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53
353회. 조양(朝陽)의 고황(膏育)에 그늘이 지다.
문답식이 끝난 뒤 팔선각의 수련자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새벽에 일어나 독송을 하고, 오전에는 강론을 들었으며, 오후에는 각자 공부를 했다.
몇 명의 수련자가 일신상의 이유로 하산했지만 그들의 빈자리는 곧 새로운 수련자로 채워졌다.
연적하의 하루도 전과 같았다.
그는 ‘독송’, ‘강론’, ‘남암궁에서 사람 찾기’를 다람쥐 챗바퀴 돌듯 반복했다.
그러는 와중에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언제부터인가 청불노가 찾아와 쓸데없이 말을 걸기 시작했던 것이다.
점심을 먹고 막 오룡궁 경내를 벗어나려는 연적하를 청불노가 불러 세웠다.
“매일 어디를 그렇게 가느냐?”
“남암궁요.”
“거긴 왜?”
“찾을 사람이 있거든요.”
“누군데?”
연적하는 귀찮았지만 한 번은 가르쳐 줘야 하는 관계로 순순히 답했다.
“약사여래 백일운이라는 약사예요.”
“오호! 그 얼굴을 고치려고?”
“예.”
연적하가 더 할 말이 있느냐는 눈으로 청불노를 보았다.
단지 얼굴을 고치기 위함이 아니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닌지라 ‘예’라고 했다.
이제 청불노가 떠나면 남암궁으로 달려갈 참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청불노의 말이 길어졌다.
“너, 이전에 도가(道家)의 공부를 한 적이 있더냐?”
“왜요?”
“네게서 언뜻언뜻 선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그런다. 있느냐? 없느냐?”
“있어요.”
“그런데 문답식은 왜 그렇게 엉망으로 치렀느냐?”
“그게 제 실력인데요?”
“무오자는 네가 도가의 공부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하더구나. 도가의 공부를 했다면서?”
“심법과 검술만 익혀서 그래요.”
“아하. 그래서 그랬구먼. 선기가 느껴질 정도의 공법이면 꽤나 상승의 공부일 텐데. 그것으로 만족하지 술법은 또 왜 배우려고?”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요?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거죠.”
“이놈아. 그건 편한 것을 바란다는 말이 아니냐? 술법의 공부가 편하지는 않을 텐데.”
“아, 그래요? 그냥 ‘더 좋은 걸 욕심낸다’ 뭐 그런 뜻으로다가 드린 말씀인데.”
“쯧! 무슨 말인지 알겠다. 술법은 배워서 어디에 쓰려고?”
“딱히 어디에 쓰려는 게 아니라 뒤통수 안 맞으려고 그러는 건데요?”
“뒤통수?”
“술법에 걸려 본 적이 있는데 무시무시하더라고요. 앞도 안 보이고, 곤륜파의 도사님 덕분에 살았지 안 그랬으면 꼼짝없이 죽었을 거예요.”
“오호! 그런 일이 있었구먼. 혹시 유명교와 관계된 일이었느냐?”
“예.”
“나도 곤륜삼선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곤륜파의 술법이 그렇게 대단하다던데.”
“예, ‘신안통’이라는 걸 봤는데 엄청 나더라고요.”
연적하가 곤륜파를 띄워 주자 청불노는 슬그머니 한마디 했다.
“우리 오룡궁에도 ‘영안술’이라는 비술이 있다.”
“‘신안통’으로 육정육갑의 신력을 보는데, 정말 감탄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영안술’로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니까.”
“예? 뭐라고 하셨어요?”
‘신안통’ 자랑에 빠져 있던 연적하는 청불노가 한 말을 미처 듣지 못했다.
청불노가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너는 무당파 제자가 되고 싶어 하면서 어찌 곤륜파 자랑만 하느냐?”
연적하가 주변을 살핀 후에 속삭였다.
“도사님만 알고 계세요. 솔직히 곤륜파가 가까이 있었으면 곤륜파로 갔을 거예요. 곤륜파가 너무 멀어서 무당파에 온 거거든요.”
“허! 그런…….”
청불노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시큰둥한 표정을 보니 그는 무당파나 오룡궁에 특별한 애착이 없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까워서 왔다니.’
무당파 장문인이나 오룡궁 궁주가 알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일이었다.
“더 하실 말씀 없으면…….”
“남암궁에서 사람을 찾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
“술법을 배워야죠.”
“문답식을 통과할 자신은 있고?”
“잘 모르겠어요.”
“만약에 문답식을 통과하지 않아도 배울 수 있다면 어찌할 테냐?”
“술법을요?”
“그럼 술법이지 오룡궁에서 무술을 가르칠까.”
“무조건 배워야죠.”
연적하가 의욕적으로 나오자 청불노가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혹 너는 오룡궁의 술법이 강호에서 어떤 위치인 줄은 알고 있느냐?”
“무당파니까 높겠죠?”
“맞다. 술사로서는 최고의 지위라 할 수 있지.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 또한 크다. 네가 오룡궁의 술법을 배운다는 것은 그 책임도 짊어진다는 소리인데, 그럴 각오가 되어 있느냐?”
‘책임’ 운운하자 연적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책임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데요?”
“예컨대 악귀를 보면 오룡궁의 이름으로 쫓아내는 것이지. 귀찮고 바쁘다는 이유로 외면할 거면, 지금이라도 그냥 하산하는 게 낫고.”
“그 정도라면 별거 아니네요. 난 또 무당파에서 잔뜩 일을 시키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만 아니라면 짊어질 수 있어요. 도사님, 문답식을 통과하지 않고도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뭐예요?”
“오늘 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거든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혼자 오룡궁으로 나오거라. 그럼 내가 친히 그 방법을 알려 주마.”
“오늘 밤요?”
“왜? 바쁘냐? 그럼 내일도…….”
“갈게요.”
“오늘 밤에 나오겠다고?”
“예.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미룰 거 뭐 있어요? 말이 나왔을 때 해 버려야지.”
“그래, 그래. 아주 시원시원한 녀석이로군. 소싯적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도사님도 젊었을 때 얼굴이 이랬나요?”
“무슨 그런 악담을. 나는 성격을 말한 거다. 그럼 밤에 보자. 바쁜 것 같은데, 어서 가거라.”
“아, 예. 그럼 저는 이만.”
연적하는 청불노에게 읍을 해 보이고 서둘러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
무당산.
상청궁.
영결상인은 장문의 편지를 썼다.
받는 사람은 물론 남궁세가의 가주인 검왕 남궁벽이다.
편지는 남들이 좀처럼 알아보기 어렵게 온통 은어(隱語)로 가득했다. 혹시라도 배달 사고가 일어날 때를 대비해 그렇게 한 것이다.
예를 들면 ‘조양(朝陽)의 고황(膏盲)에 그늘이 졌는데 웬일인가? 모월 모일 조양이 옥룡궁에 들었다.’라는 식이었다.
뜻을 풀자면 아침 해인 ‘조양’은 연적하를, ‘고황에 그늘이 졌다’는 것은 병들었음을 의미한다.
영결상인은 장문의 편지를 밀봉한 후에 아랫사람을 시켜 남궁세가로 보내게 했다.
그런 뒤 진무궁의 궁주인 천지상인을 불러들였다.
천지상인이 상청궁으로 오자 영결상인은 찻잔에 찻물을 따랐다.
“바쁘신 분을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합니다. 연 공자의 일로 상의할 게 있어서.”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얼마 전 문답식을 했는데 결과가 좋지 못하다고 하더군요. 문답식을 주재한 무오자는 그를 득도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저런.”
천지상인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쯧! 오룡궁의 오룡칠사들이 연적하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을 텐데.’
영결상인이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이런 식이라면 연 공자가 무당파의 술법을 언제 배우게 될지 기약이 없습니다. 오룡궁 도사들의 고집도 여간 아니어서 문답식을 통과한 자만 가르치려 할 테니까요.”
“그럴 테지요.”
천지상인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술사들은 특유의 공동체 의식이 있어서 아무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팔선각에 수련자들이 넘치는 것도 그래서다.
어지간한 문파에서라면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룡궁은 제자를 들이는 기준이 엄격해 같은 무당파 출신이라도 벽을 넘기가 어려웠다.
“연 공자가 중독만 당하지 않았어도 오룡궁 도사들이 선기를 알아봤을 겁니다. 그랬다면 문답식도 단번에 통과했을 터인데……. 여하튼 중독을 고치기 전까지 문답식은 어려울 겁니다.”
“그런 말씀을 저에게 하심은?”
“차라리 오룡칠사에게 은밀히 연 공자의 신분을 알려 주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럼 그들도 적당히 문답 식을 통과시켜 줄 것도 같은데.”
그러나 천지상인은 고개를 저었다.
“설사 오룡칠사가 연 공자의 신분을 안다고 해도 그들이 가르칠지 의문입니다. 장문인과 저는 이전에 연 공자의 선기(仙氣)를 곁에서 보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룡칠사들에게 연공자는 그저 녹림의 고수일 뿐입니다. 장문인께서 무슨 말을 해도 ‘그의 배경이 대단하니 봐주라’는 것으로 여길 겁니다. 그렇게 되면 문답식은 통과하지 못하고, 괜히 연 공자가 중독됐다는 소문만 흘러나갈 수도 있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오늘 상인께 물어보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괜히 도와준다고 나섰다가 연 공자만 곤란하게 만들 뻔했군요.”
영결상인은 자기 의견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도 술사들 특유의 옹고집을 익히 아는 까닭이다.
확실히 그들은 연적하의 신분을 알아도 콧방귀를 뀔 사람들이었다.
“장문인,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연 공자가 무당파에 온 것도 하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빈도는 연 공자가 오룡궁에서 좋은 인연을 만날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야지요. 그는 녹림에 있기에 아까운 사람입니다. 그의 말대로 구천현녀의 진전을 이었으면 우리 도문의 사람이 아닙니까?”
영결상인과 천지상인이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들 모두 이 기회에 연적하가 무당파와 인연이 닿기를 바랐다.
솔직히 여전히 구천현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다.
***
팔월의 남암궁은 숨만 쉬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연적하는 뙤약볕 아래에서 산양처럼 이 절벽 저 절벽을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동안 아무도 못 만났던 것은 아니다.
며칠 전에는 운 좋게 동굴 속에서 수련 중인 약사 하나를 만났다.
하지만 그는 선단(仙丹)에만 관심이 있을 뿐, 독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래도 얻은 건 있다.
남암궁에 약사들이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해거름 무렵.
연적하는 절벽 중간에 걸터앉아 잠시 땀을 식혔다.
지금 올라가는 절벽을 끝으로 오늘은 이만 끝내야 할 것 같다.
붉게 타들어 가는 석양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착잡했다.
힘들고 지쳐서 그런지 오늘따라 유독 십전무후 남궁연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애써 그리움을 떨쳐 냈다.
아무리 그립다 해도 지금의 몰골로는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누님도 지금의 내 꼴을 보면 정이 떨어질 거야.’
거친 남자들도 곁에 오기를 꺼려 하는데 섬세한 여자야 오죽할까.
연적하는 무심코 손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손끝으로 퉁퉁 붓고 짓무른 피부가 닿자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빌어먹을 늙은이! 왜 그런 고약한 걸 만들어서는.”
낙월독정(落月毒情)이라고 했던가.
툴툴거리던 연적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절벽 위로 기어올랐다.
그렇게 일각(15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사방에서 희뿌연 안개가 스멀스멀 일어나더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헉! 이거 뭐야?”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웬 안개란 말인가!
“진법인가?”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돌이켜 보니 팔문팔상진의 변화도 이와 비슷했다.
“거기 위에 계신 분! 갑자기 이러시면 곤란해요! 발 디딜 곳도 안 보인다고요!”
답답한 마음에 연적하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지만 안개는 흩어지지 않았다.
“약사님! 좋은 말로 할 때 진법 좀 풀어 줘요! 이러다 사람 다치겠어요!”
반쯤 협박을 했지만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차갑고 음습한 기운이 폐부를 가득 채웠다.
“여기서 죽으란 건가요? 발밑이 안 보여서 내려갈 수도 없다고요! 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