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02
302회. 산의 정괴(精怪) 망량(魍魎)
아홉 명의 염탐조들은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거나 누워 휴식을 취했다.
말이 세 시진(6시간)이지 팔문팔상진 안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알 수가 없다.
하늘이 보이질 않아서다.
이리저리 뒤척거리던 구천노도 심통이 옆에 누워 있는 연적하를 슬쩍 보았다.
“공자님.”
“왜.”
“안 주무십니까?”
“내가 자던 시간이 아닌가 봐. 잠이 안 와.”
“진법이라는 거 생각보다 덜 무섭네요? 불이 떨어지고, 파도가 밀려오고, 땅이 갈라지고, 그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쉴 자리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가?”
연적하가 솔깃해하자 십전무후 남궁연이 끼어들었다.
“쉴 수 있을 때 쉬는 게 좋아. 아까 곤륜삼선이 팔괘가 중첩되어 있다고 한 말 기억나?”
“예.”
“그건 그만큼 변화가 심하다는 뜻이야. 우리가 쉬고 있는 이 길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라. 세 시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쉬라고 했던 거지, 이곳이 절대적으로 안전하니까 쉬라고 한 건 아니야.”
“심 노인 들었지? 쉴 수 있을 때 쉬어 둬.”
심통의 말이 씨가 되었던 것일까?
갑자기 땅거죽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길게 드러누워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궁연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변화가 있으려나 보네요. 곤륜삼선께서는 새로운 게 보이면 말씀해 주세요.”
그녀의 말에 곤륜삼선은 즉시 신안통을 펼쳤다.
이윽고 태무 선인이 동쪽을 가리켰다.
“저곳에 네 개의 귀화가 타오르고 있습니다.”
“거리와 모양을 알려 주세요.”
“거리는 오십 장(약 150미터) 앞이며, 밥주발을 거꾸로 엎은 형상입니다.”
“호진(虎陣)이군요.”
“귀화가 오른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습니다.”
“지금 이동할게요. 곤륜삼선께서는 또 다른 귀화가 나타나면 말씀해 주시고요.”
말을 마친 남궁연은 지체없이 왼쪽으로 내달렸다.
염탐조의 고수들은 꼬리를 물고 그녀의 뒤에 따라붙었다.
콰르르르-.
그들이 떠난 자리가 아래로 푹 꺼졌다.
뒤이어 잇달아 사방 십 장(약 30미터)이 주저앉았다.
일각(15분)쯤 달렸을까?
이번에는 태을 선인이 소리쳤다.
“정면 삼십 장(약 90미터) 앞에 두 개의 귀화가 일자로 누워 있습니다!”
그는 남궁연이 묻기도 전에 귀화의 개수는 물론 거리와 생김새까지 말했다.
“알았어요! 곤륜삼선께서는 좌우측을 확인해 주세요! 뭐가 보이나요?”
“좌측에 일자로 뻗은 귀화 세 개가 보입니다!”
“우측에도 일자로 뻗은 귀화 세 개가 있습니다!”
태무 선인과 태령 선인이 동시에 외쳤다.
“이제 곧 화기(火氣)가 몰려올 거예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세요!”
그들이 십여 장(약 30미터)을 더 전진할 때다.
돌연 강풍과 함께 좌우측에서 시커먼 연기가 훅 하고 밀려들었다.
메케한 것이 호두산의 산불을 연상케 했다.
지면이 내려앉는 걸 본 사람들은 바로 앞사람의 뒷모습에 의지해 달렸다.
사방이 연기로 가득 찼지만 머뭇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휘리리릭- 휘익- 퍼엉!
불붙은 통나무가 날아다니다가 저들끼리 부딪쳐 불꽃을 튀었다.
무상도제 장무덕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허어! 이거야말로 초열지옥이 따로 없구나!’
잠깐 쉬면서 내력을 회복한 덕분에 살았다.
갑자기 어디서 이런 불덩어리가 밀려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남궁연만 바라보고 뛴다는 게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라웠다.
‘과연 십전무후로구나!’
아직 화마를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우왕좌왕하다가 타 죽었을 게다.
시커먼 재를 뒤집어쓴 심통이 물었다.
“소저! 얼마나 더 가야 하오?”
“다 왔어요! 오른쪽, 왼쪽, 어디가 마음에 드세요?”
갑작스러운 남궁연의 질문에 심통은 버벅거렸다.
“외, 아니, 오른, 아니…….”
그는 자신의 말 한마디에 생사가 갈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 갈팡질팡했다.
연기 사이로 언뜻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왼쪽으로 갈게요!”
남궁연은 말과 동시에 왼쪽 길로 몸을 날렸다.
앞사람 등만 보고 달리던 여덟 명의 고수들도 좌측으로 뛰어들었다.
순간 그들 앞에 거대한 초원이 나타났다.
살갗을 찌르던 뜨거운 바람과 메케한 연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염탐조 고수들은 갑자기 변한 풍경에 다들 눈만 끔뻑거렸다.
초원 끝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 길게 자란 풀들이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스스스스-.
장무덕은 기기묘묘한 현상에 놀라 저도 모르게 물었다.
“남궁 소저, 이것이 정말 팔문팔상진의 공능인가?”
“맞아요.”
“진법에 천지자연을 다 담아내다니 놀랍군.”
“사람의 몸에도 천지의 조화가 깃들어 있는데 진법이라고 안 될 이유는 없지요.”
“그런가, 과연!”
장무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지고, 더 큰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다.
사사사삭-.
멀리서 풀잎 스치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남궁연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주의하세요! 이곳은 호진의 끝이자 중심이에요. 강력한 괴수가 등장할지도 몰라요.”
“괴수라고요?”
연적하의 물음에 남궁연이 답했다.
“아까 협곡에 인면지주가 있었으니, 이곳에도 문을 지키는 뭔가가 있을 거야.”
“혹시 협곡에도 문이 있었습니까?”
태을 선인이 남궁연을 힐끔 바라보았다.
곤륜삼선들도 기문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호진’과 ‘문’이라는 말에 협곡을 떠올린 것이다.
“그곳은 사진(蛇陣)이에요. 뒤에 인면지주를 달고 협곡에 들어갔다면 빠져나가기 어려웠을 거예요. 하늘을 관측하기도 힘들고요. 그래서 물러났던 거예요.”
태령 선인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소저, 허면 이곳에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진 앞에 인면지주가 있었으니 호진 앞에도 그 못지않은 괴물이…….”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다.
혁무춘의 앞에 있던 풀이 갈라지며 뭔가 솟구쳐 올랐다.
촤아아-.
그것은 얼핏 거대한 사마귀처럼 보였다.
일 장(약 3미터)에 달하는 길이의 사마귀가 낫 같은 앞발을 혁무춘에게 휘둘렀다.
쉬익- 쉬익-.
대경실색한 혁무춘은 발도와 동시에 앞발을 쳐 냈다.
쩡-.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미처 공력을 싣지 못했던 모양이다.
혁무춘의 도에 맞았음에도 앞발은 잘리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발이 혁무춘의 목을 베어 왔다.
정체절명의 순간, 귀영자군이 혁무춘의 뒷덜미를 뒤로 잡아당겼다.
스걱-.
목 대신 어깨가 길게 베어졌다.
황당함과 수치스러움으로 혁무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런 씨버럴 것이!”
걸죽한 욕설과 함께 혁무춘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의 성명절기인 귀령도법 십삼식이 사마귀를 찍었다.
콰콰콰콱-.
빛살처럼 뻗어 나간 도기가 사마귀의 앞발을 툭툭 잘랐다. 이어진 공격에 사람 허리통만 한 목이 성둥 잘려 나갔다.
목이 잘리고도 사마귀는 두 개의 뒷발로 주변을 연신 내리 찍었다.
퍽. 퍽. 퍽.
칼날 같은 발톱에 초원이 뒤집어지며 속살을 드러냈다.
머리를 잃고도 날뛰던 사마귀는 반 각(약 7분)이 지난 뒤에야 픽 쓰러졌다.
혁무춘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홰홰 내저었다.
“와아! 명줄이 쇠심줄처럼 질기네. 제가 닭이야? 왜 대가리가 잘리고도 돌아다니지?”
혁무춘에게 다가간 귀영자군이 인상을 찌푸렸다.
“상처가 깊군.”
“예? 스친 것 같은데 깊다고요?”
“뼈가 드러날 정도다. 앞발이 칼날만큼이나 예리한가 보군. 팔을 잃기 싫으면 금창약이라도 발라 둬라.”
“아, 예.”
혁무춘은 품 안에서 금창약을 꺼내 어깨에 덕지덕지 발랐다.
뒤늦게 뼈를 긁어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혁무춘이 미처 상처를 싸매기도 전이다.
사사사삭-.
사사사삭-.
사방에서 풀잎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 소리의 의미를 알게 된 염탐조 고수들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공자님, 저거 아까 그 사마귀들이 기어 오는 소리 아닙니까?”
“그런 것 같아.”
“사마귀 머리가 그렇게 좋습니까?”
“내가 뭘 안다고 나한테 물어?”
“아, 맞다. 괜한 걸 물어서 죄송합니다.”
“은근 기분이 나쁘네?”
두 사람은 쉬지 않고 입씨름을 하면서도 초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바람이 멎었음에도 초원의 풀은 바람에 휩쓸린 듯 출렁거렸다.
촤아아-.
촤아-.
곧이어 사방에서 사마귀가 솟구쳐 올랐다.
연적하, 남궁연, 장무덕이 품자(品字) 형태로 서서 사마귀들에게 검기를 뿌려 댔다.
사마귀들의 앞발과 목이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그러나 비명은 나지 않았다.
그저 사마귀들이 튀어 오르며 내는 기이한 날갯짓 소리가 전부였다.
풀잎 스치는 소리와 격한 날갯짓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사사사삭-.
촤아아-.
품자 사이사이에 심통, 곤륜삼선, 귀영자군, 혁무춘이 자리를 잡았다.
앞의 세 사람이 놓치거나 흘려보낸 사마귀들은 뒤쪽에서 처리했다.
워낙 표피가 두껍고 앞발이 날카로워 조금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았다.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니 정신의 피로는 말로 할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르자 심통과 곤륜삼선의 입에서 ‘끙’ 하고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귀영자군과 혁무춘은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았다.
그들은 행여나 무리에서 쫓겨날까 봐 앓는 소리조차 마음껏 내지를 수 없었다.
한 식경(약 30분)쯤 지났을까?
파도처럼 밀려오던 사마귀들이 조금 뜸해졌다.
심통이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훔쳐 내며 한마디 했다.
“와아! 징그러운 새끼들. 이제 당랑거철(煙鄭拒敬)이라는 말은 쓰면 안 되겠는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공자님?”
“그러게. 저 정도면 수레도 잘라 버리겠어. 그런데 저거 사마귀 맞아? 무슨 사마귀가 저렇게 무시무시하대? 누님은 저게 뭔지 아시겠어요?”
연적하의 물음에 남궁연이 답했다.
“아무래도 육정육갑의 신력으로 이매망량(國基國國, 온갖 도깨비)을 만들어 낸 것 같아.”
“이매망량요?”
“흔히 산신(山神)이나 수신(水神)을 ‘이’라 하고, 오래된 물건의 정이 깃들어 변한 것을 ‘매’라 하지. 공자가어(孔子家語)에는 산의 정괴(精怪)를 ‘망량’이라 하고, 땅의 정괴를 ‘분양’이라고 했어. 우리가 본 인면지주나 사마귀는 ‘산의 정괴’로 태어난 ‘망량’일 거야.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망량당랑’이려나?”
“아! 망량……당랑!”
그녀의 설명에 태을 선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합당하신 말씀입니다. 빈도가 보기에도 저 사마귀는 일반적인 생명체가 아닙니다.”
“이매망량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태무 선인과 태령 선인도 한마디씩 했다.
세상에 저런 사마귀는 없으니 이매망량이 아니면 뭐겠는가 말이다.
장무덕이 슬쩍 끼어들었다.
“저것이 이매망량이든 뭐든 이대로 있다가는 큰 화를 면치 못할 게요. 남궁 소저, 이 난국을 타개할 비책이 있는가?”
“장 대협의 말씀처럼 이 초원에서 계속 사마귀와 싸우는 것은 위험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호문(虎門)으로 갈 수도 없어요. 호문에는 분명 사마귀보다 더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허면 해가 질 때까지 저 망량들과 싸우자는 것인가? 무리일 텐데.”
장무덕이 운무에 덮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이 되려면 못해도 두 시진(4시간)은 더 있어야 했다.
자신도 이렇게 힘에 부치는데 다른 이들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