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67
267회. 모사재인(謀事在人)
무산낭랑 이매화의 얼굴에 고소가 떠올랐다.
솔직히 그녀도 두 백두마군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천지맹은 고작 한두 명의 십두마병을 상대로도 쩔쩔맸다.
하물며 호두산에는 십두마병 일곱에 백두마군인 혼천혈귀 강상피까지 있다.
그러니 강상피가 툴툴거리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제가 여러 백두마군들을 오시라고 한 것은 적의 동태를 알려 드리기 위함이었어요. 그들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최소한 저들이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환영신마 웅재귀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옳으신 말씀이오. 그런데 놈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걸 그냥 지켜만 볼 작정이오?”
“그건 여러분들에게 달린 문제 같군요. 혹시 나서서 저들을 정리하실 분이 계신가요?”
이매화가 백두마군들을 둘러보았다.
백두마군들은 하나같이 귀찮다는 얼굴로 그녀의 시선을 회피했다.
이매화가 웅재귀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집단지도체제의 문제는 이런 거였다.
당장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서로 미루기에 급급하다.
지금 백두마군들은 천지맹이 아니라 교주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당연히 교주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천지맹 떨거지들을 척살하러 다니는 것보다 우위였다.
그건 이매화나 웅재귀도 마찬가지인지라 두 사람은 더 이상 그 문제에 집착하지 않았다.
이매화가 지나가는 말로 강상피에게 말했다.
“저들은 감히 백마사 근처에는 오지 못할 거예요. 어쩌면 호두산 인근을 기웃거릴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알아서 잘 처리하시겠지만.”
“푸하하! 놈들이 주제를 모르고 호두산에 오면 지옥으로 보내 주리다.”
강상피의 호언장담에 이매화는 떨떠름한 미소로 화답했다.
찜찜하긴 했지만 왕호산장에 있는 유명교 전력이면 그러고도 남음이 있어서다.
결국 백두마군들은 천지맹의 움직임을 듣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흩어졌다.
고작 이백오십여 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다.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악불 방천각과 적월 공취산은 따로 은밀히 낙양의 모처에서 만났다.
방천각이 짜증 어린 어조로 말했다.
“제길, 교주가 제 발로 나타나다니. 일이 공교롭게 됐소.”
“다시 기회가 생기지 않겠소?”
말과는 달리 공취산 역시 꽤나 실망한 얼굴이었다.
백두마군들 모두가 교주에게 충성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랬는지 몰라도 십두마병과 백두마군을 거치는 과정에서 조금씩 변해 갔다.
유명교에서 능력을 손에 넣는 과정은 도박과 같다.
특별한 노력 없이 한순간에 일확천금을 손에 넣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누구라도 진언만 알면 십두마병, 백두마군, 천두마왕이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교주인 천두마왕에 대한 경외감과 별도로, 그 자리를 노리는 자들도 있었다.
뺏고 훔치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사파에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방천각과 공취산이 손을 잡은 것도 그래서다.
두 사람은 교주에게서 천두마왕이 되는 진언을 알아내 함께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러려면 먼저 교주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이십여 년 동안 교주를 찾지 못했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방천각이 문득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쩝, 그래도 교주를 죽이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됐으니 다행이긴 한데…….”
이전에는 교주를 잡아다가 진언을 알아낸 뒤 죽이려 했다.
하지만 십두마병이 변하는 걸 알게 된 뒤로 그럴 마음은 버렸다.
교주가 마신이 되면 자신들도 죽을 거라는 걸 알아서다.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당장 눈앞에서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것 같으니. 서비하와 천문산을 보시오. 마치 지박령이 된 것처럼, 죽은 지역에서 못 벗어나지 않았소?”
공취산의 말에 방천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다.
설사 교주가 죽어 천두마왕이 된다 해도 피해 다니면 그뿐이었다.
두 사람은 교주를 자신들이 처리할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
자신감의 과잉 상태가 아니라면, 교주를 다룰 특별한 방법이 있으리라.
***
초작.
황당촌.
정오 무렵.
강변을 따라 오십여 명의 중무장한 무인들이 걸어가고 있다.
천지맹 현무대 무사들이다.
선두에는 대주인 무상도제 장무덕과 부대주이자 전임 맹주였던 풍뢰도 장강호가 있었다.
햇살이 따사로워 그런지 두 사람 모두 지친 기색이다.
결국 장강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네요. 열도 식힐 겸 점심을 먹는 게 어떻겠습니까?”
“흠. 그러자꾸나.”
장무덕이 승낙하자 장강호가 뒤따르던 무극문 제자에게 손짓했다.
“부르셨습니까?”
“잠시 쉬었다가 갈 것이다. 점심까지 해결하고 갈 터이니 모두에게 전하도록 해라.”
“예.”
무사가 무리의 뒤쪽으로 부지런히 달려갔다.
잠시 후 현무대 고수들은 삼삼오오 주변으로 흩어졌다.
모용세가의 가주 경천일검 모용황은 식솔들과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장녀 능운검 모용미가 행낭에서 음식들을 꺼내 모용황에게 내밀었다.
모용황이 묵묵히 음식을 집어 들자 다른 식솔들도 하나 둘 먹기 시작했다.
대충 식사를 마친 모용황이 모용미 쪽을 힐끔 보았다.
“제갈가에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칠파이문과 오대세가 사람들이 단체로 모일 일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행사가 있어 회합할 때면 잡다한 일들도 함께 논의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혼례다.
제갈가의 가주인 제갈승운은 천지맹에서 모용세가 쪽으로 공을 들였다.
모용황도 이미 기운 남궁세가보다 떠오르는 별인 제갈가를 마음에 들어 했다.
모용미는 잠시 제갈가의 청년들을 떠올렸다.
자신과 어울릴 만한 사람은 총사의 장남인 천명검 제갈성 정도다. 그는 무공과 지혜가 뛰어나 차기 총사감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 정도 남자라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아버지 뜻대로 하세요.”
“알겠다. 그래도 너의 혼인이니 제갈성을 살펴보도록 해라. 네가 싫다고 하면 진행하지 않으마.”
“네.”
역시나 제갈성이다.
모용미의 시선이 살짝 제갈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제갈가에서 선발한 최고의 고수 열 명이 둥그렇게 모여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제갈성은 그중에서도 군계일학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훤칠한 남자였다.
혼담이 오가는 상대라고 생각하자 왠지 무덤덤하던 전과 달리 특별해 보인다.
제갈성을 보고 있는 모용미에게 모용황이 말했다.
“비록 남궁천이 후기지수 중에 으뜸이라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남궁세가는 몰락했다. 검왕의 시대가 지나면 그들은 더 이상 세가로 불리지 못할 것이다.”
모용미가 부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용황이 담담한 어조로 설명하듯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제갈가 역시 이번에 피해를 입었지만 저들 본가의 힘은 여전하다. 제갈가와 남궁세가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사람들은 제갈가를 선택할 게다.”
“제갈가가 남궁세가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까요?”
“그렇게 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울 것이다. 네가 제갈성과 혼인을 한다면.”
“…….”
모용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 세가가 거론되는 것을 보니 계획이 있으신 모양이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으면 혼례는 거의 확정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모르긴 해도 제갈가의 가주인 신기수사 제갈승운과는 더 깊은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다.
그때 모용황의 동생인 모용진이 끼어들었다.
“형님, 남궁세가는 정말 망조가 든 모양입니다. 남궁천은 이 와중에 창인문 제자를 따라다닌다고 합니다. 칠파이문이나 오대세가와 손을 잡아도 시원치 않은데 말이죠.”
“그게 연륜의 한계라는 거다. 제 눈에 좋으면 그게 전부인 줄 알지.”
“검왕이 왜 내버려 두는지 모르겠습니다.”
“복수에 빠져서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게다. 식솔이 떼죽음을 당했으니.”
“그럴 때일수록 더 훗날을 도모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점은 나도 좀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다. 본래 망하려면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서 일어나는 법. 남궁세가의 운도 다한 것일 테지.”
가주의 말에 모용세가 사람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용황뿐 아니라 세간의 평이 그랬다.
남궁세가는 검왕 이후로 지리멸렬하게 될 것이라고.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천명검 제갈성과 모용미의 시선이 마주쳤다.
제갈성은 무례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호법이자 숙부인 상승검 제갈중영이 그를 불렀다.
“성아.”
“예.”
“이번 출정은 형평성 있게 보이려고 만든 것이니 너무 긴장할 것 없다.”
제갈성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에게 제갈중영이 의외의 말을 했다.
“그보다는 모용세가와의 동행에 더 큰 의미가 있다. 혹 네 아버지에게 모용세가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느냐?”
“없습니다.”
“흠! 그랬구나. 형님께서 모용미와 너의 혼사를 추진하는 모양이다. 이번 출정은 두 사람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
“모용세가에 좋은 모습을 보이라는 말이다. 너를 선택함에 망설임이 없도록.”
“아, 예.”
제갈성은 그제야 숙부의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교구현으로 가는 일에 위험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용세가와 자신의 혼사가 추진되고 있다는 것은 까마득히 몰랐다.
‘그래서 모용 소저가 나를 보고 있었나?’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기분이 묘했다.
유명교와의 싸움만 생각하던 심장에 불씨가 하나 떨어진 느낌이랄까?
***
칠리하촌.
무영신투 백교는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었다.
출정식이 있은 지 어언 닷새.
그동안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잠들지 못했다.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면서도 피부는 까칠해지고 눈두덩이도 퀭했다.
화용독심 남궁연에게 사실을 털어놓지 않은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특히나 해가 진 뒤에는 그야말로 공포의 연속이었다.
어둠 속에서 고수에게 노려진다는 것은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백교는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유등을 밝혔다.
삼만 냥을 받은 날로부터 이틀이 지났으니 슬슬 올 때가 됐다.
그래서 이젠 아예 침상에 올라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탁자에 앉아 차갑게 식은 차를 홀짝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꾸벅꾸벅 졸던 그는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세차게 고개를 휘저었다.
그리고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방 문을 빼꼼 열고 내다보았다.
이틀 전처럼 중년의 사내가 마당에 서 있었다.
여전히 무기를 지참하지 않은 모습에 백교는 안도하며 밖으로 나갔다.
“생각보다 빨리 왔구려?”
물론 그냥 해 본 말이다.
제갈가의 능력이라면 이틀 만에 이만 냥은 일도 아닐 것이었다.
묵묵히 서 있던 사내가 말했다.
“와서 받아 가시겠습니까? 가서 드릴까요?”
전에 없던 질문을 받고 백교는 사내를 힐끔 쳐다보았다.
선뜻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생각 없이 마당으로 쪼르르 내려갔는데, 오늘은 왜 이런지 모르겠다.
백교가 머뭇거리자 남자가 다시 물었다.
“오시겠습니까? 제가 갈까요?”
“…….”
잔뜩 긴장한 백교의 목울대로 마른 침이 꿀꺽 넘어갔다.
저승사자가 묻는 것 같았다.
와서 죽을래? 가서 죽일까?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