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20
320회. 병가(兵家)와 법가(法家)
칠리하촌이 발칵 뒤집혔다.
협상하러 가던 총사 신기수사 제갈승운이 칼에 난자당해 돌아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반나절 만에 녹림 총순찰 연적하 짓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칠파일문과 사대세가가 쉬쉬해 정확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감히 따져 묻는 사람은 없었다.
상대가 녹림의 총순찰인 까닭이다.
유명교와의 협상이 사흘 뒤로 미루어졌고, 소란은 흐지부지 가라앉았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내부적으로 칠파일문은 연적하의 처벌 수위를 두고 옥신각신했다.
“죽이셨어야 합니다.”
반점에서 저녁을 먹다 말고 구천노도 심통이 툭 내뱉었다.
그의 말에 주변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 연적하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알아.”
“그런데 왜 살려 두셨습니까?”
“죽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그놈이 공자님 목에 칼을 들이대야 죽이실 겁니까?”
“그럴 리가. 그럴 기미만 보여도 죽일 거야. 난 누가 내 뒤통수를 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
“그놈은 공자님의 뒤통수를 노릴 겁니다.”
“그럼 죽여야지.”
“그 전에 죽이십시오.”
“아직 안 노리고 있잖아.”
“그건 모르지요. 본래 그런 일은 표시 나게 하지 않으니까요.”
그러자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심통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설마 내 짐작만으로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거야?”
“놈이 공자님 목에 칼을 들이대면 이미 늦습니다. 아시는 분이 왜 그러셨습니까?”
심통이 불만 가득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녹림에서는 후환을 생각해 일찌감치 처치해 버린다.
그걸 알고도 남을 사람이 왜 총사를 살려 두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심 노인, 나도 바보 아니야. 총사 놈이 복수 어쩌고 했으면 죽였을 거야. 하지만 그는 살려 달라는 눈으로 날 보기만 했어. 그런 자를 어떻게 죽여?”
“그래도…….”
“누님 앞에서 기분 나쁘다고 사람을 죽여? 내가 녹림이라서 그런 소리를 들었는데, 다른 녹림도와 똑같은 짓을 어떻게 하냐고?”
그 말에 심통은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남궁 소저도 죽였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남궁 소저럼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해했을 겁니다.”
“누님이 이해해 주는 것과 내가 누님 앞에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달라. 심 노인이 아직 남녀 간의 일을 몰라서 그래. 절대 그럴 수 없지. 암.”
“그러신 분이 왜 그렇게 총사를 갈기갈기 찢어 놓으신 겁니까?”
“그를 싫어하는 마음이 좀 컸던 것 같아. 난 망신만 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실린 살기에 검기가 눈곱만큼 더 반응했던 거지.”
“마음이 여리셔서 그런 겁니다. 거기서 더 내지르셨어야지요. 그랬다면 한동안 정파에 시달릴지언정 뒤는 개운했을 겁니다.”
“나도 알아. 내가 착한 거. 총사 놈에게도 내가 착해서 그 정도로 끝난 줄이나 알라고 했어.”
“잘하셨습니다. 그놈은 이제 공자님이라면 자다가도 오줌을 질질 쌀 겁니다.”
“착하다는데 왜 오줌을 싸?”
“착한 게 그 정도라는 걸 알았으니 싸고도 남지요.”
심통이 실실 웃으며 연적하를 보았다.
이제 총사가 보일 반응은 둘 중에 하나다.
연적하에게 원한을 품든지, 아니면 아예 멀찌감치 피해 다니든지.
‘흐흐, 제갈승운. 네놈은 어느 쪽을 선택할 테냐?’
자신의 선택에 따라 남은 수명이 정해진다는 건 그도 알 것이다.
“왜 웃어?”
“공자님 주변에서 늘 재밌는 일이 일어나서요. 모시고 다니는 맛이 납니다.”
“재밌다고?”
“본래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게 싸움 구경 아닙니까?”
“쯧! 하여간 마두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흐흐, 마두라니요. 요즘은 공자님 악명이 더 높다는 건 아십니까?”
“그건 사람들이 오해하는 거고.”
“예, 그런 걸 두고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들 하지요.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거나.”
“무덤은 이제 곧 들어갈 심 노인에게나 어울리는 말이고. 나는 남자니까 애를 낳을 일도 없어.”
연적하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심통은 악착같이 부인하는 연적하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았다.
사실 제갈승운은 연적하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다.
그는 남궁연과 관계가 깊어질수록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행여나 자신으로 인해 남궁연이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될까 봐 신경 썼다.
그러던 차에 소똥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폭발할 수밖에.
솔직히 총사가 그 정도 부상으로 끝난 건 천운이라 할 수 있었다.
***
천지맹에는 의각이 있다.
수백 명의 무인들이 상주하다 보니 다치는 게 일상다반사라 아예 의원을 만든 셈이다.
의각의 각주 심기원은 총사의 얼굴에 금창약을 바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총사님, 얼굴을 깨끗한 헝겊으로 감아 두어도 되겠습니까?”
몸통은 이미 빼곡하게 감았다.
다만 얼굴이 문제다.
헝겊으로 감싸면 외부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
혹시라도 손님과 만날 일이 있다면 곤란하니 확인차 물은 것이다.
“그렇게 하면 좀 빨리 낫겠습니까?”
“오늘은 진물이 심하니 감아 두는 게 좋겠습니다. 내일쯤 딱지가 앉으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그럼 감아 주십시오. 하루라도 빨리 협상을 이어 가야 하니까요.”
“예.”
심기원은 제갈승운의 얼굴을 헝겊으로 싸맸다.
금방 진물과 금창약이 엉겨 헝겊 위로 누렇게 새어 나왔다.
‘쯧! 잔혹한 녹림도 같으니라고. 천하의 안위를 위해 애쓰시는 분을 이 꼴로 만들다니…….’
천지맹에서 오래 일했지만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든 마두는 본 적이 없다.
‘하아!’
얼굴에 평생 바둑판 같은 상흔을 안고 살아갈 총사를 생각하니 절로 탄식이 나왔다.
심기원이 돌아가자 제갈승운은 동경 앞으로 걸어갔다.
얼굴을 비추어 보니 살아 있는 목내이(木乃伊, 미라)처럼 보였다.
“빠드득…….”
제갈가 가주이자, 천지맹 총사인 자신이 이런 몰골이라니!
생각할수록 분해서 떨림이 멈추지를 않는다.
“내 이놈을…….”
그러나 연적하를 떠올린 순간 제갈승운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그를 생각하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혔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흉신악살 같은 얼굴과 그 끔찍한 검기.
순간 제갈승운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꺾고 숨을 헐떡거렸다.
“헉! 헉…….”
코끝으로 자신의 몸에서 나는 혈향이 맡아졌다.
뒤이어 살갗이 쩍쩍 갈라지고, 사방이 진한 피 냄새로 채워졌다.
덜덜 떨던 제갈승운은 두 손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칭칭 감은 헝겊 위로 정말 피가 비치고 있었다.
그에 대한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살이 저 혼자 벌어졌던 것이다.
몸도 마음도 검기에 갈기갈기 찢어졌다.
‘아아! 나는, 나는…….’
제갈승운은 자신의 나약함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떠올리기만 해도 이렇게 몸과 마음이 갈가리 찢어지는데 무슨 복수란 말인가!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그의 귓가로 점잖은 음성이 들려왔다.
“총사, 계십니까?”
천지맹 맹주 무극상인이었다. 제갈승운은 황급히 흐트러진 마음을 수습하고 그를 안으로 들였다.
무극상인은 목내이로 변한 제갈승운의 모습에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결국 제갈승운이 먼저 운을 뗐다.
“못난 모습을 보이게 되어 송구합니다.”
“허어,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되기까지 방치한 저의 잘못입니다. 천지맹의 기강이 이렇게나 땅에 떨어졌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무극상인은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천지맹은 침몰하는 배였다.
천지맹이 해체될 거라는 건 모두 알고 있었다.
연적하에게 비난은 퍼부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조치는 불가능했다.
“하아! 제가 빌미를 제공했기에 누굴 탓할 마음은 없습니다. 손속은 과했지만 연 공자가 화를 낼 만도 했습니다. 하지만 맹세코 누군가를 조롱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이해합니다.”
무극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제갈승운이 연적하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지 않는 게 고마웠다.
만약 그랬다면 자신의 입장만 난처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종전 협상만 마무리 지으면 강호를 떠날 생각입니다.”
예기치 않은 발언에 무극상인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그 말씀은 설마…….”
“예, 총사가 금분세수라고 하면 과해 보이고, 은퇴를 하려 합니다.”
“제갈 대협. 천지맹에는, 아니 정파에는 대협의 경륜이 필요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제 천지맹이 해체되면 천하는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될 겁니다. 이렇게 막중한 시기에 은퇴라니요? 아니 될 말씀이십니다.”
“저를 높이 봐주신 것은 감사드립니다. 허나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정파를 위해 헌신할 인재는 많습니다.”
“허어, 누가 대협을 대신할 수 있다고 그러십니까?”
“멀리 볼 것도 없습니다. 협상단에 공손가의 가주도 계시지 않습니까? 그분이라면 저보다 더 잘 맹주님을 보필해 줄 것입니다.”
무극상인은 멈칫했다.
공손일랑 공손기는 한때 신기수사 제갈승운과 함께 천하를 떨쳐 울리던 기재였다.
그동안 공손가는 제갈가를 위해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제갈가가 병가(兵家)라면 공손가는 법가(法家).
제갈가의 용병술만큼이나 공손가의 치세술도 쓸 만한 것이기는 하다.
“제갈 대협,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공손가도 훌륭하나 지금은 천하대란의 시기입니다. 제갈가가 강호 경영에서 손을 떼면 적들만 좋아할 겁니다.”
맹주의 말에 제갈승운은 고개를 저었다.
천하대란이라 해도 정파 연합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명교는 백 년간이나 칠파일문과 사대세가에 금제를 가하려 하고 있다.
설사 금제는 피할 수 있을지 모르나, 유명교를 넘어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사파 연합으로도 막지 못한 유명교를 정파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지금은 유명교가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런 막연한 기다림은 오히려 공손가에 적합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맹주님, 본래 사교란 교주가 쓰러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유명교도 팔황신모라는 희대의 마녀가 있어 흥한 것뿐입니다.”
“그 마녀의 치하에서 정파 연합을 이끌어 주셔야지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팔황신모는 천하십대고수와 격이 다른, 천하제일인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녀야말로 고금제일인일지도 모릅니다.”
무극상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런 황당한 말을 듣고도 반박할 수가 없어서다.
무상도제의 현무대가 몰살을 당한 뒤로 팔황신모는 그런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다.
“누가 그 마녀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단언컨대 없을 것입니다.”
“허어…….”
“그러나 그 마녀도 인간인 이상 생로병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벌써 나이가 두 갑자(120년)를 넘겼다지요?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정말 그렇게 하셔야겠습니까?”
“마녀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유명교는 내부로부터 무너질 것입니다. 유명교가 무너지기를 기다리며 정파 연합을 단속하는 일이라면, 병가보다는 법가지요. 공손일랑을 총사로 삼으십시오. 육파일문과 사대세가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극상인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사실 정파에서 제갈승운 정도의 역량과 연륜을 갖춘 사람은 공손기뿐이었다.
“제갈 대협, 그 문제는 조금 더 심사숙고했으면 좋겠습니다. 유명교와의 전쟁을 끝낸 이후에 다시 이야기하시지요. 급한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제 생각은 변함이 없을 겁니다.”
“끙!”
무극상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헝겊 사이로 드러난 제갈승운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좋게 말하면 차분하고, 나쁘게 말하면 반쯤 죽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