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37
237회. 그러다 큰일 나요. 언니.
낙양.
백마사.
접인전(接引殿).
일곱 명의 백두마군들은 최근 들어 거의 매일 접인전에 모였다.
정사파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여섯 명의 백두마군들이 무산낭랑 이매화를 바라보았다.
무공보다 방술에 치중한 모산파 출신답게 그녀의 지략이 가장 뛰어났다. 그렇다 보니 얼마 전부터 그녀가 회의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환영신마 웅재귀도 같은 방술사 출신이나 그는 이매화에 비하면 공부가 부족했다.
이매화가 착잡한 얼굴로 백두마군들을 둘러보았다.
“하아! 결국 천지맹이라는 것이 만들어졌어요. 우리가 파천마군을 찾는 동안 신기수사가 한 걸음 빠르게 움직였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사파에 심어 둔 간자로부터 또다시 유쾌하지 않은 연락이 왔네요.”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오?”
혼세검마 척진경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천지맹만 해도 골치가 아플 지경인데 ‘유쾌하지 않은 연락’이라니 짜증부터 났다.
“천지맹에서 술사들로 제마대라는 것을 만들었답니다. 십두마병들을 상대하기 위한 부대라고 해요. 천문산과 서비하에서 된통 당하고 나름 대비책을 세운 모양이에요.”
“흥! 술사 따위로 지옥의 마신들을 막겠다니? 개가 웃을 일이로군.”
유명교에서는 마물이 된 십두마병들을 ‘지옥의 마신’이라 부르기로 했다. ‘마물’이라고 하면 왠지 유명교가 사악한 사교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그리고 천문산과 서비하에 나타난 마신들을 숭배하게 했다.
마치 불가의 등신불처럼, 자신의 몸을 바침으로 마신이 되었다고 가르쳤다.
본래 인간은 초월적으로 강한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을 갖기 마련.
유명교에서 시작된 마신 숭배는 하남성으로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었다.
천생 무인인 척진경과 달리 방술사인 웅재귀는 술사들에 대한 경계심이 적지 않았다.
“술사들을 무시하면 안 되오. 물론 대부분의 술사들이 엉터리인 것은 사실이나, 도력이 높은 술사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소.”
“설마 마신이 부적 쪼가리에 당할 거라고 생각하시오?”
척진경의 조롱에 이매화가 끼어들었다.
“부적만은 아닌 것 같아요. 천지맹에서 대대적으로 법보를 수집했다고 하네요. 술사들 중에는 분명 법보를 가진 자들이 있을 거예요.”
그래도 척진경은 인정하지 않았다.
“부적이나 법보나 무슨 차이가 있소? 부처가 되살아난다 해도 마신을 당하지 못할 텐데. 법보 따위가 뭐라고. 그래 봐야 중이나 도사가 애지중지하는 물건들이 아니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예를 들자면 내가 가진 구절장(九節杖)도 모산파의 보물이랍니다. 전설에 의하면 신탁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해요. 이 구절장에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잠력이 깃들어 있어요. 법보라는 것들도 대부분 신비한 내력을 가진 물건이에요.”
그제야 척진경은 입을 다물었다.
그도 이매화의 술법이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음은 알고 있다. 백두마군의 내력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잠력이 구절장에 담겨 있을 줄이야!
악불 방천각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요? 제마대가 마신을 제압하기라도 할 거라는 거요?”
“그걸 누가 알겠어요? 우리도 아직 마신의 실체에 대해서 모르는데. 우선은 제마대 술사들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만약 그들이 정말 마신을 제압한다면.”
이매화는 잠시 말을 끊었다.
수군거리던 백두마군들이 이매화의 입에 집중했다.
“제마대를 먼저 제거해야겠지요. 천문산과 서비하에서 옥석이 드러날 거에요. 그들 중에 옥이 있다면, 본진으로 돌아가기 전에 죽여야 해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도 천문산과 서비하에 교도들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구려.”
적월 공취산의 말에 이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제마대를 척살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니 머리가 잘 굴러가는 자들을 선발해야 할 거예요.”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게요. 십두마병들치고 잔머리가 안 돌아가는 자들이 없으니.”
공취산의 말에 다른 백두마군들이 푸들푸들 웃었다.
그의 말대로 십두마병들은 대부분 눈치가 빠르다. 까탈스러운 백두마군의 눈에 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들인 것이다.
대충 의견이 모아지자 웅재귀가 말했다.
“만약 제마대를 척살해야 한다면 장소도 정해 주는 게 낫지 않겠소?”
이매화가 의아한 눈으로 웅재귀를 보았다.
그 역시 방술사 출신으로 보통 사람들보다 생각이 깊으니 그저 하는 말은 아니리라.
“특별히 생각해 두신 곳이 있나 보군요?”
“상구와 주구요.”
“왜지요?”
“천문산으로 가려면 상구를 지나야 하고, 서비하로 가려면 주구를 지나야 하지 않소.”
이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상구와 주구는 정주와 마신들이 있는 지점을 잇는 직선거리의 중간이었다.
하지만 하고 많은 장소를 두고 왜 하필 그곳이란 말인가?
“물론 그곳을 선택한 이유가 있겠죠?”
“허허. 역시 무산낭랑이시오. 그렇소. 십두마병들이 마음먹고 노리면 술사들은 확실히 제거할 수 있을 게요. 물론 천하십대고수들의 손에서 살아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마신이 된다 해도 나쁘지는 않을 게요.”
“왜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신은 출현한 지역을 벗어나지 않더이다. 그렇게 되면 정주에 천지맹을 가둘 수가 있지 않소? 마신이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
이매화의 눈이 살짝 커졌다.
웅재귀의 말대로 하면 마치 조롱박에 정주를 담는 형국이었다.
“천지맹의 영향력을 축소시키자는 건가요?”
“그렇소. 천문산과 서비하의 경우처럼 마신으로 길을 막는 거요. 십두마병의 투입은 어차피 모험이 아니오? 그들이 무사 귀환한다면 좋겠지만, 실패해도 마신으로 또 다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 생각하오.”
혼천혈귀 강상피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번졌다.
“후후. 듣고 보니 이왕이면 마신이 우리를 위해 길목을 막아 주면 좋겠구려.”
백두마군들은 십두마병에 크게 집착하지 않았다.
팔주령만 있으면 얼마든지 십두마병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정주.
칠리하촌.
천지맹 정주 지부.
점심 무렵.
정주 지부의 정문을 나서는 소교와 이소민의 앞으로 누군가 불쑥 나타났다.
팽가의 소가주 청천도 팽각명이었다.
“하하. 이 소저. 점심 식사는 하셨소?”
“네.”
“산책이라도 가시는 거요?”
“그런데요?”
“그렇다면 나도 함께 가십시다.”
“괜찮아요. 출정식을 앞두고 놀러 다니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요.”
이소민이 다소 차갑게 말했다.
내일의 출정식을 앞두고 예민해진 탓도 있지만 팽각명이 지나치게 들러붙어 피곤했던 것이다.
“출정식이라고 해 봐야 별거 없소. 서비하의 마물에 대한 대비책도 다 마련해 두었고.”
‘대비책을 마련했다’는 말에 이소민이 처음으로 관심을 보였다.
“대비책을 마련하셨다고요?”
“이건 비밀입니다만 이 소저가 남도 아니니 가르쳐 드리지요.”
말하다 말고 팽각명은 소교를 힐끔 보았다.
마치 ‘너는 들을 자격이 없다’고 무언으로 압박하는 것 같았다.
“비밀이시면 제가 자리를 피해 드릴까요?”
이소민이 소교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그 정도의 비밀이면 나도 듣지 않을 테니까. 팽 소협, 우리가 들어도 될 정도의 이야기인가요?”
팽각명이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어차피 조만간 알게 될 일인데 자리를 피할 필요까지야. 우리 팽가에서는 얼마 전에 따로 법보를 구입했소. 그러니 주작대는 마물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오.”
“법보를 구입했다고요?”
이소민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천지맹에서 대대적으로 법보를 구하면서 숨어 있던 법보들이 세상에 나왔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로 만들었다는 염주부터, 벽조목(露棗木, 벼락 맞은 대추나무)으로 만든 검, 망자의 한이 서렸다는 귀창까지 그야말로 법보의 시대였다.
법보의 가격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비쌌지만, 사려 해도 살 수가 없었다.
워낙 찾는 사람이 많으니 당연하다.
의천문에서도 구하려 했지만 단 한 개도 구하지 못했을 정도다.
그런데 팽가에서 용케도 구한 모양이다.
팽각명이 목에 힘을 주며 답했다.
“이 소저는 혹시 수리청사담기조(袖裏靑蛇膽氣粗, 소매 속에 들어있는 푸른 뱀은 담력과 기운이 크다)라는 시구를 아시오?”
“그게 뭐죠?”
“송나라 때 여동빈이 악양루에서 지은 시요. 먼 옛날 파릉현(악양) 남쪽 백학산에 큰 호수가 두 개 있었소. 호수에 사는 이무기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자, 여동빈이 이무기를 잡아 단검으로 만들어 소매에 넣고 다녔다 하오. 그것이 바로 ‘청사’라는 이름의 법보인데. 험, 험, 팽가에서 만금을 주고 구했소.”
“아!”
듣고 있던 소교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신선 여동빈이 가지고 다니던 단검이라면 정말 법보 중의 법보라 할 수 있었다.
의기양양해진 팽각명이 오연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에게 이 청사가 있으니 마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마물의 껍질이 단단하다 해도 청사의 예리함을 견디지 못하고 표주박처럼 깨질 게요.”
이소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정도의 물건이라면 도가의 보물일 텐데 어째서 팽가에 팔았을까요? 칠파의 무당, 화산, 전진, 청성, 공동, 점창파를 두고 말이죠.”
“그거야 파는 사람 마음이지 않겠소?”
팽각명은 아무렴 어떠냐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진짜 청사인지 확인 과정은 거치셨겠죠?”
“그야 이를 말이오. 청사의 예리함을 당해 내는 도검이 없었소. 청사로 도검을 치니 성둥성둥 잘라지더이다.”
“아무튼 이런 시기에 법보를 얻으셨다니 축하드려요. 그럼 우리는 이만.”
이소민이 묵례를 하고는 팽각명을 스쳐 지나갔다.
소교가 당황한 얼굴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홀로 남겨진 팽각명은 그녀들이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소교는 종종걸음으로 걸어가 이소민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언니는 팽 소협이 마음에 안 드시나 봐요?”
“응. 아주아주 싫어.”
“왜요? 사내답고 씩씩한 게 보기 좋던데.”
“풋! 사내답고 씩씩하다고? 그게 돈 자랑하는 거지 어딜 봐서 사내다운 거니? 네가 아직 사내답고 씩씩한 남자를 못 봤구나.”
“언니는 본 적 있어요?”
“어.”
“정말요? 언제요?”
“삼 년쯤 전에 어떤 산에서.”
문득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삼 년 전.
할아버지가 자신의 복수를 해 주시겠다고 해서 함께 오봉산을 찾았다.
그렇게 진지한 할아버지의 모습은 처음 봤다.
소년 연적하는 천하십대고수인 할아버지 앞에 당당하게 서 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그날처럼 쿵쾅거렸다.
할아버지와의 치열한 싸움 이후 ‘추악한 도적’은 ‘굉장한 사람’으로 변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굉장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팽각명 따위와 비교도 되지 않는 남자를 말이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예요? 이쪽으로는 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소교가 불안한 눈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정주 지부를 중심으로 동편은 녹림과 사파의 구역이다.
이소민은 남자들도 들어가기 꺼리는 동쪽으로 자꾸만 가고 있었다.
“괜찮아. 우리가 그 사람 만나러 가는 거 알면 아무도 못 건드리니까.”
“그 사람이 누군데요?”
“곧 알게 될 거야.”
“그 사람이 어느 곳에 묵는지 알고 가는 거예요?”
“모르는데?”
“어머! 그런 것도 모르면서 막무가내로 가는 거예요? 동편 거주지를? 그러다 큰일 나요. 언니.”
말이 씨가 된다던가?
어디선가 흉악한 인상의 남자들이 툭 튀어나와 이소민과 소교를 에워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