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49
249회. 방울 이름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산서성.
교구현.
풍지산 선녀암.
정오 무렵.
청류신은 저 멀리 자신의 암자가 보이자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땀을 식혔다.
염매(魔魅)를 쓴다는 말이 나돌기 전에 천지맹을 떴다.
지난 두 달여간의 날들을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현에서 이름을 날린 것에 만족했어야 했다.
더 유명해지겠다고 설치다가 소천무령만 망가졌으니 쫄딱 망한 셈이다.
이제 귀신을 부릴 수 없게 됐으니 맨땅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도 선녀암이 남아 있으니까.’
신모가 물려준 선녀암이 없었으면 막막했을 것이다.
산등성이에 변함없이 서 있는 선녀암을 보고 있으려니 큰 위로가 된다.
잠시 후 다시 타박타박 산을 오르던 청류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문을 단단히 잠그고 갔는데 정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다.
이런 산중의 작은 암자에 도둑이 들었던 것일까?
청류신은 조심조심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신당 안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어서 오거라. 그런데 자기 집에 왜 도둑처럼 들어오는 것이냐?”
“…….”
순간 청류신은 우뚝 멈춰 섰다.
자신에게 신내림을 해 준 신모의 음성이었다.
마물을 보고도 담담하던 심장이 미친 듯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혀끝으로 마른 입술을 적시고 조심스레 말했다.
“어, 어머니. 언제 오셨어요?”
“들어오거라.”
신모의 부름에 청류신은 서둘러 신당으로 올라갔다.
신당 안에는 신모가-사라지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차분하게 앉아 있었다.
삼십 대 미부(美婦)의 모습은 볼 때마다 신비롭다.
신모의 외모는 지금도 처음 봤던 이십 년 전과 같았다.
청류신은 신모에게 대례를 올린 뒤에 가만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어머니가 딸 앞에 무릎 꿇고 앉은 모습이다.
“암자를 비워 두고 어디에 갔었던 게냐?”
“어머니가 떠나시고 난 뒤 일거리가 끊겨서요. 일거리를 찾아 천지맹에 다녀왔어요.”
“천지맹? 술사들을 모은다고 하더니 너도 거기에 갔었나 보구나?”
“네.”
“소천무령이 영기를 잃은 것도 그 때문이냐?”
신모가 정곡을 찌르자 청류신은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그게 마물 퇴치에 효험이 없어서 왜 그런가 원인을 알아보다가……. 갑자기 그렇게 되었어요.”
“이리 다오.”
신모가 잔주름 하나 없는 섬섬옥수를 내밀었다.
청류신은 품에서 방울을 꺼내 건넸다.
딸랑 딸랑-.
방울을 이리저리 살피던 신모가 중얼거렸다.
“쯧쯧! 정말 영기를 없애 버렸구나. 그 귀한 걸 소멸시켜 버리다니 이 일을 어찌할꼬.”
“죽을죄를 지었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다. 꽃이 지고 낙엽이 떨어지는 것처럼, 소천무령이 영기를 잃은 것도 때가 되어서 그리되었을 뿐이다.”
의외로 신모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눈치다.
그제야 잔뜩 얼어 있던 청류신의 얼굴이 펴졌다.
“어머니. 천지맹에서 소천무령을 마령이라고 하던데 그건 왜…….”
청류신은 아직도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전에 소천무령으로 잡귀를 내어 쫓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마령이라니?
신모는 안타까운 얼굴로 소천무령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무지한 자들의 말에 신경 쓸 것 없다.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내가 전수하는 것은 신비한 영적인 지식이라 세상이 알지 못한다고.”
“네에.”
청류신은 신모의 말에 선선히 답했다.
확실히 신모에게 배운 공부는 모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었다.
청류신은 신모와의 부드러운 대화 속에서 조금씩 평온을 되찾아 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신모가 왜 떠났다가 돌아온 것인지 궁금해졌다.
“저어, 어머니.”
“왜?”
“제가 어머니를 모신 지도 이십 년이 넘었잖아요.”
“그랬지. 그동안 고생이 많았구나.”
“고생이라니요. 그런 말씀 마세요. 어머니를 모신 뒤로 제 인생이 변한 걸요. 그런데 갑자기 어디를 가셨던 거예요? 어머니가 떠나신 줄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잠시 다녀올 곳이 있었느니라.”
“어디를요?”
청류신이 눈을 끔뻑이며 신모를 보았다.
그러나 신모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자애로운 얼굴로 청류신에게 말했다.
“때가 되었으니 오늘은 너에게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마.”
“네.”
청류신은 얼른 자세를 바르게 하고, 신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전부터 신모는 늘 이야기 형식으로 신비한 지식을 전하곤 했었다.
“사십 년 전에 한 수도자가 촉산에서 고행 정진을 하고 있었단다. 그리고 백일기도를 하던 어느 날 하늘의 음성을 들었지 뭐냐. 신묘한 소리가 가르쳐 준 것은, 그가 가지고 다니던 금황자(金晃子, 방울)에 영기를 불어넣는 방법이었단다.”
“아!”
청류신은 ‘어쩌면 그게 소천무령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금황자에 영기를 넣으려면 어린 여자아이가 필요했지. 수도자는 화전민의 딸을 사기로 했단다. 아이에게 작은 갈대 줄기를 물리고 사흘 밤낮을 계곡물에 담궜다지? 그리고 마침내 서서히 죽어 가는 아이의 숨결을 금황자에 담는 데 성공했단다.”
그 말에 청류신은 흠칫 몸을 떨었다.
물에 빠져 죽은 여자아이의 혼이 담겨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저렇게 만들어졌을 줄이야.
작은 갈대 줄기를 통해 사흘간 숨을 쉬게 했다니…….
염매가 악독한 방법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알지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하늘이 가르쳐 준 대로 고요한 곳에서 ‘육명진언’을 외었단다. 옴 나넨 카야 네바타 데 훔.”
“…….”
청류신은 신모의 ‘육명진언’을 듣는 순간 오싹 소름이 끼쳤다.
신모가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큰일을 앞두고 외우면 좋다’고 가르친 진언인 까닭이다.
신모는 하필 왜 그런 진언을 외우라고 한 것일까?
잠깐 다른 생각을 하던 청류신은 이어지는 신모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크게 한 번, 작게 한 번. 그렇게 세 번을 외우자 방울에서 여자아이의 음성이 들려왔다는구나. 알고 보니 여자아이는 저승에 발을 걸치고 오도 가도 못 한 상태였지. 수도자는 여자아이에게 저승의 비밀을 물었단다.”
“아!”
청류신은 신모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자신은 전에 방울의 여자아이에게 잡귀를 쫓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수도자는 여자아이를 통해 저승의 비밀을 캐냈던 모양이다.
“여자아이는 수도자에게 명부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지. 그 비밀 중에는 염라왕에 관한 것도 있었단다. 염라왕과 그 권속들을 세상에 불러내는 방법들 말이다.”
“헉! 어머니. 그건 유명교의 가르침이 아닌가요?”
“그래, 맞다. 명부의 비밀을 알게 된 수도자는 최초의 십두마병이 되었고, 최초의 백두마군이 되었으며, 마침내는 최초의 천두마왕이 되었지.”
“어머! 정말 놀라운 비밀이네요! 역시 어머니세요. 천하가 모르는 비밀을 알아내시다니.”
청류신은 신모가 천리안으로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신모가 청류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니 유명교의 시초는 바로 그 ‘금황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류신아. 이제 네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겠느냐?”
“…….”
청류신은 한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금황자가 소천무령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그게 유명교와 관계된 것임은 꿈에도 몰랐다. ‘수도자가 천두마왕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말이다.
“호, 혹시 어머니도 유명교의…….”
청류신의 질문에 모호한 얼굴로 웃던 신모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십 년이 지나자 여자아이는 수도자에게 더 큰 비밀을 알려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대신에 자신을 그만 놓아 달라고 했지. 더 큰 비밀이 있다는 말에 수도자는 흔쾌히 그러기로 했단다.”
“명부의 비밀보다 더 큰 비밀이 있다고요?”
청류신은 ‘신모가 유명교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뒷말이 궁금했다.
명부의 비밀보다 더 큰 비밀은 뭘까?
“수도자도 그게 궁금해서 여자아이와 그런 약속을 했던 게지.”
“그래서 수도자는 그 비밀을 알게 되었나요?”
“아직 모른다.”
“왜요? 여자아이가 거짓말을 한 건가요?”
“그건 아니다. 여자아이가 거짓말을 했는지 아닌지는 이제 곧 알게 될 게다.”
“이미 소천무령이 망가졌는데 어떻게요?”
“수도자가 여자아이와 약속을 했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게 무엇인지를 물었어야지.”
“아, 무슨 약속을 했나요?”
“여자아이는 자신의 영력이 약해 더 큰 비밀에 갈 수 없다고 했단다. 더 큰 비밀에 도달하려면 더 큰 영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지. 그래서 수도자는 수양딸을 거두어 이십 년 동안 한 가지 진언만 주야로 암송하게 했단다.”
“서, 설마…….”
청류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신모의 신딸이 되어 지난 이십 년 동안 모신 게 자신인 까닭이다.
덜덜 떨고 있는 청류신에게 신모가 나직이 말했다.
“그래, 너다. 너에게 소천무령을 맡긴 것도 그 아이의 뜻이었단다. 왜인지 설명해 주지는 않았지만, 그래야만 자신이 성불할 수 있다고 했지. 촉산에서 거둔 그 아이의 이름은 소천이다. 이제 왜 금황자를 소천무령이라 했는지 알겠느냐?”
“사, 살려 주세요.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영력이 뛰어난 여자를 찾아올게요.”
청류신은 자신이 소천무령을 망가트려 이렇게 된 거라고 착각했다.
“류신아, 이십 년이다. 너를 위해 내가 풍지산에 머무른 세월이 이십 년이나 된다. 여기서 다시 이십 년을 더 기다리라는 말이냐?”
천두마왕이 되기 위해 잠적한 것도 있지만 신모는 청류신 때문인 것처럼 말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이렇게 빌게요. 어머니. 제발.”
청류신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빌었으나 신모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금황자의 새 이름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청류무령으로 할까? 아니면 류신무령으로 할까? 나는 청류무령이 입에 붙는데, 마음에 드느냐?”
“어머니, 제발 살려 주세요.”
“너에게는 나조차도 감탄할 만한 욕망이 있지. 그래서 소천은 이십 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너를 지명했던 게다. 그 순수한 욕망에 영기가 더해졌으니, 어디에서 너와 같은 사람을 찾겠느냐?”
“제발……. 제발…….”
청류신은 넋이 나간 얼굴로 ‘제발’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제 가자꾸나.”
신모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청류신의 몸이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그녀는 청류신을 뒤에 달고 풍지산의 계곡으로 달려갔다.
신모가 맑은 물로 가득한 계곡에 도착하자 홀연히 여덟 명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대법을 마칠 때까지 풍지산에 누구도 얼씬거리지 않아야 한다. 풍지산에서 움직이는 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조리 죽여라.”
“존명.”
여덟 명의 무인들은 나타날 때처럼 귀신같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신모는 품에서 작은 대롱을 꺼냈다.
그리고 사십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것을 청류신의 입에 물렸다.
점혈이라도 당했는지 청류신은 저항하지 못하고 대롱을 받아들였다.
이윽고 신모가 애잔한 얼굴로 청류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류신아, 힘들겠지만 나를 위해 오래도록 견디어 내거라. 나는 네가 소천처럼 사흘이 아니라 칠 주야를 버텼으면 좋겠구나. 할 수 있겠지?”
눈을 부릅뜬 청류신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마음뿐, 그녀의 몸은 이미 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곧이어 신모는 청류신의 몸을 안고 계곡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이윽고 청류신의 몸이 물에 잠겼다.
딸랑 딸랑 딸랑-.
신모가 솟아오른 가느다란 대롱 위로 금황자를 흔들며 하늘에서 배운 제혼진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다냐타 옴 아무리따 사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