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30
330회. 미관말직에게 대단한 임무가 주어지겠소?
혼례식 하루 전.
금의위 남진무사 동유수가 언제나처럼 예고도 없이 불쑥 연적하를 찾아왔다.
연적하는 주변 시선이 신경 쓰여 그와 함께 집 뒤편의 방산으로 향했다.
중턱쯤 올라 석장촌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올 즈음이다.
동유수가 마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연 공자, 이번에 녹림의 태상호법이 되었다지요? 축하드리오.”
“그게 축하할 일이 되나요?”
“허허, 녹림의 태상호법이면 사파의 최고 어른이 아니오? 축하를 받고도 남을 자리외다.”
“녹림은 관부와 상극인데 축하까지 받으니 좀 그렇네요.”
연적하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뭔가 부탁할 게 있을 때 찾아온다는 점에서 동유수와 파천마군은 닮아 있었다.
“연 공자가 어디 보통 녹림이오? 황실에서는 연 공자를 귀인으로 생각하고 있소.”
동유수가 은근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일전에 동유수는 ‘남진’과 ‘연적하’가 천지맹을 만든 것으로 보고를 올렸다. 덕분에 황실은 연적하를 단지 ‘도적의 수괴’로만 여기지 않았다.
“그래 봐야 도적이죠.”
“무슨 그런 말을. 천하에서 연 공자를 도적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오.”
연적하는 대꾸하지 않았다.
겁이 나니까 앞에서 그렇게 부르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동유수와 그런 뻔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생각은 없었다.
“참, 남편감을 동 대인이 소개했다고 들었는데요.”
“첫째 아가씨가 참한 게 마음에 들어서 월하노인 행세를 좀 해 봤소.”
“다른 이유는 없고요?”
“내 수하에게 쓸 만한 외조카가 있다고 해서 다리를 놨을 뿐이오. 그냥 있으려고 했는데 자꾸 이 처사(處士) 주변에 파리들이 꼬이는 것 같아서.”
한마디로 다른 사람이 채가기 전에 손을 썼다는 소리다.
연적하는 비로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지난 계례식 때 그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걸 보고 동유수가 먼저 움직인 것 같았다.
“단지 그뿐이라면 다행이고요.”
“진우생이 고작 금의위 소기(小旗, 최하급 직위)인데 다른 이유가 있겠소?”
연적하가 동유수를 힐끔 보았다.
유화의 남편 될 사람의 이름이 진우생인 모양이다.
“제가 금의위를 잘 몰라서.”
“소기는 금의위의 말단으로 수하 열 명을 데리고 있소.”
“그래도 완전 바닥은 아니네요?”
“허허, 이를 말이오? 소기는 무과를 치르고 선발된 무인이라오. 소기 위로 총기(總旗)가 있소. 진우생이 십 년 이상 공적을 쌓아야 노려볼 만한 자리지.”
연적하는 동유수의 말을 알아들었다.
‘소기는 낮은 자리니 그를 소개함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연적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소기는 금의위의 손과 발에 불과한 자리외다.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손과 발이라고요?”
“그렇소.”
동유수가 뻔뻔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뭐가 문제냐는 듯한 표정에 연적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손과 발이라는 말은 현장 실무자들이라는 거네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군. 맞소.”
“진우생에게 맡겨진 임무가 있겠죠? 뭔가요?”
“진우생 같은 미관말직에게 무슨 대단한 임무가 주어지겠소? 총기라면 모를까.”
“아하, 그렇다면 진우생의 상관이 맡은 임무가 중요한 것이겠군요?”
“총기들에게 시시한 임무가 주어지지는 않으니 당연하지 않소?”
“그 임무가 뭔데요?”
“흠, 기밀이지만 연 공자와 우리 남진은 남이 아니니 알려 드리리다. 다가오는 원소절(元育節, 음력 1월 15일)에 개봉의 건국사(建國寺)에서 큰 제사가 있소. 그 제사를 주관하는 자가 유명교의 현장 법사외다.”
“…….”
유명교 현장 법사라는 말에 연적하가 뜨악한 얼굴로 동유수를 보았다.
이전에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동유수는 금의위 북진무사들이 그를 암살하려다가 큰 피해를 봤다고 했었다.
‘이 미친 사람들이 설마…….’
거기까지 생각한 연적하는 급히 동유수의 말을 막았다.
“아, 금위의의 기밀이라니 알고 싶지 않네요. 저는 여기까지만 들을게요.”
“허허, 우리 남진과 연 공자 사이에 무슨 비밀이 있겠소.”
“아뇨. 형님들이 그러는데 부부간에도 비밀은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연적하는 서둘러 말을 맺고 돌아섰다.
“날도 덥고 목도 마른데 슬슬 내려가죠?”
“진우생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은 없소? 이를테면 그의 성향이라든가.”
“관심 없어요.”
“그래도 유화 소저를 위해서.”
“좋은 사람을 소개하셨겠지요. 저는 그가 유화를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일이 생기면 그에게 몹쓸 짓을 할 것 같거든요.”
스산한 연적하의 말에 동유수는 일순 답하지 못했다.
연적하를 이용하려고만 했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진우생이 어떤 놈이었더라…….’
급히 진우생을 떠올려 보았지만 아는 게 없었다.
수하가 ‘외조카 중에 나이가 얼추 맞는 놈이 있다’고 해서 엮어 준 게 전부였다.
동유수가 머뭇거리는 동안 연적하가 저만치 걸어갔다.
뒤늦게 걸음을 떼는 동유수의 얼굴이 편치 않았다.
현장 법사의 이름만 말하고 가려니 큰일을 본 뒤에 뒤를 닦지 않은 기분이었다.
“연 공자.”
그가 급하게 불러보았지만 연적하의 걸음만 빨라졌다.
속이 달아오른 동유수는 부지런히 발을 놀려 그를 따라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뒤통수에다 못다 한 말을 쏟아 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남진의 여러 목숨이 달린 일을 공공연하게 떠들어 댈 수는 없었기에.
***
혼인식 날이 밝았다.
과거 촌장의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석장촌 아낙들이 몰려와 음식 준비를 거들었다.
혼례식은 마치 마을 잔치처럼 치러졌다.
계례식 때보다 손님이 더 많아 담장 밖까지 상을 차려야 했다.
손님들은 일단 대문 안으로 와서 인사를 한 뒤에 밖으로 나갔다.
연적하는 외숙 옆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았다.
외숙 쪽의 유일한 친척인지라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켜야 했다.
사시 말(오전 11시)이 되었을까?
슬슬 지쳐 갈 즈음 신랑 쪽 사람들이 몰려왔다.
화려한 예복을 입은 신랑 뒤로 십여 대의 마차가 보였다.
좋은 집안 출신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차에서 귀티가 줄줄 흘렀다.
마차가 집 앞까지 들어가지 못해 거리는 온통 마차로 가득했다.
아무 생각 없이 외숙을 따라 묵례를 하던 연적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길게 늘어선 신랑 쪽 사람들 가운데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 것이다.
‘응? 저 사람은?’
분명 오는 길에 동행했던 ‘백무상’과 ‘어르신’이라는 노인이었다.
한순간 백무상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사돈 쪽에 문제가 좀 있어서 내키지 않아 하시네. 당사자인 조카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 같고.
-그런 혼인을 왜 한대요?
-집안에서 밀어붙이니까 마지못해 하는 거겠지.
-사돈 쪽에 문제가 있다면서 왜 밀어붙여요?
-관인 집안이니 말 못 할 이유가 있지 않겠나.
그들이 참석한다는 혼례가 유화의 혼례였다니 세상 참 좁다.
‘당사자인 조카가 탐탁지 않아 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불쾌감이 밀려왔다.
‘뭐야, 그러니까 지금 유화를 탐탁지 않아 하는 남자에게 시집을 보낸다고?’
분명 금의위 남진무사 동유수가 자기 수하에게 강권해서 생긴 일이리라.
연적하는 화려한 예복의 신랑에게 눈을 돌렸다.
진우생이라고 하던가.
역시나 애써 담담한 척하지만 눈빛에서 불편한 심기가 느껴졌다.
잠시 후 신랑 측에서 오십 대 남자가 다가왔다.
남자를 본 이우석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사돈. 적하야, 인사드리거라.”
오십 대 남자, 진청교가 연적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청교는 반신반의한 눈빛이었다.
설마하니 강호에서 악명이 자자한 연적하가 이렇게 앳된 청년이라니?
진청교는 이우석과 눈인사를 마친 뒤 바로 연적하에게 습을 했다.
“진청교라 하오.”
“연적합니다.”
연적하는 뚱한 얼굴로 한마디 하고 이내 시선을 돌렸다.
냉랭한 연적하의 태도에 진청교는 크게 당황했다.
남진에서 연적하에게 들이는 공도 있지만, 연적하라는 인물 자체도 무시무시하다.
녹림의 태상호법.
한때 유명교에서 포상금을 내걸었지만, 척살에 실패할 정도로 뛰어난 무위를 가진 자.
녹림에서조차 소악마라고 불릴 정도의 잔악한 심성을 가진 인간.
혈족조차도 눈에 거슬리면 멸문시켜 버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대마두.
가슴이 철렁한 진청교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순진한 얼굴과 달리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마두로구나.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그때 이우석이 연적하의 등을 툭 쳤다.
“이 녀석, 상대방을 앞에 두고 그러면 안 되지. 사돈 놀라시겠다. 하하, 사돈. 이해해 주십시오. 워낙 거칠게 자라서 예의와 거리가 좀 멉니다.”
“어허허.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괜찮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과거와 달라서 어느 자리에서건 편하게 행동하더군요. 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아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만에 하나라도 어디 가서 그랬다가는 몽둥이찜질로 다스렸을 것이다.
진청교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적하의 눈은 진우생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먹잇감을 노려보는 야수처럼 말이다.
한편 진우생도 이 자리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외부인들은 모르겠지만 이우석의 집안은 몇 번이고 뒤집어졌던 혼인처였다.
일단 가난하고 별 볼 일 없는 집안이라 어르신들 눈에 차지 않았다.
그다음은 우습게도 녹림의 대마두가 집안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남진무사인 동유수는 이우석의 친척 중에 녹림 고수가 있어서 추천했지만, 자신의 집안에서는 그런 이유로 반대를 했다.
몇 번이고 어그러졌던 탓에 혼례식 날짜도 급하게 잡아야 했다.
그래도 길일을 택해야 했으니까.
‘하아! 내가 이런 촌구석의 여자와 살아야 한다는 거지?’
마을에 들어서면서 본 여자들은 하나같이 추하고 겉늙어 보였다.
하루 종일 고된 밭일을 하니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자신과 혼례를 올릴 여자도 저런 사람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니 답답했다.
그러다 보니 나오는 게 한숨이다.
‘아아! 이 진우생의 인생도 이렇게 끝나고 마는구나.’
그래도 어쩌랴!
가문의 중흥을 위해서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설 수밖에.
한탄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진우생은 노골적인 시선에 멈칫했다.
부친의 앞에 있는 앳된 얼굴의 청년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신부 측 사람인 모양인데 눈빛이 불손했다.
‘점입가경이로구나. 나보다도 어려 보이는 놈이 싸가지 없게.’
하나가 싫으니 온갖 게 다 눈에 거슬렸다.
진우생은 청년을 마주 노려보다가 같잖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금의위 소기인 자신이 시골 놈들과 눈싸움이나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행여나 동료들이 알면 배꼽 잡고 웃을 일이다.
혼례식에 소기들과 자신의 수하들도 와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
허허로운 눈빛으로 혼례식을 살피던 진우생의 눈에 신광이 번득였다.
방문이 잠깐 열렸다 닫힌 순간 뭔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곱게 단장한 신부의 모습이었다.
인생의 쓴맛이란 쓴맛은 다 본 것 같던 진우생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마치 가뭄 끝에 비를 만난 농부와도 같았다.
처가 될 이유화의 얼굴을 본 진우생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게 인생 역전이라는 걸까?
진우생이 애써 표정을 관리할 때다.
아까부터 꾹 참고 있던 연적하가 마침내 살벌한 냉소를 흘렸다.
“흥!”
공력이 잔뜩 실린 그의 콧웃음에 잔칫집은 한순간 얼음 구덩이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