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98
298회. 희망은 있는 거야
모두가 십전무후 남궁연의 얼굴만 보았다.
사실 무상도제 장무덕이 갑자기 사라진 지금 믿고 따를 만한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일단 사방으로 흩어져 장 대협을 찾아보기로 해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십 리(약 4킬로미터) 정도만 조사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해요.”
남궁연의 말에 곤륜삼선과 심통, 그리고 귀영자군과 혁무춘이 둘씩 짝을 지었다.
연적하는 남궁연과 함께했다.
염탐조 모두가 고수들인지라 조사는 한 시진(2시간)이 되기 전에 끝났다.
십 리 안쪽에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남궁 소저, 장 대협께서 풍지산으로 가셨을까요?”
태을 선인의 물음에 남궁연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서는 그런 것 같아요. 왜 혼자서 풍지산에 가셨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잠시 뭔가 생각하던 남궁연이 태령 선인을 보았다.
“태령 선인께서는 어제 점심때 언령에 관해 말씀하셨죠? 왜 그러셨던 거죠?”
“장 대협이 최근 며칠 동안 멍하니 있는 모습을 자주 보이셨습니다. 어제는 특히 심했지요. 표정이 다른 날보다 더 좋지 않기에 슬쩍 말을 걸었더랬습니다. 그랬더니 교주가 한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아! 그래서 언령 이야기가 나왔군요?”
“그렇습니다. 장 대협께서는 잠깐 말을 섞은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만. 사실 술법이란 게 그렇지 않습니까? 치명적인 술법일수록 상대가 알지 못하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태을 선인이 물었다.
“사제는 장 대협이 풍지산에서 교주의 언령에 당했다고 생각하는가?”
“장 대협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본래 언령은 감정의 기복이 큰 상태에서 잘 걸립니다. 그리고 머리가 좋은 사람들도…….”
태령 선인은 말끝에 남궁연을 슬쩍 쳐다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언령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눈치만 살피고 있던 귀영자군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허면 장무덕이 정말 언령이라는 술법에 당한 것이오?”
“빈도가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그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구현까지 와서 말없이 돌아갈 분은 아닙니다.”
태령 선인의 지적에 귀영자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교구현까지 와서 달아났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럴 사람이었다면 염탐조에 자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책 논의는 축시 말(오전 3시)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좀처럼 모두를 만족시킬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보다 못한 남궁연이 회의를 중지시켰다.
“이러다가는 날이 밝도록 같은 얘기만 할 것 같네요. 여기서 돌아갈 거라면 모를까? 풍지산으로 가려면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해요. 이만 회의를 끝내는 게 좋겠어요.”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시지요.”
“쉽시다.”
같은 소리의 반복에 지쳐 있던 곤륜삼선은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곤륜삼선과 귀영자군, 혁무춘이 잠자리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하나 둘 흩어지자 연적하가 남궁연에게 바싹 붙었다.
“누님.”
“응?”
“정말 장 대협이 언령에 당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면, 믿기 어렵다 해도 믿어야 해.”
구천노도 심통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믿는다는 말씀이구려.”
남궁연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연적하가 말했다.
“심 노인은 그만 가서 자. 늙은이가 몸 생각도 해야지.”
“본래 늙으면 새벽잠이 없습니다.”
“아직 새벽 아니거든?”
“풍지산을 지척에 두고 장무덕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저만…….”
“쓸데없는 걱정은 내가 다 해 줄 테니까 그냥 자라고.”
“끙!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날도 더운데 웬만하면 좀 떨어져 앉으시지요?”
“아, 진짜!”
연적하가 눈을 부라렸다.
그제야 심통은 슬금슬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몸을 뉘었다.
오늘따라 칠리하촌에 있는 월아와 금아가 그립다.
그는 금아가 잘 타던 곡조를 흥얼거리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누님, 교주는 왜 장 대협에게 술법을 걸었을까요?”
질문과 함께 연적하는 슬그머니 남궁연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남궁연도 손을 빼지 않았다.
“그건 장 대협을 만나 봐야 알 것 같아.”
남궁연은 워낙 사안이 큰 탓에 속단하지 않았다.
잘못된 선입견으로 염탐조와 장무덕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까닭이다.
연적하는 더 이상 장무덕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궁금하긴 했지만 이미 앞에서 했던 말들이 반복될 게 뻔해서다.
사라진 장무덕은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마친 사람들의 입에서는 연신 한숨이 흘러나왔다.
짐을 꾸린 귀영자군이 슬쩍 다가와 말했다.
“총순찰님, 장무덕도 달아난 것 같은데 계속 염탐을 해야 합니까?”
“무슨 소리야? 누가 달아났대?”
“달아나지 않았으면 더 문제 아닙니까? 장무덕과 같은 고수가 납치를 당했을 리도 없고, 제 발로 풍지산에 먼저 갔다는 말인데. 그건 천지맹을 배신…….”
“배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당신이나 느닷없이 칼을 날리지 마. 내가 자다가도 그날 일을 생각하면 아주 그냥, 확!”
연적하가 쏘아보자 귀영자군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용서해 주십쇼.”
“됐고, 염탐할지 말지는 내가 알아서 결정할 거니까 나대지 마.”
“예!”
귀영자군은 군말 없이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심통이 나섰다.
“공자님, 귀영자군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닙니다. 만약 장무덕이 제 발로 교주를 찾아간 거라면……. 염탐에 관한 정보도 이미 전해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만두자고?”
“어이쿠! 그럴 리가요. 그저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사 하는 뜻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 누님이 가자면 가고 안 간다면 안 갈 거니까.”
“아, 예. 그러시겠지요.”
심통이 떨떠름한 얼굴로 보자 연적하가 설명하듯 말했다.
“심 노인,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아주 복잡한 일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알아?”
“어떻게 하면 됩니까?”
“마음. 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연적하가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마음이 풍지산으로 가라고 시키던 가요?”
“아니, 누님만 따라가라고 그러네?”
“그러니까 머리를 비우고, 남궁 소저만 졸졸 따라가겠다는 말씀인 거죠?”
“지금 나 비웃은 거야?”
“제가요? 그럴 리가요? 제게도 십전무후 같은 여자가 있다면 군말 없이 따를 겁니다. 아름답지, 머리 좋지, 손 잘 잡아 주지…….”
“죽여 달라고 고사를 지내는구나? 그래, 오늘 끝을 보자.”
연적하가 펄펄 뛰자 심통이 곤륜삼선 쪽으로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어이쿠! 왜 그러십니까? ‘누님 손에서 계향초 향기가…….’ 으헉!”
얼굴로 검이 날아오자 심통은 땅바닥을 굴렀다.
검은 심통의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심통은 네발로 뛰어 곤륜삼선의 뒤에 숨었다.
연적하가 검결지를 돌리자 검이 곤륜삼선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나와 이 늙은이야! 쥐새끼같이 남의 이야기나 엿듣고! 오늘이 제삿날인 줄 알아!”
“죄송한데 엿들은 게 아니라 그냥 들린 겁니다! 귓구멍이 뚫렸는데 어찌 소리를 안 들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아무 소리도 안 듣게 죽으라고!”
휘이이잉-.
연적하가 흥분하자 검이 빠르게 돌았다.
그 바람에 곤륜삼선까지 이기어검이 만들어 낸 검풍에 갇히고 말았다.
곤륜삼선은 이처럼 절륜한 이기어검을 본 적이 없는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본래 이기어검이란 기로 검을 다스리는 것이다.
하지만 공력의 깊이나 이해도에 따라 운용은 천차만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네 사람 주위를 이렇듯 가까이서 돌게 하다니?
그것도 검풍이 일어날 정도로?
태무 선인은 당황한 가운데서도 태을 선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사형, 이와 같은 이기어검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없다.
-정말 구천노도를 죽이려는 걸까요?
-설마 그러기야 하겠느냐?
하지만 태무 선인은 사형이 반신반의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럴 정도로 연적하가 만들어 낸 분위기는 흉흉했다.
그때 남궁연이 말했다.
“장난이 심하구나. 삼선들께서 놀라시겠다.”
남궁연의 말과 동시에 곤륜삼선의 주위를 맴돌던 검이 사라졌다.
연적하가 남궁연과 함께 사당 안으로 들어가자 심통이 느릿하게 빠져나왔다.
그의 얼굴은 태평해서 조금 전까지 위기에 놓여 있던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태무 선인이 슬쩍 다가가 물었다.
“심 거사, 괜찮습니까?”
“그런 건 왜 묻소?”
“위태로운 상황에 비해 표정이 편안해 보여서요.”
“위태롭긴 개뿔, 그건 당신이 우리 공자님의 무위를 몰라서 하는 소리요.”
“연 공자님의 무시무시한 이기어검은 잘 보았습니다.”
그러자 심통이 피식 웃었다.
“연 공자님은 이기어검으로 삼십 장(약 90미터) 밖의 물고기도 건져 올리시는 분이오. 그것도 황하에서. 그런 분이 작정하면 나 하나를 찍어 내지 못하시겠소? 당신들 뒤가 황하의 탁류보다 낫다고 생각하오?”
황하의 흙탕물을 떠올린 태무 선인은 고개를 저었다.
심통의 말이 사실이라면 조금 전의 이기어검은-남궁연의 말처럼-장난이리라.
그제야 심통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나다니는 게 이해가 됐다.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태을 선인이 기막힌 얼굴로 중얼거렸다.
“실로 엄청난 장난이구먼.”
등짐을 지고 한쪽 구석에 서 있던 혁무춘이 말했다.
“허! 총순찰님의 무위가 저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어찌하시렵니까?”
“무얼 어찌한단 말이냐?”
차갑게 쏘아붙였지만 귀영자군의 눈에 맺혀 있던 독기는 쪽 빠져 있었다.
검풍까지 일으킬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이기어검에 질린 까닭이다.
그 정도로 세밀하고 강하게 이기어검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손에 꼽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런 사람을 기습한 것으로도 모자라 다음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니?
머리카락이 쭈뼛 들고 일어났다.
귀영자군은 머리를 흔들어 마지막 한 톨의 미련까지도 털어 냈다.
주변을 살피던 혁무춘이 전음으로 답했다.
-그를 유명교에 넘기기로 하신 것 말입니다.
-조용히 관망하는 게 낫겠다.
-허면 총채주님께 더는 아뢰지 말까요?
-입을 아낄 필요는 없겠지.
혁무춘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총순찰을 유명교에 넘기기 위한 공작은 계속하라는 말이었다.
“누님은 그래도 갈 거죠?”
“응. 장 대협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가야만 해. 만약 우리가 이대로 돌아가면 천지맹에 내분만 일어날 거야.”
무상도제 장무덕은 정파를 대표하는 고수다.
그런 그가 풍지산 인근에서 사라졌으니 수많은 억측이 난무할 게 뻔했다.
“내분요?”
“총사가 이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을 테니까. 그 사람은 장 대협뿐 아니라 염탐조까지도 의심받게 만들걸? 곤륜삼선을 빼면 모두가 그와 척을 진 사람들이니 좋은 기회잖아.”
“그렇네요.”
“총사가 염탐조를 물어뜯으면, 가뜩이나 구심점이 약한 천지맹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 거야.”
“누님은 천지맹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단 한 사람이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희망은 있는 거야.”
“그럼 풍지산에 가야겠네요?”
“네 생각은 어때?”
“알잖아요. 내 희망은 누님이라는 거.”
“바보.”
남궁연이 연적하의 머리를 ‘툭’ 건드렸다.
한순간 몽롱해진 연적하는 부지불식간에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균형을 잃은 남궁연이 연적하의 품에 안겼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계향초 향기에 연적하가 취해 있을 때다.
“안 나오고 뭐 하십니……. 헉! 못 봤습니다!”
심통의 난입에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이 떨어졌다.
팔자걸음으로 들어왔던 심통이 화살 맞은 멧돼지처럼 요란하게 튀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