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55
355회. 이 귀한 것을 한 주먹이나 먹었다고?
‘적하’는 ‘붉은 노을’이라는 뜻을 가졌다.
부모님 중에 한 분의 취향이 반영된 이름이리라.
그게 어머니였다면 모를까?
만약 아버지가 좋아해서 지은 이름이라면 또 느낌이 달라진다.
아버지는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자식이 계모에게 학대를 당하는지 아닌지 관심도 없었고, 살펴보지도 않았다.
죽을병에 걸려 그랬다고 하기에는 너무 자기중심적이다.
만약 자신이 그런 상황이라면 사랑하는 사람들부터 챙겼을 것이다.
여하튼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는 ‘적하’도 좋지만, ‘남천’도 그 못지않게 마음에 들었다.
연적하가 자신에게 주어진 ‘남천’이라는 도호(道號)를 음미하고 있을 때다.
“그런데 너 무슨 영약이라도 먹은 게냐?”
“영약요? 아뇨? 오늘은 늦어서 저녁도 건너뛰었는데요?”
“그런 것치고 혈색이 좋아 보여서 하는 말이다. 선기(仙氣)도 더 짙어지고.”
“그럴 리가요? 오늘 저녁에 먹은 거라고는 벽곡단 한 주먹뿐인데.”
“뭐라고? 벽곡단을 한 주먹이나 먹어?”
“예. 왜요?”
“이놈아, 벽곡단은 한 끼에 한 알씩 먹는 것이다. 누가 그걸 한 번에 한 주먹씩 먹는단 말이냐? 그러려면 그냥 식사를 하고 말지 왜 번거롭게 벽곡단을 만들겠느냐?”
“아, 그런 거예요? 그럼 벽곡단을 한 번에 많이 먹어서 그런가 보네요.”
그러자 청불노가 머리를 저었다.
“그것도 말이 안 된다. 벽곡단은 그저 배를 채워 줄 뿐 선기와는 무관하다.”
“정말이에요. 도토리만 한 벽곡단 한 주먹밖에 안 먹었어요.”
“뭐? 도토리? 벽곡단은 그저 완두콩 크기인데? 그 벽곡단이라는 걸 어디에서 구했느냐?”
“남암궁의 주인없는 동굴에서 발견한 거예요. 하얀 항아리 안에 가득 들어 있더라고요. 출출할 때 먹으려고 한 줌 더 가져왔는데 보실래요?”
말과 함께 연적하가 품에서 벽곡단이 든 헝겊 뭉치를 꺼내 청불노에게 건넸다.
조심스럽게 헝겊을 열어 젖히던 청불노의 입에서 ‘헉!’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 이건 무당파의 보물인 ‘소청단(小靑丹)’이다. 너 이 귀한 것을 한 주먹이나 먹었다고?”
“‘소청단’이 뭐예요?”
“이, 이런 무식한 놈을 봤나. ‘소청단’은 일반인에게는 만병통치약이지만, 무림인이 먹으면 십 년의 공력을 얻게 해 주는 무가지보(無價之寶)다.”
크게 놀란 청불노와 달리 연적하는 무덤덤했다.
한 주먹이나 먹었음에도 딱히 공력이 늘어난 느낌을 얻지 못해서다.
“아, 그래요?”
“‘소청단’이 항아리에 가득 있었다고?”
“가득은 아니고 절반 조금 못 되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벽곡단이구나 생각했죠.”
문득 청불노의 안색이 가볍게 굳었다.
“‘소청단’을 그렇게 많이 만들 정도의 약사라면 기인 중의 기인일 것이다. 그런 분의 물건을 허락 없이 들고 나왔다면…….”
“괜찮아요. 돌아가신 지 오래되셨더라고요. 백골로 누워 계시던데요 뭐.”
“백골?”
청불노가 황망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도적질이 아니라 그야말로 천고의 기연이었다.
“예, 동굴로 가는 길에 진법이 있어서 제가 고생을 좀 했거든요. 주인에게 따지려고 바득바득 올라갔는데, 막상 가 보니까 침상에 백골이 누워 있더라고요.”
“어떤 진법이더냐?”
천생 술사인 청불노는 진법에 관심을 보였다.
“처음에는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어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요. 그러더니 그다음에는 뱀 떼가 쏟아져 나왔고요. 너무 징그러워서 눈을 꾹 감고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어요.”
“흐음! 풍운조화를 일으킬 정도의 진법이라면 무당파에서도 흔치 않은 기인이셨을 게다. 하기야 소청단을 그렇게 많이 만들 정도라면, 약선(藥仙)이셨을까?”
“약선요?”
“약선은 남암궁의 기인으로 무당파 전설이라 할 수 있다. 그분이 만든 단약은 지금까지도 무당파의 보물로 전해진다. ‘태청단’과 ‘소청단’이 대표적이지.”
“스승님, 이것도 쓸 만한 약인지 좀 봐 주시겠어요?”
내친김에 연적하는 밤톨만 한 단약을 꺼냈다.
단약을 건네받아 찬찬히 살피던 청불노의 입에서 묵직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흐음! 이건 아무래도 ‘태청단’ 같은데……. 솔직히 나도 아직까지 진품을 본 적이 없어 확신할 수가 없구나. ‘소청단’은 소싯적에 한 알 먹어 봐서 알아볼 수 있었다만.”
“‘태청단’을 본 사람이 있을까요?”
“남암궁의 궁주에게 하나 있다는 소문은 들었다. 설사 ‘태청단’이 그에게 없다 해도, 남암궁의 궁주라면 이 단약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게다.”
연적하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약사들의 정점에 선 도사가 남암궁 궁주일 테니 그 정도 안목은 있을 터였다.
“내가 알아봐 주랴?”
“예. 뭔지 알아야 먹든지 버리든지 할 수 있겠죠? 지금은 밤 한 톨만도 못해서.”
“너, 그 동굴의 위치가 어디인지 기억하느냐?”
“‘소청단’을 마저 가져오라고요?”
“그래, 무당파의 보물을 그런 곳에 썩힐 수는 없지 않느냐?”
“그거 혹시 남암궁의 물건 아닌가요?”
“어허, 우리가 남이냐? 크게 보면 모두가 무당파의 물건이니라. 그래도 마음에 걸리면 남암궁의 궁주에게 한 주먹 나눠 주거라. 그럼 굉장히 고마워 할 게다.”
“그렇기도 하네요.”
녹림에서 생활해 온 연적하는 청불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그런데 ‘소청단’을 그 정도 먹었으면 네 병증이 나을 만도 한데…….”
청불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부스럼이기에 ‘소청단’을 그렇게 먹고도 치료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스승님. 이게요, 사실은 이상한 독에 중독돼서 그런 거예요.”
연적하는 스승에게 삼보절명 당운망과의 일을 들려주었다.
“……백팔 가지 독으로 만든 ‘낙월독정’이라는 독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독을 완전히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약사여래 백일운인데, 그분이 남암궁으로 가셨대요. 그래서 남암궁을 뒤지고 다니던 중이에요.”
“쯧쯧! 그런 일이! 나는 네가 얼굴을 고치기 위해 그런 줄로만 알았구나.”
청불노는 제자의 사연에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흉측한 얼굴을 제외하면 평범해 보이는데 반박귀진(返撲歸眞)이었던 모양이다.
‘낙월독정은 심독이 분명하다. 그런 독에 당하고도 멀쩡하다니?’
실로 대단한 내공이 아닌가!
“스승님, 만약에 그게 태청단이 맞으면요, 그걸로 해독이 될까요?”
“글쎄다. 아마 안 될 게다. 태청단이 천고의 선단(仙丹)인 것은 틀림 없지만 해약과는 거리가 멀어서……. 어지간한 병증은 원기를 회복시켜 줌으로 자연 치유가 가능하지만, 독은 그 근원을 다스려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쩝, 그렇군요.”
연적하는 ‘태청단’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하기야 ‘소청단’을 한 주먹이나 먹었는데도 차도가 없었는데 ‘태청단’이라고 다를까.
“그나저나 내가 아는 것은 네 이름 석 자밖에 없구나.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련?”
스승의 청에 연적하는 주절주절 살아온 이야기를 꺼냈다.
청불노는 제자의 기괴한 인생역정(人生歷程)에 연신 탄식과 감탄을 흘렸다.
***
청불노는 연적하를 기명제자로 받았지만 그 사실을 오룡육사에게 알리지 않았다.
연적하로 하여금 백일운을 찾는 데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다.
다음 날.
청불노는 기명제자를 받은 기쁨에 들떠 오전의 강론을 맡겠다고 했다.
오룡육사들에게는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인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 등선할지 모르는 청불노다.
그들은 그가 등선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그의 강론을 듣고 싶었다.
강론시간이 되자 청불노는 노구를 이끌고 오룡궁의 수도자들 앞에 섰다.
그의 시선이 수련자들 사이를 가볍게 훑고 지나갔다.
연적하를 발견한 그의 입가에 가벼운 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태상노군(노자)께서는 ‘통현진경(通玄眞經)’에서 도(道)의 기원에 대해 이같이 말씀하셨소. ‘유물혼성(有物混成) 선천지생(先天地生)’, 즉 천지가 생기기 이전에 뒤범벅되어 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여러분처럼 말끔한 얼굴이 아니라, 저 ‘수도자’의 얼굴과 같은 게 도라는 말이외다.”
청불노의 손이 연적하를 가리켰다.
그가 연적하를 ‘수도자’라고 칭했지만 사람들은 웃느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남화진인(장자)은 ‘최고의 도는 고요하고 그윽하며[窈窈冥冥], 어둡고 말 없는 것[昏昏基點]’이라 했소. 진인의 말씀처럼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无視无聽], 고요한 중에 정신을 간직하고 있으면[拘神以靜], 육체는 절로 바르게 될 것이오[形將自正]. 그것은 마치 절체절명의 순간, 눈을 감고 절벽을 오르는 것과도 같소.”
마지막은 어제의 연적하를 두고 한 말이다.
연적하는 청불노의 말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러니까 오늘 다시 한번 그 안개와 뱀 떼를 지나가란 말이죠?’
청불노는 ‘통현진경’과 ‘장자’를 자유롭게 오가며 도에 대해 설파했다.
연적하는 눈을 빛내며 한마디도 흘려듣지 않았다.
스승의 강론이라 그런지 오늘따라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 같았다.
***
“뭐지?”
남암궁의 절벽 아래에서 연적하는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은 길눈이 어둡다.
그렇다 해도 어제 갔던 길도 못 찾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어제의 그 동굴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근 방문한 모든 동굴을 뒤졌지만 마찬가지다.
기진맥진할 때까지 절벽을 오르내렸지만, 허사였다.
어제의 일이 한바탕 꿈인 양, 진법이 깔려 있는 동굴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연적하는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추기 위해 오룡궁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
그날 밤.
오룡궁.
청불노가 기막힌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어제의 백골 동굴이 보이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뒤져 봐도 보이지 않았다고?”
“예, 최근 며칠 동안 갔던 곳까지 싹 뒤져 봤는데 그런 동굴이 없더라고요.”
“허! 거참!”
청불노는 연신 탄식을 흘렸다.
만약 연적하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연적하다.
그에게 ‘소청단’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단약이었다.
“어쩌면 너와 동굴의 인연이 다한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풍운조화를 일으키는 진법이니 모습을 감추는 건 일도 아닐 게다.”
“그런가요? 이럴 줄 알았으면 항아리째 들고 나오는 거였는데. 아깝네.”
“인석아, 네가 들고나온 아홉 개의 ‘소청단’만 해도 가치가 무궁하다. 더구나 정체불명의 단약이 ‘태청단’이면 무당파가 발칵 뒤집힐 일이야.”
“그래도요. 제가 멍청해서 일을 망친 것 같아요. 좋은 걸 보면 싹 다 챙겨야 후회가 없는 건데. 나중을 생각해 남겨 두다니 제가 미친 거죠.”
“어허! 미치다니. 그게 네 물건이냐? 남암궁의 것을 이만큼이라도 챙겨 온 게 어디라고. 이것만으로도 분에 넘치니 아까워 할 것 없다.”
연적하가 좀처럼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자 청불노는 서둘러 술법으로 주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너, 오룡궁의 ‘영안술’을 가르쳐 달라고 했었지?”
“예.”
“영안술은 그저 귀신을 보는 눈이다. 그보다 더 뛰어난 안법을 알고 있는데.”
순간 시들어 있던 연적하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정말요? 그렇지 않아도 ‘영안술’은 이름부터가 좀 그렇더라고요. 곤륜파의 ‘신안통’은 그럴싸하던데.”
청불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영안(靈眼)’보다 ‘신안(神眼)’이 더 그럴싸해 보였다.
“사실 공야자 스승과 나는 ‘영안술’을 쓰지 않았다.”
“그럼 뭘 쓰셨는데요?”
“‘통천안(通天眼)’이다.”
“와! 저 그거 배우고 싶어요!”
이름이 ‘통천’이라니, 왠지 다른 안법(眼法)들과 격이 다른 느낌이다.
흥분한 연적하는 엉덩이를 들썩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