게 준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빼앗아 간 거잖아.”
“하아! 너희들 말이 맞다고 치자. 녹림 총순찰이나 되는 그가 순순히 그걸 돌려주겠느냐? 더구나 지금처럼 법보가 귀한 시국에?”
“오라버니는 너무 물러서 탈이에요. 넷째가 얻은 무공도 우리 연씨의 것이잖아요. 무공에 법보까지. 연 씨의 모든 걸 그 애가 독차지하고 있다고요. 무공도 그렇지만, 특히 법보는 강제로 빼앗아 간 거니 돌려받아야죠. 지금이 적기예요. 자기도 체면이 있으니 우리가 정식으로 요청하면 거부하지 못할 거예요. 지금이 아니면 평생 돌려받지 못한다고요.”
“…….”
연무백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녀의 지적대로 지금이 적기인 건 사실이다.
이때가 아니라면 언제 정사파가 한 자리에 모여 단체를 결성한단 말인가!
어쩌면 정당하게 되찾아 올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법보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가 돌려줄까?
“그랬는데 적하가 거절이라도 하면 우리 사이는 더 나빠질 게다.”
“오라버니, 이미 삼장이 망했어요. 외가인 백가장은 몰살당하기까지 했고요. 여기서 더 나빠질 게 뭐가 있어요? 어차피 넷째는 도리와 멀게 살잖아요. 그 애는 집안의 수치예요. 돌려받을 거만 받고 정리하자고요.”
“형, 설주 말이 맞아. 넷째가 녹림에 있는 한 우리와 좋아질 수 없어. 백번 양보해도 외가를 싹 다 죽인 건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야. 하나씩 돌려받자고.”
연승백까지 연설주의 말에 동의하자 마침내 연무백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천 형님께 먼저 말해 보마. 남궁세가를 통하면 굳이 정의맹에 요청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적하도 천 형님과 잘 지내는 것 같으니까.”
“오라버니, 그럼 이참에 무공도 함께 말해 봐요.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러마. 어쩌면 적하도 칠리하촌에 올지 모른다. 행여나 그애를 만나게 되면 괜히 자극하지 말고. 특히 설주.”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요?”
“적하를 만나서 억지 부리지 말라고. 연씨 것이니 내놓으라고 떼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인정으로 풀어야 할 일을 도리를 앞세워 따지지 말라는 소리다.”
“쳇! 넷째와 만난 적도 없어요.”
연설주가 억울하다는 얼굴로 입을 삐죽였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오봉산 이후로 아직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데 자극이니, 떼를 쓴다니, 따진다느니 하는 말을 듣게 되다니 말이다.
식사를 마친 연무백은 남궁세가가 머무르고 있는 정주 지부 건물로 찾아갔다.
“어쩐 일이냐?”
마침 마당에서 연공 중이던 청운검 남궁천이 웃으며 연무백을 맞이했다.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요.”
“상의? 아버지가 아니라 나하고?”
“예.”
남궁천이 의아한 눈길로 연무백을 보았다.
검왕인 부친이라면 모를까?
자신은 정의맹의 정례 회의에 참석조차 못 하는 애송이다.
머리는 남궁연이 월등히 뛰어나다.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모르겠다.
“무슨 일인데? 차라도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어 볼까?”
남궁천은 연무백을 데리고 가까운 다관(茶館)으로 이동했다.
상의드릴 일이 있다던 연무백은 차를 홀짝거릴 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답답해진 남궁천이 막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 할 때다.
“형님이 실망하실 것 같지만, 달리 의논할 상대가 없어서요.”
“뭔데 그래?”
“적하와 관계된 일입니다.”
“…….”
연적하의 이름이 나오자 남궁천은 입을 다물었다.
연적하와 와룡장의 관계를 아는 터라 심사가 복잡했던 것이다.
연적하 못지않게 연무백과는 함께 지낸 정이 있다.
자그마치 십 년이나 친형제처럼 지냈기에 그를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
숙모와 연씨 원로들의 잘못으로 그는 날개 한번 펴 보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
연적하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클수록 연무백도 불쌍해 보였다.
“말해 봐. 무슨 일인데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