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85
285회. 하늘에 검을 숨겼다
칠리하촌.
동편 산기슭의 작은 집.
점심 무렵.
구천노도 심통이 행낭에 있던 건량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금방이라도 출발할 것 같아서 바리바리 쌌는데 집에서 다 까먹게 생겼네.”
그러자 탁자에서 육포를 먹던 연적하가 한마디 했다.
“심 노인, 집이 싫으면 뒷산에 올라가서 먹어.”
“싫다는 게 아니라 당분간 건량만 질리도록 먹게 돼서 그럽니다. 이거 하루 이틀 까먹다가 출발하면, 가는 길에 또 먹어야 하잖습니까?”
“쯧쯧! 어린애도 아니고 다 늙은 사람이 먹는 것만 생각하네. 유명교 교주를 염탐하러 가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몰라? 월아와 금아 만나고 싶으면 군소리하지 마.”
“아무리 고수라도 입으로 음식이 들어가지 않으면 죽습니다. 먹는 건 소중한 겁니다.”
“그 소중한 일 오래오래 하라고 출발을 늦춘 거잖아. 고마운 줄 모르고 어디서 원망이야? 파리 새끼처럼 자꾸 앵앵거릴래?”
“공자님, 제가 언제 남궁 소저를 원망했다고 그러십니까? 저는 그냥 건량을 오래 먹게 됐다고 한 것뿐입니다. 남궁 소저의 얘기만 나오면 왜 그렇게 눈에 쌍심지를 켜고 덤벼드십니까?”
“뭐? 덤벼? 내가? 아주 이젠 아무 말이나 막 던지는구나?”
“사실이 그렇잖습니까? 남궁 소저가 관계된 일이면 무조건…….”
“무조건 뭐?”
연적하가 입에 물고 있던 육포를 내려놓고 심통을 쏘아보았다.
그 서슬에 찔끔 놀란 심통이 급히 말을 이었다.
“믿고 따르는 모습이 보기 좋다, 뭐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제야 연적하는 다시 시선을 육포로 돌렸다.
그의 눈치를 보던 심통은 건량을 입에 넣고 소리 없이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잠시 후 육포를 먹어치운 연적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자님, 어디 가십니까?”
“뒷산에 좀 올라가 보려고.”
“흐흐. 육포는 다 드신 것 같은데 왜요?”
“왜냐니? 당연히 검술을 익히러 가는 거지. 그걸 손바닥만 한 마당에서 할 수는 없잖아. 심 노인도 죽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수련해 둬. 아니, 살 만큼 살았으니 푹 쉬다가 휙 가는 게 나으려나?”
“어이쿠!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먼저 가십쇼. 저도 곧 뒤따라 가겠습니다.”
“그러든지.”
연적하는 심통을 남겨 두고 밖으로 나갔다.
이젠 완연한 봄 날씨라 집안보다 오히려 바깥이 더 따뜻한 느낌이다.
연적하는 어슬렁어슬렁 산을 올랐다.
얕은 산이라 정상까지는 일각(15분)도 걸리지 않았다.
연적하가 구천세법의 연공을 한 번 마칠 즈음 아래서 인기척이 들렸다.
이제야 심통이 산을 오르는 모양이다.
규칙적이던 발소리는 저 아래쪽 구부능선에서 멈췄다.
곧이어 ‘헛! 헛!’하는 늙은이 특유의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하여간 요란하다니까.’
고개를 젓던 연적하는 구천구검으로 넘어갔다.
내력을 싣지 않고 순수하게 근력만으로 펼쳤음에도 검풍이 날카롭게 뻗었다.
구천세법과 구천구검으로 한바탕 몸을 푼 연적하는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천둔검의 구결을 천천히 떠올렸다.
여전히 오의(奧義)는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천둔검이라.’
글자 그대로 하면 ‘하늘에 검을 숨겼다’는 소리다.
‘에이 설마.’
하늘에 무슨 검을 숨긴다는 말인가.
도교의 신선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를 너무 많이 해서 허실을 알 수가 없다.
분명히 천둔검도 뭔가에 대한 비유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로 솜뭉치 같은 구름이 떠 있다.
‘저 구름이 검이 된다는 건 아니겠지?’
구름으로 찌르고 베어 봐야 간지럽기밖에 더 하겠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연적하는 무심코 구름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천둔검의 구결을 떠올렸다.
역시나 구름은 그대로였다.
“쳇! 젠장. 뭘 숨겼다는 거야.”
답답해진 연적하는 신경질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이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파앗-.
내친김에 오른손 검결지를 하늘로 세우며 버럭 소리쳤다.
“천둔검!”
공력을 운용한 터라 연적하의 몸은 무려 십 장(약 30미터)이나 날아올랐다.
마치 하늘에 있는 별을 따려는 모양새다.
‘이익!’
연적하의 눈이 이글이글 불탔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구름에 손이 닿을 것도 같았다.
여동빈이 천둔검을 하늘에 숨겼다면 이 손으로 찾아내고 말겠다!
하지만 그의 몸은 더 올라가지 못하고 멈췄다.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던 그의 몸은 곧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속절없이 떨어져 내리던 연적하는 지면에 닿기 전 구룡번신(九龍翻身)을 펼쳤다.
허공에서 움직이는 구천세법을 응용한 것이다.
순간 그의 몸이 천천히 원을 그리며 깃털처럼 부드럽게 내려왔다.
허탈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는 연적하를 향해 심통이 달려왔다.
“공자님? 드디어 성공하셨습니까?”
“뭘?”
연적하가 맥 빠진 얼굴로 심통을 돌아보았다.
심통이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조금 전에 천둔검이라고 크게 소리치지 않았습니까? 그 소리에 놀라 보니 공자님께서 하늘로 승천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당연히 공자님께서 천둔검을 대성하신 줄로 알았는데, 아니었습니까?”
“답답해서 소리쳐 본 거야.”
“어이쿠! 두 번 답답하시면 큰일 내시겠습니다. 그 정도 소리면 천지맹에서도 들었을 것 같은데.”
“산에서 내 맘대로 소리도 못 질러?”
“되기는 합니다만 곧 천지맹 고수들이 몰려올지도 모릅니다.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고함 소리가 보통 컸어야 말이지요.”
“아 몰라. 오든지 말든지.”
연적하가 툴툴거리고 있을 때다.
정말 천지맹 고수들이 몰려오는지 산 아래서 발소리가 요란했다.
뚱한 얼굴로 서 있던 연적하는 계곡 아래로 훌쩍 몸을 날렸다. 사람들에게 구차한 설명을 하고 싶지 않아 급히 자리를 뜬 것이다.
한 마리 새처럼 날아 내려가는 연적하를 보던 심통도 이내 아래로 뛰어내렸다.
두 사람이 사라진 직후 십여 명의 천지맹 기찰대가 정상에 나타났다.
점창파 태상장로 회풍무상검 태을상인과 전진파 장로 일월검 무무 진인이 이끄는 기찰대였다.
무무 진인이 매의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수상쩍다고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허, 거참. 분명 천지를 흔드는 듯한 소리가 들렸는데.”
그때 기찰대원인 무당파 장로 천성 도사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보다 소리쳤다.
“헛! 저게 뭡니까?”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던 기찰대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파란 하늘에 거대한 검의 형상을 한 구름이 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던 무무 진인이 태을상인에게 다가갔다.
“상인, 저게 대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검 모양의 구름이 아닙니까.”
“그야 그렇습니다만 하고 많은 모양 중에 왜 하필 검인지. 혹 짐작 가시는 거라도 있습니까?”
“글쎄요. 빈도 역시 놀랍기는 합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자연의 조화라고밖에……. 아무리 고수라 해도 인위적으로 저런 걸 만들어 낼 수는 없으니까요.”
그의 말에 무무 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름의 크기가 마을 하나를 덮고도 남을 정도니 사람이 한 짓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천지를 흔드는 듯한 소리에 이어 검 모양의 구름이라니?
이대로 넘어가는 것도 석연치 않았다.
“천지맹까지 울릴 정도로 큰 소리와 저 구름이 관계가 있지는 않겠습니까?”
“그보다 그 소리를 낸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는 게 더 중한 문제라고 봅니다. 구름까지 그 사람과 연결 짓는 것은 지나친 비약 같아서요.”
태을상인은 검 모양의 구름을 자연 현상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인간의 공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까닭이다.
“역시, 그렇겠지요? 빈도의 상상이 조금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설사 천두마왕인 유명교주라 해도 저런 일은 할 수 없으리라.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천성 도사가 말했다.
“진인, 산 아래에 있는 집이 연 공자의 숙소입니다. 소리를 지른 사람이 그와 관계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흠! 그렇구려. 허면 그를 만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태을상인과 무무 진인의 기찰대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고는 서둘러 하산했다.
***
동편 사파인 거주 구역.
제법 규모가 큰 집의 객청에 중년 사내 셋이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십이마군의 일원인 귀영자군과 혈천진군, 그리고 학산 산채 채주 시산마도 혁무춘이다.
귀영자군이 거칠게 술잔을 비운 뒤 탄식했다.
“아아! 총순찰! 그 후레자식을 어떻게 해야 하나. 씨벌.”
총채주의 제자가 되어 십이마군의 이름을 얻은 뒤로 천하를 내려다보며 살았다.
그런 그에게 천지맹에서의 일은 혀를 물고 자결하고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것이었다.
“사형, 어차피 그놈은 오래 못 갑니다. 조금만 참으십쇼. 총채주님도 유명교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계십니다. 정파 놈들 뒤를 닦아 주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총채주님의 의향은?”
“주변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유명교와 타협해야 한다’는 말을 계속 올리고 있습니다. 유명교주가 이미 신화지경에 올랐으니 총채주님도 싸움을 길게 끌고 가지는 않으실 겁니다.”
“결국 아직 모른다는 이야기냐?”
“그래도 천지맹에 미련이 없으신 것만은 분명합니다. 총채주님은 우리가 유명교 쪽에 선을 대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별다른 말씀이 없지 않습니까? 그건 묵인하시는 겁니다.”
“흠! 묵인이라.”
“천하는 유명교를 중심으로 재편이 될 겁니다. 칠파일문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무림 세가는 이미 지리멸렬하지 않았습니까?”
“그 병신 같은 놈들에게는 관심 없다. 연적하와 심통, 이 빌어먹을 새끼들만 조지면 돼.”
“그 전에 그놈들을 떠받드는 병신들부터 교육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그놈들을 유명교에 넘길 때 말이 안 나옵니다.”
“어떻게?”
“연적하와 심통이 가식 떠는 꼴을 채주들에게 보여 주면 어떻겠습니까?”
“가식?”
“예, 그놈들이 요즘 협객 행세를 하고 다니는 것 같아서요. 진정한 녹림이 무엇인지 보여 주면 채주들도 생각을 달리할 겁니다.”
“그걸 어떻게 보여 준단 말이냐?”
“심통이 단골로 드나든다는 기루를 제대로 뒤집어 버립시다. 녹림이 언제 홍루 청루 가리며 놀았답니까? 여염집 아녀자도 자빠트리는 게 녹림인데.”
“끙…….”
귀영자군은 선뜻 그러자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대놓고 말은 못 했지만 솔직히 심통과 연적하의 눈치가 보여서다.
그가 망설이자 혈천진군이 계속해서 꼬드겼다.
“우리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그만 아닙니까? 색을 밝히는 미련한 놈에게 시키면 됩니다.”
“그런 놈이 있느냐?”
“있냐고요? 녹림의 태반이 그런 놈들입니다. 혁 채주, 누가 좋겠느냐?”
혈천진군은 가만히 있는 혁무춘을 끌어들였다.
“정주 황룡수채의 채주 혈해마도 적무인이 딱 그런 놈입니다. 길을 가다가도 아랫도리가 빳빳해지면 아무 여자나 끌고 가니까요.”
혁무춘은 지체없이 답했다.
어디 적무인뿐이랴!
자신도 평소에 그렇게 하고 있다.
이번에도 상대가 심통만 아니었다면 내가 하겠다고 나섰을 것이다.
마침내 귀영자군이 음산한 어조로 말했다.
“좋아. 녹림이 뭔지 제대로 보여 주자. 적무인을 기루로 보내 마음껏 즐기게 해라. 특히 월아라는 년을 꼭 맛보라 권하고. 크하핫!”
귀영자군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심통에게 복수도 하고, 채주들과 연적하도 반목하게 만들고,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