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38
238회. 진짜 그러고 싶으세요?
대별산채의 흑면낭인 염상철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어디를 그렇게 바삐 가시나? 보아하니 같은 천지맹의 자매들 같은데 술이나 한잔 하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권유가 아니야.”
소교가 황급히 이소민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거라고 한 말이 떠올라서다.
이소민이 담담한 얼굴로 길을 막아선 네 명의 사내를 둘러보았다.
이럴 때는 낙양오협 시절의 짧지만 강렬했던 강호행이 큰 도움이 된다.
녹림도를 가까이서 봐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으니 말이다.
“사람을 찾아왔어요. 당신들이라면 그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은데. 안내해 주면 고맙겠군요.”
염상철은 아리따운 아가씨의 말에 멈칫했다.
말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녹림이나 사파의 인물을 찾아온 것 같았다.
‘후후. 만약 시답지 않은 놈을 찾아온 거면 곱게 돌아가지 못할 게다.’
염상철은 음험한 속내를 숨기고 친절하게 말했다.
“그래, 아가씨가 찾는 사람이 누구요? 이것도 인연이니 도와 드리리다.”
“녹림 총순찰 연적하.”
들떠 있던 염상철의 얼굴이 한순간 가라앉았다.
“그분을 왜 찾는 거요?”
“왜는요? 아는 사람이니 만나러 온 거죠. 그가 머무는 곳을 알고 있나요?”
“물론 알고 있소. 안내해 드리리다. 따라오시오.”
염상철은 전문 길잡이처럼 군말 없이 앞장섰다.
나머지 세 남자가 호위라도 하듯 이소민과 소교의 좌우에 늘어섰다.
그의 뒤를 따라가던 소교가 이소민에게 속삭였다.
“언니, 만나러 가는 사람이 연 소협이었어요?”
“응.”
“신기하네요. 나도 그 사람 아는데.”
“네가 안다고?”
“네. 이 년쯤 전인가? 남양상방에서 뒤통수를 쳐서 낭인들을 고용해 대응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연 소협과 구천노도 심 선배가 왔었어요. 그들이 아니었으면 청운관은 쫄딱 망했을 거예요.”
“아니 왜?”
“그때 남양상방 쪽에 십두마병이 있었거든요.”
“아!”
“그 십두마병을 죽인 게 연 소협이에요.”
“그게 왜 소문이 안 났지?”
“유명교가 두려워서 입단속을 했거든요. 외부에 알려지면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다들 살려고 필사적으로 쉬쉬했었죠.”
“그랬구나.”
이소민은 청운관이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유명교에서 알게 되면 그 일에 관계된 여러 사람이 죽었을 터였다.
“그런데 언니는 그를 어떻게 아세요?”
“내가 전에 낙양오협으로 활동했었다는 말은 했지?”
“네.”
“그때 겁도 없이 오봉산에 쳐들어갔다가 그에게 잡혔었어. 그 뒤로 알게 된 거야.”
“아! 그래서 그랬구나!”
소교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쩐지 이 년 전 낙양오협인 황동엽, 오중산, 손상극이 연적하에게 절절매더라니!
이소민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소교를 보며 말했다.
“세상 참 좁다 그치?”
“그러게요. 그래서 나쁜 짓 하고는 못산다고 하나 봐요.”
그때 앞서 걷던 염상철이 멈춰 섰다.
그는 거의 마을 끝에 자리한 작고 허름한 집을 가리켰다.
“총순찰님께서는 저 집에 머무르고 계시오. 그럼 우리는 이만.”
염상철이 일행을 대표해 꾸벅 인사를 한 후에 돌아갔다.
구질구질한 첫인상과 달리 뒤끝 없이 사라지는 게 명문정파의 제자 같다.
소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휴우! 그래도 보기보다 깔끔한 사람들이네요. 처음에는 소름이 끼쳤는데.”
“우리가 총순찰의 손님이니까 저러는 거야.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쯤 칼부림 났을걸?”
“언니. 말하지 마세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소교가 몸을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쳤다.
잠시 후 이소민이 살짝 뒤틀린 대문을 밀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당에 들어선 이소민의 시선이 섬돌로 향했다.
집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섬돌 위에는 신발이 가득했다. 그중에는 여자의 것도 있었다.
‘손님이 왔나?’
왠지 날을 잘못 잡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여자 신발을 봐서 더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소민은 목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연 소협, 안에 있나요?”
잠시 후 방문을 빼꼼히 열고 연적하가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누구? 응? 왜 왔어요?”
연적하는 이소민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오봉산에서 의천검존 이의정과 한바탕 겨룬 뒤로 다시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 뒤로 의천문과 단 한 번도 얽힌 적이 없어 더 그랬다.
‘왜 왔냐’는 질문에 이소민은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
자신은 종종 그를 생각했는데, 그는 전혀 그러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게 정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명치 끝이 아렸다.
“발대식 날 멀리서 연 소협을 봤어요. 옛날에 그런 일을 당하고도 반가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인사라도 나눌 겸 찾아왔는데, 잘못한 건가요?”
섭섭한 마음에 조금 도발적인 질문이 되고 말았다.
이소민은 배에 힘을 주고 연적하를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나쁜 말을 하더라도 충격받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말이다.
계면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던 연적하가 방문을 활짝 열었다.
“잘 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종종 낙양오협이 생각나곤 했어요. 추운데 일단 들어와요.”
예상 밖의 환대에 저도 모르게 굳어 있던 이소민의 얼굴이 풀렸다.
그야말로 숨도 쉬지 않고 냉탕과 열탕을 오간 느낌이다.
이소민은 소교와 함께 마루 위로 성큼 올라섰다.
곧이어 방으로 들어가 손님을 확인한 이소민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녹림과 사파의 고수일 거란 예상과 달리 그곳에 있는 사람은 청운검 남궁천과 화용독심 남궁연이었다.
남궁천이 뛰어난 무위로 구 정의맹 후기지수들의 선두를 달렸다면, 남궁연은 미모와 지혜로 그랬다.
그런 사람들이 왜 녹림도와 함께 있단 말인가?
남궁세가와 와룡장의 인연을 모르는 이소민은 의아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칠파이문인 의천문주의 삼녀답게 안으로 삭인 것이다.
‘하긴 연적하 정도의 기인에게 정사파를 넘나드는 인맥은 놀랄 일도 아니지.’
그러나 소교는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연신 남궁천과 남궁연을 힐끔거리자, 남궁천이 크게 웃었다.
“하하. 적하가 와룡장의 넷째인 것은 알고 계시지요? 사실 남궁세가와 와룡장은 남남이 아닙니다. 저희 아버지와 적하의 아버지가 의형제셨거든요.”
“아!”
소교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천이 계속해서 말했다.
“내일 출정식을 앞두고 적하가 주작대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뭡니까?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달려와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참입니다.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이소민과 소교는 머뭇거렸다.
이소민은 명분이 빈약했고, 소교는 별생각 없이 따라온 까닭이다.
“대단하십니다. 정파의 후기지수 분들이라 적하와 교류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남궁천의 칭찬에 비로소 이소민이 웃으며 말했다.
“부끄럽네요. 사실 저는 삼 년 전 낙양오협들과 함께 오봉산채를 토벌하러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연 소협과 알게 됐어요.”
소교도 얼른 말을 보탰다.
“저는 조금 달라요. 이 년 전에 저희 청운관에서 낭인을 모집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연 소협이 자원해서 함께 일한 적이 있어요.”
“오! 두 분 모두 정말 기묘한 인연이십니다.”
사교성 좋은 남궁천이 중간에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분위기는 그저 그랬다.
본래 과묵한 남궁연은 두 여자가 등장한 이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연적하 역시 오봉산채 시절의 일이 떳떳하지 않은지라 말수가 줄었다.
반 시진(1시간) 정도 지났을까?
남궁천, 남궁연 남매가 내일 출정을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위기에 쓸려 이소민과 소교도 일어섰다.
그녀들이 속한 청룡대 역시 내일 천문산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서편 거주지로 돌아온 소교는 조금 전의 일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남궁천 소협은 다정다감하신 분 같아요.”
“그러게. 그런데 남궁연 소저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
“처음에 인사만 하고 그 뒤로 말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화용이라는 별호가 부족할 만큼 아름답더라고요. 그렇지 않나요?”
“예쁘긴 하더라.”
이소민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투였다.
작정하고 찾아간 자리에서 천하제일의 미녀를 만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우연히 두 사람의 앞을 지나던 연무백이 꾸벅 묵례를 했다.
이소민과 소교도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연무백은 흐트러짐 없는 걸음으로 그녀들을 스쳐 지나갔다.
허리춤에서 출렁거리는 와룡검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누르면서 말이다.
연무백이 멀어지자 소교가 말했다.
“언니, 저 사람이 와룡검객 연무백 맞죠?”
“그렇다고 들었어.”
“요즘 자주 눈에 띄는 것 같지 않아요? 내 착각인가?”
“같은 청룡대니까 그렇지.”
“그런가? 참, 와룡검객의 와룡장을 망하게 한 사람이 연 소협이라면서요?”
“그건 왜?”
“아니 그냥. 안됐어서요.”
“남의 가정사는 쉽게 말하면 안 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른 사람은 모르잖아.”
“그렇기는 해도 같은 형제잖아요. 용서가 힘들면, 그냥 남남처럼 모른 척하고 살 수도 있는데, 그걸 굳이 망하게 했어야 하는지. 외가까지 몰살시켰잖아요.”
소교는 약자에 대한 연민으로 연적하를 비난했다.
“어머, 너는 연 소협과 와룡장 사이의 일도 모르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배다른 형제라니 어릴 때 구박을 받았겠죠.”
“너도 연 소협 봤잖아. 그 사람이 구박받았다고 자기 집안을 망하게 할 사람으로 보여?”
“…….”
그 말에는 소교도 답하지 못했다.
연적하는 여타의 녹림도와 달리 사리 분별이 확실해 보였다.
“아닌가? 그럼 뭘까요? 연 소협은 왜 와룡장을 망하게 하고 외가를 멸문시킨 거죠?”
“몰라. 나중에 더 친해지면 살짝 물어봐야지.”
“연 소협과 더 친해진다고요? 진짜 그러고 싶으세요?”
“왜? 안 돼?”
“집안에서 반대하실걸요? 부모님도 그렇지만 조부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어요?”
“그건 모르지.”
이소민은 빙그레 웃었다.
오히려 조부인 의천검존이 더 자신과 연적하가 맺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
하남성.
등봉현.
해거름 무렵.
소림사가 자리한 등봉현으로 오십여 명의 무림인들이 들어섰다.
서비하로 향하는 유명교의 고수들이었다.
거리를 둘러 보던 십두마병 잔혈마도 백수범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소림사가 비어서 그런가? 지랄 맞게 생긴 놈들이 많이 보이는구먼.”
그러자 같은 십두마병인 옥면낭인 청사주가 말했다.
“천지맹을 믿고 숨어 있던 놈들이 기어 나온 게 아니겠소? 소림사가 더 이상 사마외도를 척살하겠다고 설쳐 대지 않을 테니까.”
“아! 그럴지도.”
고개를 끄덕이던 백수범은 청등(靑燈)이 걸려 있는 기루 앞에서 멈춰 섰다.
“나는 오늘 여기서 쉴 생각인데 함께 가시겠소?”
“흐흐. 됐소. 요즘 기력이 쇠해서. 갈 길이 머니 그쪽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오.”
백수범은 더는 권하지 않고 혼자서 청루에 들어갔다.
흐릿한 유등 아래 짙은 화장에 하늘하늘한 나삼을 걸친 여자들이 분주히 오고 갔다.
뒤늦게 백수범을 발견한 기녀 하나가 쪼르르 다가와 그를 방으로 안내했다.
백수범이 막 기녀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다.
뒤쪽에서 탁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게 누구야? 백수범?”
느릿하게 돌아서 상대를 확인한 백수범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십 년쯤 전 함께 도굴꾼 생활을 했던 왕손귀가 복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