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40
240회. 형, 우리도 불 옆으로 갈 수 있겠지?
정주.
칠리하촌.
천지맹 정주 지부.
사시 초(오전 9시).
청룡대와 주작대, 그리고 제마대의 술사들이 안마당에 질서 정연하게 늘어섰다.
청룡대와 주작대 고수들은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 그리고 술사들을 연신 힐끔거렸다.
녹림이나 술사가 낯선 까닭이다.
출정식은 천지맹 맹주인 무극상인의 격려사가 전부였다.
뒤이어 총사인 신기수사 제갈승운이 나와 제마대를 재배치했다.
그는 제마대를 둘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각을 ‘제마단’이라 칭한 뒤 청룡대와 주작대에 배치했다.
멀뚱멀뚱 서 있던 청룡대주인 의천검존 이의정과 주작대주인 검왕 남궁벽의 눈이 마주쳤다.
남궁벽이 먼저 대선배인 이의정에게 목례를 했다.
이의정은 그의 인사를 받은 뒤 주작대 후미로 시선을 돌렸다.
연적하가 웬 노인과 나란히 서 있었다.
삼 년 만에 다시 본 연적하는 여전히 앳된 얼굴이다.
‘고얀 놈 같으니.’
그래도 구면이라 인사 정도는 하러 올 줄 알았다.
하지만 인사는커녕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다.
남들은 어떻게든 천하십대고수들과 인맥을 쌓으려 하는데 눈치도 참 없다.
떨떠름한 얼굴로 서 있는 이의정에게 군자검 이연익이 다가갔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주작대에 연적하가 있구나.”
“아, 어제 소민이에게 들었습니다. 참월검객과 검왕이 의형제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주작대를 돕는 거라 합니다.”
“그랬군.”
고개를 끄덕이던 이의정이 생각난 듯 말했다.
“제마단의 술사들은 네가 책임지고 보호하거라. 작전의 성패가 그들에게 달렸다고 하니 각별히 살펴야 할 것이다. 의천문도들을 따로 빼 주도록 하마.”
“예.”
잠시 후 제마단의 배치가 끝나자 청룡대와 주작대 사백팔십여 명은 정주 지부를 떠났다.
맹주 무극상인이 텅 빈 연무대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번만큼은 잘되었으면 좋겠군요.”
“잘될 겁니다. 제마대 술사들을 믿으십시오.”
“그래야지요. 술사들로도 안 되면 유명교를 막을 방법이 없으니까.”
무극상인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흘렸다.
이전까지의 적들은 죽이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유명교 십두마병은 죽는 순간 더 강한 마물로 되살아났다.
술사가 그걸 처리하지 못하면 천지맹의 앞날도 불투명해질 것이다.
***
청룡대.
석양이 지기 시작하자 이의정은 행군을 멈춰 세웠다.
마을 이정표가 나타나지 않아 더 가는 게 영 찜찜했던 것이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사당이 보였다.
“괜히 고집부리다 노숙을 하느니 저 사당에서 서리를 피하는 게 낫겠다.”
“그게 좋겠습니다.”
이연익도 부친의 생각에 동의했다.
마을을 찾지 못하면 노숙해야 하는데 아직 날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백육십오 명이 들어가자 사당은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꽉 찼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오십여 명이 슬금슬금 마당으로 빠져나갔다.
차라리 마당에 불을 피우고 자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덕에 사당 안은 조금 숨통이 트였다.
정파라고는 하지만 대체로 무림인들은 예의 범절과 담을 쌓고 지낸다.
내부에 공간이 생기자 누군가 청석 위에 슬그머니 모닥불을 피웠다.
한서불침인 이의정은 속으로 혀를 찼지만 불을 끄라고 하지 않았다.
손자와 손녀들도 모닥불의 혜택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량으로 저녁 식사를 대충 끝낸 이의정은 제마단의 술사들을 불렀다.
“대림사의 공산거사라 합니다.”
육십 대 승려가 공손히 합장하며 인사를 했다.
공산거사와 술사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의정이 물었다.
“반갑소. 이의정이오. 간단한 여러분들의 소개를 부탁하오.”
가장 앞쪽에 있던 공산거사가 먼저 나섰다.
“빈승은 항마보리 신주라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로 만든 염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귀신도 퇴치하는 성물이지요.”
말을 마친 공산거사가 옆의 술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는 예담 백화심입니다. 사천왕인 증장천왕의 법력이 깃든 대라금강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력이 담긴 것이라면 무엇이든 파괴합니다.”
“성화선원의 마조라 합니다. 저에게도 사천왕인 지국천왕의 법력이 깃든 금강령이 있습니다. 이 종소리는 일체의 마기를 물리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그 뒤로 돌아가며 한마디씩 자기소개를 했다.
열다섯 중에 법보를 가진 사람은 고작 셋이었다.
나머지 열두 명은 법보가 없는 대신에 주문이나 부적술을 특기로 내세웠다.
이의정이 모호한 눈으로 술사들을 둘러보았다.
평생 검술만 익혀서 그런지 영 술사라는 사람들이 못 미더웠다.
염주와 거무튀튀한 강철검과 손바닥만 한 방울로 정말 마물을 퇴치할 수 있을까?
천하십대고수인 무극상인도 죽이지 못한 마물인데?
사당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연승백이 와룡검객 연무백에게 속삭였다.
“춥다 추워. 형, 공을 세우면 우리도 불 옆으로 갈 수 있겠지?”
연무백이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은 배분과 명성이 약해 청룡대에서도 있으니 마나 한 존재였다.
정주 지부장의 배려가 아니었으면 청룡대에 남아 있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와룡검이 있으니 이제 달라질 것이다.
“당연하지. 조금만 참아. 곧 그렇게 될 테니까.”
연무백이 사당 중앙의 모닥불을 응시했다.
모닥불 주변에는 의천문과 청성파, 전진파, 팽가의 청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다른 칠파이문과 팽가의 원로들은 불 옆에 있지 않았다.
화기를 가까이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외공의 경지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칠파이문과 오대세가의 원로들이 불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부지런히 손을 비비던 연승백의 시선이 한 여자에게 꽂혔다.
의천문주의 셋째딸 이소민이다.
연승백은 자신도 이소민의 옆에 앉고 싶었다.
청천도 팽각명이 있는 저곳에.
“그렇게 좋으냐?”
연무백이 장난스럽게 동생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연승백은 간지럽다는 듯 상체를 뒤틀면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팽각명이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다 우연히 자신을 보고 있는 한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연승백?’
녹림 총순찰 연적하의 배다른 형제라던가?
삼백오십 명 중에 하나.
연적하의 혈육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그저 그런 무인중 하나다.
그는 피식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연승백과 같은 이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자신의 자리에 이르지 못할 것이었다.
팽각명은 보란 듯이 이소민에게 말을 걸었다.
“이 소저, 마물을 만나면 나의 아버지에게로 피하시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이소민은 그의 관심이 부담스러웠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생사가 갈리는 자리에서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 네. 꼭 그렇게 할게요.”
그녀는 여동빈의 청사가 벽력도 팽만호에게 있음을 알았다.
“참, 그런데 어제는 소 소저와 함께 동쪽 거주지에 가셨다지요? 무탈한 것 같아 다행입니다. 다음에 또 갈 일이 있으면 나를 불러 주시오.”
“아니요. 괜찮아요.”
이소민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그저 소저가 걱정이 돼서…….”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녀는 또다시 팽각명이 들러붙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철벽을 쳤다.
***
비슷한 시간.
주작대.
다행히 주작대는 해가 지기 전에 제법 규모가 되는 마을을 만났다.
남궁벽은 마을 회당을 빌렸다.
회당은 어찌나 크던지 백이십여 명이 들어가고도 여유가 있었다.
식사를 마친 남궁벽은 주작대원들에게 연적하와 심통, 그리고 제마단의 술사들을 소개했다.
연적하와 심통은 이미 강호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이라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술사들에게 쏠렸다.
머쓱한 얼굴로 눈치를 보던 오십 대 남자가 먼저 나섰다.
“백마장군님을 모시고 있는 양관출이라 합니다. 천년 묵은 벽조목으로 만든 천뢰신검을 가지고 있지요. 퇴마가 전문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귀신을 부리는 선녀암의 청류신이에요. 저에게는 소천무령(所川巫鈴)이라고, 귀신을 쫓는 방울이 있어요. 소천무령에는 물에 빠져 죽은 아이의 영혼이 담겨 있지요. 물론 제가 빠트려 죽인 건 아니고요. 호호홋!”
사십 대의 청류신이 요사스럽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이 잦아들자 그 옆에 있던 오십 대 남자가 계속해서 자기 소개를 이어갔다.
“무애도관의 관주인 복재자입니다. 저는 팔선(八仙)인 종리권의 불진(佛塵, 먼지털이)을 가지고 있습니다. 삿된 기운을 먼지 털듯 탈탈 털어 내 드리겠습니다.”
나머지 열두 명은 청룡대의 술사들처럼 술법이나 부적에 능하다고 했다.
술사들의 소개가 끝나자 남궁벽이 곤륜삼선을 힐끔 보았다.
곤륜삼선의 법력은 이미 경험한 바가 있으니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곤륜삼선의 표정은 웃는 듯 찡그린 듯 실로 괴이했다.
남궁벽은 술사들을 돌려보낸 뒤에 곤륜삼선과 연적하를 따로 불렀다.
“오늘 술사들을 처음 만났는데 다들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태을 선인이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빈도는 제마대 사람들의 면면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총사께서 왜 저런 사람들만 보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들이 가진 법보는 제마대 내에서도 말들이 많습니다. 천뢰신검은 그렇다 쳐도 소천무령은 사악한 수법으로 만들어진 요령입니다. 저 방울에 그런 공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방울을 만들기 위해 어린아이가 희생된 것은 분명하니까요. 아무리 법보가 궁하다 해도 그런 것까지 끌어다 쓰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흠! 듣고 보니 그렇군요. 허나 천지맹은 사파에까지 문을 열었습니다. 다소 요사스러운 물건이라 해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벽사검을 가진 태무 선인이 말했다.
“저는 벽조목으로 만든 천뢰신검이 영 미덥지 않습니다. 목검이라니, 상대가 귀신이라면 모를까. 마물에 생채기나 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태령 선인도 불편한 얼굴로 거들었다.
“종리권의 불진은 또 어떻구요. 제마대 내에서도 그것의 진위를 두고 말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가만 보니 쓸 만한 법보는 모두 청룡대로 보냈더군요.”
곤륜삼선의 말에 남궁벽의 입가에 씁쓰름한 미소가 어렸다.
역시나 이번에도 제갈승운은 주작대에 특별한 배려를 해 준 모양이다.
알면서 당하려니 마음이 불편하다.
그때 태무 선인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헌데 연 소협, 검이 바뀐 것 같습니다? 검집이 좀 다른 모양인데, 아닙니까?”
남궁벽과 다른 곤륜선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연적하의 검으로 향했다.
“눈썰미가 좋으시네. 맞아요. 무백 형님의 검과 바꿨어요.”
“헉! 와룡검을 그에게 주었다는 말입니까?”
“예, 연씨의 것이니 돌려 달라는데, 저도 검이 필요해서 바꾸자고 했어요.”
“연 소협도 연씨인데 그걸 왜 바꿔 줍니까? 그 귀한 보물을 왜?”
태무 선인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부들부들 떨었다.
연적하가 저렇듯 쉽게 포기할 줄 알았다면 그때 객잔에서 팔라고 했을 것이다.
“달라고 고집을 부리는데 어떻게 해요? 줘야지. 고작 그런 거로 싸울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형제인데.”
“고작 그런 거라니요. 마물을 죽일 수 있는 신검입니다. 형제가 아니라 부모가 달라고 해도 거절했어야지요. 당장 마물을 어떻게 하려고.”
“어쩌긴요, 이 칼로 때려잡아야지요.”
연적하가 새로 구한 검을 툭툭 쳐 보였다.
그의 자신감에 남궁벽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헛! 그래. 총순찰인데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눈 딱 감고 반 시진(1시간) 정도 두드리면 길이 보일 게다.”
“예, 열심히 할게요!”
연적하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어 보였다.
곤륜삼선은 해맑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와룡검과 같은 법보를 내주고도 저렇게 웃다니.
속이 깊거나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