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27
327회. 사냥개는 따로 있다
북쪽으로 간 유명교도들은 풍지산에 있는 교주를 찾아갔다.
그와 반대로 남쪽으로 간 삼백여 명의 유명교도들은 종적이 묘연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유명교가 남과 북으로 갈린 것조차 알지 못했다.
유명교가 대외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도 있지만, 천지맹 해체와 함께 추밀각이 사라진 탓이다.
천지맹이 사라진 뒤로 강호는 그야말로 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칠파일문과 사대세가는 다소 폐쇄적이던 과거와 달리 문호(門戶)를 활짝 열었다.
자칫 도태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자질이 뛰어나면 일단 제자로 받았다.
군소 방파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모든 방파가 제자를 받아들이고, 관할 구역을 지키거나 확장하려 하다 보니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 와중에 상방들의 상권 다툼까지 곳곳에서 벌어졌다.
문제는 군소 방파와 상방들의 싸움을 중재할 단체가 없다는 사실이다.
정파 연합이 만들어진다는 소문은 있지만, 어쩐 일인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유명교는 누가 봐도 느긋했다.
그들은 풍지산을 성지로 선포하고 강호에 출입하지 않았다.
세간의 눈을 의식해 자제하는지 인신 공양에 대한 소문도 수그러들었다.
***
산서성.
교구현.
풍지산 선녀암.
팔황신모의 앞에 일 남 이 녀가 앉아 있었다.
세 명의 백두마군인 환영신마 웅재귀와 무산낭랑 이매화, 월하선자다.
웅재귀가 멍한 눈으로 물었다.
“허면 현세에 더 이상의 천두마왕은 없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봐야겠지.”
“허어! 반도들이 천두마왕의 진언을 앞세워 저희를 회유하려 했었습니다. 자신들과 함께하면 누구라도 천두마왕이 될 수 있다고…….”
웅재귀와 이매화, 월하선자가 허탈한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내심 모두가 천두마왕이 되기를 소원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당대에 천두마왕이 나왔으니 이제는 다음 대에서나 꿈꿔 볼 일이었다.
“흥! 천 명이 아니라 만 명의 머리를 바쳐도 염마왕은 강림하지 않을 것이야. 명부(冥府)의 염마왕이 하나뿐인데 이미 나와 합일 했으니까.”
“아아…….”
웅재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팔황신모가 천두마왕이 되므로 사실상 유명교는 완성되었다.
반도들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교주를 배신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매화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아! 반도들의 욕심에 애꿎은 수도자들만 죽어 나겠군요.”
그런 줄도 모르고 네 명의 백두마 군이 앞다퉈 인신 공양할 걸 생각하면…….
월하선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교주님, 반도들을 제압하려면 백두마군이 더 있어야 하지 않나요?”
“반도들을 정리할 사냥개는 따로 있느니라.”
“따로 있다고요?”
“녹림의 연적하가 나를 위해 그 일을 해 주기로 약속했느니라.”
팔황신모는 ‘약속’에 힘주어 말했다.
월하선자가 놀란 눈으로 교주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교주가 한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교주와의 약속은 사람의 허튼 말과 궤를 달리하니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도 하필 연적하라니!
“그는 본교의 원수인데……. 괜찮을까요?”
월하선자의 염려에 팔황신모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네가 와룡장을 멸한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허나 그는 와룡장과 원수지간이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그의 손에 죽은 교도들이 많지 않습니까?”
“우리 손에 천하인들이 죽었다. 네 말대로라면 우리는 천하의 원수냐?”
“아, 아니옵니다.”
“진정으로 네가 원하는 것은 연적하의 죽음이냐? 아니면 새로운 백두마군이냐?”
팔황신모가 월하선자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월하선자는 황망히 머리를 조아리며 답했다.
“제가 어찌 교주님의 혜안을 따라 갈 수 있겠사옵니까? 단지 배교자들의 빈자리를 채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백두마군을 더 세워 달라는 소리다.
백두마군의 진언은 백두마군들도 알고 있지만, 교주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적합한 자가 있느냐?”
“예, 저에게 속한 십두마병 중에 백미주라고 자질이 뛰어난 자가 있어서…….”
“백미주?”
“와룡장의 안주인이던 사람이에요.”
“오호. 네가 멸한 집안의 사람을 받아 주었다는 게냐?”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아 원한으로 똘똘 뭉친 여자예요. 제 발로 저를 찾아와 십두마병이 되었지요.”
“연적하와는 어떤 관계더냐?”
“계모예요.”
“그런 인연이. 좋다. 허락하마.”
“감사해요, 교주님.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월하선자가 공손히 두 손을 맞잡고 머리를 조아렸다[拱手].
교주의 허락을 득했으니 백미주가 백두마군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
하남성.
개봉.
화상촌 남연객점.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은 월아와 금아를 데리고 객점으로 돌아갔다.
남초결은 연적하가 데리고 온 소녀들을 내치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연적하에게 객점 소유권이 절반이나 있기도 하지만, 그가 무림의 고수인 까닭이다.
삼보방 소방주 녹담평이 객점 옆에 초막을 짓고 살아가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일이다.
천화방과 삼보방 고수들도 사나흘에 한 번씩 들러 인사를 하고 간다.
물론 모두가 연적하에게 눈도장을 받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연적하가 데리고 온 사람들을 쫓아낸단 말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연적하가 월아와 금아에게 객점 일을 맡겼다는 사실이다.
방 하나를 더 내주게 되었지만, 일손이 둘이나 늘어난 셈이다.
남수경은 몰라도 점소이 상도는 오히려 좋아했다.
또래의 귀여운 소녀들이 객점에서 함께 일하니 그럴 만도 하다.
심통은 아침저녁으로 월아와 금아에게 검술을 가르쳤다.
그 외의 시간에는 모두가 객점 일을 거들었다.
그건 월아와 금아의 사부인 심통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객점 뒤편에 있는 쪽방 하나를 얻고, 대신에 남초결과 교대로 계산대를 맡았다.
주루 주인이 인생의 목표가 된 심통은 비슷한 업종이라며 마다하지 않았다.
연적하의 일과는 이전과 같았다.
날마다 효자암(자살 바위)에서 명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점심 무렵.
남수경은 밥때가 되자 연적하를 부르러 효자암으로 갔다.
인기척에 나무 그늘에서 졸고 있던 녹담평이 자세를 바르게 했다.
남수경은 그를 본체만체하고 연적하에게 다가갔다.
연적하는 오늘도 눈을 감고 바위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있었다.
“연 공자님, 식사하셔야죠? 연 공자님?”
두 번 연거푸 부르자 연적하가 천천히 눈을 떴다.
“벌써?”
“주무셨어요?”
“이런 데서 어떻게 자? 떨어져 죽으라고?”
“그런데 왜 그렇게 못 들으세요?”
“어험! 경지가 깊어서 그래, 경지가.”
“피이, 인기척만 나도 눈을 떠야 정상 아니에요? 원수가 뒤에서 노리면 어쩌시려고?”
“살기가 있었으면 알고도 남지. 이 친구야.”
연적하가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어 냈다.
무림인이었다면 알아들었을 테지만 남수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휘적휘적 앞서 걸어가던 연적하가 물었다.
“외숙에게서는 연락 없었지?”
“네.”
“월아와 금아는 좀 어때? 일 잘해?”
“아유! 말도 마세요. 기대 이상으로 잘해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귀한 집 자손처럼 생겼던데 그렇게 막 부려 먹어도 되나 모르겠어요.”
“괜찮아. 객점에서 숙식하는 동안은 실컷 부려 먹어.”
“그럴게요.”
연적하가 객점으로 들어가자 심통이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왜 웃어? 소름 돋게.”
“주루를 열 만한 자리가 나왔습니다.”
“어딘데?”
“마을에 있던 포목점 하나가 개봉으로 옮겨 간답니다. 그 자리에 주루가 어떨까 싶어서요. 뒷마당도 넓어서 연무장으로 괜찮아 보이고.”
“얼마래?”
“삼천오백 냥인데 삼천 냥에 넘기겠답니다.”
“싸네?”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건물값이 생각보다 쌌다.
개봉에 있었으면 두세 배는 불렀을 것이다.
삼천 냥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화상촌이 작아서 주루가 흥할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심통이 애매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주루로 큰돈을 벌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걱정 없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마을에 주루가 없잖아?”
“예, 주루도 없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지요.”
“뭐가 걱정이야? 딸린 식구도 제자 둘밖에 없는 늙은이가. 설마 주루하다가 굶어 죽을까 봐?”
“그런 건 아니지만 이왕 시작했으면 남들만큼은 벌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봐, 돈을 벌고 싶은 거야? 소소하게 하고 싶은 일 하다가 죽고 싶은 거야?”
“그야 당연히 후자지요.”
“그럼 뭘 망설여? 포목점 주인에게 계약서 들고 오라고 해. 내가 사 줄 테니까. 화상촌을 지나다니는 상방이 많아졌다면서? 금아가 틈나는 대로 연주하면 손님이 바글거릴 거야.”
“그, 그렇겠지요?”
“살 거야 말 거야? 내 수중에 목돈 있을 때 사. 나 기분파인 거 알지? 사촌동생 혼례식에 가서 얼마를 퍼 주고 올지 몰라.”
“사야지요. 암요.”
심통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적하가 사촌동생에게 돈을 다 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난 것이다.
점심 식사를 마칠 무렵, 포목점 주인이 계약서를 들고 찾아왔다.
연적하는 심통에게 삼천 냥을 주고 계약을 마무리하게 했다.
계약을 끝낸 심통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런 심통에게 연적하는 다시 천 냥을 더 내주었다.
“포목점을 그냥 주루로 사용하기는 어려울 거야. 목수를 사서 내부를 조금 손보고, 월아와 금아가 머물 방도 만들어 줘. 그 정도는 해 놓고 제자들을 부려 먹어야지.”
“감사합니다. 공자님.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버는 족족 갚어. 안 갚으면 내가 매일 주루에 나가서 진상짓 할 거야.”
“흐흐, 공자님은 공짜로 마셔도 됩니다. 매일 오십쇼.”
심통은 연적하가 매일 주루에 나와 주기를 바랐다.
월아와 금아에게 조금이라도 더 배울 기회를 주고 싶어서다.
“됐고, 주루 공사가 끝나면 월아와 금아나 데리고 나가. 이젠 진짜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거야. 장사 안 된다고 와서 질질 짤 생각은 하지도 마.”
“공자님, 주루와 객점은 한 몸이라는 걸 모르십니까? 제 주루가 망하면 객점도 파리만 날릴 겁니다. 제가 웃어야 공자님도 웃을 수 있다는 걸 알아 두십쇼.”
“지금 협박하는 거야? 꼴 보기 싫으니까 얼른 가서 주루 공사나 해.”
“예, 예. 그럼 물러갑니다요.”
심통은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과장되게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남수경이 물었다.
“공자님, 괜찮겠어요?”
“왜?”
“화상촌에 사람이 얼마 없잖아요. 가게는 비싸겠지만, 그래도 사람 바글거리는 개봉이 나을 것 같은데.”
“친구. 심 노인 나이를 생각해 봐. 개봉에 적당한 가게 나오는 거 기다리다가 휙 갈 수도 있어. 그리고 저 늙은이는 돈벌이에 관심 없어. 죽기 전에 해 보고 싶었던 일 하겠다는 거지. 그런 거라면 하루라도 생생할 때 빨리 하는 게 나아. 나를 보면 모르겠어?”
“그렇기는 하네요.”
남수경이 고개를 주억거릴 때다.
객점 문을 열고 들어온 사십 대 남자가 정중하게 말했다.
“정주 대림표국의 표두 삼진도 송군청이라 합니다. 남연객점의 연 공자님께 전해 드릴 물건이 있어 왔습니다. 계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