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43
343회. 술사의 경지는 믿음의 크기다.
약제당의 천일도장이 약사여래 백일운에 대해 아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더 이상의 새로운 이야기가 없자 무당파 장문인 영결상인은 천일도장을 돌려보냈다.
“남암궁은 천주봉 북쪽의 험난한 절곡에 있소. 그 넓이가 넓어 사람을 찾으려면 최소한 한 달 이상 걸릴 텐데 이제 어떻게 하겠소?”
“한 달 이상이나 걸린다고요?”
“넓기도 하지만 워낙 길이 험해서 하루 이틀로는 어림도 없소. 연단술을 연마하는 도사들은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꼭꼭 숨어든다오. 그들의 은신처를 찾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게요.”
“…….”
연적하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하루 이틀이면 모를까?
한 달 이상 걸릴 일이라면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움직여야 했다.
그러려면 무당파의 협조가 필수다.
무당파 영역에서 먹고 자는 것은 물론, 정보도 얻어야 하는 까닭이다.
영결상인의 생각도 같았다.
“몸의 상태가 견딜 만하면 우선은 방술사들과 함께 지내 보는 건 어떻겠소? 남암궁은 틈틈이 시간을 내서 조사를 하고. 연 소협의 거취가 정해지면 무당산에서의 활동도 수월해질 것 같은데.”
잠시 생각하던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암궁에서 사람을 찾는 게 그처럼 어려운 일이라면 먹고 자는 것부터 해결해야 했다.
“장문인 말씀대로 할게요.”
연적하가 동의하자 영결상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함께 가 봅시다. 최근에 방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연 소협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을 게요.”
“잘 부탁드려요.”
“허허, 그런 말은 이따가 방술사들에게 하시오. 나는 그저 그분들에게 연 소협을 안내해 주는 것뿐이니까.”
“아, 예.”
영결상인과 연적하가 상청궁을 나섰다.
영결상인은 마치 하산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염없이 산을 내려갔다.
“방술사들은 다른 곳에 있나요?”
“건너편 봉우리인 오룡궁에 있소. 두 시진(4시간)이면 도착할 거요.”
“어이쿠! 괜히 저 때문에 장문인만 고생을 하시네요. 다른 사람에게 길 안내를 맡겨도 될 텐데.”
연적하가 송구한 마음에 곁눈질을 했다.
무당파 장문인이나 되는 사람이 두 시진이나 길 안내를 하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니오. 그렇지 않아도 오룡궁에 가 본 지 오래돼서 한번 들를 때가 되긴 했소.”
영결상인은 괜찮다고 했지만 속으로 웃었다.
상대가 그저 녹림의 태상호법이라면 나서지도 않았다.
하지만 연적하는 도가기공을 대성한 기인이라 도문(道門)의 입장에서 귀한 손님이었다.
오룡궁에 가는 동안 두 사람은 경공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긴급한 일이 생겼다면 모를까?
도사들이 수도를 하는 도량에서 경공술 사용은 금기시되고 있어서다.
***
오룡궁.
장문인 영결상인의 방문에 오룡궁의 궁주 천명 도사가 허둥지둥 마중을 나왔다.
“어이쿠! 장문인, 어서 오십시오. 기별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허허, 오랜만에 천명 도우의 근황이 궁금해서 와 봤습니다. 그런데 전각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영결상인이 오룡궁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도처가 전에는 다섯 채에 불과했는데 지금보니 여덟 채나 됐다.
“예, 지난달에 자리가 부족해 부랴부랴 세 채를 더 지었습니다. 방술을 배우겠다는 도사와 속인 들이 워낙 많아서요. 저 세 채도 후원금으로 지은 것입니다.”
천명 도사는 무당파 돈으로 지은 게 아니라는 걸 은근히 강조했다.
“그렇군요. 참, 이쪽은 연두비 소협입니다. 검왕 남궁벽의 추천서를 들고 왔더군요. 방술을 가르쳐 달라고 하니 도우께서 신경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검왕요? 사대세가에서도 방술의 필요성을 절감했나 보군요. 그런데 왜 남궁씨가 아니라 연씨를 보냈을 까요?”
천명 도사가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검왕이 왜 자신의 식솔을 보내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다.
연적하가 계면쩍은 얼굴로 말했다.
“제가 남궁세가의 아가씨와 사귀고 있습니다.”
“아하! 그렇구려. 그렇다면 말이 되지. 암. 잘 오셨소. 우리 무당파의 방술을 하나라도 익히고 나가면 남궁세가에 큰 도움이 될 게요.”
천명 도사가 어깨에 힘을 가득 주었다.
최근 방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도사와 속인의 목적은 하나였다.
무공이 힘드니 방술로 명성을 얻어 보겠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의 선택이 틀린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방술이 제사나 축귀(逐鬼)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요즘은 달랐다.
유명교와 천지맹의 전쟁 뒤로 군소방파들도 방술사를 초빙해 갔다.
삼 년 뒤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칠파일문과 사대세가가 유명교를 묵인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유명교도들조차 뒤에서 그런 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유명교와의 전쟁은 휴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외면받던 무당파의 오룡궁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가만히 지켜보던 영결상인이 노파심에서 한마디 했다.
“궁주, 검왕이 특별히 부탁한 일이니 연 소협을 잘 가르쳐 주십시오.”
‘궁주’라는 말에 천명 도사가 장문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왠지 장문인의 지시로 들려서다.
검왕은 무당파의 식구나 마찬가지다.
어련히 알아서 잘 가르칠 텐데 그것으로 부족한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더 신경 써서 가르치겠습니다.”
그제야 영결상인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연 소협, 그럼 빈도는 이만 돌아가 보겠소.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오.”
“예, 감사해요.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연적하가 인사했지만 천명 도사가 장문인을 잡았다.
“장문인, 차라도 한잔 드시고 가시지 예까지 와서 그냥 가시려고요?”
“허허, 다음에 또 들르면 그때 마시도록 하지요. 오늘은 빈도 대신에 연 소협이나 챙겨 주십시오. 아, 참, 남암궁에서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고 하니 개인적인 시간도 넉넉하게 주시면 좋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영결상인은 천명 도사의 배웅 속에 왔던 길을 돌아갔다.
장문인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천명 도사는 공손하게 서 있었다.
그는 장문인이 보이지 않게 되자 비로소 몸을 돌렸다.
“연두비라고 했나?”
천명 도사는 둘만 남게 되자 슬며시 말을 놓았다.
“예.”
“흠! 기괴한 이름이로군. 누가 자식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꼬. 쯧쯧!”
혀를 차던 천명 도사가 걸음을 떼어 놓았다.
연적하가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말없이 걷던 천명 도사가 오룡궁 오른편의 커다란 전각을 가리켰다.
“연 소협의 거처가 될 터이니 잘 봐 두게.”
연적하의 시선이 그의 손가락 끝을 따라갔다.
거대한 전각의 출입문에 ‘하선고(何仙姑)’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최근에 지은 것까지 전각이 여덟 채지. 그래서 구별하기 쉽게 팔선(八仙)의 이름을 붙였네. 마지막에 지어진 것이 하선고일세.”
“방술을 배우는 사람들이 그처럼 많은가요?”
“많으냐고? 아주 발에 치여 죽을 지경이네. 솔직히 검왕의 추천만 아니었으면 자네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걸세.”
말과 함께 천명 도사가 오룡궁으로 들어갔다.
연적하도 부랴부랴 따라 들어가 그의 맞은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천명 도사가 애매한 눈으로 연두비를 보았다.
퉁퉁 부은 얼굴에 가득한 열꽃과 진물을 보고 있으려니 속이 울렁거린다.
장문인과 함께 있을 때는 유심히 보지 않아 몰랐는데 마주 앉으니 불편했다.
“이건 다른 제자들을 위해 묻는 건데, 얼굴의 그것은 혹시…….”
“아, 두창(遠瘡)이 아니라 심한 부스럼이에요. 옮지 않으니 안심해도 돼요.”
“그렇군.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심하군. 고생이 많겠어.”
“처음에는 그랬는데 적응이 되니까 그냥저냥 지낼 만하더라고요.”
“험, 험! 본래 새로운 제자들의 안내를 맡은 담당자는 따로 있네. 허나 장문인께서 특별히 부탁한 것도 있고 해서 내가 알려 주도록 하지.”
“예.”
“묘시 초(오전 5시)에 일어나면 숙소에서 ‘태평경(太平經)’과 ‘옥황경(玉皇經)’,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를 독송(讀訟)하도록 하게.”
“헉! 많네요?”
“많다니? ‘염구경(焰口經)’, ‘두과경(斗科經)’, ‘조만공과경(早晚功課 經)’등 몇 개의 경전을 뺀 건데. 최소한의 기본만 익히도록 배려한 것이네. 우선 그걸 다 외우면 그다음에 할 일을 알려 주도록 하지. 지금은 그 세 개의 경전을 부지런히 외우도록 하게.”
“꼭 외워야 하나요?”
“방술이 쉬운 줄 알았나? 꼭 해야 할 것들만 하라고 하는 것일세.”
“아, 예.”
연적하는 고집부리지 않았다.
곤륜삼선의 그 ‘신안통’과 같은 술법을 꼭 익히고 싶어서다.
“도사님, 하라는 대로만 하면 ‘신안통’을 배울 수 있는 건가요?”
“신안통? 곤륜파의 비기를 어디서 주워들은 모양이로군. 우리 무당파에 ‘신안통’이라는 술법은 없네.”
“예? 없어요?”
“대신에 그와 비슷한 ‘영안술(靈眼術)’을 가르치지.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육신통의 천안통에 대해 들어 보았는가?”
“예.”
“바로 그것과 비슷한 것일세.”
“그것으로도 육정육갑의 신력(神力)을 볼 수 있나요?”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도 육신통을 얻었는데 필요한 때 육정육갑의 신력은 보지 못해서다.
“육정육갑의 신력? 그런 게 있다면 당연히 볼 수 있을 걸세.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해 주는 술법이니까. 귀신도 보는 눈이라면 알겠나?”
“헉! 귀신요?”
“방술사들이 축귀를 할 때 꼭 필요한 술법이지. 귀신을 쫓아내려면 내 눈으로 직접 봐야지. 곤륜파의 ‘신안통’도 결국은 축귀를 위해 만들어진 술법이라네.”
“그런데 도사님, ‘육신통’을 터득한 사람이 있는데요. 그가 육정육갑의 신력을 보지 못할 수도 있나요?”
“보기 드문 바보 같은 경우지만 가능하네. 생각해 보게. 손에 보검을 쥐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무공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겠나?”
연적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와 같은 것일세. 보검을 들었어도 사용할 줄 모르면 무용지물이지.”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말하지 않았나. 묘시 초에 일어나 ‘태평경’과 ‘옥황경’, ‘주역참동계’를 독송하도록 하게.”
“그렇게만 하면 된다고요?”
연적하가 기가 막힌 얼굴로 천명 도사를 보았다.
아침마다 독경 따위를 한다고 그런 게 가능할까 싶어서다.
“자네는 술법이 뭐라고 생각하나?”
“신통한 능력?”
“아니, 내가 너무 어려운 질문을 했구먼. 자네는 술사들의 술법이 어떻게 발현된다고 생각하는가?”
“주문?”
“쯧쯧! 그렇게 답할 줄 알았지. 그건 그저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불과한 것일세. 주문의 신비한 공능만으로는 술법의 발현이 불가능하다네.”
연적하의 눈이 번득였다.
이제야 자신이 원하는 게 나올 모양이다.
“그럼 어떻게 발현하는 거예요?”
“믿음.”
말과 함께 천명 도사가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예? 믿음요?”
“그렇다네. 술사의 경지는 믿음의 크기에 달려 있다네. 얼마나 믿느냐가 중요하지. 무림인의 경지가 내공의 수련에 달려 있다면, 우리 같은 술사의 경지는 믿음의 크기로 경지가 갈린다고나 할까?”
“아!”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믿음의 크기라니?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구천검처럼 절로 몸에 익숙해지는 것으로 알았건만.
“그 믿음을 키우는 방법이 바로 독경일세. 열심히 외우다 보면 믿음이 생기고, 점차 강건해지지. 조금 전에 ‘육신통’의 이야기를 했었지? 마찬가지네. ‘육신통’을 얻었던 그 절정의 순간이 영원하리라 생각하나? 천만의 말씀. 육체의 눈으로 살다 보면 ‘천안통’은 닫힐 수밖에 없네. 보검이 몸 안에 갇혀 있는 셈이지. 무당파의 ‘영안술’을 익히면 그걸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될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