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41
241회. 이제 내차례지요?
곤륜삼선과 연적하와의 대화가 끝난 뒤에 검왕 남궁벽은 화용독심 남궁연을 따로 불렀다.
앞으로의 전투 계획을 확정 짓기 위해서다.
정식 직함은 없지만 주작대는 남궁연을 총사보다 더 신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딸의 예측은 빗나간 적이 없다.
남경에서 칠리하촌까지 가는 동안 벌어진 전투에서 압승한 것도 그녀의 조언 덕분이다.
남궁연이 다가오자 남궁벽은 주위를 힐끔 둘러보았다.
그동안 부녀(父女)의 회의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는 눈치다.
“제마단의 술사들을 보았느냐? 곤륜삼선은 별로 도움이 안될 것 같다고 하더구나. 이번 작전은 제마단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것인데,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궁연이 입을 열었다.
“천지맹의 제마대는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요. 주작대의 제마단과는 달리 말이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람들을 골라 보냈더군요.”
“역시 그런 게냐.”
“남궁세가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많으니까요.”
“허면 우리가 가진 법보는…….”
“기대하지 마세요. 점이나 축귀(逐鬼)의식이라면 모를까, 전장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허어! 나 원 참.”
남궁벽은 딸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기가 막혔다.
“적하도 법보를 돌려주었으니 믿을 건 곤륜삼선밖에 없는 건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혹시 무당파나 선우세가에서 법보를 구하기라도 한 것이냐?”
주작대에는 남궁세가 외에도 무당파와 선우세가가 있다.
남궁벽은 혹시 그들이 은밀하게 법보를 확보한 것으로 오해했다.
“아니요. 적하에 관한 이야기예요.”
“적하가 왜?”
“저도 와룡검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어요. 낙양의 명장이 만든 검이더군요. 와룡장에서 특별히 주문 제작한 검들에는 검신에 ‘와룡’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요.”
“그건 알고 있다만 적하의 와룡검은 좀 더 특별하지 않았느냐?”
천지맹에는 와룡검의 전 주인이 기연을 만나 법보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와룡검에 관한 소문은 저도 들었어요. 하지만 그건 근거 없는 낭설일 뿐이에요. 와룡검의 전 주인은 연무도예요. 그는 제자들과 상행을 다니던 지극히 평범한 고수였어요. 살아생전 와룡검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한 적도 없고요.”
“그럼 적하의 검공이 그처럼 뛰어나다는 것이냐?”
남궁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하십대고수인 무극상인과 무상도제마저도 포기한 마물이다.
그걸 법보의 도움 없이 연적하가 척살했다는 건 지나친 억측이었다.
“아버지는 적하의 검공을 본 적 없으시죠?”
“이야기는 몇 번 들었다만. 그의 검공에 특별한 점이라도 있더냐?”
“그는 구천세법 외에도 구천구검이라는 검법을 사용해요.”
“구천구검?”
남궁벽은 범상치 않은 이름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와룡장의 검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연무백을 십 년간이나 데리고 있으면서 지겹도록 보았다.
하지만 구천구검은 처음 듣는 검법이다.
의제인 참월검객 연무룡도 구천구검에 대해서는 말한 적이 없다.
“네, 자기 말로는 구천현녀가 가르쳐 줬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하며 남궁연은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누가 들어도 이상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말하던 그의 얼굴이 떠올라서다.
“흐음! 그래서?”
“저도 이전에는 농담이려니 하고 흘려들었어요. 하지만 적하가 미련 없이 와룡검을 돌려주는 걸 보고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어떤 부분을 말이냐?”
“적하는 남의 눈치 따위를 보며 살아가지 않아요.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죠. 그는 누구보다 순수하지만, 그런 만큼 이기적이에요. 어린아이처럼 말이죠.”
그 부분에서 남궁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지만, 극히 이기적이기도 했다. 복수를 하겠다며 삼장을 문 닫게 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고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와룡검을 풀어 줬어요. 어쩌면 그의 몸은 알고 있는지도 몰라요. 와룡검이 자신에게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네 말은 와룡검이 법보라면 적하가 돌려주지 않았을 거라는 소리냐?”
“네. 그는 바보가 아니에요. 천하가 그를 욕해도 돌려주지 않았을 거예요.”
“흐음! 적하의 검공이 법보만큼이나 마물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다고?”
“일단 제마단과 적하에게 마물을 맡겨 보세요. 곤륜삼선의 투입은 그 이후에도 늦지 않으니까요.”
“너도 알겠지만 제마단은 무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호위가 없으면 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지. 그들을 보호할 대비책이 있느냐?”
“먼저 아버지가 마물의 주의를 끌어 주세요. 그때 제마단의 술사들이 후방에서 마물을 공격하는 거죠. 단 한 번의 기회만으로도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들이 실패하면 바로 적하를 투입하세요. 제마단은 그때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면 돼요. 그때쯤이면 마물의 관심은 아버지와 적하에게 쏠려 있을 테니까요.”
간단명료한 그녀의 설명에 남궁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술사와 적하의 능력을 확인하기에는 그게 최선이었다.
“네 안목이 가장 뛰어나니 그 일은 네가 맡아 줘야겠다.”
안목뿐 아니라 무공까지도 뛰어나니 그녀 이상 가는 적임자가 없었다.
촌장이 사과 상자를 가지고 마을 회당을 찾아왔다.
아무것도 없이 달랑 회당만 빌려주고 돈을 받기가 미안했던 모양이다.
남궁세가 사람들이 사과 상자를 들고 다니며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마침 건량을 먹고 입안이 텁텁했던 사람들에게 사과는 좋은 선물이었다.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도 사과를 받았다.
연적하가 사과를 대충 옷에 닦고 먹으려는데 남궁연이 다가왔다.
엉거주춤 일어난 연적하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남궁연과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심통이 부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좋을 때다. 젠장.”
***
남직례성.
리신현.
정오 무렵.
백이십오 명의 무림인들이 마을로 들어섰다.
칠 일 전 정주를 떠난 주작대였다.
이런 변두리에 백이십오 명을 수용할 반점은 없다.
남궁벽은 주작대에게 일단 흩어져 식사를 하고 다시 모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소수의 인원과 함께 근처의 반점으로 들어갔다.
요리가 나올 즈음, 소문을 듣고 현령이 관원들과 함께 찾아왔다.
“남궁 대협,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리신현의 현령인 이숙재라 합니다.”
“남궁벽이오.”
푸석푸석한 얼굴의 이숙재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서비하는 우리 리신현의 젖줄과도 같은 강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강에 아무도 다가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정수리에 뿔이 난 마물이 사방 십 리를 오락가락하며 가축이든 사람이든 닥치는 대로 찢어 죽이는데…….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 나라에서는 ‘천지맹이 저지른 일이니 그들이 처리해 줄 것이다’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남궁벽을 대신해서 무당파 장문인 영결상인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해 천지맹이 저지른 일은 아닙니다. 유명교가 그 일의 배후니까요. 우리는 유명교가 만들어 낸 마물을 처리하러 온 것이고요.”
“아아! 그랬군요. 아무튼 마물을 처리하러 오셨다니 잘 부탁드립니다. 그놈의 마물 때문에 사건 사고가 늘어나 아주 피곤해 죽겠습니다.”
“마물과 관계된 또 다른 일이 있습니까?”
“있다마다요. 마물에게 사당을 지어 봉헌하자고 하는 이들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헛! 마물에게 사당을요?”
“예, 사당을 짓고 섬기자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미친 거지요. 마물이 사람과 가축을 보이는 족족 찢어 죽이고 있는데 사당이라니! 무림의 협객들께서 하루라도 빨리 마물을 퇴치해 주셔야 소란도 잠잠해질 것 같습니다.”
“허허. 우리만 믿고 맡기십시오. 그 소란도 내일이면 끝날 겁니다.”
영결상인은 제마단과 곤륜삼선을 믿고 큰소리를 탕탕 쳤다.
이숙재는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마물의 처리를 부탁하고 돌아갔다.
남궁벽은 서비하까지의 길 안내를 위해 마을 주민을 길잡이로 고용했다.
***
서비하.
한낮임에도 선착장 일대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백이십여 명이 내는 인기척 소리를 들은 것일까?
멀리서 ‘크르르’ 하고 듣기 거북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쿠! 마물입니다! 마물!”
길 안내하던 남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오두방정을 떨었다.
이윽고 ‘쿵쿵’ 하고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일각마인이 나타났다.
“크라라라라라라-.”
일각마인은 인간을 보자 특유의 괴성부터 내질렀다.
마물을 접한 경험이 있는 주작대는 대체로 담담했지만, 술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술사들의 낯빛은 안쓰러울 정도로 일그러졌다.
칠리하촌에서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오금이 저리는 모양이다.
남궁벽은 지체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갔다.
일각마인의 주의를 끌기 위해 따로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남궁벽이 일각마인에게 한차례 칼질을 하자, 일각마인은 집요하게 그를 따라다녔다.
남궁벽은 일각마인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주작대 쪽으로 물러났다.
“지금이에요! 전진하세요!”
일각마인이 남궁벽에게 달라붙자 남궁연은 술사들을 독려하여 앞으로 나갔다.
술사들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곧이어 온갖 종류의 주문과 부적이 난무했다.
“훔! 태고의 혼돈에서, 기가 싹터 큰 바탕이 되었다. 이것이 음양으로 나뉘어[盤古渾淪, 氣萌大朴. 分陰分陽]…….”
“대구천도왕신칙아(大九天都王神勅我)…….”
누군가 목청껏 청오경을 암송하자, 또 다른 이는 이에 질세라 태을주를 외웠다.
미친 듯 허공에 부적을 뿌리는 이도 있었다.
주술이란 본래 그런 것이라, 그들은 결과에 관계없이 제 할 일을 했다.
문제는 법보를 가진 사람들이다.
양관출과 청류신, 복재자는 앞으로 떠밀리자 당황한 얼굴로 허둥지둥댔다.
멀리서 주문이나 외우는 술사들과 달리 그들은 마물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줘야 한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저 마물에게 바짝 다가가야 한다는 소리다.
도깨비처럼 정수리에 외뿔이 돋아난, 칠 척(약 2미터 10센티)이 넘는 장신의 괴물에게 말이다.
천뢰신검을 가진 양관출은 석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 끝에 칼처럼 돋아난 일각마인의 시커먼 손톱을 보니 소름이 오싹 돋는다.
검왕의 칼과 부닥칠 때마다 ‘캉캉’ 하고 쇳소리가 울렸다.
저 손톱에 스치기만 해도 벽조목으로 만든 검은 가루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
갈등하던 그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생각에 쭈뼛쭈뼛 앞으로 나아갔다.
남궁연이 그의 곁에 바싹 붙었다.
두 사람이 다가오자 남궁벽은 슬쩍 일각마인의 측면으로 돌아갔다.
일각마인이 그를 향해 신형을 뒤틀었다.
한순간 일각마인은 양관출과 남궁연을 보았지만 눈곱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남궁연은 일각마인의 등이 드러나자 짧게 소리쳤다.
“찔러요!”
그녀의 외침에 홀린 듯 양관출이 천외신검을 쑥 내밀었다.
탁-.
천뢰신검의 끝이 일각마인의 몸에 닿았지만 그뿐이다.
일각마인은 몸에 뭐가 닿은지도 모르고 남궁벽에게 손을 휘둘렀다.
휘잉 휘잉 휘잉-.
반월형 강기가 남궁벽의 몸으로 날아갔다.
남궁벽은 검신에 공력을 실어 일각마인의 강기를 남김없이 부쉈다.
그 틈에 남궁연은 양관출의 뒷덜미를 잡고 재빨리 후방으로 물러났다.
양관출을 내던지듯 내려놓은 남궁연의 시선이 이번에는 복재자를 향했다.
그의 불진 역시 마물의 몸에 닿아야 하니 양관출처럼 해야 한다.
복재자가 불진을 들고 한 걸음 내디뎠다.
남궁연은 귀찮다는 듯 그의 손을 잡고 경신술로 일각마인에게 달려갔다.
여전히 일각마인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복재자가 불진으로 일각마인의 엉덩이 부근을 탈탈 털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궁연은 그의 뒷덜미를 잡고 다시 술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딸랑 딸랑 딸랑-.
눈치 빠른 청류신은 술사들 속에서 다급하게 소천무령을 흔들어 댔다.
자신은 굳이 일각마인에게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실망한 얼굴로 서 있는 남궁연에게 연적하가 다가갔다.
“누님, 이제 내 차례지요?”
“응. 부탁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