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01
301회. 왜 하늘을 가렸다고 생각하세요?
무상도제 장무덕은 이를 악물고 몸을 뒤틀었다.
그러나 거미줄에 몇 겹이나 매인 몸뚱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흐으으-.”
장무덕의 한쪽 콧구멍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언령의 주박에서 해방되었지만 내력이 남아 있지 않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제정신으로 죽음을 맞이하려니 원통하고 분해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쿵쿵’거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던 장무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인면지주가 물어뜯지 않아서다.
조용해진 걸 보면 승패가 갈린 모양인데 왜 자신을 그대로 두는지 모르겠다.
거미줄에 감겨 앞이 보이지 않으니 도통 알 수가 없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그의 귓가로 뜻밖의 음성이 들렸다.
“장 대협, 지금 거미줄을 떼어 볼 텐데 아파도 좀 참아 봐요. 알았죠?”
‘연적하?’
상대에 대한 존경심이 느껴지지 않는 저 말투는 분명 연적하의 것이었다.
저들도 결국 풍지산에 온 모양이다.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깐, 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언령에 당해서 그랬다고는 하나 저들을 배신할 뻔했던 일이 떠올라서다.
손으로 열심히 거미줄을 잡아뜯던 연적하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와아! 더럽게 안 떨어지네. 이러다가 눈꺼풀이고 머리털이고 다 뜯어지겠는데? 어쩌지?”
연적하가 고민하고 있을 때 구천노도 심통이 다급한 소리로 말했다.
“공자님, 협곡 안에서 인면지주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뭘 하든 빨리 하십쇼.”
“거 남의 일이라고 재촉 좀 하지 마. 이게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야.”
“정 안 떨어지면 아까처럼 그냥 태워 버리십쇼.”
“그러다가 장 대협 머리털까지 홀랑 타버리면?”
“괜히 눈꺼풀 찢어지는 것보다 머리털 조금 그을리는 게 나을걸요?”
“…….”
연적하가 복잡한 눈으로 장무덕의 전신에 감긴 거미줄을 보았다.
접착력이 너무 강해 여린 피부는 그냥 찢어질 것 같았다.
“공자님! 뭘 멍하니 보고만 계십니까! 인면지주가 떼거리로 오고 있다니까요!”
심통의 재촉에 연적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장 대협, 삼매진화로 거미줄을 녹여 볼게요. 뜨거워도 조금만 참아요. 알았죠?”
장무덕은 흠칫 몸을 떨었다.
자신에게는 몸을 지킬 만한 내력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지금 상태에서 타인의 삼매진화는, 일반적인 불보다 더 뜨거울 터였다.
연적하는 장무덕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의 발을 잡았다.
그리고 심통이 산을 불태울 정도라고 평한 삼매진화를 일으켰다.
화르르륵-.
발등에서 시작된 시뻘건 불길이 장무덕의 온몸을 휘감았다.
그런데 어째 처음의 삼매진화보다도 더 강해진 모양새다.
마치 기름 먹인 장작에 불이 붙은 느낌이랄까?
장무덕을 칭칭 감고 있던 손가락 굵기의 거미줄들이 단번에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
“크윽!”
장무덕의 비명에 연적하는 황급히 손을 뗐다.
다행히 삼매진화로 일으킨 불길은 이내 가라앉았다.
메케한 탄내가 진하게 맡아지자 연적하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거미줄 말고도 태워 먹은 게 제법 있는 모양이다.
그때 심통이 호들갑을 떨었다.
“공자님! 튀어야 합니다!”
놀란 연적하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츠츠츠츠츠-.
협곡에서 쏟아져 나온 인면지주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장 대협! 뛸 수 있겠어요?”
“못하네.”
“그럼 내가 메고 갈게요.”
연적하는 숯덩이가 된 장무덕의 머리통을 애써 외면하고 그를 둘러멨다.
곤륜삼선과 십전무후 남궁연이 즉시 돌아서 달려갔다.
연적하는 앞뒤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남궁연의 뒤만 보고 뛰었다.
경공술까지 동원해 일각(15분) 정도 달렸을까?
뒤를 힐끔거리던 시산마도 혁무춘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헉! 헉! 이제 더 이상 쫓아오지 않습니다! 조금만 쉬었다가 가시죠!”
공력이 가장 약한 혁무춘의 숨넘어가는 소리에 선두가 멈춰 섰다.
연적하가 슬그머니 장무덕을 내려놓았다.
“고맙네.”
“아이고, 별말씀을…….”
자책감에 사로잡힌 연적하는 겸양의 말을 했다.
지금 장무덕은 개방 방도보다 더 거지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특히나 머리 쪽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 정도였다.
털이란 털은 죄다 새까맣게 타 버려서 안쓰러움을 넘어 혐오감마저 일어났다.
얼굴의 완성은 털인가 보다.
풍성한 머리털과 하늘로 올라간 짙은 눈썹, 그리고 관우와 같던 수염이 사라진 그는 개백정처럼 보였다.
심통이 다가와 장무덕을 보고는 한마디 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탔는데요? 공자님이 너무 힘을 쓰신 거 아닙니까?”
심통의 뻔뻔한 지적질에 연적하는 열불이 났지만 꾹 참았다.
“아냐. 힘은 많이 쓰지도 않았어.”
“그런데 왜 저 모양입니까? 처음 공자님이 일으켰던 삼매진화보다 훨씬 강력하던데요?”
“몰라. 나는 분명히 힘을 뺐다고. 이건 다 심 노인 책임이야. 애초에 태우라고 한 것도 심 노인이잖아.”
“저는 살짝 그을리기만 할 줄 알았습니다. 저렇게 숯을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아, 진짜, 아니라니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둘의 다툼을 지켜보던 남궁연이 다가왔다.
“두 사람 잘못이 아니에요. 인면지주의 체액에는 휘발성 기름 성분이 있어요. 장 대협의 몸에 묻은 체액이 삼매진화에 반응해서 그랬던 거예요.”
“거봐! 나는 힘을 뺐다니까!”
연적하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아까부터 묵묵히 듣고 있던 장무덕이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연 공자, 나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그러니 머리털 조금 태웠다고 너무 미안해하지 말게.”
“아, 예, 그럼 다행이고요.”
연적하는 그러면서도 연신-개처럼 그슬려진-장무덕의 머리통과 하관을 힐끔거렸다.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고도 고맙다고 할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잠시 후 태을 선인이 남궁연을 찾아왔다.
“허허. 본래 팔문진이 이렇게 넓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가 달려온 거리면 강성진까지 가고도 남을 정도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팔문진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육정육갑의 신력이 이렇게 작용할 줄은 몰랐네요. 이건 마치 공간을 비틀어 놓은 느낌이에요.”
“소저께서는 이 진법에 생문이나 휴문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없어요.”
“허면 어떻게 나갈 생각이신지요?”
“천복자의 팔문팔상진이 비틀어 놓은 것은 땅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직선으로 달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눈은 주변 환경에 지배를 받아요. 아마도 같은 자리를 뱅뱅 돌았을지도 몰라요. 방향을 모르니까.”
태을 선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그게 아니고서는 말이 되지를 않는다.
“저도 처음에는 진법을 파훼해 볼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신력을 경험하고 나니 엄두가 나질 않네요. 고지식하게 신력으로 만든 진법을 해체하려고 하기보다는, 외곽으로 나가 길을 뚫어보려고요.”
“아! 팔문을 찾는 게 아니라…….”
“네, 맞아요. 저렇게 넓고 흉한데 어느 세월에 팔문을 찾겠어요? 일직선으로 나가다 보면 분명 진식의 외곽에 닿을 거예요.”
“하지만 조금 전에 ‘방향을 몰라서 직선으로 갈 수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남궁연이 희고 고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천복자가 왜 하늘을 가렸다고 생각하세요?”
“아!”
그제야 태을선인은 그녀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저 운무로 막힌 하늘 너머에는 방향을 가르쳐 줄 만한 것들이 있다.
밤하늘의 별들처럼.
“곤륜의 술법 중에 신장(神將)들을 다스리는 방법이 있겠지요?”
“아무렴요. 육정육갑의 신장들보다 강한 천신주(天神呪)라면 운무를 열 수 있을 겁니다.”
태을 선인의 얼굴에 생기가 깃들었다.
천신주는 천신의 능력으로 삿된 귀신들을 제압하는 주술이다.
육정육갑이라고 해 봐야 천신 앞에서는 태양 앞의 촛불과도 같다.
‘저 운무가 신력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천신주로 제거할 수 있고말고.’
그는 즉시 몸을 돌려 뒤에 서 있던 태무 선인과 태령 선인에게 말했다.
“사제들도 들었겠지? 지금 즉시 천신주로 하늘을 덮고 있는 운무를 걷어 내야겠다.”
“알겠습니다.”
“시작하시지요.”
이윽고 곤륜삼선은 오른손을 하늘로 뻗어 서로의 손이 맞닿게 했다.
그리고 전신의 법력을 끌어모으며 천신주를 암송했다.
“……일체천신 속차강림 옴옴급급 여율령 사바하(……一切天神 速次降臨 唵唵急急 如律令 娑婆詞)!”
세 사람의 손이 모인 곳에서 하늘로 서기가 솟아올랐다.
하얀 운무가 조금씩 사방으로 밀려났다.
처음에는 사람 밤톨만 하던 공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졌다.
운무가 한 아름 정도로 벌어지자 새파란 하늘이 언뜻 드러났다.
마치 하얀 화선지에 파란 점이 콕 찍힌 것 같았다.
사람들의 입에서 ‘와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 밀려났던 운무가 움찔움찔 제자리로 돌아왔다.
곤륜삼선과 운무의 줄다리기는 근 일각(15분)이나 이어졌다.
‘아아!’
지켜보던 남궁연은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곤륜삼선의 법력으로는 한 아름 정도의 크기가 최대인 것 같았다.
하지만 저 정도 크기로는 별자리를 잘 볼 수가 없다.
‘이를 어쩐다.’
그녀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천신주의 소리가 점점 약해졌다.
잠시 후 주문이 완전히 멈추었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하얀 운무로 뒤덮였다.
“헉헉! 우리로서는 일각이 한계인 것 같습니다.”
말과 함께 태을 선인은 손등으로 얼굴에 가득한 땀을 닦아 냈다.
“휴우! 이 짓도 오랜만이로구먼.”
“저는 주문을 잊은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하니까 되긴 되네요. 허허허.”
태무 선인과 태령 선인이 물에 빠진 생쥐의 꼴을 하고 한마디씩 했다.
남궁연은 결과가 실망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고생들 하셨어요. 그런데 천신주를 암송하면서 움직이실 수 있겠어요?”
“조금 부담은 되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법력과 몸을 쓰는 일은 다르니까요. 정신을 집중시킬 수만 있으면 됩니다.”
남궁연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그나마 움직이며 주문을 외울 수 있다니 다행이다. 곤륜삼선을 남겨 두고 갈 수는 없으니 말이다.
“조금 전에 하늘을 보니 바깥은 아직 낮인 것 같더군요. 해가 진 뒤 별자리를 보고 움직이도록 하지요. 아, 참, 세 분이 함께 주문을 외우시던데. 한 분이 하기에는 어려운 일인가 보죠?”
“거리가 원체 멀어서 셋이 합력해야 했습니다. 한 사람의 법력으로 하늘에 닿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서요.”
“아! 그랬군요. 일각 이후에는 어느 정도 쉬셔야 법력을 회복할 수 있나요?”
“일다경(약 20분)이면 충분합니다.”
법력은 정신력과 비슷해서 제대로 쉬기만 하면 어느 정도 재충전이 가능했다.
남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움직인 시간만큼 쉬어야 한다는 소리다.
심통이 슬쩍 물었다.
“소저, 그럼 지금은 쉬어도 되는 거요?”
남궁연은 잠시 시간을 계산했다.
팔문팔상진에 들어온 게 미시 초(오후 1시)다.
그 뒤로 지금까지 반 시진(1시간) 정도 소요되었으니 넉넉잡아도 미시 말(오후 3시)은 되었을 게다.
별자리를 잘 보려면 적어도 술시 말(오후 9시)은 돼야 한다.
“밤새 움직여야 하니 미리 쉬어 두는 게 나을 거예요. 세 시진(6시간) 후에 이동할 테니 그때까지 쉬세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철푸덕 주저앉았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지간히 힘들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의 안색을 찬찬히 살피던 남궁연이 장무덕에게 다가갔다.
“장 대협,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네. 보기에는 이래도 내상을 입지 않았으니 조금 쉬고 나서 돕도록 하지. 그리고, 미안하게 됐네. 내가 뭐에 씌웠던 모양이야.”
순간 남궁연은 장무덕이 언령에서 벗어났음을 알았다.
“자력으로 언령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해내셨군요.”
그녀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장무덕을 보았다.
어쩌면 그는 머지않아 그토록 바라시던 신화지경에 들어설지도 모르겠다. 언령을 극복한 마음 상태라면 그러고도 남음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