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33
333회. 걸어 다니는 병풍
연적하가 승낙하자 청주삼협의 대형인 장위안은 점소이를 불렀다.
“여기 술 좀 내오거라.”
“예, 검남춘과 여아홍, 죽엽청, 백건아가 있는데 무엇으로 하시겠어요?”
점소이는 가격 순서대로 부르고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함께한 손님의 격에 따라 선택하는 술이 바뀌니 절로 호기심이 일었다.
그가 귀한 손님이라면 검남춘을, 그저 그런 사람이면 백건아를 주문할 게다.
“죽엽청으로 내오거라.”
“예, 예.”
점소이는 마지막으로 연적하를 스치듯 다시 봤다.
죽엽청은 조금 애매하다.
백건아보다는 비싸지만 고급 술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니까 별 볼 일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인물도 아니라는 소리다.
자신이 합석시킨 손님의 품평을 끝낸 점소이는 종종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죽엽청이 나올 즈음 연적하는 양육 회면을 바닥까지 깨끗하게 비웠다.
본래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 알뜰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전에는 음식의 태반을 남겼지만 지금의 연적하는 그러지 못했다.
“자자, 한잔하자고.”
일수한이 연적하의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술이 한 순배 돌 무렵, 연적하가 물었다.
“제가 몰라서 그러는데, 건원표국은 어디에 있는 표국인가요?”
그러자 일수한이 바로 답했다.
“남직례성에 본점이 있어. 정주에 분점이 있고.”
“그런데 여기서 뭘 하는 거예요?”
“중간쯤인 허창에도 분점을 하나 내려고 하는데, 여기저기서 견제가 들어오는 모양이야.”
“견제요?”
“허창에 있는 표국이나 상방에서 좋아하겠어? 이권을 나눠 갖게 생겼는데.”
“아하!”
백옥조가 보충 설명을 했다.
“허창의 분점이 사흘 후에 문을 열어요. 그때까지 소 행수님의 곁을 지켜 주는 게 우리 임무죠.”
“그럼 세 분은 본점에서 나오신 거예요?”
“맞아요. 소 행수님이 신변 보호를 요청해서 지원을 나온 거예요.”
“문만 열면 끝나나요?”
“일단 정식으로 개업을 하면 그때는 관부에서도 주시를 하니까 함부로 못 하게 돼요.”
“개업 전에는요?”
“분점의 책임자가 사라지면 사업도 공중분해 되죠. 그때까지 쏟아부은 돈만 날리고.”
“와, 엄청 중요한 일이네요?”
“맞아요.”
“그런 중요한 일을 단 세 분이 하는 건 아니겠죠?”
“후후! 당연히 아니죠. 소 행수님이 허창에서 고용한 사람들도 많아요. 분점을 운영하려면 그만한 인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일수한이 한마디 추가했다.
“소형제, 우리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소 행수님을 보호하러 온 거야. 돈이야 잃어버려도 다시 벌면 그만이지만, 행수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제야 연적하는 ‘소지웅 행수를 보호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았다.
‘이들은 소 행수의 호위였구나.’
돈보다 행수를 더 중히 여긴다니 건원표국이라는 곳에 호감이 갔다.
“그렇게 심각할 거 없어. 지금까지 순조롭게 일이 진행됐으니까. 위기의 징조라고 할 것도 없었고. 소형 제는 사흘간 우리만 잘 따라다니면 돼.”
“일당은 얼마나 되는데요?”
일수한이 연적하의 몰골을 슥 보더니 답했다.
“그건 서 행수의 마음에 달렸어.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그의 권한이니까.”
“예? 그럼 그가 저를 고용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럴 리가. 우리 청주삼협이 추천하는 사람인데 써야지. 다만 몸값을 책정하는 게 우리 권한이 아니라는 거야.”
“아, 예.”
몸값 얘기를 듣고 있던 백옥조가 거들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잘 쳐주라고 우리가 말해 둘게요. 소 행수님이 깐깐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말은 잘 들어주시니까.”
그녀의 말에 오히려 연적하는 불안을 느꼈다.
믿고 있었는데 깐깐하게 나오면 그야말로 대책이 없는 까닭이다.
***
“하루에 오십 문을 주지. 숙식을 제공하는 조건이면 적당한 듯한데, 어떤가?”
하루에 오십 문이면 열흘에 오백 문, 한 달이면 천오백 문이다. 은자로 치면 한 달에 ‘한 냥 반’을 받는 셈이니 굉장히 싼 편이었다.
연적하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청주삼협을 보았다.
술자리까지 파한 뒤 그들을 따라 분점이 있는 천지장원으로 왔다.
그리고 소지웅 행수를 만났는데, 그는 대뜸 오십 문을 불렀다.
보통 낭인들의 경우 일당으로 못해도 백 문을 받았다.
그렇게 한 달 내내 일하면 은자 세 냥을 번다. 하지만 의식주로 한 냥 반쯤 까먹으니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한 냥 반인 셈이다.
그러니 오십 문이면 남는 게 없는 장사다.
숙식을 제공한다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도 상도의에는 많이 어긋난 경우였다.
‘깐깐하다더니 장난 아니구나.’
연적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소지웅을 보았다.
쭉 찢어진 눈매에 강팍하게 생긴 얼굴, 인정머리와는 담을 쌓은 생김새였다.
‘사흘 일하고 백오십 문이라.’
자신이 지금까지 낭인 일을 하며 받았던 것 중에 최악의 보수다.
연적하가 망설이자 장위안이 끼어들었다.
“소 행수님, 조금 더 쓰시지요. 낭인들이 한 달에 은자 세 냥을 받지 않습니까? 오십 문이면 반값 정도밖에 안 되는 금액입니다.”
“그야, 칼을 잘 쓰는 낭인들이 그런 거고. 이 소형제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빠듯해 보이지 않은가. 병풍으로 데리고 다니는 건데 오십 문이면 충분하지.”
“소 행수님, 낭인들은 그냥 칼만 들고 서 있어도 백 문을 받습니다.”
“그야 낭인들만 불렀을 때의 이야기고, 지금은 표국 호위에 자네들까지 있지 않은가.”
소지웅은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소지웅과 청주삼협의 실랑이를 보고 싶지 않던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요. 걸어 다니는 병풍이 그 이상을 바라면 실례겠죠?”
비꼬는 말이었지만 소지웅은 신경 쓰지 않고 돈주머니를 열었다.
“건원표국은 일처리가 분명하니 선불을 주지. 앞으로 사흘간 청주삼협의 곁에서 떨어지지 말게.”
연적하에 대한 기대를 접은 그는 ‘청주삼협에게서 떨어지지 말라’고 했다.
그의 말에서는 은근 청주삼협에 대한 불편함마저 엿보였다.
사실 소지웅은 청주삼협이 길거리에서 낭인을 데리고 온 걸 탐탁지 않게 여겼다.
‘분점의 호위와 청주삼협으로 충분한데 무슨 짓들인지 원…….’
아무리 친구 사귀기를 좋아해도 지금 새로운 낭인을 끌어들이는 건 좋지 않다.
‘쯧!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공사를 구별하지 못하다니.’
그나마 친분이 있는 청주삼협의 짓이기에 그냥 넘어갔지 그게 아니라면 한마디 했을 것이다.
소지웅 행수의 집무실에서 나온 장위안이 씁쓰름한 얼굴로 말했다.
“이거 미안하게 됐네. 원래 저렇게 매정한 분이 아닌데. 뭔가 속상한 일이 있으셨던 모양이야.”
“괜찮아요. 그래도 숙식이 공짜인 게 어디예요?”
사실 소지웅이 짜게 굴긴 했지만 숙식 제공을 생각하면 화를 낼 일도 아니었다.
청주삼협은 연적하를 호위무사들의 숙소로 안내해 주고 돌아갔다.
연적하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쉬고 있던 무사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중 하나가 물었다.
“소형제는 누군가? 못 보던 얼굴인데?”
“연적하라고 해요. 청주삼협의 소개로 사흘간 일을 하게 됐어요.”
아니나 다를까?
연적하라는 이름에 호위무사들은 ‘픽’ 하고 실소를 흘렸다.
최근 연적하라는 이름이 뜬 덕분에 개나 소나 그 이름을 쓰고 있어서다.
“나는 주구에서 온 사강정이라 하네. 소형제는 어디에서 온 연적하인가? 설마 오봉산은 아니겠지?”
사강정의 말에 참고 있던 호위들이 와아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헤헤, 저는 정주에서 왔어요.”
“오, 정주라고? 그렇다면 혹시 천지맹이나 유명교 사람을 본 적 있나?”
“못 봤는데요?”
“이런! 다음부터 누가 물어보면 안 봤어도 봤다고 하게. 그럼 조금 더 나은 대접을 받게 될 테니까.”
“그런가요?”
“아무렴. 칠파일문이나 사대세가 사람들을 먼 발치에서 본 것만으로도 평생의 자랑인데. 나도 정주에 가 볼까하다가 괜히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까 봐 피했다네. 자네도 못 본 게 되레 잘한 걸 수도 있어.”
사강정은 병 주고 약 주고 했다.
그래도 사강정이 말을 걸어 준 덕분에 연적하는 호위무사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반 시진(1시간)쯤 지났을까?
대화가 시들해지자 연적하는 비어 있는 구석진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행낭을 베고 누워 있으려니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연 누님은 잘 지내시려나?’
‘남궁세가도 건원표국처럼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겠지?’
‘심 노인은?’
‘월아와 금아는?’
연적하는 그런저런 잡생각을 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청주삼협이 한창 곤하게 자고 있는 그를 깨웠다.
그때부터 청주삼협과 연적하는 한 몸처럼 하루 종일 붙어 다녔다.
그건 녹림 출신으로 자유롭게 살던 연적하에게는 고문과도 같았다.
그러나 하루 일당 오십 문의 힘이 컸다.
연적하는 이를 악물고 힘든 내색 없이 묵묵히 버텼다.
하지만 누구도 연적하를 동정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오가다 만난 할 일 없는 사람들은 그의 처지를 부러워했다.
하는 일 없이 돈을 받으니 당연하다.
청주삼협과 연적하는 마치 소지웅의 그림자처럼 하루 종일 그를 따라다녔다.
심지어 소지웅이 뒷간에 갈 때도 따라갈 정도였다.
내외공이 입신의 경지에 든 연적하에게는 그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참기 힘들 정도로 진한 냄새와 고막을 울리는 선명한 소리 때문이다.
미시 말(오후 3시).
분점의 집무실로 돌아와 잠시 서류를 작성하던 소지웅이 다시 일어났다.
집무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청주삼협과 연적하가 먼저 마당으로 내려왔다.
소지웅이 마루에 서서 호위무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강 건너 무곡산장에서 점주들의 회합이 있네. 호위가 너무 많으면 겁먹은 것으로 보일 테니, 열 명만 데리고 가겠네. 사 조장, 자네를 포함해 일곱, 아니 여섯을 골라 보게.”
말 끝에 소지웅은 못마땅한 눈으로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청주삼협 외에 한 자리를 더 비워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사강정이 즉시 나서서 다섯 명의 호위무사를 추려 냈다.
소지웅은 청주삼협과 연적하를 포함한 열 명의 호위와 함께 분점을 나섰다.
소지웅을 뒤따라가던 장위안이 말했다.
“행수님, 그래도 이 지역 점주들의 모임인데 이 정도 숫자로 괜찮겠습니까?”
허창을 근거지로 하는 상방과 표국 점주들의 모임이니 적지(敵地)라 할 수 있다.
그런 곳에 고작 열 명으로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객기였다.
“음모란 본시 한두 사람이 꾸미는 것일세.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는 오히려 안전하지. 그걸 역으로 이용해 이쪽의 대범함을 보여 주려는 것일세.”
“하지만…….”
장위안은 말끝을 흐렸다.
사람의 일이라는 게 어디 생각대로 되던가 말이다.
많은 수가 모이다 보면 반드시 꼴통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위인이 나오기 마련이다.
장위안이 염려하는 것은 바로 그런,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영하강 변.
소지웅 행수 일행이 선착장에 도착했다.
제법 규모가 있어 보이는 배 한 척이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소지웅을 알아본 선주(船主) 적우공이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소 행수님,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적 선주, 이리 환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배 위로 올라갔다.
소지웅과 열 명의 호위들이 승선을 마치자 적우공은 배를 출발시켰다.
배가 영하강의 중심부로 나갈 때까지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배가 강의 중심에 도달했을 때다.
돌연 적우공과 사공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강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