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68
368회. 그 소원 내가 들어줄게
자은사 주지인 불광 선사는 장춘 진인 일행을 막아설 수가 없었다.
그렇다 해도 도사들이 사찰을 마음대로 휘젓게 할 수는 없는 노릇.
“빈승이 그곳까지 안내하겠습니다.”
자은사의 체면을 생각하면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장춘 진인은 불광 선사의 입장을 고려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불광 선사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앞장섰다.
누가 보면 마치 도사들에게 자은사를 구경이라도 시켜 주는 것처럼 말이다.
불광 선사가 멈춰 선 곳은 운수당(雲水堂)이라는 현판이 붙은 전각 앞이었다.
“이곳입니다.”
“잠시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춘 진인은 불광 선사에게 먼저 양해를 구한 뒤 운수당으로 들어갔다.
영험하다는 소문 때문인지 두 명의 여인이 쉬지 않고 절을 올리고 있었다.
장춘 진인은 날카로운 눈으로 운수당을 살폈다.
정면의 석대에 놓인 거대한 불상과 그 앞의 향로가 전부인 단출한 모습이다.
뒤이어 직계와 속가의 제자들이 슬그머니 따라 들어갔다.
연적하는 가볍게 운수당 안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벌인 짓이라면 흉수를 찾기 어려울 텐데…….’
무당파 고수들이 우르르 몰려왔으니 어딘가에 꼭꼭 숨었을 터였다.
그건 연적하뿐 아니라 직계제자들과 속가제자들 모두의 생각이었다.
자연히 그들은 무덤덤한 얼굴로 운수당을 구경하듯 둘러보았다.
하지만 세상일은 왕왕 상식을 초월한다.
장춘 진인이 내부를 꼼꼼하게 살피고 막 밖으로 한 걸음 내디뎠을 때다.
휘이이잉-.
갑자기 어디선가 일진광풍이 불어왔다.
정오의 밝은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더니 주위가 어두컴컴해졌다.
운수당 앞에 모여 있던 자은사 승려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요, 요괴다!”
“귀신의 소행이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승려들이 불광 선사 주변으로 모여들며 염불을 외웠다.
그들로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하는 현상이니 놀랄 만도 했다.
꽈르르릉! 꽈광!
먹구름 안에서 흘러나온 우렛소리에 땅이 진동하자 승려들의 염불 소리가 더욱 커졌다.
광풍과 천둥소리와 염불 소리로 고요하던 운수당 앞이 발칵 뒤집어졌다.
대경실색한 장춘 진인은 급히 품 안에서 멸진부(滅盡符)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파사의 진언과 함께 멸진부를 날려 보냈다.
휘리릭-.
퍼엉!
먹구름과 부닥친 멸진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에 타올랐다.
그러나 먹구름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영역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운수당 인근을 모두 뒤덮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흐흐흐흑!”
“꺄아아악!”
시커먼 먹구름 속에서 정체불명의 호곡성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심약한 사람들은 잠깐만 들어도 기절할 정도로 소리는 끔찍했다.
압박을 견디다 못한 승려들이 운수당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나 무당파 도사들은 운수당 앞을 떠나지 않았다.
상대가 악귀든 색마는 때려잡을 요량으로 운수당에 온 까닭이다.
“갈(喝)!”
장춘 진인이 검을 뽑아 들었다.
악귀를 잡는 복숭아나무 목검이 아닌 무당파의 송문고검이다.
저 먹구름이 기환술로 만든 것임을 알아차리고 태세를 전환한 것이다.
“북두구진(北斗九辰) 중천무영(中天無影)!”
장춘 진인이 파진(破陣)의 주문과 함께 검을 내리그었다.
솨아아 강력한 검기에 먹구름이 세로로 길게 갈라졌지만 이내 다시 합쳐졌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돌연 먹구름 속에서 거대한 아수라가 나타나더니 장춘 진인을 후려쳤다.
깜짝 놀란 장춘 진인은 고검으로 아수라의 손을 막았다.
꽈광-.
귀청이 찢어지는 폭음과 함께 장춘 진인의 상체가 휘청거렸다.
“크윽! 수라멸겁장? 설마…….”
단 한 수에 내상을 입은 장춘 진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제자들에게 소리쳤다.
“당해 낼 수 없는 마귀다! 모두 피하거라!”
광해 도사, 공진 도사, 경암 도사는 스승의 절규에도 머뭇거렸다.
부상을 입은 스승만 두고 차마 달아날 수가 없어서다.
오히려 운수당 안에 있던 세 명의 직계제자들은 밖으로 튀어 나가 스승의 옆에 섰다.
순간 그들의 머리 위로 아수라의 거대한 손바닥이 떨어져 내렸다.
세 도사는 급히 검을 들어 올려 막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콰앙!
가공할 암경이 세 도사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첫째인 광해 도사는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이를 악물고 참아 냈다.
그러나 둘째와 셋째는 그러지 못했다.
“윽!”
“으윽! 쿨럭!”
특히나 상대적으로 내력이 약한 경암 도사는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 냈다.
달아날 기력까지 상실한 세 도사는 망연자실한 눈으로 먹구름을 바라보았다.
먹구름 속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흐흐! 모두 죽어라!”
뒤이어 아수라의 손바닥이 다시 한 차례 그들 머리 위에 나타났다.
검붉은 아수라의 손이 막 네 명의 도사를 찍어 누르려는 순간이다.
운수당 안쪽에서 찬란한 한 줄기 빛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왔다.
밖으로 나온 빛줄기는 하늘로 치솟아 거대한 아수라의 손바닥을 관통했다.
“크아아아!”
천지를 뒤흔드는 비명과 함께 아수라의 손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빛줄기는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는지 먹구름 속을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먹구름 속에서 천둥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쿠르르릉- 쿵- 쿵-.
잠시 후 빛줄기는 다시 운수당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운수당 주위에 짙게 내려앉았던 먹구름이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문득 장춘 진인의 시선이 운수당 맞은편 전각 지붕으로 향했다.
허름한 마의를 입은 노인이 서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절에서 잡일이나 하는 사람의 복장이다.
수라멸겁장이 아니었다면 보고도 지나쳤을 정도로 노인은 평범해 보였다.
“……수라마존?”
무림 최고의 악은 녹림도 아니고 유명교도 아니다.
오랜 세월 대립했지만 녹림이나 유명교와는 그래도 대화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아예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절대악이 있었다.
천산의 마교다.
수라마존은 활동이 사라져 이제는 그 존재감마저도 희미해진 마교의 고수였다.
노인의 입꼬리가 뒤틀리자 사방에서 음산한 웃음소리가 울려왔다.
전설에나 나오는 육합전성의 수법이었다.
“크크크! 아직도 본좌를 기억하고 있는 놈이 있다니 기특하구나. 특별히 고통 없이 죽여 주마.”
그러나 수라마존은 웬일인지 큰 소리와 달리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얗게 질려 있던 장춘 진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금방이라도 날아와 살수를 쓸 것 같던 수라마존이 말만 앞세우고 있었다.
뒤늦게 그는 운수당에서 날아간 빛줄기를 떠올렸다.
혹시 수라마존은 그걸 두려워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자욱하던 먹구름이 갑자기 걷힌 것부터가 이상하다.
그때 운수당에서 속가제자인 연남천이 타박타박 걸어 나왔다.
장춘 진인의 시선이 무심코 그의 손으로 향했다.
단검 한 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그 빛줄기가 저 단검이었을까?’
운수궁을 나온 연적하는 장춘 진인과 세 명의 도사를 지나쳐 앞으로 나섰다.
“늙은이가 귀신인 척한 색마였어?”
“뭐라! 색마라니! 본좌의 존성대명은…….”
발끈한 수라마존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려 했지만 연적하는 기다려 주지 않았다.
“구질구질한 이름은 됐고. 다 늙어서 왜 귀신 행세를 하고 다녀? 귀신을 좋아하나 본데, 그 소원 내가 들어줄게.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이리 와.”
연적하의 말에 수라마존은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은 만마의 지존이라 일컬어지는 마교십존 중 하나였다.
천하십대고수는 마교가 강호에서 발을 빼고 난 이후에 나온 것이다.
만약 마교가 활동을 이어 갔다면 그들의 이름은 바뀌고도 남았다.
“저, 저, 미친…….”
입을 덜덜 떨면서도 수라마존은 지붕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보이지 않게 움켜쥔 그의 오른손에서 피 한 방울이 똑 떨어져 내렸다.
수라멸겁장이 깨지면서 입은 부상이었다.
수라마존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누르고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크크, 아이야. 네 이름이 무엇이냐?”
“곧 죽을 늙은이가 뭐 그리 궁금한 게 많아? 오라니까? 왜? 무서워서 못 내려오겠어? 내가 갈까?”
연적하가 수라마존에게 손을 까닥였다.
수라마존은 뻔한 상대의 도발을 무시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커험. 아이야, 네 손에 든 그것은 무엇이냐? 보통 물건으로 보이지 않는데? 혹 법보냐?”
“이거? 그냥 주운 건데?”
연적하가 눈앞에 단검을 들고 흔들었다.
몇 해 전 포씨 사당에서 정체불명의 복면인과 싸울 때 그가 던진 단검이다.
그러니 주웠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예상 밖의 대답에 수라마존은 인상을 찌푸렸다.
말이 헛도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질문을 바꿔야 원하는 답이 나올 것 같다.
“거두절미하고 묻겠다. 본좌의 수라멸겁장을 깨트린 게 너냐?”
“그 이상한 손바닥을 말하는 거라면 내가 맞아. 별것도 아닌 게 이름은 거창하네? 근데 계속 거기 있을 거야? 조금 전에 누굴 죽이네 마네 하지 않았어? 멀찍이 있다가 분위기 봐서 달아나려고 그러는 거 아니지?”
“…….”
수라마존은 반신반의한 눈으로 청년을 보았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거짓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태연했다.
하지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설사 그가 수라멸겁장을 깨트렸다 해도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수라마존의 눈에 살기가 차올랐다.
“오냐. 죽는 게 소원이라니 들어주마.”
말과 함께 수라마존은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운수당 앞마당으로 날아갔다.
꽈르르릉-.
그의 손에서 쏟아져 나온 장풍이 벼락처럼 연적하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순간 연적하는 들고 있던 단검을 마주 던졌다.
츠츠츠-.
단검이 장풍을 가르며 수라마존에게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깜짝 놀란 수라마존은 허공에서 몇 차례 몸을 뒤집으며 자리를 바꾸었다.
하지만 단검은 영사(靈蛇)처럼 쾌속하게 방향을 바꿔 가며 그를 압박했다.
이기어검이었다.
수라마존은 단검이 그림자처럼 자신을 따라다니자 미친 듯 운수당 주위를 날아다녔다.
장풍은 다시 날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경신술을 펼쳤지만 끝내 단검이 그의 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큭!”
수라마존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단검이 스치고 지나갔을 뿐인데 마치 허리가 잘린 것처럼 아팠다.
황급히 아래를 살피던 그는 눈을 부릅떴다.
한 치(약 3센티) 깊이로 베어진 허리에서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수라마존은 한 손으로 허리를 움켜잡고 뒷걸음질 쳤다.
무림에 나온 이래 이토록 중한 부상은 처음인지라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때 문득 그의 시야에 검결지를 세우고 있는 청년이 들어왔다.
아직 공격이 끝나지 않았다는 소리다.
급히 검결지가 향한 곳을 보니 운수당 지붕 위에서 단검이 선회하고 있었다.
다시 맞섰다가는 달아날 틈도 얻지 못하리라.
수라마존은 과거의 명성이 무색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단검을 회수한 연적하가 멍하니 서 있는 장춘 진인에게 다가갔다.
“저 색마가 누군지 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