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71
271회. 죄인들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어라
일각마인을 처음 본 인대(人隊)의 고수들은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주작대는 마물과의 조우가 처음이 아닌지라 차분한 모습이었다.
일각마인은 검왕 남궁벽을 원수로 인식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윽고 남궁벽과 일각마인의 전투가 벌어졌다.
일각마인은 한 자(약 30센티)나 되는 손톱으로 남궁벽을 찢어발기려 했다.
그러나 번번이 남궁벽의 검에 막혀 튕겨 났다.
둘의 공방이 어찌나 빠른지 사람들은 ‘챙챙’하는 쇳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화용독심 남궁연이 술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제야 술사들도 품자 모양으로 삼면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외웠다.
주문의 효과인지 일각마인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일각마인은 주문이 영 귀에 거슬리는 듯 술사들 쪽을 쏘아보았다.
순간 남궁벽의 검이 일각마인의 몸통에 박혔다.
콰직. 과직.
“캬악!”
극심한 통증에 일각마인은 다시 남궁벽에게 달려들었다.
술사들의 주문 소리가 더욱 높아져 갔다.
일각마인의 눈이 술사들을 향하고, 다시 남궁벽의 검에 찍히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남궁벽의 검격에 무방비하게 맞아서일까?
어쩌면 마물을 옥죄는 주문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일각마인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졌다.
콰직. 콰직. 콰직.
남궁벽의 검은 느려진 일각마인의 몸을 쉬지 않고 때려 댔다.
어느 순간부터 일각마인은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았다.
남궁벽은 마침내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가 검신으로 창궁무애신공의 공력을 밀어 넣자, 검에서 검명이 울렸다.
우우웅-.
이윽고 찬란한 광망(光芒)이 일각 마인의 목을 찔러 갔다.
콰드득.
검강에 바위처럼 단단하던 일각마인의 목이 꿰뚫렸다.
“캭!”
일각마인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날카로운 손톱을 휘저었다.
마물의 반격에 남궁벽은 뒤로 반걸음 물러나며 쾌속하게 검을 휘둘렀다.
콰자자자작.
질그릇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일각마인의 강철 같은 손톱들이 잘려 나갔다.
남궁벽은 여세를 몰아 다시 전진하며 일각마인의 목을 베었다.
콰드득.
다소간의 반발이 있었지만 끝내 남궁벽의 검은 일각마인의 목을 끊었다.
목이 잘린 일각마인은 후려치려는 듯 한쪽 손을 뒤로 젖힌 자세에서 멈췄다.
그리고 이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푸스스스스-.
싸움은 치열했지만 일각마인의 처치까지 걸린 시간은 일각(15분) 남짓.
처음 한 시진 걸리던 것에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남궁벽은 만족한 얼굴로 남궁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남궁연의 수신호에 주작대와 인대의 고수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술사들과 함께 은신한 이화선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남궁벽과 술사들이 수월하게 마물을 처리하는 걸 보니 더 화가 났다.
‘이렇게 쉬운 걸 왜 불까지 낸 거지?’
죽느냐 사느냐 운운했던 것은 남궁연의 허언임이 분명하다.
일각마인을 없애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일각.
십두마병이 몇이나 더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추세라면 한 시진 안에 끝날 것이다.
‘주작대의 피해를 줄여 보겠다고 호두산에 불을 지르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이화선은 한쪽에 오연하게 서 있는 남궁연을 경멸의 눈으로 보았다.
천지맹은 대내외적으로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강호 연맹이다. 그런 천지맹의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해악을 끼치기나 하다니!
호두산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는 이화선은 남궁연이 가증스럽기만 했다.
***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엉덩이를 들썩이던 연적하가 문득 동작을 멈췄다.
가슴에 달려 있는 팔주령에서 묘한 기운이 스물스물 흘러나왔다.
“뭐지?”
아직 십두마병을 만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런 반응이라니?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설마 호두산에 백두마군이라도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팔주령의 변화는 예사롭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팔주령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더욱 강해졌다.
팔주령의 영향으로 가슴이 저릿할 정도다.
연적하는 구천기를 끌어 올려 몸을 보호한 뒤에 지면으로 훌쩍 떨어져 내렸다.
다른 사람들이 걱정돼서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하필 그때 연기를 헤치며 일단의 유명교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적하는 망설임 없이 그들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그는 마치 유령처럼 유명교도들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매캐한 연기 속에서 연적하의 검이 번득였다.
대여섯 명이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뒤늦게 선두에 일이 터졌음을 알고 후미의 유명교도들이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웬 놈이냐!”
“적이다!”
놀란 유명교도들은 산 아래로 내달렸다.
그들은 마치 사자에게 쫓기는 소 떼처럼 저돌적으로 밀고 나갔다.
십두마병 혈옥수 송군남이 낯선 청년과 마주친 것은 그때다.
“감히!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송군남의 두 손이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그것은 풀풀 날리는 연기와 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지옥의 사자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연적하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오히려 송군남을 향해 달려갔다.
이윽고 송군남과 연적하가 정면으로 맞부닥쳤다.
검과 붉은 손이 연기 속에서 몇 차례 얽혔다가 떨어졌다.
“윽!”
검에 스친 송군남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연적하가 끝을 보려고 다시 한번 상대를 향해 도약하려는 순간이다.
후우욱.
강풍에 밀려온 연기가 두 사람을 덮었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시야가 차단되자 연적하는 멈칫했다.
송군남은 뜻밖에도 상대의 검공이 뛰어나자 연기 속을 숨어다녔다.
연적하는 조바심이 났지만 이내 마음을 비웠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상황인지라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산불이 이곳까지 번지고 있나 보군.’
연기가 점점 더 짙어지는 걸 보면 바람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쯧! 여기까지인가.’
속으로 혀를 차던 연적하는 아래쪽으로 몸을 날렸다.
연기를 벗어나자 저 멀리 미친 듯 달려가는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연기 속에서 자신과 싸우던 중년인이었다.
마음먹으면 못 쫓아갈 거리도 아니지만 이내 관심을 접고 돌아섰다.
어느새 요동치던 팔주령의 기운이 사라졌다.
그건 상대가 이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갔다는 뜻이다.
하산하는 길이라고 해 봐야 이쪽 아니면 저쪽.
설상가상이라고, 이쪽 방향으로는 더 이상 인기척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대부분이 저쪽 방향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연적하는 즉시 주작대와 인대가 맡고 있던 곳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일은 점점 꼬여 갔다.
그사이 연기가 더 아래로 내려와 앞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별수 없이 산을 내려가 연기의 경계를 따라 이동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일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튀어 버렸다.
연기에 가려지고 지형마저 크게 바뀌자,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가뜩이나 길눈이 어두운 연적하는 산자락을 빙빙 돌며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
주작대와 인대가 은신하고 있던 지점이 연기로 가득 차게 된 건 한순간이었다.
연적하와 송군남이 손쓰지 못하고 연기에 갇혔던 것처럼, 주작대와 인대도 그랬다.
하지만 주작대와 인대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미처 뭔가를 결정하기도 전에 유명교도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 까닭이다.
유명교도들의 출현에 남궁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저들을 지나가게 두면 주작대와 인대가 도리어 유명교에 포위당하고 만다.
저들을 정리하고 더 아래로 이동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남궁연은 지체하지 않고 품 안에서 손가락 한 마디만 한 호각을 꺼냈다.
앞이 잘 안 보이니 소리로 지시를 내리려는 것이다.
삐이이-.
신호가 들리자 천지맹 고수들은 일시에 하산로로 뛰쳐나갔다.
“쳐라!”
“악적! 죽어라!”
“적이다!”
“천지맹 놈들이다!”
천지맹과 유명교도들이 외치는 소리가 뒤섞였다.
천지맹의 고수들은 화마를 피해 달아나던 유명교도들을 사납게 몰아붙였다.
주작대와 인대의 고수들은 이번 싸움에서도 승리할 거라고 믿었다.
실제로 유명교 고수들은 제대로 된 반격 한번 해 보지 못하고 속절없이 쓰러졌다.
“악!”
“으윽!”
천지맹 고수들은 누가 십두마병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상대를 베어 나갔다.
피아의 식별도 쉽지 않은 상황인지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명교도의 수가 급격히 줄자 십두마병의 정체도 자연히 드러났다.
천지맹 고수들은 연기로 앞을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금씩 거리를 벌렸다.
때마침 역풍이 몰아쳐 와 연기가 살짝 흩어졌다.
십두마병 귀도 금청군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두 발로 서 있는 수하는 일곱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자신과는 오 장(약 15미터)여 거리를 두고 떨어진 상태.
빠드득 이를 갈던 금청군이 버럭 소리쳤다.
“천지맹이냐!”
인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던 구천노도 심통이 고개를 힐끔 돌렸다.
남궁벽을 찾고 있는 것이다.
저쪽 끝자락에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에 반해 자신의 위치는 십두마병의 코앞이었다.
‘연기가 다시 내려앉기 전에 상대를 처치해야겠다’ 생각한 심통은 곧바로 돌진했다.
물론 주작대와 인대에 자신의 무위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약간 있었다.
“으흐흐흐! 알아서 뭐하게!”
채채채채채챙-.
심통의 유엽도와 금청군의 도가 수십 번 붙었다가 떨어졌다.
금청군은 조악하게 생긴 늙은이가 자신을 몰아붙이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면상과 말투를 보면 사파 놈인데 도법은 현묘하기 이를 데 없다.
한차례 접전을 끝내고 재빨리 거리를 벌린 금청군이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으흐흐. 구천노도시다. 그만 뒈져라!”
거친 욕설과 함께 심통이 유엽도로 건곤감리의 방위를 점했다.
구천세법 삼 식 운룡풍호를 펼친 것이다.
박도에서 뻗어 나온 기운은 이내 돌풍으로 변해 금청군을 쓸어 갔다.
콰콰콰콰.
금청군은 급히 자신의 구명절초인 귀영도법으로 맞섰다.
츠츠츠.
줄기줄기 뻗어 간 도기가 돌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돌풍은 도기를 집어삼키고 눈 깜짝할 사이에 금청군을 덮쳤다.
놀란 금청군은 급히 뒤로 신형을 빼려 했다.
그 순간 돌풍 속에서 튀어나온 청룡이 그의 다리를 물었다.
“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금청군이 뒤로 나뒹굴었다.
뒤늦게 잘려 나간 금청군의 한쪽 다리가 ‘툭’하고 지면에 떨어져 내렸다.
심통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상대에게 달려갔다.
이전 같으면 이쯤에서 검왕이나 술사들에게 넘겼겠지만 금강저를 얻은 후로는 달라졌다.
그는 자신이 마물까지 단숨에 끝장낼 작정이었다.
심통이 막 유엽도를 치켜들었을 때다.
휘우우우웅-.
흡사 태풍이 불어오는 소리와 함께 산 정상 쪽의 연기가 좌우로 갈라졌다.
연기는 마치 무형의 벽에 막힌 것처럼 하산로를 침범하지 못했다.
천지맹 고수들은 무려 십 장(약 30 미터) 높이에 이르는 연기의 장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자연의 흐름조차 거스르는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곧이어 하산로로 칠십여 명의 유명교도들이 흡사 유령처럼 조용히 내려왔다.
선두에 서 있던 백두마군 혼천혈귀 강상피가 기막힌 얼굴로 천지맹 고수들을 둘러 보았다.
“허어! 이런 경을 칠. 모든 게 네놈들이 벌인 짓이었더냐?”
네 명의 십두마병이 강상피의 좌우에 늘어섰다.
이윽고 냉혈마도 태경림이 웅혼한 소리로 외쳤다.
“죄인들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어라! 선계의 신선과 저승의 사자들도 부복하는, 천상천하에 교주님 다음으로 존엄하신 백두마군 혼천혈귀 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