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09
309회. 딱 봐도 술법인데요?
연적하가 멍한 눈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칠색 서기도 난감하지만 마치 마물들이 내는 듯한 저 소리는 뭐란 말인가?
내부가 진동될 정도의 괴성은 분명히 이전에 경험한 마물들과 비슷했다.
이상한 건 석인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부터 석인은 자신이 아니라 칠색 서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칠색 서기를 보고 있을 때다.
칠색 서기를 뚫고 거대한 물체가 석인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은 길이가 무려 삼십 장(약 100미터)에 이르는 푸른색의 이무기였다.
“헉!”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뜻밖의 상황에 놀라면서도 왠지 이무기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건? 설마 청사(靑蛇)?’
지난해부터 꿈속에서 자신이 타고 다니던 이무기가 분명했다.
몸통이 새파래서 ‘청사’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었다.
‘혹시 꿈속에서 타고 놀던 청사가 의형검기로 나타난 건가?’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의형검기는 시전자의 강한 의념(意念)이 특정 형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까맣게 잊고 있던 이무기가 구현될 리가 없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가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이무기는 석인과 싸움을 시작했다.
“꾸아아아!”
“크아아-.”
벼락처럼 떨어져 내린 이무기가 석인의 몸을 칭칭 감았다.
석인의 크기는 십 장(약 30미터)에 달했지만 이무기가 감싸자 보이지도 않았다.
콰드드득-.
바위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석인은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휘감은 이무기를 떼어 내려 했다.
그러나 이무기는 오히려 더 단단히 석인을 옥죄었다.
바위에 균열이 가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다.
빠드득-. 빠직-.
“크아아아-.”
석인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무기는 화염에 맞으면서도 몸을 풀지 않았다.
석인과 이무기의 싸움에 전갈만 죽어났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 셈이다.
석인과 이무기 주변의 모래가 초록색 체액으로 물들었다.
이무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석인을 휘감고 그 위를 굴러다녔다.
멍하니 서 있는 연적하에게 십전무후 남궁연과 구천노도 심통이 다가갔다.
“저 이무기는 어떻게 된 거니?”
남궁연의 시선은 이무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연적하가 단검을 던지는 것만 보았기에 이무기를 그의 작품으로 생각했다.
‘의형검기는 아닌 것 같은데 저건 뭘까?’
아무리 봐도 저건 의념이 아니라 진짜 이무기였다.
이무기의 거대한 비늘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저도 모르겠어요.”
“모른다고요?”
심통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의 시선도 이무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
“공자님이 던진 단검에서 이무기가 튀어나왔는데요? 솔직히 말씀해 보십쇼. 따로 술법 같은 거 익히셨지요? 저건 딱 봐도 술법인데요?”
“그런 적 없어.”
연적하가 고개를 저었다.
술법을 익히기는 개뿔, 곤륜삼선에게 주워들은 이야기가 전부다. 그 정도로 술법을 펼칠 수 있다면 세상에 술사 아닌 사람이 없으리라.
“그런데 심 노인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예? 제 얼굴이 어때서요?”
“주먹으로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눈 밑이 조금 퍼런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스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조심해. 기껏 반로환동까지 하고 죽으면 아깝잖아.”
“흐흐흐. 염려 마십시오.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으면 무조건 달아나겠습니다.”
말과 함께 심통이 두 손으로 눈두 덩이를 살살 비볐다.
눈 밑이 퍼렇다니 풀어 주기 위해서다.
‘조금 피곤하긴 하군.’
팔문팔상진에 들어와 평생 겪지 못한 일들을 경험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심통은 내친김에 뻐근한 어깨와 목도 가볍게 움직였다.
그때 이무기의 거대한 입이 석인의 머리를 물었다.
까드득-.
강력한 이빨에 사람 머리통만 한 돌덩이가 떨어져 나갔다.
깜짝 놀란 석인이 쩍 벌어진 이무기의 목구멍 안쪽으로 화염을 뿜어 댔다.
화르르륵-.
그러나 이무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석인의 머리를 물어뜯었다.
빠드득- 빠득-.
이무기의 이빨에 머리통 일부가 서서히 사라졌다.
누가 봐도 이무기의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곧이어 이무기는 크게 입을 벌려 석인의 머리를 통째로 삼켜 버렸다.
당황한 석인이 두 손으로 이무기의 입 주위를 후려쳤다.
쾅! 쾅! 쾅! 쾅!
그러나 이무기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댔다.
마치 목을 부러뜨리려는 듯이 말이다.
콰드드득!
마침내 석인의 목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이무기의 힘을 이기지 못해 목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퍼엉-.
검은 연기와 함께 석인이 사라졌다.
깜짝 놀란 연적하와 남궁연, 심통은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살폈다.
그때다.
두 개의 기둥 한가운데로 누군가 툭 떨어졌다.
팔황의 일인인 금강보살(金剛菩薩)이었다.
그는 중병에 걸린 사람처럼 격하게 숨을 몰아쉬며 연신 입으로 피를 토했다.
“쿨럭! 쿨럭!”
순간 남궁연이 빛살처럼 날아가 그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당신이 지문(地門)을 지키는 사람인가요?”
“……그렇다.”
“당장 진법을 푸세요.”
“그냥 죽여라.”
금강보살은 체념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핏기 없는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남궁연이 차갑게 말했다.
“저 두 개의 기둥이 진축이라는 걸 모른다고 생각하나요?”
“…….”
굳게 닫혀 있던 금강보살의 눈이 떠졌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 왜 본좌에게 그런 요구를 하느냐?”
“지문뿐 아니라 팔문팔상진 전체를 빨리 해체하기 위해서에요.”
금강보살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말대로다.
힘으로 지문을 부수면 팔문팔상진은 서서히 풀린다.
그러나 해체는 다르다. 하나라도 해체하는 즉시 팔문팔상진은 힘을 잃고 만다.
“거기까지 알고 있다니 실로 대단하구나. 너는 혹시 십전무후냐?”
“그래요. 어차피 진법은 깨졌어요. 불필요한 살생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당신을 위해서라도.”
“나를 살려 주겠다는 소리냐?”
“우리는 당신들을 죽이기 위해 온 게 아니에요.”
“후후후…….”
금강보살의 입에서 메마른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옥에 온 자신들의 처지를 모르고 죽음 운운하니 가소로웠다.
“원하는 대로 해 주지.”
금강보살은 흔쾌히 승낙했다.
어차피 지금쯤 교주도 저들이 팔상팔문진을 깼다는 걸 알고 있을 터였다.
하나가 살아서 가든, 열이 살아서 가든, 결과는 같다.
저들의 목숨은 교주 손에 달려 있다.
금강보살은 품 안에서 두 장의 부적을 꺼내 기둥으로 날렸다.
두 장의 부적이 기둥에 닿았다.
푸스스-.
푸스스-.
기둥이 모래로 변해 흘러내렸다.
순간 기둥이 있던 자리에서 강력한 기파(氣波)가 동심원을 그리듯 퍼져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 풍경이 변했다.
사막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풍지산이 모습을 되찾았다.
어느 틈에 이무기도 단검으로 돌아갔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이다.
기막힌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던 심통이 갑자기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어? 어?”
당황한 심통이 허공에 두 손을 휘저었다.
마침 가까이 있던 연적하가 재빨리 그의 팔뚝을 잡았다.
‘헛! 몸이 왜 이렇게 뜨거워?’
아무래도 뭔가 사달이 난 것 같았다.
슬쩍 심통의 안색을 살피니 이젠 눈 밑이 시퍼렇다 못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누님! 심 노인이 중독된 것 같아요.”
남궁연은 서둘러 금강보살의 마혈을 점한 후 심통에게 다가갔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심통은 중병을 앓는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설마 전갈의 독인가?’
심통을 살피던 남궁연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심통의 등판에 팥알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앞쪽에 뚫린 몇 개의 구멍은 속옷으로 막혀 있었는데, 등쪽은 맨살이 보였다.
공교롭게 겉옷과 속옷이 한 번에 녹으면서 피부까지 침투했던 모양이다.
남궁연이 금강보살에게 고개를 돌렸다.
“전갈의 독이 묻었어요. 해약이 있나요?”
“나에게는 없다. 하지만 교주님에게는 있을 것이다.”
그의 말에 연적하가 심통을 들쳐 업었다.
“가요!”
연적하가 막 달려가려고 할 때다.
산길 좌우편 숲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꾸물꾸물 빠져나왔다.
곤륜삼선과 무상도제 장무덕이었다.
전신에 피칠갑을 한 장무덕이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역시 자네들이었군. 자네들이라면 무슨 수를 내 줄 줄 알았지.”
연적하는 장무덕과 곤륜삼선을 빠르게 살폈다.
다행히 찢기고 베인 상처는 있어도 중독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외팔이가 된 귀영자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왼팔은 팔꿈치까지만 남아 있었다.
“쩝, 저팔계처럼 두 발로 다니는 돼지에게 물어뜯겼습니다.”
“혁무춘은?”
연적하의 물음에 귀영자군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답했다.
“먹혔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는 산 위로 달렸다.
등에 업은 심통의 숨결이 점점 약해지고 있어서 시간을 아껴야 했다.
장무덕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금강보살을 보았다.
“저자는 누구인가?”
“팔상팔문진의 지문을 지키던 자예요. 참, 심 선배가 중독됐어요.”
순간 장무덕의 시선이 심통을 업고 가는 연적하에게로 향했다.
“해약은?”
“교주에게 있다고 해요.”
“그렇군.”
장무덕은 그제야 연적하가 말없이 먼저 출발한 이유를 알았다.
이제부터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염탐은 이것으로 끝이겠군?”
“…….”
남궁연은 대답 대신 묵례를 올리고 돌아섰다.
막 앞으로 달려가려는 그녀에게 장무덕이 말했다.
“십전무후에게는 막중한 사명이 있을 텐데. 천지맹의 기대를 저버릴 셈인가?”
장무덕의 눈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녹림도인 연적하나 심통의 생사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남궁연은 다르다. 그녀는 정파의 고수이며, 천지맹에 없어서는 안 될 천재다.
“저에게 가장 큰 대의는 연적하예요.”
“노부가 강제로 자네를 데리고 가겠다면 어찌할 텐가?”
“제가 장 대협이라면 그러지 않을 거예요. 제 칼끝이 방향을 바꿀 테니까요.”
“그렇군.”
장무덕은 남궁연을 더 이상 잡지 않았다.
멀어지던 연적하와 남궁연은 마침내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쯧쯧! 무서운 게 정이라더니.”
혀를 차던 장무덕이 곤륜삼선을 보았다.
“세 분은 어쩌시겠소?”
태을 선인이 묘한 얼굴로 장무덕을 보았다.
계속해서 선녀암으로 가겠다는 사람의 말투 같아서다.
“혹시 장 대협께서는 선녀암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소. 호랑이 굴에 십전무후만 들여보낼 수는 없지 않소?”
태을 선인은 망설이지 않았다.
장무덕이 아니었다면 곤륜삼선은 팔문팔상진에서 이미 죽었을 것이다.
“우리 곤륜삼선은 퇴마사들입니다. 퇴마사가 마를 두려워할 리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가 사제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끝을 봐야지요.”
태무 선인과 태령 선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무덕의 시선이 이번에는 귀영자군을 향했다.
“흥! 우리 녹림은 유명교주에 대한 반감이 당신들만큼 크지 않소. 내 할 일은 다 끝난 것 같소. 천지맹에서 다시 만납시다.”
말을 마친 귀영자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뜻을 정한 장무덕과 곤륜삼선도 바람처럼 산 위로 달려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