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87
287회. 너는 괜찮은 남자야
냄새가 올라오자 연적하는 살기를 거두고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하면서 왜 그렇게 설치고 다녔어? 하도 꼴리는 대로 살길래 굉장한 고수인 줄 알았잖아. 능력이 없으면 조신하게 살아야지.”
힘겹게 서 있던 채주 혈해마도 적무인이 입을 열었다.
“사, 살려 주십쇼.”
“누가 죽인대? 나 그렇게 잔인한 사람 아니야. 그래도 함부로 다리를 휘두르고 다닌 벌은 받아야겠지?”
말과 함께 연적하가 적무인의 사타구니를 힘껏 걷어찼다.
퍽!
순간 적무인은 ‘컥!’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뒤로 넘어갔다.
재빨리 따라붙은 연적하가 발로 그의 사타구니를 자근자근 밟았다.
“이게 문제야! 이게! 이런 건 적 채주를 위해서라도 없는 게 더 나아! 지금이야 나같이 착한 사람을 만나서 살았지만, 나중에 독한 사람 만나면 어쩔 거야? 응? 내가 도와줄게!”
“악! 윽! 캑…….”
적무인이 기절한 뒤에도 연적하는 두세 번을 더 밟은 뒤에야 물러섰다.
부채주 절영수 송하청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제 사타구니를 감쌌다.
“어딜 가려?”
연적하가 송하청의 얼굴을 후려쳤다.
철썩.
머리가 홱 돌아갔지만 송하청은 사타구니에서 두 손을 떼지 않았다.
“요, 용서해 주십쇼. 제발…….”
“네가 무슨 죄가 있다고 용서를 해? 약한 게 죄는 아니잖아. 안 그래?”
철썩. 철썩. 철썩.
송하청의 입술이 찢어져 피가 튀었다.
그래도 그의 두 손은 사타구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사타구니를 지키는 데 모든 걸 건 모양새다.
연적하가 흥미로운 눈으로 송하청을 보았다.
얼굴보다 사타구니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보니 애잔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세 번째 다리가 저지른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너 이름이 뭐야?”
“소, 송하청입니다.”
“그래, 송가야. 잘못은 가운데 다리가 했는데 왜 자꾸 얼굴을 들이밀어?”
“제, 제발, 용서해 주십쇼.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알았어.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거야. 나만 믿어.”
연적하가 벼락처럼 손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특별히 상대의 귀 부위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뻐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송하청의 상체가 휘청거렸다.
바닥과 천장이 빙글빙글 돌자 송하청은 두 손을 들고 허우적거렸다.
그 순간 연적하의 발등이 송하청의 사타구니로 파고 들었다.
푸악-.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송하청이 눈을 까뒤집고 뒤로 넘어갔다.
제대로 맞았는지 송하청은 단 한 번의 가격으로 정신을 잃었다.
연적하는 송하청의 사타구니도 꼼꼼하게 밟았다.
“이게 응? 다 너희를 위하는 일이야. 산채를 관리하려면 오래 살아야 하잖아. 아이고! 힘들어. 지금은 내가 원망스럽겠지만! 영차! 나중에 나에게 감사할 날이 올 거야.”
구석에서 훌쩍이던 월아와 금아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자신들을 겁탈한 사내들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오물과 피에 물든 남자들의 하체를 보면 동정이 들 정도다.
일을 끝낸 연적하의 시선이 문득 아래로 향했다.
발이 조금 눅눅하다 싶어서 보니 오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이거 뭐야?”
그는 발을 여기저기 비벼 댔다.
그래도 이미 배어 버렸는지 오물은 쉽게 닦이지 않았다.
보다 못해 대모(代母) 유월이 나서서 헝겊으로 닦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차중래가 허겁지겁 새 신발을 가지고 와서야 해결이 됐다.
그러는 동안 유월은 월아와 금아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기 위해서다.
한바탕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고요가 찾아왔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구천노도 심통이 중얼거렸다.
“공자님, 냄새라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가슴 두근거리는 기방이 한순간에 뒷간처럼 느껴지니…….”
“그 나이에도 가슴이 두근거려?”
“공자님이 아직 젊어서 모르시는데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아, 그러셔? 심 노인도 여색을 밝히다가 저 꼴 나지 않으려면 조심해.”
연적하가 턱으로 기절한 두 도적을 가리켜 보였다.
“흐흐. 저를 주도(酒道)도 모르는 저런 무식한 놈들과 비교하시다니요. 섭섭합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저를 밀치고 들어가신 겁니까? 제가 저런 놈들도 당해 내지 못할 것 같으셨습니까?”
“어? 아니야. 뒤에서 밀었어.”
“누가요?”
연적하가 차마 답을 못하고 머뭇거릴 때 십전무후 남궁연이 나섰다.
“나예요. 심 선배가 채주와 부채주를 건드리면 뒷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아,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구나.”
연적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 보니 심통에게 채주가 맞으면 보기가 이상할 것도 같았다.
“적하야. 아까 적무인이 한 말 기억나니?”
“무슨 말요? 하도 많은 말을 들어서…….”
“‘뭐가 잘못됐습니까? 녹림은 본래 그런 짓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라고 했잖아.”
“아, 그랬죠.”
“적무인은 미련한 사람이라 생각이 깊지 못하기로 소문났어. 보통은 윗사람이 화를 내면 무조건 수그리는데, 그는 도리어 따지듯 물었지. 녹림은 정파 위선자들과 다르다느니 어쩌느니. 곰 같은 그의 머리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는 게 이해가 안 가. 어쩌면 누군가 그를 사주했을지도 몰라.”
“정말요?”
“그러니 그를 깨워서 자초지종을 알아봐. 요즘 천지맹에서 녹림의 거취를 두고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잖아. 녹림에 대한 너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시도 중에 하나인 것 같아.”
“영향력을 약화시킨다고요?”
“네가 녹림을 천지맹으로 데리고 왔잖아. 천지맹에서 나가고 싶어도 네 눈치가 보여서 그럴 수 없을걸?”
“그것과 기루에서 이런 난장을 피우는 게 무슨 관계가 있다고요?”
“네가 보통의 녹림도들과 다르다는 걸 보여 주려고 한 것 같아. 녹림은 살인, 약탈, 강간에 대한 죄의식이 없어. 하지만 너는 다르잖아. 그걸 부각시켜서 녹림과 너의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겠다는 거겠지.”
“녹림이라고 다 나쁜 놈들만 있는 건 아닌데…….”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의형제들만 봐도 대부분 선량했다.
굶어 죽지 않으려고 산에 오른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왜 그런 게 문제가 될까?
그런 연적하의 생각을 안다는 듯 남궁연이 말했다.
“적하야. 내로라하는 녹림의 고수들 중에 너처럼 착한 사람은 없어. 그래서 너의 바른 행동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거야.”
“잘 모르겠지만 누님이 그렇다니까 그런 거겠죠? 일단 한 놈 깨워서 물어볼게요.”
연적하는 코를 쥐어 잡고 적무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적무인의 머리통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한참 만에 ‘끙’ 하고 앓는 소리와 함께 적무인이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린 적무인은 하체에서 밀려오는 극심한 고통에 부들부들 떨었다.
“적 채주.”
“으윽. 예, 예……. 크윽.”
“지금부터 묻는 말에 대답 똑바로 해. 대답 엉성하게 하면 한 번 더 밟는다.”
“으으. 마, 말씀하십쇼.”
적무인은 행여나 자신이 내는 신음으로 질문을 못 듣게 될까 봐 이를 악물고 참았다.
여기서 한 번 더 밟히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너 머리 나쁜 놈이라면서?”
“예, 예. 나쁩니다.”
“그런 놈이 왜 녹림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나를 가르치려고 했어? 누가 시켰어?”
“시킨 사람 없습니다. 크윽.”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던 남궁연이 끼어들었다.
“여기 오기 전에 누굴 만났느냐?”
“혀, 혁 채주를 만났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남궁연은 ‘흥!’ 하고 냉소를 쳤다.
학산 산채의 채주 시산마도 혁무춘은 귀영자군과 함께 이곳에서 시비를 일으켰던 자다. 보나 마나 그의 꼬임에 넘어가 이곳으로 왔을 게다.
“그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느냐?”
“그동안 따먹은 계집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믿어 주십쇼.”
그의 말속에서 혁무춘의 계획을 짐작한 남궁연이 슬쩍 넘겨짚었다.
“그가 월아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하더냐?”
“……사내를 모르는 천하절색의 기녀라고 했습니다.”
“곰같이 미련한 놈. 월아는 구천노도가 아끼는 예기(藝妓)다. 혁무춘과 귀영자군은 어제 이곳에서 월아를 범하려다가 구천노도에게 제지당했지. 혁무춘이 왜 색을 밝히는 너에게 월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겠느냐?”
“…….”
끙끙거리던 적무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뒤늦게 자신이 혁무춘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남궁연이 연적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연적하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누님 말씀대로 혁무춘이 뒤에 있었네요. 그놈 혼자서 꾸민 일은 아니겠죠?”
“그래. 심 선배와 네가 관계된 일이니 귀영자군의 허락이 있었을 거야.”
“와아. 귀영자군 이 치사한 놈. 십이마군의 첫째라는 놈이 그렇게 용렬하냐.”
“공자님, 본래 녹림은 그런 곳입니다. 서열이 높을수록 잔머리가 뛰어나지요.”
“알아. 아는데, 그래도 짜증 나네. 총채주님의 제자라고 해서 내심 기대했는데.”
“흐흐. 십이마군에게 기대라니요?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마두들입니다. 다른 마두들도 공자님 같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십쇼.”
“그래. 내가 좀 훌륭하긴 하지.”
“흐흐. 그런 말씀은 자기 입으로 하지 않는 게 더 좋습니다요.”
“어허. 남들이 안 해 주니까 나라도 하는 거 아냐. 주변에서 그런 소리를 좀 해 봐. 내가 스스로 그런 말을 하나.”
어릴 때부터 학대받은 연적하는 칭찬이란 걸 받아 본 적이 없다.
어쩌다 녹림에 발을 담근 뒤로는 더더욱 그렇다.
남궁연은 농담 속에 담긴 그의 갈망을 읽었다.
“적하야.”
“네.”
“너는 정말 훌륭하고, 괜찮은 남자야.”
“헤헤. 고마워요. 누님.”
연적하는 ‘남자’ 소리에 괜히 가슴이 설렜다.
그는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남궁연이 듣기라도 할까 봐 호기롭게 외쳤다.
“자자. 그럼 이제 혁무춘 이 여우 같은 놈을 잡으러 가요!”
그때 심통이 흥분한 그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공자님.”
“왜?”
“여기서 일을 더 벌리지 마시고, 혁무춘도 풍지산에 데리고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놈도?”
“여기서 혁무춘까지 두드려 잡으면 공자님만 더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아서요.”
“이상한 사람?”
“적무인과 송하청은 현장에서 목격했으니 화가 나서 그랬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 배후로 혁무춘을 지목해 건드리면 귀영자군이 바라는 대로 될 것 같아서요.”
한때 구밀복검으로 명성을 떨치던 심통은 음모나 모략 따위에 밝았다.
“월아와 금아의 일은 이쯤에서 덮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크게 키워 봤자 공자님의 협행만 드러나는 거잖습니까?”
뒤늦게 남궁연이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심코 ‘남자’라는 말을 했다가 가슴이 콩닥거려서 중요한 걸 놓칠 뻔했다.
“그래. 적하야. 어쩌면 그거야말로 귀영자군이 바라는 일인지도 몰라.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처리하려면 풍지산으로 데리고 가는 게 나을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닌 남궁연의 말이다.
연적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그놈도 데리고 갈게요.”
현재 칠리하촌에 있는 녹림에서 연적하의 말은 곧 법.
그렇게 해서 풍지산으로 가는 녹림 고수가 한 사람 더 추가됐다.
***
산서성.
교구현.
풍지산.
해거름 무렵.
선녀암의 신당에 앉아 있던 팔황신모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내 청류신과 약속한 사십구 일이 지났다.
팔황신모는 한 손에 금황자(金晃子, 방울)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풍지산 위로 바람처럼 달려 올라갔다.
구부능선쯤 오르자 바위로 된 협곡이 나타났다.
팔황신모는 그중 수직으로 깎은 듯한 거대한 바위 앞에 멈춰 섰다.
일전에 청류신을 불러낸 자리다.
핏빛으로 붉게 물든 석양 속에서 팔황신모는 나직이 ‘육명진언’을 외웠다.
“옴 나넨 카야 네바타 데 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