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04
304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촤아아-.
물살을 가르며 세 사람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정확히는 연적하와 그에게 손이 잡힌 십전무후 남궁연과 구천노도 심통이다.
“파하!”
연적하는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폐부 깊숙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쿨럭, 쿨럭!”
“우웩! 컥, 컥!”
남궁연이 격하게 기침을 해 댔고, 심통은 삼켰던 물을 토해 냈다.
연적하는 급히 좌우를 살폈다.
격한 물살에 얼마나 많이 떠내려왔는지 양옆으로 육지가 보였다.
그는 일단 왼손에 잡고 있던 심통을 가까운 뭍으로 집어 던졌다.
“커억! 으허어어!”
물을 게워 내던 심통이 비명과 함께 날아갔다.
이윽고 연적하는 남궁연을 두 손으로 안고 물살 위를 달렸다.
등평도수(登萍渡水)라는 상승의 경신법이다.
삼류라 할 수 있는 비연보로도 그런 경지에 도달했으니 기사(奇事)라면 기사다.
철퍼덕.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허리야!”
심통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앓는 소리를 했다.
파파팟.
물 위를 달려온 연적하가 심통 옆에 남궁연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고마워, 적하야.”
“헤헤…….”
연적하가 멋쩍게 웃을 때다.
허리를 두드리고 있던 심통이 억울한 얼굴로 한마디 했다.
“아이고, 공자님! 누군 사람이고 누군 짐입니까?”
“뭐래? 지금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니까 보따리 달라고 하는 거야?”
“그래도 정신 차릴 시간은 주고 던지셨어야지요.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쯧쯧! 저러니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말이 나오지. 살려 줘도 난리네.”
“이왕 구해 주시는 거 조금만 신경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연적하가 쏘아보자 심통은 깨끗이 포기했다.
삼강오륜에 관심이 없는 그에게 통할 이야기가 아님을 알아서다.
심통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이럴 때 보면 연적하만큼 녹림도다운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인 점에서.
“뭘 봐?”
“존경스러워서요.”
“흥! 속으로 내 욕을 했던 모양이군. 가증스러운 늙은이 같으니.”
“어이쿠! 그랬다면 제가 벼락을 맞습니다.”
심통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은은한 우렛소리가 들렸다.
쿠르르르-.
“하여간 저 입이 방정이라니까. 저 늙은이가 무슨 말만 하면 사달이 일어나.”
“…….”
심통은 자기가 생각해도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지라 반박하지 않았다.
만담에 가까운 말싸움은 그것으로 끝났다.
뒤이어 암울한 현실의 무게가 세 사람을 찍어 눌렀다.
“그런데 누님, 팔문 중 하나를 깨뜨려야 한다는 건 무슨 소리예요?”
순간 남궁연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염탐조가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도 팔문을 상대하는 건 어려웠다. 팔문진을 빙빙 돌며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진법이 순변을 할 때는 활로를 찾아 조금씩 외곽으로 나갈 수가 있어. 하지만 역변을 하면 이야기가 달라져. 활로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해져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거야.”
“그럼 지금까지 누님이 활로를 따라 움직였던 거예요?”
“그랬지. 휴문이나 생문 같은 건 없다 해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길은 있거든.”
“이젠 안전한 길을 찾지 못한다는 말이구요?”
“팔문 중에 하나를 부수면 어떻게 되는데요?”
“팔문팔상진은 팔문이 서로를 지탱하고 있어. 그래서 여덟 배의 힘을 내지만, 하나만 깨지면 나머지도 멈추고 말아. 강한 힘 속에 숨겨진 치명적인 약점이랄까?”
“그럼 문 하나만 깨면 되는 거네요?”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
“왜요?”
“곤륜삼선의 신안통이 아니면 숨겨진 진축이나 문을 발견할 수가 없어.”
“아…….”
그제야 연적하는 남궁연의 표정이 어두운 이유를 알았다.
육정육갑의 신력(神力)으로 숨겨진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다.
곤륜삼선들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안통으로 보기만 하면 뭘 하나? 해석하고 파훼할 능력이 없는 것을.
심통의 입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고! 염탐조가 한자리에 모여 있어도 힘든 일인데……. 죄다 흩어졌으니, 이제 어쩐다.”
“거 자꾸 아이고, 아이고, 좀 하지 마. 재수 없게.”
“그런 소리가 절로 나는 걸 어쩌란 말입니까? 곤륜삼선이 없으면 우린 이매망량과 싸우다가 죽을 겁니다.”
“말하는 대로 된다고 들었어.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왜 자꾸 젊은 사람들 앞에서 흉한 소리를 해? 누님, 물줄기를 따라가 보는 건 어때요? 곤륜삼선이 살아 있다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 진법이 변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앞으로 한 식경(약 30분) 이상 유지될 거야. 그 전에 찾아야 해.”
말과 함께 남궁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곤륜삼선을 찾자’는 말에 다 죽어가던 심통의 눈빛도 되살아났다.
세 사람은 잠시 무기와 장비를 점검한 뒤에 물길을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일각(15분)쯤 내려갔을까?
아까부터 물을 힐끔거리던 남궁연이 중얼거렸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물속에요?”
연적하가 듣고는 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유속이 빠른 저 물속에 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연적하만 한 게 아닌 모양이다.
심통이 끼어들었다.
“공자님, 신경 쓰지 마십쇼. 설사 뭔가 있다 해도 죄다 떠내려갈 겁니다. 저게 어디 보통 물살입니까?”
연적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무상도제 장무덕과 같은 고수도 쓸려 갈 정도의 물살에서 뭐가 나올 리가…… 있다.
촤악!
촤아악!
뱀처럼 생긴 그것들은 굵기가 한아름이 넘고, 길이가 삼 장(약 9미 터)에 달했다.
빠른 물살에도 불구하고 뱀들은 연적하와 남궁연, 심통에게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그것을 본 남궁연이 짧게 소리쳤다.
“물의 정괴(精怪)인 교(蛟)야!”
연적하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비룡승천을 펼쳤다.
쉬이익. 쉬익.
정면으로 쏘아져 나간 두 가닥 검기가 교의 몸통을 성둥성둥 잘랐다.
몸통이 잘린 상태에서도 교의 머리는 펄떡펄떡 뛰며 연적하를 물려 했다.
연적하는 다시 검을 휘둘러 머리를 세로로 길게 잘랐다.
세로로 잘린 아래위 턱은 땅바닥에 떨어진 뒤에도 뭔가를 물려고 입질을 해 댔다.
턱. 턱. 턱. 턱.
심통이 그런 교의 머리를 유엽도 끝으로 툭툭 쳐서 물속에 처넣었다.
“허! 이놈들 보소. 이렇게 토막이 나고도 물려고 하네.”
그가 신기한 눈으로 토막 난 교를 들여다보자 남궁연이 한마디 했다.
“교의 독에는 해독약이 없어요. 살갗에 닿기만 해도 죽는다니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아요.”
그 말에 심통이 흠칫 놀란 얼굴을 했다.
물리지 않아도 죽을 수 있다는 소리니 그럴 만도 하다.
심통이 막 뒤쪽으로 물러나려 할 때다.
촤촤촤촥!
격류 속에서 갑자기 네 마리 교가 튀어나왔다.
“헛!”
심통은 반사적으로 칼을 휘둘러 두 마리를 토막 냈다.
하지만 나머지 두 마리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몸통이 두꺼운 데다 가죽까지 질겨 두 마리가 한계였던 것이다.
샤아-.
샤아-.
어찌나 큰지 두 마리 교가 입을 쩍 벌리자 허공에 두 개의 동굴이 생겨난 것 같았다.
두 개의 동굴이 심통을 집어삼킬 듯 떨어져 내렸다.
그때다.
쉬이익-.
쉬익-.
두 자루 검이 날아와 교의 입에 박혔다.
연적하와 남궁연의 검이었다.
연적하의 검이 마치 바늘처럼 교의 위턱과 아래턱을 꿰어 물 쪽으로 날아갔다.
다른 한 자루 검은 교의 양쪽 숨구멍 사이에 박혔다.
캬아아!
콧잔등에 검을 꽂은 채 펄떡이던 교는 급히 물속으로 달아났다.
쉬이익-.
어느새 교의 머리를 완전히 관통한 연적하의 검이 그에게 다시 돌아왔다.
물가에서 벗어난 심통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아! 십년감수했네!”
“쓸데없이 교를 가지고 깔짝거리더니 내가 사고 칠 줄 알았어. 하여간 그냥 넘어가는 적이 없다니까.”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된 심통은 염소수염만 쥐어뜯었다.
“적하야 너도 가급적 물 쪽으로는 붙지 마.”
“예.”
세 사람은 다시 물살을 따라 내려갔다.
그러나 근 일다경(약 20분)을 내려갔지만 곤륜삼선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만날 때도 됐는데 이상하네. 물길이 하나였는데 왜 안 보이지?”
곰곰 생각하던 남궁연이 말했다.
“어쩌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을지도 몰라. 신력으로 나뉘었다면 우리로서는 알 수 없으니까.”
“그럼, 곤륜삼선을 찾는 건 포기해야 하나요?”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멀뚱멀뚱 서 있던 심통이 끼어들었다.
“허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오? 아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소?”
남궁연이 착잡한 눈으로 연적하와 심통을 번갈아 보았다.
팔문팔상진을 움직이는 힘은 육정육갑의 신력이다.
답답하지만 신안통을 익히지 못한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솔직히 없어요. 우리는 팔문은커녕 진축도 볼 수 없을 테니까요.”
“하아!”
심통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십전무후 남궁연이 그렇다면 그럴 것이다.
육정육갑의 신력 앞에서 술법을 익히지 못한 사람들은 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연적하가 시무룩한 얼굴로 땅바닥을 툭툭 걷어찼다.
그런 그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던 남궁연은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실망한 연적하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을까?’
신력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팔상팔문진에도 약점이 있을 것이다.
완전한 것은 없다.
사람들이 자신을 십전무후라고 부르지만, 이처럼 신력 앞에서 무기력하지 않은가!
그녀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회색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을 보고 있으려니 속이 더 꽉 막혔다.
‘그런데 저건 별빛만 가리고 있는 걸까?’
생각해 보니 운무는 별빛뿐 아니라 세상과 팔문팔상진을 가로막고 있었다.
기문진식에서는 약한 부분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천복자가 육정육갑의 신력으로 진축과 문을 숨겨 놓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혹시 운무도 뭔가를 가리고 있는 건 아닐까?’
광활한 하늘이 새삼 눈에 걸렸다. 단지 별빛을 가리기 위해서라 하기에는 술법의 낭비가 너무 심하다.
술법의 힘을 분산해서라도 가려야 할 만한 중요한 게 있다는 소리다.
생각해 보면 방향은 부차적인 문제다.
설사 별자리를 통해 방향을 안다 해도 역변에는 대처할 수 없지 않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뭔가 머리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아!”
남궁연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왜요? 누님?”
맥없이 서 있던 연적하가 의아한 얼굴로 남궁연을 보았다.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정말요?”
“방법이 있소?”
시무룩하던 연적하와 심통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그들의 표정에 남궁연은 내심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고수일수록 감정을 잘 감추는데 저 둘은 아니다.
시시각각 희로애락의 감정을 고스란히 내비치는 게 마치 어린아이들 같다.
남궁연이 하늘로 손을 뻗어 회색빛으로 물든 운무를 가리켰다.
“저 운무야. 운무가 별빛만 가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
“뭘 또 가리고 있는데요?”
“천복자의 팔문팔상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음, 신력?”
“맞아. 하늘을 가리려면 엄청난 힘이 필요해. 그리고 그 정도로 힘을 쏟아 가며 숨길 만한 게 있다면, 그건 신력밖에 없어.”
“그러니까 운무를 열면 신력이 보인다는 건가요?”
“정확히는 신력의 힘이 약해져서 일반인의 눈에도 보일 거라고 생각해.”
그러자 심통이 딴지를 걸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어차피 하늘의 운무를 가르려면 곤륜삼선이 있어야 하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