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65
265회. 기분은 나쁠 것 같네요
오봉산채 채주 마형도가 극구 부인하는 흑수선을 힐끔 보았다.
흑수선의 백치미가 유명하다는 말은 들었는데 과연 명불허전이다.
청춘남녀의 저렇게 정다운 모습을 보면서도 아니라니?
보다 못한 독심낭인 황요명이 물었다.
“왜 아니라고 생각하시오?”
“총순찰님의 얼굴을 봐요. 사심이 없어 보이잖아. 내가 경험해 봐서 아는데 남자가 들이댈 때는 절대로 저런 얼굴이 아니거든요.”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지라 황요명은 반박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간 오봉산채에서도 ‘연적하와 화용독심 남궁연의 관계가 남녀 간의 정이냐?’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그렇다’는 사람과 ‘아니다’는 사람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건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였다.
마형도가 넌지시 한마디 했다.
“소저, 벌만 꽃을 찾아다니라는 법이 있소?”
직접 가라는 소리다.
“총순찰님이 저를 피하니까 그러죠. 민폐를 끼친다나 뭐라나 하면서.”
흑수선이 울상을 지었다.
며칠 전 남궁연에게 ‘총순찰이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말한 뒤부터 연적하는 자신을 피해 다녔다.
하루에 한 끼 이상 함께하던 식사도 끝났다.
‘함께 식사하자’고 하면 이미 먹었다며 사양했다.
모처럼 호감을 느낀 남자가 대놓고 피해 다니니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흩어졌다.
연적하와 남궁연은 천지맹을 나선 순간부터 함께 다녔다. 이미 익숙해서 그런지 주작대 고수들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청운검 남궁천이 가죽 주머니의 물을 마시며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쩝쩝. 아아! 배고프다. 먹을 만한 게 뭐가 있으려나?”
남경에서 정주에 올 때와 달리 이젠 상인들이 따라다니지 않았다. 어쩌다 만나도 상인들은 물건만 팔고 급히 돌아가곤 했다.
그러다 보니 마을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길바닥에서는 건량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손수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극소수였
연적하가 행낭에서 육포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형님, 향림반점에서 만든 육포인데 드셔 보실래요?”
“그래? 줘 봐.”
남궁천은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육포를 우물거렸다.
그사이 남궁연도 행낭에서 주섬주섬 만두를 꺼냈다.
그녀는 연적하에게 하나를 건네고 자신도 조금씩 뜯어 먹기 시작했다.
만두를 먹던 연적하가 뒤늦게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누님, 백교는 어떻게 됐어요?”
“그는 곧 풀려날 거야.”
“아! 그 늙은이가 훔친 게 아니었어요? 웬일이래? 무슨 꿍꿍이가 있는 얼굴이었는데.”
남궁천이 끼어들었다.
“백교가 아니면 누가 훔쳐 갔으려나?”
“정주에 남린이라는 유명한 도모(掏摸, 소매치기)가 있어요. 그가 칠리하촌에 있었는데, 여래신주를 도둑맞은 다음 날 사라졌다고 해요.”
“뭐야? 그럼 도둑맞은 게 아니라 소매치기를 당했던 거야?”
“네. 기찰대가 헛짚었던 거죠. 제 느낌에는 누군가 기찰대에 엉터리 정보를 흘렸던 것 같아요.”
“누가?”
“장물을 손에 넣은 사람이요.”
“뭐? 백교가 하루 만에 잡혔는데 그게 장물을 사 간 사람의 수작이었다고? 와아!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을 사람일세. 누구냐 그 사람이?”
남궁천이 기막힌 얼굴로 남궁연을 보았다.
장물을 산 것으로도 모자라 엉터리 정보로 기찰대까지 가지고 놀다니?
“누구겠어요? 천지맹에서 기찰대를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곰곰 생각하던 남궁천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설마 총사는 아니겠지?”
남궁연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부인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남궁천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니, 그 사람은 천지맹에 처박혀 있으면서 왜 그랬대? 법보는 현장에서나 요긴하게 쓰일 물건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현무대가 출정을 했잖아요. 현무대에 누가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아! 설마 제갈가를 위해서 장물을 산 거야?”
“현무대 술사들은 대부분 전투 경험이 없잖아요. 식솔들의 안위가 걱정됐을 거예요.”
남궁연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얼굴이었다.
비록 제갈승운이 남궁세가에 못되게 굴긴 하지만, 유명교에 가족을 잃은 그녀는 그를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쩝, 아무리 그래도 총사가 그런 짓을 했다니. 그건 좀 너무했다. 범인을 잡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범인의 뒤를 봐준 거잖아.”
연적하는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녹림은 애당초 장물이라는 개념이 없는지라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백교만 풀려난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입이 마르는지 남궁연은 가죽 주머니의 물로 목을 축인 뒤 계속해서 말했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닐 거라는 거예요.”
“응? 장물을 사고, 백교도 풀려나면 끝난 거잖아. 더 뭐가 남았다고?”
“백교가 무슨 수로 옥에서 나갈 수 있겠어요?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는데. 자력으로는 총사가 만든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하지만 너는 방금 그가 풀려날 거라고 했잖아?”
“남린과 총사의 거래를 백교가 목격한 것 같아요. 그는 총사를 이용해 옥에서 나갈 거예요.”
“허! 점입가경이로군.”
연적하가 입에 물고 있던 육포를 꺼낸 뒤 소리쳤다.
“어쩐지! 그 늙은이가 호들갑을 떨 때 좀 이상하다 싶었어! 나한테 얻어맞고 산채를 떠난 사람이, 미친 듯 꼬리를 흔들더라니까요!”
남궁연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연적하를 보다가 얼른 시선을 돌렸다.
“총사는 장물 거래의 흔적을 남길 사람이 아니에요. 남린도 그렇고, 백교도……. 안전하지 못해요. 어쩌면 우리가 돌아갔을 때, 그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
남궁천과 연적하는 일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만에 남궁천이 중얼거렸다.
“그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로군.”
장물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덮기 위해 사람들을 죽인다’는 것은 확실히 보통이 아니다.
물론 정파인들은 도적들을 많이 죽였다.
하지만 그건 모두 힘없는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 일이다.
제갈승운처럼 자신의 범죄를 덮기 위해 도적을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
남궁천이 힐끔 연적하를 보았다.
“적하야. 너는 백교가 죽었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
남궁천은 연적하가 백교의 복수를 한다고 할까 봐 은근 걱정이 됐다.
“왜요?”
“증거도 없이 총사에게 복수를 한다고 할까 봐.”
“에이, 제가 백교의 가족도 아닌데 왜 복수를 해요? 적풍채 채주라면 모를까? 하지만 적풍채 채주도 범인이 누군지 모르니까, 며칠 찾아다니는 시늉만 하다가 말겠죠? 녹림에서는 형제가 아니면 누가 죽어 나가도 신경 안 써요.”
“아! 그런 거냐? 그럼 다행이고.”
“그래도 기분은 나쁠 것 같네요. 뒤로 나쁜 짓을 하면서 협객 행세를 하는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남궁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도 ‘기분 나쁜 것’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만에 하나라도 연적하가 총사에게 나쁜 마음을 먹으면 골치 아픈 일들이 일어날 터였다.
***
그로부터 이틀 후.
칠리하촌.
천지맹.
정오 무렵.
총사 신기수사 제갈승운이 기찰대 대주 공지 대사를 찾아갔다.
“총사, 어쩐 일이십니까?”
“긴히 알려 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어이쿠! 총사께서 직접 오신 걸 보니 꽤나 중한 일인가 봅니다? 이거 기찰대가 무슨 잘못을 한 거나 아니면 좋겠는데…….”
공지 대사는 듣기도 전에 미리 엄살을 부렸다.
총사의 살짝 굳은 표정도 그렇고 어째 느낌이 좋지 않아서다.
“오늘 아침에 들어온 보고서입니다. 직업 읽으시는 게 나을 것 같군요.”
말과 함께 제갈승운이 서찰 하나를 내밀었다.
서둘러 서찰을 받아 읽던 공지 대사의 입에서 ‘끙’ 하고 앓는 소리가 났다.
역시나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서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정주 유곽에서 도모 남린이라는 자가 기녀들에게 ‘내가 칠리하촌에서 여래신주를 훔쳐 한밑천 잡았다’고 했다는 첩보. 그날 밤 남린은 돈을 노린 강도에게 살해당함.]허탈한 얼굴로 서 있던 공지 대사가 서찰을 제갈승운에게 돌려주며 물었다.
“그럼 백교는 이 일과 무관한 겁니까?”
“그가 여래신주에 흑심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정황상 남린이 한발 빨랐던 것 같습니다. 결국 백교는 남린에게 달아날 시간만 벌어준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갈승운의 말에 공지 대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기찰대가 백교를 잡는 바람에 남린이 용의선상에서 빠진 까닭이다.
“백교와 남린의 관계는 어떻소? 그들이 공모를 했을 가능성은?”
공지 대사는 기찰대가 헛발질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제갈승운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백교와 남린은 함께 어울린 적이 없습니다. 둘 사이에 어떤 작은 접점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백교가 유명한 도둑이지만, 이번 일과는 무관한 것 같습니다.”
“…….”
총사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공지 대사는 할 말이 없었다.
그에게 올라가는 정보의 양과 질은 기찰대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까.
“허면 그를 방면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오?”
“더불어 백교는 물론, 적풍채가 돌아오면 적풍채주에게도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곁들여 주십시오. 그렇게라도 하면 녹림에서 그냥 넘어가 줄지도 모르니까요.”
“나무아미타불…….”
급기야 공지 대사의 입에서 염불 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 기가 막혀서 저도 모르게 내뱉은, 이른바 공염불(空念佛)이다.
***
덜커덩.
갑작스러운 소리에 길게 드러누워 있던 무영신투 백교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누군가 싶어 봤더니 공지 대사다.
“어이! 땡중. 백번을 물어봐도 내 대답은 같아. 나는 안 훔쳤어.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나를 풀어줘. 씨발! 발목에 물집이 잡혔다고.”
“…….”
이쯤이면 공지 대사도 자백 어쩌고 떠들어야 하는데 조용했다.
순간 백교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러고 보니 제갈승운이 약속한 날이 오늘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냉랭하던 공지 대사가 어울리지 않게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백 시주, 그간 고생이 많으셨소. 오늘은 빈승이 백 시주에게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소.”
백교가 도도한 표정으로 턱짓을 했다.
말해 보라는 뜻이다.
순간 공지 대사는 감정이 상했지만 지은 죄가 있는지라 내색하지 않았다.
“허허. 여래신주를 훔쳐 간 도둑의 정체가 밝혀졌소이다. 정주에서 유명한 도모가 술에 취해서 제 입으로 훔쳐 갔다고 떠들어 댔다 하오.”
‘헐! 남린이 실수를 한 모양이로군.’
술을 좋아하는 놈들은 그게 문제다.
술에 취하면 사람을 죽인 일부터, 물건을 훔친 일까지 자랑처럼 떠들어 댄다. 판단력이 흐려져 제 입으로 죄를 술술 자백하는 것이다.
“백 시주를 도둑으로 몰아간 것에 대해 사죄하리다. 우리로서는 정황상 백 시주가 범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오. 아무쪼록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소.”
“이해고 지랄이고, 내가 훔쳐 간 게 아닌 줄 알았으면 족쇄부터 풀어 주쇼.”
“알겠소. 내 바로 풀어 드리리다.”
공지 대사는 허리춤에 걸려 있던 열쇠 뭉치로 옥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백교의 왼쪽 발목에 채워져 있던 족쇄를 풀었다.
철그럭.
“그런데 여래신주를 훔쳐 간 놈은 누구요?”
얼굴을 맞댈 거리가 되자 백교는 말투부터 바꿨다.
공지 대사가 열쇠를 오른쪽 족쇄의 구멍으로 밀어 넣으며 답했다.
“남린이라는 자요.”
“그래서 그놈은 잡았소?”
“이틀 전 유곽에서 강도를 당해 죽었소. 기녀들 앞에서 돈 자랑한 것을 누군가 들었던 모양이오.”
백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장물을 팔아 술 처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닐 텐데 이번에는 죽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