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23
323회. 술법을 배워 볼 테냐?
협상 날.
정오.
의천각.
청운검 남궁천이 의천각 앞을 기웃거리던 연적하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적하야.”
“아, 형님.”
연적하가 황급히 읍을 해 보였다.
남궁천이 웃으며 다가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왔으면 들어오지 왜 그러고 있어?”
“생각 좀 할 게 있어서요. 어디 가는 길이세요?”
“후기지수들과 점심 약속이 있어서. 너는? 연이를 만나러 온 거냐?”
연적하가 오면 늘 남궁연을 찾았기에 남궁천은 오늘도 그럴 줄 알았다.
“아니요. 백부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래? 아직 출타하지 않으셨으니까 들어가면 만나 뵐 수 있을 게다.”
“나가실 일이 있나 봐요?”
“요즘 의천각에서 가장 바쁜 분이시잖냐.”
“왜요?”
“그야 당연히 남궁세가를 재건하셔야 하니까.”
“아!”
그제야 연적하는 남궁천이 말하는 바를 알았다.
남궁세가가 불에 타 사라졌으니 그냥 돌아갈 수는 없을 터였다.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뭘?”
“아직 복수를 못 했는데 전쟁을 끝내려고 하잖아요. 괜찮으세요?”
“군자의 복수는 십 년도 늦지 않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붙잡고 있어 봐야 속만 쓰리지. 그래도 우리는 유명교 도당들을 상대로 전과를 올리지 않았느냐? 지금은 그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백부님도요?”
“당연하지.”
“전쟁 중지를 결의하고 난 뒤에는요? 어떻게 하신대요?”
“혹시 남궁세가가 단독으로 유명교와 싸울 생각인지 궁금한 거냐?”
“예.”
“당분간은 세가를 추스르는 데 집중하실 게다. 게다가 남궁세가 제자라고 해 봐야 스물이 안 되는데,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남궁천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숫자로는 남궁세가의 영역을 지키기에도 부족하다. 아무리 유명교에 대한 복수심이 강하다 해도 현실적으로 당분간은 무리였다.
“그렇겠네요.”
강호 경험이 쌓인 연적하는 남궁천의 말에 공감했다.
그건 남궁세가뿐 아니라 칠파일문과 사대세가 전체의 문제였다.
따지고 보면 전쟁을 중지하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던가.
“그럼 들어가 보거라.”
남궁천은 손을 흔들어 보인 뒤에 먼저 떠났다.
그동안 연적하가 얼마나 제집처럼 드나들었는지 안내도 하지 않았다.
남궁천을 보낸 뒤에도 연적하는 좀처럼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어떤 식으로 말문을 열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서다.
‘백부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연 누님과 제가…….’
머릿속으로 인사말을 떠올리던 연적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이건 너무 어색해. 그보다는 차라리 백부님, 제가 연 누님을 좋아합니다라고 바로 말하는 게 나을지도. 그건 좀 멍청해 보이려나?’
같은 자리를 맴돌며 고민하고 있는 연적하의 귀로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적하 아니냐? 거기서 뭘 하고 있느냐?”
깜짝 놀란 연적하가 돌아보았다.
언제 나왔는지 검왕 남궁벽이 의천각 앞에 서 있었다.
“헛! 백부님? 안녕하세요?”
“그래. 천이나 연이를 만나러 왔나 보구나?”
“그게, 오늘은 백부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는데요?”
“나에게?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외출하려던 남궁벽은 연적하를 데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서탁을 사이에 두고 남궁벽과 연적하가 마주 앉았다.
“그래, 어쩐 일로 나를 찾아왔더냐?”
“그게, 그러니까, 제가……. 어제부로 녹림 총순찰에서 물러났거든요.”
“아! 그랬구나. 총사와의 일 때문이냐?”
“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쯧! 그렇지 않아도 천지맹에서 말들이 많더니만. 그렇게라도 정리가 되었다니 다행이다. 칠파일문과 삼대세가 사람들은 체면을 중시하니 앞으로는 주의하도록 해라.”
“예.”
“그 이야기를 하려고 온 게냐?”
“아니요, 그리고 태상호법을 하기로 했어요.”
“오! 태상호법? 녹림의 태상호법은 전대 총채주를 위한 자리인데, 파천마군이 너를 끔찍이도 아끼나 보다. 잘됐다. 너에게는 총순찰보다 태상호법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런가요?”
“태상호법은 명예직이라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후로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될 게다. 따로 생각해 둔 일은 있느냐?”
“돌아가서 객잔이나 운영하려고요.”
“흠. 그 나이에 객잔이라니 좀 아깝구나. 그건 은퇴를 하고 나서 해도 될 텐데.”
남궁벽이 인상을 찡그렸다.
연적하와 같은 젊은이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제가 꼼지락거리는 걸 싫어해서요.”
“화상촌의 남연객잔이라고 했던가?”
“예.”
“당장 해야 할 일이 없다고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아라. 객잔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의 일은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게다.”
“예.”
연적하는 선선히 대답했다.
백부 말대로 객잔이 어디로 갈 것도 아니니 서둘러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연이에게 들었다만 이참에 술법을 배워 두는 건 어떠냐?”
“술법요?”
“유명교와의 전쟁은 언제고 다시 벌어질 게다. 그들도 알고 우리도 아는 일이지. 십두마병과 백두마군, 천두마왕을 상대하려면 술법에 조예가 깊어야 한다.”
“예…….”
“팔문팔상진에서 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다시 전쟁이 벌어지면 너도 휘말릴 게다. 미리미리 대비해서 나쁠 건 없다고 보는데. 네 생각은 어떠하냐?”
“저도 배우고는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요.”
천둔검 때문에라도 술법을 배워 보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녹림도인 자신에게 술법을 가르쳐 줄 사람이 있을지가 의문이다.
“무당파는 어떠냐?”
“무당파요?”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처가 무당파 출신이다. 내가 부탁하면 장문인도 거절하지 않으실 게다. 너도 무당파와 인연이 있지 않으냐?”
“천지상인요?”
“그래, 천지상인은 진무궁의 궁주로 무당파에서 인정받는 실력자다. 장문인과 천지상인이 뒤를 봐준다면 배우는 데 어려움은 없을 터, 배워 보겠느냐?”
“예.”
연적하는 남궁벽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천둔검만 터득한다면 유명교의 진법도 두렵지 않았다.
“그래, 그럼 빠른 시일 내에 무당파 장문인을 만나 그 문제를 매듭지어 주마. 더 할 말이 있느냐?”
“그게, 저어…….”
연적하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백부의 근엄한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기에 그처럼 어려워하느냐? 내가 해결해 줄 터이니 걱정 말고 말해 보거라.”
남궁벽은 연적하가 녹림에 있는 터라 또 무슨 사고를 친 것으로 오해했다.
“그러니까……. 제가…….”
“또 누구를 다치게 한 것이냐? 죽지만 않았으면 된다. 누구를 상하게 했느냐?”
남궁벽이 연적하의 눈을 응시했다.
그의 성정이 악독하지 않으니 살인은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소질이……. 소질이…….”
“그래. 말해 보래도.”
“연 누님과 소질은 서로 사랑하고 있어요. 백부님께서 남직례성으로 가시기 전에 꼭 그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
남궁벽은 한순간 멍했다.
남궁연과 연적하가 자주 어울려 다니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남녀 간의 만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남궁연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줄 사람이 아닌 까닭이다.
그런데 남궁연과 사랑하는 사이라니?
“서로라고 했느냐?”
“예.”
“솔직히 내 딸이지만, 연이가 누굴 좋아할 아이는 아닌데…….”
남궁벽은 연적하의 말을 믿지 못했다.
자신의 딸은 세 살 무렵부터 가족들과 거리를 두었다.
요즘에야 달라졌지만 몇 해 전까지 딸과 대화를 나눈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 딸이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서로 사랑하는데요?”
“적하야. 지금까지 연이를 사모하는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연이가 누군가를 좋아한 적은 없었다.”
남궁벽은 연적하도 그중에 하나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백부님, 저랑 연 누님이 사랑한다고요.”
“정말이냐?”
“예.”
“허, 그럴 리가. 그럴 아이가 아닌데. 혹시 네가 착각하는 건 아니고?”
“누님이 분명히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라도 했느냐?”
“그게, 콕 찍어서 사랑한다는 말은 없었지만요. 제가 누님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 누님도 저를 남자로 좋아한다고 했는데요?”
“연이가 남자로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고?”
“예.”
“흐음. 그렇단 말이지?”
남궁벽이 묘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반신반의에서 믿는 쪽으로 마음이 조금 더 기울어졌다.
잠시 생각하던 남궁벽이 크게 소리쳤다.
“밖에 누구 있느냐?”
“예, 숙부님.”
남궁벽과 함께 외출할 준비를 하고 있던 창천대주 척사검 남궁진이었다.
“연이에게 내가 부른다고 해라.”
“예.”
남궁진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남궁벽이 연적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적하야.”
“예.”
“이 일은 가볍지 않으니 부득이하게 연이를 오라고 했다. 혹 너의 말에 거짓이나 과장이 있는 건 아니겠지?”
“백부님, 저는 지금까지 거짓말이나 과장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하아! 나도 네 말이 사실이기를 바란다. 네가 연이와 맺어진다면 네 부친도 저승에서 기뻐할 게다.”
잠시 후 남궁연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르셨어요?”
남궁벽이 남궁연을 지그시 보며 물었다.
“연아, 적하와 네가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던데 사실이냐?”
“예.”
순간 남궁벽의 입꼬리가 귀밑에 걸렸다.
그토록 무정하던 남궁연이 누군가를 사랑하다니!
더구나 상대가 아끼는 조카이자, 무림의 기인인 연적하다.
남궁벽의 입장에서는 이보다도 더 좋은 일도 없었다.
“그랬구나. 잘되었다. 잘되었어.”
남궁벽은 ‘잘됐다’는 말을 반복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처가 함께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테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행복한 결말이다.
***
하남성.
정주.
공의현.
정오 무렵, 어디선가 수백 명의 무인들이 나타나 풍월루의 입구를 틀어막고, 손님을 내보냈다.
청지맹과 유명교의 고수들이었다.
잠시 후 천지맹과 유명교 협상단이 풍월루 안으로 들어갔다.
“총사, 오늘은 질질 끌지 말고…….”
초장부터 전투적으로 밀어붙이려던 독심귀랑 양소란이 눈을 끔뻑였다.
며칠 전까지 멀쩡하던 얼굴에 온통 칼자국이 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신기수사 제갈승운이 애써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동의합니다. 불초도 오늘은 어떻게든 협상을 마무리 지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머뭇거리던 양소란이 물었다.
“그런데 얼굴은 어쩌다가 그렇게 됐나요? 그사이에 본교의 고수와 싸우기라도 했나요?”
다른 십두마병들도 제갈승운의 얼굴을 보고 옆 사람과 쑥덕거렸다.
“천지맹 내부의 일이니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아, 내부의 일…….”
양소란이 야릇한 눈으로 총사와 천지맹 협상단을 둘러보았다.
유명교처럼 천지맹도 어지간히 다툼이 심한 모양이다.
‘본교는 네 명의 백두마군이 반기를 들었는데, 천지맹도 꽤나 시끄러운 모양이군.’
제갈승운의 찢어진 면상을 보고 있으려니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진다.
“자아, 그럼 협상을 이어 가도록 할까요?”
그래서인지 양소란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에 비해 제갈승운의 말투는 비장하기만 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백 년간 적대시하지 말라’는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좋아요. 그렇다면 양보를 하지요. 십 년간 적대시하지 마세요.”
“불가합니다.”
“삼 년. 더는 안 돼요. 유명교가 승리한 싸움이라는 것을 천하가 알아야 해요. 이것마저도 못 받아들이겠다면 더 이상 협상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