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66
366회. 효험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속가제자들은 단지 퇴마식을 돕기 위해 동원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오룡궁 도사들의 손과 발이 되어야 했다.
노숙 때 음식을 차린다거나 잠자리 준비 따위의 궂은일들이 그들에게 맡겨졌다.
그래도 속가제자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오룡궁 도사들의 퇴마식에 참가한다는 것은 일생일대의 기회인 까닭이다.
술사들에게 들어오는 의뢰의 대부분은 퇴마나 축문(祝文)과 관계된 것들이다.
축문이야 당장 효과를 알기 어렵지만 퇴마는 달랐다.
당장 악귀를 쫓아내야 실력을 인정받고 술사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룡궁의 퇴마식에 참가하는 것은 영광이자 자랑이었다.
서안 남쪽의 종남산.
해거름 무렵, 네 명의 도사와 세 명의 속인이 종남산 초입에 들어섰다.
장춘 진인의 일행들이다.
산 밑을 크게 돌아가던 장춘 진인이 토지신 묘를 발견하고는 우뚝 멈춰 섰다.
“광해야.”
그의 부름에 첫째 제자인 광해 도사가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더 가 봐야 객점이 없을 것 같으니 그만 이곳에서 쉬어야겠다.”
“예.”
광해 도사도 스승과 생각이 같았다.
산세로 보아 객점이 있을 정도로 큰 마을이 나타날 것 같지 않았다.
광해 도사는 즉시 속가제자들을 불러 토지신 묘를 정리하게 했다.
청천석, 백설연, 연적하가 토지신 묘로 들어가 쌓인 먼지를 털고 거미 줄을 걷어 냈다.
백설연이 막 깨진 항아리 하나를 치우려고 들어 올릴 때다.
돌연 항아리 속에서 뱀 한 마리가 툭 떨어져 혀를 날름거렸다.
슈륵-.
“꺄악!”
발등에 뱀이 떨어지자 백설연은 반사적으로 비명부터 내질렀다.
덩달아 놀란 청천석이 석상처럼 굳어 있을 때 연적하가 재빨리 나섰다.
그가 벼락처럼 뱀의 머리를 잡아 제압하자 백설연은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적하는 그 자리에서 뱀의 머리를 자른 뒤 창 밖으로 내던졌다.
“고마워.”
백설연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비명에 장춘 진인의 둘째 제자인 공진 도사와 셋째 제자인 경암 도사가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공진 도사의 물음에 백설연이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깨진 항아리에서 뱀이 나오는 바람에 제가 소리를 질렀어요. 놀라게 해서 죄송해요.”
“쯧쯧! 고작 뱀 따위를 보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서야.”
공진 도사가 백설연을 나무라고는 경암 도사를 데리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무안한 얼굴로 서 있는 백설연에게 연적하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사저, 신경 쓰지 마세요. 갑자기 발등에 뱀이 떨어지면 신선이라도 놀라 소리쳤을 거예요.”
“…….”
그러나 백설연은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묵묵히 다시 주변 정리를 해 나갔다.
괜히 뻘쭘해진 연적하는 머리를 긁적이다 돌아섰다.
속가제자들이 청소를 끝내자 장춘 진인과 세 명의 제자가 들어왔다.
“수고들 했다.”
장춘 진인은 인사치레로 한마디 던지고는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겼다.
그의 제자들도 스승을 따라 명상에 들어갔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청천석이 백설연과 연적하에게 속삭였다.
“역시 본산의 도사님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한 점 흐트러짐이 없네.”
백설연과 연적하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장춘 진인과 세 명의 도사들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들을 대신해 잡스러운 일을 하는 게 영광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
산서성.
서안.
태청도관.
점심 무렵.
용문상방의 방주 용금인이 찾아오자 일운 도사가 그를 맞이했다.
용금인은 일운 도사를 보자마자 다급히 물었다.
“어떻게 됐소?”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허어! 무당파에 사람을 보낸 지 벌써 팔 일이나 됐소. 지금쯤이면 왔어야 하는 거 아니오?”
“용 대인, 무당산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니니 하루 이틀은 차이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일운 도사의 설명에 용금인은 되받아치려다 참았다.
그의 말대로 가고 오는 중에 하루나 이틀쯤은 예정보다 늦어질 수도 있었다.
용금인이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을 때다.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객청의 문이 활짝 열렸다.
뒤이어 삼십 대 미부(美婦), 화조검 단유정이 야생마처럼 안으로 뛰어들었다.
“용 가가! 저를 언제까지 이곳에 있게 하실 건가요? 이젠 향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에요! 그냥 집으로 가면 안 되나요? 네에?”
지난 팔 일간 태청도관에 갇혀 있다시피 한 단유정이 애원했다.
순간 용금인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부인, 답답해도 조금만 참으시오. 늦어도 내일이면 다 끝날 게요.”
“내일, 내일 한 지가 오늘로 벌써 팔 일이라고요. 설마 나를 얼렁뚱땅 이곳에 가둬 두려는 건 아니겠죠? 그럴 생각이라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단유정의 눈에서 서릿발 같은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의 기세에 눌린 용금인과 일운 도사는 슬그머니 시선을 회피했다.
단유정은 서안에서 유명한 단씨무가의 장녀다.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에 무공마저 뛰어난 그녀를 사람들은 ‘화조검’이라 불렀다.
강호에서 별호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무림 고수인 그녀 앞에서 일반인인 용금인과 일운 도사는 몸을 사렸다.
용금인이 겨우 용기를 내서 한마디 했다.
“진정하시오. 부인을 우리가 무슨 수로 이곳에 가둬 둘 수 있겠소? 답답한 심정은 알겠으나 태청도관과 약조한 게 있으니 하루만 참읍시다.”
남편의 부탁에 단유정은 노기를 가라앉혔다.
‘귀접’은 ‘귀신이 들린 것’과 다르다.
‘귀접’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단발성 사고라면, ‘귀신들림’은 내재적이며 그 끝도 알 수 없다.
만약 그녀가 미쳤다면 태청도관은 진즉 피에 잠겼을지도 모른다.
이곳에 화조검을 당해 낼 무인이 없으니까.
“흥! 딱 하루 만이에요. 내일은 누가 뭐래도 집으로 돌아갈 거니까 그런 줄 아세요.”
“고맙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용금인이 일운 도사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하루만 더 기다리리다. 더는 우리 부부를 실망시키지 말아 주시오.”
퇴마 의식을 하던 도사가 쓰러지질 않나, 하는 일 없이 사람을 잡아 두질 않나, 이래저래 용금인도 태청도관에 불만이 많았다.
만약 태청도관이 무당파의 지관만 아니었으면 벌써 처를 데리고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무당파라는 뒷배경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무당파를 무시했다가는 호천맹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어쩔 수 없었다.
“걱정 마십시오. 늦어도 내일이면 도착할 겁니다. 본래 오늘은 왔어야 하는데…….”
일운 도사가 열심히 변명하고 있을 때다.
일꾼 하나가 호들갑을 떨며 달려왔다.
“헉! 헉! 오셨습니다! 장춘 진인 일행이 방금 도착하셨습니다.”
장춘 진인 일행은 태청도관의 대문을 넘어섰다.
지난 칠 일간 쉬지 않고 걸음을 재촉해 피곤한 모습이지만 눈빛은 형형했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태청도관 도사들이 우르르 달려나가 그 들을 맞이했다.
융성한 환대에도 장춘 진인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뒤늦게 일운 도사가 용 대인 내외를 모시고 나왔다.
“장춘 진인, 어서 오십시오. 이쪽은 용문상방의 용 대인과…….”
일운 도사의 소개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단유정이 말을 끊고 나섰다.
“용문 상방의 안주인 단유정이에요. 진인께서 구마(驅魔) 의식을 하실 건가요?”
그녀가 끼어들자 일운 도사는 슬그머니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왕 단유정이 나섰으니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다.
장춘 진인이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화조검의 명성은 들은 바가 있소. 이제부터는 빈도가 맡아서 할 예정이오. 단 부인께서는 오늘 저녁에 시간을 내실 수 있겠소?”
“네, 팔 일이나 이곳에서 지냈어요. 더는 못 기다려요. 진인께서 오늘 오셨기에 망정이지, 내일은 하늘이 무너져도 떠나려고 했어요.”
“알겠소이다. 의식은 유시(오후 5시-오후 7시)에 시작하도록 하겠소. 그때까지는 편히 쉬도록 하시오. 우리도 준비해야 할 게 있어서.”
“고마워요. 그럼 그때 뵙지요.”
단유정은 무인 출신인 장춘 진인에게 예를 갖추었다.
그녀가 서안에서 무명을 떨쳤다고 하지만 무당파 장춘 진인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나 마찬가지니 당연하다.
나찰처럼 날뛰던 단유정이 공손해지자 일운 도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장춘 진인의 배웅을 받으며 용금인과 단유정이 객청 밖으로 나갔다.
태청도관의 도사들만 남자 장춘 진인이 물었다.
“능지 선인은 어디 계시오?”
태청도관의 부관주인 일운 도사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관주님께서는 자소각에 누워 계십니다. 지금 만나 보시렵니까?”
문득 장춘 진인이 제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능지 선인을 먼저 만나 보겠다. ‘삼청전’에서 의식을 거행할 터이니, 준비해 두도록 해라. 준비를 마치면 쉬어도 좋다.”
“예.”
세 명의 직계 제자가 답하자 장춘 진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운 도사가 그를 모시고 자소각으로 향했다.
자소각.
장춘 진인은 일운 도사를 물리고 홀로 방으로 들어갔다.
침상에 누워 있던 능지 선인이 인기척을 느끼고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냥 누워 계셔도 됩니다.”
“아, 진인께서 오셨군요. 빈도가 부족해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능지 선인은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눈 밑이 거뭇거뭇했다.
장춘 진인이 날카로운 눈으로 능지 선인을 살폈다.
퇴마 의식을 하다가 쓰러졌다느니, 귀신이 들렸다느니 하는 소리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귀신들린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귀신 들린 사람은 자신의 법력에 눌려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하지만 능지 선인은 아파 보일망정 자신의 시선을 회피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장춘 진인의 물음에 능지 선인은 한동안 멍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진인께서는 어디까지 들으셨습니까?”
“선인께서 퇴마 의식 도중에 쓰러졌는데, 귀신에 들린 것 같다고 하더군요.”
“허허…….”
능지 선인의 입에서 허허로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장춘 진인은 능지 선인의 반응이 의아했지만 그가 스스로 말하기를 기다렸다.
한참 만에 능지 선인이 입을 열었다.
“단 부인이 자은사에서 무슨 일을 당한 것은 분명합니다. 본인이 희미한 정신 가운데 느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그게 귀접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허면 퇴마 의식 중에는 왜 쓰러지신 겁니까?”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삼청전에서 ‘태을경’을 외우고 있었는데, 눈떠 보니 자소각이더군요. 사람들은 제가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다고 하고요.”
장춘 진인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태청도관의 문제가 생각보다 더 꼬인 것 같다.
“자은사는 어떤 곳입니까?”
“서안 외곽에 있는 큰 사찰입니다. 단 부인의 경우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자주 찾았던 모양입니다. 그런 쪽으로 효험을 본 사람이 제법 있다고 하더군요.”
“그곳에서 귀접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답니까?”
“전혀요. 귀접과 관계해서는 단 부인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곰곰 생각하던 장춘 진인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몸은 어떠십니까? 의원에게 진맥은 받아 보셨습니까?”
“쩝, 퇴마를 하다가 쓰러졌는데 진맥을 받아 무엇합니까? 지켜본 사람들 말처럼 사기(邪氣)의 침탈을 받았다면 백약이 무효하거늘.”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진맥을 받아 보세요. 기혈이라도 막힌 것처럼 얼굴빛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무인이기도 한 장춘 진인이 볼 때 능지 선인의 상태는 내상에 가까웠다.
‘퇴마 의식으로 내상을 입었다고?’
물론 의식 도중 사기가 틈타면 없던 병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경우 시간을 두고 시름시름 앓지만, 자연적으로 치유가 된다.
‘뭔가 이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