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51
351회. 네가 나에게 왔다.
오룡궁의 일곱 스승(오룡칠사) 가운데 가장 연장자는 청불노다.
본래 그는 유랑걸식하던 고아였다.
그런 그를 거둔 사람은 당시 오룡궁의 반선(半仙)이라 불리던 공야자다.
청불노는 공야자의 모든 것을 이어 받았고, 마침내 ‘오룡칠사’가 되었다.
그를 제외한 오룡육사들은 출중한 도사들 중에서 ‘기명제자(記名弟子)’를 선택했다.
기명제자를 둔 이유는 그들 모두가 스승에게 법보를 물려받은 탓이다.
기명제자란 ‘이름을 기록한다’는 뜻이다.
강호 문파에서 ‘기명’은 스승의 이름을 잇는 ‘직전(直傳)’과도 같다.
그러니 오룡육사의 기명제자들은 법보를 물려받을 ‘전승자’인 셈이다.
그들은 오룡육사의 뒤를 이을 인재들이기에 오룡궁에서도 특별한 위치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가장 연로한 청불노만큼은 아직 기명제자를 두지 않았다.
그 바람에 다른 오룡육사들의 걱정도 컸다.
청불노가 공야자에게 이어받은 법보는 오룡칠사가 가진 것들 중에서도 특별한 것이었다.
이른바 언법(言法).
그것은 청불노의 스승이었던 공야자가 평생의 법력으로 만든 공법(功法)으로, ‘언령’이 사이한 방법으로 터득하는 주술이라면 ‘언법’은 공야자 법력의 정수였다.
공야자의 법력으로 만든 그 ‘언법’은 무형(無形)의 법보로 오직 청불노에게만 전해졌다.
당연히 그것의 실체를 아는 사람도 청불노뿐이다.
전성기 때의 청불노는 그 언법 하나로 온갖 악귀들을 제압했다.
그러니 오룡육사들의 입장에서는 언법이 유실될까 봐 애가 탈 수밖에 없다.
***
문답식 날.
오룡궁.
태양각.
근래 들어 청불노는 가부좌를 틀고 앉은 상태에서 잠이 들곤 했다.
본인은 잠이 아니라 선정(禪定)이라고 주장하지만 말이다.
청불노의 신(神)이 유체를 이탈해 세 개의 하늘을 두루 둘러보고 막 돌아올 때다.
눈을 뜨기 직전, 청불노의 앞에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콰르르르-.
시뻘건 화마에 휩싸인 오룡궁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저것이 실제인지 환상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오룡궁은 단지 도관이 아니라, 그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안 돼!’
청불노는 손쓸 틈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오룡궁을 보며 절규했다.
‘언법’으로 불길을 잡으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 때다.
와그락 주저앉으려던 오룡궁이 벌떡 일어섰다.
깜짝 놀라 자세히 들여다보니 누군가 오룡궁의 대들보를 어깨로 떠받치고 있었다.
‘누구지?’
대체 누가 다 쓰러져 가는 오룡궁을 일으켜 세우는 걸까?
처음에는 오룡칠사의 일인이라 생각했다.
오룡궁에서 저럴 수 있는 사람은 오룡칠사뿐이니까.
하지만 불길 속에 간간이 드러나는 그 모습은 오룡칠사가 아니었다.
“당신은 누구요!”
청불노는 자신의 외침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창문으로 희미한 새벽빛이 흘러 들어왔다.
꿈이었을까?
아니면 환상이었을까?
어떤 것이든 자신과 관련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기괴한 장면이 명상 중에 보일 리가 없으니까.
문득 오래전 우화등선한 스승의 얼굴이 떠올랐다.
언젠가 스승에게 물은 적이 있다.
왜 나를 제자로 삼았느냐고.
그러자 스승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나에게 왔기 때문이다.
오룡육사들은 잊을 만하면 ‘왜 제자를 들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스승이 떠올랐다.
오룡육사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자신도 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그가 온 것일까?
혹시 스승도 나와 같은 환상을 보고 나를 제자로 삼았던 건 아닐까?
언젠가 스승을 만나게 되면 꼭 물어볼 생각이다.
제자가 나임을 어떻게 알아보셨느냐고.
***
날이 밝았다.
팔선각의 아침을 알리는 독송 소리가 여기저기서 순차적으로 들려왔다.
연적하도 ‘태평경’의 독송을 시작했다.
한마음 한뜻으로 읽었지만 여전히 뜬구름 잡는 소리라 생각했다.
‘원기(元氣)나, 황천(皇天)이니, 삼합상통(三合相通)이니 이게 다 뭐람.’
그래도 매일 읽어서 그런지 처음처럼 어지럽지는 않다.
다만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
‘하아…….’
잠깐 한숨을 내쉬는데 유운 도사가 귀신같이 알고 다가와 죽비로 어깨를 내려쳤다.
짝-.
입문식 날이라 그런지 죽비에도 힘이 실려 있는 느낌이다. 연적하는 머리를 가볍게 털고 다시 경전에 집중했다.
***
팔선각의 수련자들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룡궁에 모였다.
백칠십여 명이나 되는 숫자가 모이니 오룡궁이 꽉 차는 느낌이다.
연적하는 처음이라 사람들 틈에 섞여 남들이 하는 걸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때 ‘하선고’를 나오면서 헤어졌던 이도주가 다가와 격려의 말을 건넸다.
“연 아우. 오늘은 처음이니 분위기를 익힌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예, 문답식은 언제쯤 끝나나요?”
“오후 늦게야 끝나. 백칠십여 명과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서.”
“그걸 여기 앉아서 지켜보는 거예요?”
“그렇지.”
“그럼 뒤에 하는 사람은 시험관이 어떤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여기가 오룡궁이라는 걸 잊었어? 문답식 자리 주변에 방진(方陣)이 있다고. 곧 알게 되겠지만 입은 벙끗거리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려.”
“와! 신기하네요.”
“그러니 오룡궁에 입문하려고 난리들인 거지.”
새벽부터 연적하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천상동이 불쑥 끼어들었다.
“묵음방진(默吟方陣)이다. 일단 발동하면 저 안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
천상동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던 이도주와 연적하는 못 들은 척했다.
그래도 천상동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자리를 지켰다.
그런 모습에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천상동이 달라붙는 게 귀찮았지만 수련자들 앞에서 다투고 싶지도 않았다.
‘저 인간이 왜 저러지? 나한테 이를 박박 갈더니 왜 갑자기 친한 척이야?’
어제는 펄펄 뛰더니 오늘은 찰싹 붙어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남자다.
천상동이 대화에 참여한 뒤로 연적하와 이도주는 입을 꾹 다물었다.
누가 봐도 꺼리는 기색이 역력한데 천상동은 정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계속 말했다.
“문답식은 앉아 있는 순서대로 하니까, 빨리 결과를 알고 싶으면 앞쪽으로 가라.”
결국 참다못해 이도주가 입을 열었다.
“지금 누구에게 하는 소리요?”
“연 아우지 누구겠소?”
“허!”
뻔뻔스러운 말에 연적하의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언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협박하더니 이제는 ‘연 아우’란다.
“내가 언제부터 그쪽 아우인데요?”
“그럼 자네가 아우지 형님인가?”
“난 그쪽 같은 형님 둔 적 없거든요?”
“꼭 같은 배 속에서 나와야 형님 아우 하나? 나이가 많으면 형이고, 적으면 아우지.”
딱히 이치에 어긋난 말은 아닌지라 연적하는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만약 강호에서 저런 소리를 했다면 바로 패대기쳤을 텐데, 아쉽게도 여긴 오룡궁이다.
‘누굴 탓하겠어. 내가 처음에 저런 인간과 어울린 게 잘못이지.’
연적하는 더 이상 말씨름하기가 싫어 슬금슬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얼굴 가득 열꽃을 피운 연적하가 움직이자 수련자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찾았다!’
아까부터 오룡칠사들 속에 앉아 수련자들을 기웃거리던 청불노의 눈에서 안광이 번득였다.
명상 중에 본 그 사람이 분명했다.
처음에는 화상으로 퉁퉁 부은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열꽃이었다.
청불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자 천명 도사가 물었다.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소.”
“좋은 일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하더군요. 무슨 일인지 빈도도 좀 알면 안 되겠습니까?”
“나중에 말씀드리리다.”
문답식 시간이 되자 오룡칠사들 속에서 무오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럼, 빈도는 문답식을 하러 가 보겠습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천명 도사가 급히 인사를 올렸다.
뒤이어 남겨진 오룡오사들도 한마디씩 격려의 말을 건넸다.
“수고하시구려.”
“고생하시오.”
무오자가 앞으로 나오자 오룡궁은 한순간 조용해졌다.
묵음방진 한가운데 앉은 무오자가 수련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허허. 오룡궁의 수련자들을 보니 마음이 기쁘기 한량없구려. 유명교가 득세하기 전까지 천하는 술사를 발가락의 때처럼 여겼소. 무당파에서도 오룡궁은 가장 인기가 없는 도관이었소. 언제나 파리만 날렸지. 허나 지금은 보다시피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수련자들로 꽉꽉 찼소. 심지어 전각이 부족해 세 채나 급히 증축하기도 했고. 요즘은 무당파의 장문인께서도 부족한 게 없는지 와서 묻고 가신다오.”
무오자의 농담에 수련자들이 가볍게 웃었다.
무오자는 수련자들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계속해서 말했다.
“남화진인(장자)께서 말씀하신 ‘옹이 많은 가죽나무’가 바로 우리 오룡궁의 술사들이었소. 쓸모없는 취급을 받았지만, 천하가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소?”
“옳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가만히 경청하고 있던 수련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오룡궁의 역사는 기오.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우리의 선배들은 천하에 숱한 업적을 남겼소. 잘된 것을 더욱 잘되게 해 주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았으며,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귀를 물리쳤소. 우리 오룡궁은 과거에 그런 일을 했으며, 오늘도 하고 있소. 내일은 오룡궁의 후배인 여러분들이 그 일을 해 나갈 게요.”
“…….”
‘오룡궁의 후배’라는 말이 나오자 수련자들은 눈을 빛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 후배가 되기 위해 모인 자들인 까닭이다.
“허나 모두가 오룡궁의 일원이 될 수는 없소. 그랬다면 오늘날 천하가 오룡궁을 우러러보지도 않았을 게요. 오룡궁에서 원하는 사람은 득도(得道)를 할 사람이오. 단지 몇 가지 잔재주를 배워 나갈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오.”
수련자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무오자의 말에 집중했다.
가볍게 풀어졌던 긴장의 끈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하지만 지금의 긴장은 잔뜩 굳어 있던 처음과 달리 수련자들의 몸과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한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지켜보던 오룡육사들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번졌다.
무오자는 문답식의 목적에 맞게 수련생들의 상태를 잘 조율하고 있었다.
무회 진인이 감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참으로 말 잘한다. 어르고 때리고, 아주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구먼.”
천명 도사가 한마디 거들었다.
“저는 다 좋은데, 몇 명이나 저분의 마음에 들지 그것이 걱정입니다.”
“설마하니 다 내치기야 하겠소?”
“하아! 한 손에 꼽을 숫자라면 다 내친 것이나 진배없지 않습니까?”
“껄껄! 궁주는 그렇게 걱정을 할 거면서 왜 무오자를 추천하셨소?”
“그러게 말입니다. 그날 제가 뭐에 씌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청불노가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희망과 실제 사이에 갈등이 없으면 무슨 살아가는 재미가 있겠소? 무오자께서 전례를 허무실지도 모르니 희망을 가져 보시오.”
“어이쿠! 희망과 실제 사이에서 더 갈등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말과 달리 천명 도사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청불노는 반선의 경지에 든 기인이라 왠지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정말 그의 말대로 전례가 깨지는 날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