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34
334회. 오십 문짜리 낭인에게 뭘 바라요?
적우공과 사공들이 강으로 뛰어드는 걸 본 연적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과거 장강에서의 일이 떠올라서다.
장강수채의 채주 장강일괴 양대호가 똑같은 짓을 했었다.
‘아니지, 장강일괴는 더 심했지.’
그는 화약으로 자신이 타고 있던 배를 폭파시키기까지 했다.
수적들에 비하면 아직은 양호한 편.
‘이제 곧 물질에 능한 이들로 하여금 배에 구멍을 내고 공격하려나?’
당황한 호위무사들과 청주삼협이 어쩔 줄 몰라 할 때 연적하는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
나루터까지는 이십여 장 거리.
공교롭게도 장강일괴에게 당할 때와 비슷했다.
구천구검 구 식 능운소요(凌雲道遙)를 펼친다면 건너가는 건 일도 아니다.
다만 소지웅과 청주삼협이 문제다.
‘아니, 나는 오십 문짜리니까 청주 삼협만 도와주면 되겠지.’
연적하에게는 소지웅보다 청주삼협이 더 중요했다. 그들이 처음 보는 자신에게 베푼 온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주위를 살피던 소지웅이 인상을 찌푸렸다.
위기의 순간에도 뱃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연적하가 눈에 거슬려서다.
“어이, 거기 연 형제! 멀뚱멀뚱 서 있지 말고, 다른 사람들처럼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게.”
“다들 뛰어만 다니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는데요?”
연적하의 말에 소지웅은 뭐라 하려다 말았다.
사공이 사라진 배는 물살에 조금씩 떠내려 가고 있었다.
배가 침몰되고 있다면 모를까?
그저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딱히 승객들이 할 만한 일은 없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하지 말고 뭐라도 하란 말일세!”
소지웅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연적하가 투덜거렸다.
“아니 병풍이라면서 왜 그런데? 병풍이 가만히 서 있으면 되지 뭘 어쩌라고.”
“지금 뭐라고 했나!”
소지웅이 화를 이기지 못해 펄쩍 뛸 때다.
갑자기 배 밑바닥에서 ‘쿵쿵’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뱃머리와 후미를 미친놈처럼 뛰어 다니던 사강정이 소리를 질렀다.
“적이 배에 구멍을 내려 한다! 물질에 능한 자가 있는가!”
그러나 다섯 명의 호위 중에 나서는 자가 없었다.
밑바닥을 찍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사강정은 답답한 듯 배의 난간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제길!”
이럴 때는 물질을 못 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한동안 입술을 물어뜯으며 소리를 듣던 사강정은 소지웅에게 달려갔다.
“행수님! 배가 곧 침몰할 겁니다. 의지할 만한 것을 찾아 붙들고 계십시오.”
청주삼협이 소지웅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마침내 배 밑바닥에 구멍이 났는지 배가 서서히 아래로 잠겨 갔다.
그때 장위안이 대뜸 칼을 뽑아 돗대를 후려쳤다.
청주삼협의 대형답게 한 아름이 넘는 돗대가 성둥 베어졌다.
꽈르르.
돗대가 뒤로 넘어지며 선실이 박살 났다.
덕분에 크고 작은 나무판자들이 갑판 위로 쏟아져 내렸다.
겁에 질린 몇몇 호위무사들은 나뭇조각을 찾아 분주하게 갑판 위를 돌아다녔다.
꾸르르르-.
배가 물속으로 잠겼다.
다행히 배의 크기가 크지 않아 함께 빨려 들어간 사람은 없었다.
널빤지들과 돗대가 물살을 따라 천천히 흘러갔다.
소지웅과 호위무사, 그리고 청주삼협은 돗대를 붙잡고 열심히 두 발을 놀렸다.
그때 마치 상어 떼처럼 십여 명의 사람들이 물속에서 다가왔다.
그들을 발견한 사강정이 급히 도를 뽑아 들었다.
“모두 조심하십쇼! 물밑에 적들이 있습니다!”
사강정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그때다.
수면 아래 잠겨 있던 연적하의 두 발이 쾌속하게 움직였다.
비연보를 펼친 것이다.
콰드드득-.
돗대가 한쪽으로 방향을 틀며 기이한 소리를 내뿜었다.
곧이어 기다란 돗대는 물살을 가르며 건너편 선착장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돗대가 움직이자 물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쏴아-.
사강정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단검을 피하며 도를 휘둘렀다.
“크윽!”
어깨가 베인 남자가 비명을 내지르 며 뒤로 빠졌다.
사내의 행색을 본 사강정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헛! 해사방!”
해사방은 영하강에 자리잡은 군소방파 가운데 하나다.
그들은 녹림에 들지 못할 정도로 실력이나 규모는 작았다. 그렇다 해도 어엿한 방파. 호위무사 열 명으로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상황은 점점 해사방에 불리한 쪽으로 흘러갔다.
돗대가 헤엄치는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선착장으로 가고 있어서다.
다급해진 해사방은 수면 위로 튀어 올라왔고, 그럴때마다 호위무사들의 공격을 받았다.
콰드득!
마침내 돗대가 선착장을 들이박고 멈춰 섰다.
선착장에 있던 일반인들이 깜짝 놀라 사방으로 달아났다.
돗대가 왜 선착장으로 돌진했는지 모르지만 소지웅에게는 구사일생의 기회였다.
소지웅은 호위무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강변으로 올라섰다.
잠시 후 물 속에서 이십여 명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강정이 그들 중 하나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금불위! 무림의 방파가 도적들처럼 건원표국을 습격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소?”
해사방의 방주로 ‘한잔 술에도 취한다’는 취일배 금불위가 껄껄 웃었다.
“사 형제, 오해하지 마시게. 나는 허창의 동도들 부탁을 받고 나선 것뿐이라네.”
그는 연이어 소지웅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 행수, 건원표국은 정주만으로 성에 안 차서 허창까지 노리는 거요? 허창은 손바닥만 한 도시외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표국과 상방이 있어 발 뻗을 자리도 없소. 이쯤에서 물러가는 게 어떠오?”
소지웅이 냉소를 날렸다.
“흥! 말도 안 되는 소리. 건원표국이 해사방의 겁박에 물러나면 천하의 놀림거리가 될 거요.”
“조금 놀림을 받더라도 장수하는 게 낫지 않겠소? 이대로 계속 고집을 부리면 모두 죽고 말 텐데.”
금불위의 협박에 청주삼협의 대형인 장위안이 나섰다.
“불초는 청주삼협의 장위안이라고 합니다. 해사방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 정도 숫자로 우리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장위안이 해사방을 비웃자 금불위가 바로 맞받아쳤다.
“푸헐! 나 역시 청주삼협(靑州三俠)인지 청주삼서(靑州三鼠, 청주의 세 마리 쥐)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청주부(靑州府, 남직례성의 지역)가 좁아서 명성을 떨쳤나 본데, 천하가 얼마나 넓은지 알게 해 주마. 쳐라!”
금불위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십여 명의 사내가 빠르게 달려 나갔다.
열 명의 호위와 이십여 명의 해사방도들이 맞부닥쳤다.
청주삼협과 여섯명의 호위무사는 둥그렇게 서서 서로를 등지고 싸웠다.
그 한가운데 연적하와 소지웅이 서 있었다.
소지웅은 비록 연적하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의지했다.
모두가 적과 맞서 싸우느라 자신을 지켜 줄 사람이 없어서다.
그래서 이전과 달리 우두커니 서 있는 연적하에게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는 연적하가 보통의 낭인들처럼 한 사람의 구실만 해 주기를 바랐다.
해사방도들이 아무리 허접하다 해도 두 배나 되는 숫자다.
자연히 호위무사들이 휘둘릴 수밖에 없다.
혼란을 틈타 두 명의 해사방도가 원진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의 목표는 소지웅.
그를 죽이면 더 이상 싸울 일도 없다는 건 쌍방이 모두 알고 있었다.
“죽어!”
“비켜라!”
두 사내가 벼락처럼 달려 들며 소리쳤다.
그때 연적하가 느릿느릿 검을 뽑았다.
보고 있던 소지웅이 답답해서 저도 모르게 한마디 할 정도였다.
“빨리 좀!”
그런데 분명히 한참 늦게 뽑았는데 해사방도들의 박도가 뒤로 튕겨 났다.
차창-.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보던 해사방도들이 다시 박도를 휘둘렀다.
결과는 같았다.
차창-.
연적하는 한발 늦게 검을 휘둘렀는데 그때마다 두 자루 박도가 뒤로 튕겼다.
몇 번을 다시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제야 두 명의 해사방도는 눈앞에 있는 청년이 고수임을 알아차렸다.
감히 더 이상 손을 쓰지 못하고 두 사내가 머뭇거릴 때다.
보다 못한 소지웅이 버럭 소리쳤다.
“이 사람아! 뭘 보고만 있나! 죽이지 않고!”
그러자 연적하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행수님, 일당 오십 문짜리 낭인에게 뭘 더 바라요? 이 이상은 죽어도 못 해요.”
“그게 무슨 헛소리인가? 생사가 오가는 마당에!”
“말씀 잘하셨네!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일당 오십 문이 뭐예요? 하루 종일 일하고 그 정도 푼돈을 받으면 나도 살 수가 없다고요!”
갑자기 두 사람이 일당을 두고 싸우자 해사방도 둘은 머쓱한 표정으로 구경만 했다.
그때 호위무사 하나가 칼에 맞아 비틀거렸다.
그틈에 두 명이 더 난입했다.
네 사람이 되자 용기백배해진 해사방도들은 연적하에게 몰아쳐 갔다.
백옥조는 소 행수와 연적하가 걱정이 되어 뒤를 힐끔 돌아 보았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무려 네 명의 해사방도가 두 사람에게 짓쳐 들어가고 있다.
저 정도 공격은 설사 대형인 장위안이라 해도 막아 내기 어려웠다.
“아…….”
백옥조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객점에서 합석만 하고 말았어야 하는데 괜히 일거리를 준 모양이다.
그 바람에 애꿎은 사람하나만 죽게 생겼다.
다음 순간 백옥조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연적하의 검이 눈 깜짝할 사이에 네 자루 박도를 가볍게 걷어 냈다.
그러고도 여유가 있는지 그는 검첨을 지면으로 길게 내려뜨렸다.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서 일대검호(一代劍豪)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에 비하면 해사방도들은 젓가락을 들고 있는 어린아이들 같았다.
네 사람의 해사방도들도 장님이 아니다.
그들은 청년이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자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자연히 싸움도 흐지부지 끝났다.
호위무사들은 다시 소지웅의 앞으로 돌아와 그를 지키고 섰다.
해사방의 방주 금불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관심은 소지웅이 아니라 새파랗게 어린 청년에게 가 있었다.
“노부는 해사방의 방주 금불위라 하오. 소협의 존성대명은 어찌 되시오?”
“존성은 연가고, 대명은 적하라고 하는데요?”
“연적하? 혹 녹림의 총순찰 연적하 공자와는 어떤 관계이신지요?”
금불위가 의아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연적하는 녹림이라 표국의 일에 관여할 이유가 없어서다.
녹림과 표국은 원수지간인 까닭이다.
“나는 녹림의 총순찰도 아니고, 정주에서 온 그냥 연적한데요?”
거짓말은 아니다.
녹림 총순찰에서 물러나 지금은 태상호법이다.
연적하를 이리저리 살피던 금불위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소문으로 들은 녹림의 연적하와 눈앞의 연적하는 많이 달랐다.
녹림 총순찰 연적하는 흉신악살처럼 생겼고, 늙은 시종과 함께 다닌다고 했다.
눈앞의 연적하는 여리여리하고, 허리에 조롱박을 하나 차고 있을 뿐이다.
‘가만 아까 일당 어쩌고 하는 것 같던데…….’
“혹, 낭인이시오?”
“맞아요. 소 행수님에게 일당으로 오십 문이나 받고 있어요. 삼 일 동안 함께 다니기로 하고 백오십 문을 받았네요.”
연적하가 일러바치듯 말했다.
순간 금불위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우선은 청년이 녹림의 소악마가 아님을 알아서고, 그다음으로는 그와 거래의 여지가 엿보여서다.
“쯧! 건원표국에서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소협과 같은 사람에게 일당 오십 문이라니? 사기를 당하셨구려. 칼만 들면 최소한 일당 백 문이오. 더구나 소협의 무위는 최상급! 최상급 낭인의 일당은 은자 한 냥이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