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51
251회. 얻는다고 행할 수도 없다
뚱한 얼굴로 먼 산을 보던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얼마나 배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연씨니까 기회는 줄게.”
“정말? 고마워. 은혜는 잊지 않을게!”
거절할 줄 알았는데 쉽게 허락해 주자 연설주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연적하가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어린아이같이 손뼉 치며 팔짝거리는 걸 보니 그래도 가족이라고 흐뭇하다.
생각해 보면 연무백과 연승백, 연설주는 죄가 없다.
물론 억지로 가져다 붙일 수도 있겠지만 알고 보면 모두 무관심에서 생긴 일이었다.
타인이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해서 벌을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녀의 말마따나 자신의 복수는 이미 삼장(와룡장, 백가장, 양가장)이 망할 때 끝났다.
그 이상은 의미도 없고, 오히려 찜찜할 뿐이다.
게다가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살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구천여일진경의 성취가 높아져 잡다한 마음이 씻겨져 나간 탓인지도 모른다. 공허함에 원망과 미움이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럼 언제?”
“해가 지면 할 일이 없으니 그때 다들 데리고 와.”
“알았어. 오늘 저녁에 오라버니들과 함께 다시 올게.”
연설주는 혹시라도 연적하의 마음이 바뀔까 봐 저녁에 오겠다고 했다.
“그러든가.”
“고마워. 그럼, 저녁때 보자.”
연설주는 뒤도 안 돌아보고 급하게 자리를 떴다.
누나에게 차 대접이 어쩌고 하더니 원하는 걸 얻자 바로 등을 돌린 것이다.
연적하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본래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 뭔가 기대했던 모양이다.
“…….”
진한 공허를 느끼자 천지간의 기운이 밀려왔다.
그 어려운 구천기를 쌓게 해 줬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지만, 이런 기분은 사양하고 싶다.
홀로 남겨진 연적하가 멍하니 앉아 있을 때다.
마침 녹림의 도적들과 만나 노닥거리던 구천노도 심통이 돌아왔다.
“어? 공자님? 오늘은 일찍 하산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모시러 가려고 하던 참인데.”
“오늘따라 배가 고프더라고.”
“그러셨군요. 오는 길에 연가 계집아이를 보았는데, 혹시 만나셨습니까?”
“어.”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찾아왔답니까?”
“심법을 가르쳐 달라더라고.”
“헐! 뻔뻔하기는. 욕을 먹고 싶어 작정이라도 했답니까?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가르쳐 주겠다고 했어.”
“예? 가르쳐 주기로 하셨다고요? 아니 왜요?”
“못 가르쳐 줄 것도 없잖아. 그래도 형제들인데.”
“어이쿠! 그렇게 욕을 하시더니, 남보다 못한 것들을 뭐하러 챙겨 주십니까?”
“내가 언제 욕을 했다고 그래?”
“못된 것들이라거나 싹수가 노랗다는 건 욕이 아니었습니까?”
“내가 그랬어?”
“예, 오봉산에서도 그랬고, 정주제일루에서도 그랬습니다.”
“그건 욕이 아니라 사람됨의 평가지. 욕은 이놈 저놈 하는 거라고.”
“아이고, 예. 연씨들과는 상종도 안 하겠다고 하시더니 갑자기 왜 마음이 변하신 겁니까?”
“심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지 상종한다고는 안 했거든?”
“그게 그거 아닙니까?”
“달라. 난 여전히 연씨들과 상종할 마음이 없어.”
“심법은요?”
“그들도 아버지의 자식이니까 가전 무공을 배울 자격은 있어. 게다가 따로 알고 싶은 것도 있고.”
“뭘 알고 싶으셨는데요?”
“갑자기 그들이 구천여일진경을 몇 자나 외울지 궁금해지더라고.”
“고작 그런 이유로 그 귀한 걸 가르쳐 주신다고요? 그냥 말 잘 듣는 아무 놈이나 잡아다가 가르쳐 봐도 됐잖습니까?”
“아니, 심 노인은 왜 그렇게 연씨들을 싫어해? 그 사람들과 노는 물이 달라서 만난 적도 없을 텐데.”
“그게 그러니까…….”
심통이 말끝을 흐렸다.
갑자기 물으니 자신이 왜 그렇게 연씨들을 싫어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어릴 때 공자님을 괴롭혔다면서요?”
심통의 궁색한 답변에 연적하가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커서는 나도 그들을 괴롭혔으니까 피장파장이라고.”
“아, 예. 그런데 연씨들이 몇 자 외우는지가 왜 갑자기 궁금해지셨습니까?”
“얼마 전에 무당파 장문인과 차를 마신 적이 있거든. 그때 그분이 그러더라고. 종리권이 ‘대도(大道)란 형체가 없고 이름도 없으며, 물음도 없고 응답도 없다. 그 크기는 밖이 없을 만큼 크고, 그 작기는 안이 없을 만큼 작다. 그런즉 얻어서 알 수도 없고, 얻는다고 행할 수도 없다.’라고 했대.”
“그게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얻어서 알 수 없고, 얻는다고 행할 수도 없다’는 말을 듣고도 모르겠어?”
“모르겠는데요?”
“같은 구천여의진경을 의형제들과 심 노인에게 가르쳤잖아. 그런데 의형제들은 백 자, 심노인은 삼백 자를 외웠지. 이제 감이 와?”
“전혀요. 그건 제 머리가 그들보다 좋아서 그런 거잖습니까?”
“쯧쯧! 머리가 좋기는 개뿔. 아주 혼자만의 착각 속에서 사는구나.”
“공자님, 그래도 제가 한때는 구밀복검 소리를 듣던 사람입니다. 말 잘하는 사람치고 머리가 나쁜 사람이 없습니다. 사기꾼들 보십시오. 머리가 얼마나 좋습니까?”
“비유를 해도 꼭 도둑놈 아니면 사기꾼이지. 하여간 녹림의 도적들하고는 말이 안 통해.”
“말이 왜 안 통합니까? 저는 공자님의 말씀을 다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구천여일진경이 대도라는 말씀 아닙니까? 그래서 얻어도 알지 못하고, 행할 수도 없다. 이 말씀을 하고 싶은 거 아닙니까?”
“어? 말귀는 잘 알아듣네?”
“그런데 구천여일진경이 대도면 뭐가 달라집니까? 어차피 도가의 법문이라는 게 죄다 대도를 추구하는 거잖습니까? 그런 거라면 도문에도 널리고 널렸을 텐데요.”
“맞아. 대도를 추구하지. 그런데 구천여일진경이 대도 그 자체라면 어쩔 거야? 그래서 얻어도 알지 못하고, 행할 수도 없는 거라면?”
“저는 그냥 머리가 좋고 나쁨에 달린 문제 같은데요?”
심통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강호를 종횡하는 동안 연적하가 말하는 대도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어서다.
법문 자체가 대도라니?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말이다.
“그러니까 그걸 알아보겠다 이 말이야.”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만, 알면 뭐가 달라집니까?”
“심 노인은 내가 법보도 없이 마물을 때려잡는 게 이상하지도 않아? 천하십대고수들도 쩔쩔매는 마물을 난 아주 쉽게 잡는다고. 어디 나뿐이야? 심 노인도 그 허접한 무위로 마물을 때려잡았잖아.”
“쿨럭! 허접하다니요. 제가 요즘은 칠파이문의 장문인들보다 윗줄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심장과 같은 금강저가 있지 않습니까? 금강저로 마물을 잡았다니까요.”
“나랑 내기할까? 그 금강저를 대별산채 채주에게 빌려줘 보자고. 나는 그가 금강저를 가지고도 마물을 잡지 못할 것 같은데?”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얼마 전 주작대와 서비하에 갔던 일 기억해 봐. 양관출이 천뢰신검으로 어떻게 했는지. 그가 마물을 찔렀는데 먼지도 안 나더라.”
“끙!”
심통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말대로 양관출은 손에 법보를 들고도 마물을 죽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느낌에 구천여일진경과 구천구검에는 특별한 게 있어.”
“그게 대도다?”
“얻어도 알지 못하고, 행할 수도 없다면 뻔하지. 대도야말로 법보 중의 법보 아냐? 구천구검은 아까우니까 연씨 선조가 유실한 구천여일진경으로 알아보는 수밖에.”
“공자님의 말씀을 들으니 왠지 저도 궁금해지네요? 정말 그런 거라면 좋겠습니다. 대도를 깨달으면 신선이 된다지 않습니까.”
“후후. 이거 어쩌지? 미안하지만 대도를 깨닫는다고 다 신선이 되는 건 아니야.”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도 영결상인에게 들었는데 신선에는 종류가 있다네?”
“종류요? 신선이면 다 같은 신선 아닙니까?”
“신선은 다섯 등급으로 나누어진대. 귀선(鬼仙), 인선(人仙), 지선(地仙), 신선(神仙), 천선(天仙). 귀선이 제일 아래고 천선이 가장 윗줄이야.”
“뭐가 그렇게 많습니까? 신선이면 다 같은 신선이지. 신선끼리도 차별을 둡니까?”
“고마운 줄도 모르고 어디서 앙탈이야? 대도를 깨닫지 못하고 서두르면 밑바닥인 귀선이 된다는데, 심 노인은 그래도 대도를 수련 중이니 잘하면 인선은 될 거야.”
“인선이면 아래에서 두 번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지. 본래 지옥에 떨어질 몸이 나를 만나서 출세한 거잖아. 귀선이 아닌 것만도 감사한 줄 알라고.”
“귀선이 그렇게 안 좋은 겁니까?”
“귀(鬼) 자가 들어간 것치고 좋은 거 봤어? 그냥 허공을 떠도는 귀신이라고 생각하면 돼. 용케 윤회에서는 벗어났지만, 선계에 갈 수가 없어 떠돌아다닌다니까.”
“잡귀신보다 조금 나은 경지네요?”
“그런 셈이지.”
“공자님의 등급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나 정도 되면 망해도 지선 아니겠어?”
“지선은 어떤 건데요?”
“큰 도를 완전히 깨닫지 못하더라도 수련을 계속하면 늙어 죽지 않아.”
연적하가 오연한 얼굴로 턱을 치켜 세웠다.
부러운 얼굴로 그를 보던 심통이 물었다.
“그럼 제가 도달할 거라는 인선은요?”
“인선은 사특한 걸 만나도 해를 당하지 않고, 병도 잘 안 걸린다고 하더라고.”
그 말에 심통은 만족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솔직히 악행을 많이 저지른 자신의 처지에서는 그 정도만 해도 만족이었다.
“저도 구천여일진경이 공자님 말씀처럼 대도였으면 좋겠습니다.”
“왜? 머리가 좋고 나쁜 거라더니. 죽을 때가 되니 지옥이 무서운가 봐?”
“지옥이 무섭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까?”
“그렇게 무서우면 유명교에 귀의하지 그래? 누가 알아? 저승의 왕이라는 염마왕과 친해질지.”
“어이쿠! 싫습니다. 지금 저더러 마물이 되라는 말씀이십니까? 실없는 소리 마시고 식사나 하러 가시지요.”
“그래. 가자!”
심통과의 잡담으로 허탈한 감정을 날려 버린 연적하가 씩씩하게 일어났다.
***
적당한 반점을 찾아다니던 연적하와 심통은 백리향이라는 간판 앞에서 멈춰 섰다.
향기가 백 리까지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입맛을 돌게 만드는 냄새다.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심통이 문을 열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반점 안은 정사파의 고수들로 가득했다.
최근 기찰대 활동이 늘어서 그런지 전과 달리 평범한 음식점 분위기다.
두 사람이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릴 때다.
“연 공자님!”
“총순찰님!”
거의 동시에 두 여자가 연적하를 불렀다.
청룡대 후기지수들과 함께 있던 이소민은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파 무인들의 자리에서 묘령의 여인이 일어나 연적하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흑의의 경장을 입은 그녀는 보기 드문 미녀였다.
경국지색의 미모에 육감적인 몸매까지 갖춘 그녀에게 정사파 사내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팽가 소가주 청천도 팽각명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휴우! 과연 흑수선 석려시로군. 그녀가 있는 걸 왜 못 봤지?”
그러자 전진파의 태을검 공산이 말했다.
“하하. 우리보다 먼저 왔으니 못 볼 수밖에요. 나는 사파 고수들이 벽을 치듯 둘러쌌길래 누군가 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저는 연적하를 아시오?”
“네.”
이소민은 연적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흑수선과 함께 가던 연적하가 뒤늦게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순간 팽각명이 불쾌한 어조로 물었다.
“이 소저는 어쩌다가 저런 도적과 알게 된 거요?”
“저런 도적이라니요?”
이소민이 고운 아미를 찡그렸다.
팽각명은 이소민이 연적하를 편드는 것처럼 보이자 발끈했다.
“그럼 저자가 도적이지 협객이란 말이오? 시대가 변해 천지맹에서 함께하고 있지만, 그래도 저들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소. 여러분, 내 말이 틀렸소?”
팽각명이 한자리에 모여 있던 후기지수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창때의 후기지수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흑수선이 다정하게 데리고 간 연적하에 대한 질투심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