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03
303회. 하늘과 땅을 포용할 수 있다
십전무후 남궁연이 품 안에서 산가지를 꺼냈다.
“저도 간단한 진법 정도는 만들 수 있어요. 이것으로 망량들을 물리칠 수는 없겠지만, 한곳으로 볼 수는 있어요.”
말과 함께 남궁연은 산가지를 사방팔방으로 뿌려 댔다.
산가지는 풀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손에서 마지막 산가지가 날아가 초원에 박히자 기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주변 풍광이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주변으로부터 몸을 숨기는 혼천팔괘진이에요.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기문진식이지요. 정면의 방위만 열어 두었는데, 반 시진(1시간) 정도 유지될 거예요.”
“왜 반 시진으로 한 것이오?”
무상도제 장무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지 시간이 길수록 휴식도 늘어나는 까닭이다.
“그건 팔문팔상진이 반 시진 간격으로 변하기 때문이에요. 한쪽 방위를 열어 둔 것도 팔문팔상진의 변화를 살피기 위해서고요.”
“아!”
장무덕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뒤늦게 자신들이 팔문팔상진 안에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사사사삭-.
정면에서 풀잎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일 장(약 3미터) 크기의 사마귀가 벼락처럼 튀어 올랐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사마귀들도 물리친 염탐조다.
입구 쪽에 있던 귀영자군이 번개처럼 칼을 뽑아 사마귀를 베었다.
툭.
퍽. 퍽. 퍽.
머리가 땅에 떨어지고도 두 개의 뒷다리가 사방을 찍어 댔다.
시산마도 혁무춘이 뒤늦게 달라붙어 사마귀의 다리를 잘랐다.
남궁연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삼면의 사마귀들은 우리를 보지 못하니까 안심해도 돼요. 이제부터는 두 명씩 돌아가며 입구를 막을 거예요. 곤륜삼선께서는 한 식경(약 30분) 후부터 정면을 관찰해 주시고요.”
“그러지요.”
태을 선인이 사제들을 대신해 답했다.
귀영자군과 혁무춘이 후순위로 빠지려고 슬금슬금 뒤로 몸을 빼냈다.
하지만 연적하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거기 두 사람! 어딜 빠지려고 그래? 이왕 시작했으니까 두 사람이 입구를 맡아. 반 시진 후에 나랑 심 노인이 교대해 줄 테니까.”
순간 귀영자군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이런 개자식! 누굴 바보로 아나. 반 시진 후에 교대해 준다고? 염병이다.’
그전에 팔문팔상진이 변하면 다른 곳으로 달아나야 하는데 교대는 무슨 교대.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귀영자군은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기다렸다는 듯 풀잎 스치는 소리와 날갯짓 소리가 꼬리를 물고 들려왔다.
사사사삭-.
촤아아-.
촤악-.
사마귀들의 파상공세가 다시 시작됐다.
귀영자군과 혁무춘은 입구를 틀어막고 서서 미친 듯이 칼춤을 춰 댔다.
격전을 치르는 입구와 달리 뒤쪽은 평화로웠다.
곤륜삼선들은 괜히 미안한 마음에 입을 꾹 다물고 구경만 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하던 심통이 불쑥 한마디 던졌다.
“공자님, 기문진이라는 게 상당히 좋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게. 아까는 사방에서 몰려와서 정신이 없었는데.”
“어이쿠! 혁 채주가 또 한 대 맞았네. 사마귀들이 어지간한 녹림도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어라? 또 맞네.”
연적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사마귀들의 공격력은 녹림도보다 뛰어났다.
귀영자군과 혁무춘이니 저 정도지 평범한 무인이었으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혁무춘의 상체가 피로 물들자 태을 선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도가 교대를 해 주어도 되겠습니까?”
태을 선인은 슬쩍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혹시 연적하에게 다른 뜻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답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태을 선인은 그제야 빠르게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또 한 마리의 사마귀가 혁무춘을 노리고 날아올랐다.
혁무춘이 막 출수하려고 할 때다.
태을 선인이 재빨리 한 걸음 크게 내디뎌 그의 앞을 막아섰다.
“빈도가 맡을 테니 상처를 치료하도록 하시오.”
말과 함께 태을 선인의 검이 빛살처럼 전방으로 뻗어 나갔다.
곤륜파 비전의 포룡검법이었다.
파파파팟.
용을 잡는다는 이름만큼이나 강맹한 검법이다.
용에 비하면 터무니 없을 정도로 작은 사마귀의 몸이 공중에서 갈기갈기 찢어졌다.
조각난 사마귀의 몸이 체액과 함께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후두두둑.
귀영자군이 힐끔 태을 선인을 보았다.
단지 술법에만 조예가 깊은 줄 알았는데 검술도 그에 못지 않았다.
‘대단하군.’
새외제일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저 정도일 줄이야.
장무덕이나 연적하, 남궁연만 괴물인 줄 알았는데 곤륜삼선도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초원에서의 첫 싸움에서 이선으로 물러나기에 무공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술법을 써야 해서 나서지 않았던 건가.’
사사사삭-.
또다시 앞에서 풀잎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역시나 ‘촤악’ 하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사마귀가 튀어 올랐다.
귀영자군은 암천수라검법을 펼쳤다.
시커먼 검기가 그물처럼 정면으로 뻗어 나갔다.
콰자자작-.
잘게 토막 난 사마귀의 몸이 후두둑 떨어졌다.
귀영자군은 보란 듯 어깨를 으쓱이며 태을 선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태을 선인은 관심 없다는 듯 정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귀영자군은 머쓱한 얼굴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뒤로도 귀영자군은 쉬지 않고 암천수라검을 펼쳐 사마귀를 토막 냈다.
뒤에서 지켜보는 고수들의 시선을 의식해서다.
자신과 태을 선인이 나란히 섰으니 의식하지 않아도 두 사람의 무위가 비교될 터였다.
귀영자군과 태을 선인의 앞에 사마귀의 잔해가 수북이 쌓여갔다.
나중에는 산처럼 쌓여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자 태을 선인이 정면으로 손을 휘저었다.
퍼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마귀의 잔해가 흩어졌다.
장법에는 어두운 귀영자군의 얼굴에 떨떠름한 미소가 어렸다.
“그건 무슨 수법이오?”
“금룡장이라고 합니다.”
“검법만 뛰어난 줄 알았더니 장법도 대단하구려.”
“대단하다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태을 선인은 겸양의 말을 했다.
사실 저 뒤에 있는 장무덕이나 연적하에 비하면 낯 뜨거운 칭찬이었다.
두 사람이 한숨 돌리고 있을 때다.
태무 선인과 태령 선인이 두 사람의 뒤쪽으로 다가왔다.
귀영자군은 교대라도 해 주려고 온 줄 알고 살짝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두 노도사의 눈에서 시퍼런 귀화가 피어올랐다.
신안통을 펼친 것이다.
‘이런 제길. 좋다가 말았군.’
귀영자군의 어깨가 조금 쳐졌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쉬지 않고 암천수라검법만 펼쳤더니 피곤했다.
하지만 십이마군이나 되는 사람이 반 시진도 못 버티면 그것도 창피한 노릇.
귀영자군은 이를 악물고 다시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스스스-.
허리까지 자란 풀이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휘청였다.
다시 사마귀들이 몰려왔다.
정신없이 싸우던 귀영자군은 어깨가 화끈거림을 느꼈다.
‘헛!’
사마귀들을 처치한 뒤에 확인해 보니 왼쪽 어깨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혁무춘처럼 자신도 앞발에 베인 것이다.
사마귀의 앞발은 칼보다 예리하니 보기와 달리 중한 상처이리라.
그가 막 연적하에게 교대를 요청하려 할 때다.
태무 선인이 먼저 말했다.
“왼쪽 측면에 일자(一字)로 된 두 개의 귀화가 나타났습니다. 십 장(약 3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인데, 오른쪽으로 서서히 돌고 있습니다.”
남궁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법이 변하고 있어요. 이동할 시간이에요.”
말과 함께 남궁연은 가까운 곳에 박혀 있는 산가지를 뽑았다.
순간 막혀 있던 삼면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사사삭-.
사사삭-.
근처에 있던 사마귀들이 다시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사마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진법에 휘말리면 사마귀보다 더한 재앙을 만난다는 걸 아는 까닭이다.
촤악-.
촤아아아-.
차르륵-.
요란한 날갯짓 소리와 함께 사면에서 사마귀들이 튀어 올랐다.
남궁연은 눈앞에 나타난 사마귀들을 베며 좌측으로 달렸다.
여덟 명의 고수들이 죽자 사자 그녀의 뒤를 따라붙었다.
염탐조가 지나간 자리로 토막 난 사마귀 사체가 길게 늘어졌다.
한참 달리던 태령 선인이 급하게 소리쳤다.
“소저! 삼 장(약 10미터) 앞에 다시 두 개의 귀화가 나타났습니다! 일자 형태입니다!”
“두 개라고요?”
급하게 되묻는 남궁연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팔문진의 순변(巡邊)에 따르면 좌측으로 이웃한 변화는 세 개여야 한다.
현재 염탐조가 위치한 방위는 동방.
‘진을 이루는 축이 두 개라면 서방이나, 서남방이라는 말인데…….’
방위의 전환이 너무 빠르다.
서방인지, 서남방인지 닥쳐 봐야 알겠지만 이미 순변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빠른 변화를 간파하지 못했다면 다행이지만 역변(逆變)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그때부터는 자신도 예측할 수가 없게 된다.
서걱-.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왼쪽 팔이 화끈거렸다.
남궁연은 황급히 왼쪽에서 치고 들어오는 사마귀를 베어 냈다.
슬쩍 팔을 보니 다행히 깊은 상처는 아닌 것 같다.
“귀화를 지나쳤습니다!”
태령 선인의 말과 함께 풍경이 변했다.
초원 대신에 바위 협곡이 나타났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이 느껴진다.
“모두 조심…….”
남궁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다.
콰르르르르-.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협곡 끝에서 거대한 물이 밀려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홉 명은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리고 말았다.
피할 곳도 없었지만 피할 틈도 없었다.
양쪽에 보이던 계곡까지도 물에 파묻혔으니 피했다 해도 쓸려 갔으리라.
물이 불어난 계곡은 망망대해로 변해 버렸다.
남궁연이 절망적인 얼굴로 소리쳤다.
“역변이에요! 역변이 일어나면 누구도 이후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어요! 이제는 팔문 중의 하나를 깨뜨려야만 해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팔문을 피해 다녔는데 팔문을 깨야만 한다니 기가 막힌 얼굴들이다.
시간이 갈수록 물살은 더욱 거세졌다.
물살에 밀려 사이가 점점 벌어지자 사람들은 둘씩 셋씩 뭉쳤다.
연적하는 남궁연과 심통의 손을 잡았다.
연적하와 곤륜삼선의 중간에 있던 장무덕은 곤륜삼선 쪽으로 이동했다.
귀영자군은 어쩔 수 없이 혁무춘과 손을 맞잡았다.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집채만 한 파도가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아-.
연적하는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면서도 남궁연과 심통의 손을 놓지 않았다.
눈은 빙글빙글 돌고 숨이 꽉 막혔다.
‘이게 진법이라고?’
진법은 눈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팔괘가 중첩됐네, 방향을 알 수가 없네,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소리였으니까.
남궁연의 ‘혼천팔괘진’도 결국은 눈을 속이는 수법이었다.
그런데 이 물은 뭐란 말인가?
숨이 턱 막히는 이 물을 눈속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시나 하고 눈을 질끈 감았지만, 온몸으로 느껴지는 수압은 여전했다.
구천구검을 배운 뒤로 두려울 것이 없었다.
실제로 어지간한 고수들은 구천세법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이게 뭐람?’
연적하는 지독한 자괴감에 빠졌다.
거울에서 나온 뒤로 이렇게 허망하기는 처음이다.
자신이 마치 물살에 따라 계곡 바닥을 구르는 돌덩어리 같았다.
무기력하고 가치 없는.
-구천기는 허무한 가운데 오는 것이니 허심으로 기다리라.
돌덩어리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다.
마침내 돌덩어리는 모래알 한 알도 안 될 정도까지 작아졌다.
문득 천둔검의 검결이 떠올랐다.
-선천의 기는 하늘과 땅이 구별되기 이전부터 있어 왔다. 그것은 한 알의 알갱이에 불과하지만, 능히 하늘과 땅을 포용할 수 있다[包羅天地].
혼돈의 와중에 머릿속에서 구천기와 천둔검의 검결이 마구 섞여 들었다.
-허심으로 기다리라. 능히 하늘과 땅을 포용할 수 있다.
그때 발이 계곡의 바닥에 닿았다.
연적하는 두 발에 잔뜩 공력을 밀어 보낸 뒤 힘껏 박찼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연적하의 몸이 가공할 속도로 솟구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