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69
369회. 나도 이름 있거든요
장춘 진인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교십존이라 불리던 수라마존이 세상에 나타난 것도 기겁을 할 일이다.
그런데 그 수라마존이 이기어검에 맞고 달아나다니?
칠파일문조차도 상대하기를 꺼리는 절대악이 마교다.
어느 정도냐고?
대체로 녹림의 고수들은 칠파일문을 피해 다닌다.
하지만 마교의 고수는 그 반대다.
그들이 특정 지역에 출몰했다 하면 칠파일문조차도 피해 다녔다.
어쩌면 수라마존이 운수당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래서인지 모른다.
‘감히 내가 있는 곳에 무당파가 머리를 들이밀어?’라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연남천만 아니었으면 그의 뜻대로 되고도 남았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던 그는 연적하의 질문에 정신을 차렸다.
“마교라고 아느냐?”
“모르는데요?”
창고에 갇혀 지내다 오봉산의 산적이 된 연적하에게 마교는 낯선 이름이었다.
“유명교가 등장하기 이전에 강호를 들었다 놨다 하던 곳이다. 마도(魔道)라는 말은 아느냐?”
“예.”
그건 한 달쯤 전 광성자가 강론 중에 한 말이다.
수련자인 장이도가 ‘불로불사를 추구하는 유명교 교주도 구도자냐?’고 물었을 때, 광성자는 ‘그가 추구하는 도는 마도’라 답했다.
“마도는 마교 때문에 생긴 말이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마로 득도를 하겠다고 했지.”
“마로요?”
“그래. 기가 막히게도 그들의 목표는 마선(魔仙)이었다. 순수하게 그 목적 하나로 살겁을 저질렀지. 극과 극은 통한다나? 마의 극에 이르면 불로불사할 수 있다는 궤변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였다.”
“허, 그렇게 해서 득도를 한 사람은 있고요?”
“자신이 영생불멸의 ‘천자마(天子魔)’가 되었다고 한 마두는 있었다. 그를 ‘천마’라고 불렀지.”
“와아! 세상에 미친 사람 많네요. 저는 처음 듣는 소리예요.”
연적하는 장춘 진인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놀랄 만한 일도 아니었다.
도(道)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게 더 많다.
그렇다 보니 수련도 제멋대로다.
당장 무당산의 도사들만 봐도 그렇다.
좋게 말해 기인이지, 그들 중에는 정신 나간 짓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장춘 진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유명교가 활동하기 이전의 일들이라 모를 수도 있다. 마교는 유명교가 출현하기 전에 강호에서 사라졌으니까. 나도 까맣게 잊고 살았으니. 그건 그렇고 사문이……. 아니, 무당파 말고 다른 곳에서 무공을 배웠더냐?”
“가전 무공이에요.”
“허어! 실로 대단한 무가의 출신인가 보구나. 그곳이 어디인지 말해 줄 수 있겠느냐?”
“와룡장이라고 지금은 쫄딱 망해서 사라졌어요. 유명교에 된통 당했거든요.”
“저런.”
장춘 진인은 와룡장이라는 이름을 곱씹어 보았다.
어디에선가 들어 본 이름 같은데 가물거리기만 하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참, 그 색마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말았는데, 그 늙은이는 누구예요?”
“이런, 내 정신 좀 봐라. 너에게 마교를 설명해 주다가 곁길로 샜구나. 그는 마교에서 십존이라 불리던 수라마존이다. 천하십대고수가 나오기 이전에 강호를 주름잡던 대마두지. 그런 자가 자은사에 숨어 있었다니…….”
장춘 진인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 대마두가 하고 많은 곳을 두고 왜 하필 사찰에 숨어 있었는지 의문이다.
운수당에 숨어 있던 속가제자 둘이 쭈뼛쭈뼛 밖으로 나왔다.
연남천의 무위를 목격한 그들은 감히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때 자은사 주지인 불광 선사와 노승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나무아미타불, 달아난 그 마두는 누구였습니까?”
불광 선사의 질문에 장춘 진인이 답했다.
“그자는 마교십존이라 불리던 수라마존이었습니다. 복장을 보니 이곳에서 불목하니로 위장해 지내고 있었던 것 같더군요.”
“허! 나무아미타불……. 신성한 사찰에 어찌 그런 흉악한 자가…….”
불광 선사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수라마존이라는 마교의 고수가 운수당에서 몹쓸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니!
누가 알까 부끄러울 일이었다.
“수라마존은 절세의 고수라 아무도 알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라도 밝혀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진인,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불광 선사가 복잡한 눈으로 장춘 진인을 보았다.
자은사에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는 게 알려지면 큰 낭패였다.
당장 운수당에서 효험을 보았다는 여인들은 어쩌란 말인가.
특히나 용문상방의 안주인인 화조검 단유정은 귀접한 기억까지 가지고 있다.
그 모두가 수라마존의 짓이라는 게 밝혀지면?
그 이후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장춘 진인의 생각도 불광 선사와 다르지 않았다.
“이번 일이라고 하심은 퇴마 의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퇴마 의식을 하다 보면 종종 신비한 현상이 일어나곤 합니다. 호사다마라고 하지요? 운수당이 명성을 떨치니 마가 끼었던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귀를 쫓았으니 이후로는 별일 없을 겁니다.”
그제야 불광 선사의 안색이 밝아졌다.
“마귀를 쫓느라 고생들 하셨습니다. 무당파에는 따로 사례하도록 하겠습니다.”
불광 선사는 장춘 진인에게 머리를 숙여 보인 뒤 원로들을 이끌고 떠나 갔다.
광해 도사가 슬쩍 물었다.
“스승님, 호천맹에도 알리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글쎄다.”
장춘 진인이 곤혹스러운 눈으로 운수당을 보았다.
호천맹에 오늘의 일이 전해지면 결국 화조검도 알게 될 것이었다.
그는 ‘대의’와 ‘화조검의 보호’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춘 진인이 연적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수라마존이 나타났음을 호천맹에 알려야 한다고 보느냐?”
“그 색마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었다면 알려야 하겠지만, 단지 숨어 지내던 거라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흐음! 내 생각도 같다. 하지만 그 자에게 무슨 속셈이 있었다 해도 알아낼 도리가 없으니…….”
“별거 없었을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 색마가 중요한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면 사고를 쳤겠어요? 계속 쥐 죽은 듯 지내지.”
연적하의 말에 장춘 진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소 허술한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일리가 있었다.
그제야 불광 선사의 말을 듣기 전부터 어깨를 짓누르던 고민이 사라졌다.
“네 말이 맞다. 호천맹에는 알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너희들도 이번 일을 덮어 두도록 해라. 알겠느냐?”
“예.”
직계제자와 속가제자 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그들 역시 ‘들추어내 봐야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던 중이라 망설임이 없었다.
무당산으로 돌아가는 길은 평화로웠다.
감히 무당파 도사들에게 시비를 거는 이가 없었다.
직계제자들도 이제는 잡일을 속가제자들에게만 맡기지 않고 솔선수범했다.
***
십일월로 접어들자 무당산에는 서서히 낙엽이 지기 시작했다.
오룡궁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찾아왔다.
‘여동빈’의 속가제자들은 더 이상 연남천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의 술법이 여러 속가제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까닭이다.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하는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남채고’에는 그에 대한 구질구질한 소문이 남아 있었지만 그것도 한 풀 꺾인 지 오래다.
만황주와 천상동은 여전히 문답식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들뿐 아니라 대다수의 수련자들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러던 중 십일월 마지막 날에 이변이 일어났다.
백화궁에서 온 여제자들 중에 무려 셋이나 문답식을 통과한 것이다.
그 바람에 ‘여동빈’의 속가제자는 열일곱으로 늘어났다.
어느덧 연적하의 아래로 세 명의 사제와 세 명의 사매가 생겨난 것이다.
문답식의 치열함 때문인지 갓 올라온 여제자들은 연적하와 거리를 두었다.
연적하가 문답식을 거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다.
그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깍듯하게 사형, 사저라고 불렀다.
하지만 연적하는 ‘저기요’였다.
***
날이 바뀌어 십이월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불을 피우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추워졌다.
연적하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서원(西園)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자 머리가 복잡했다.
가라앉지 않는 얼굴의 부스럼 때문이 아니라, 금의위 소기인 진우생의 안위가 신경 쓰여서다.
‘하아! 곧 남진에서 거사를 벌일 텐데, 모른 척하기도 그렇고.’
만에 하나 진우생이 죽기라도 하면 사촌인 연화는 과부가 되고 만다.
자신에게 힘이 없다면 모를까?
그를 살릴 능력이 있으면서 방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유수가 찾아올 때도 됐는데…….’
금의위 남진무사인 동유수는 큰일을 앞두고 찾아오곤 했으니 이번에도 그럴 게다.
연적하가 한창 동유수를 생각하고 있을 때다.
“저기요.”
뒤에서 누가 소심하게 연적하를 불렀다.
생각에 골몰하던 연적하는 그 소리를 흘려듣고 계속 걷기만 했다.
그러자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저기요!”
그제야 연적하는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백화궁에서 온 여제자 셋이 나란히 서 있었다.
자신에게는 사매가 되지만 친하지 않아서인지 백화궁이 먼저 떠올랐다.
“왜……요?”
역시 거리가 있어서인지 말을 놓는 게 쉽지 않다.
그건 상대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를 불러 세운 여화경이 슬그머니 시선을 회피하며 말했다.
“오늘부터 서원 마당에 화톳불을 피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서원이 익숙지가 않아서 장작이며 불쏘시개 따위를 찾을 수가 없네요. 오늘만 좀 도와주시면 안 되나요?”
그녀는 연남천과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오늘만’을 힘주어 말했다.
“안 될 건 없는데…….”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여화경과 두 명의 사매를 보았다.
그깟 불 피우는 건 일도 아니니 상관없다.
문제는 부탁까지 하면서 ‘저기요’라고 자신을 호칭한 것이다.
‘사형’이라는 좋은 말을 두고 ‘저기요’가 뭐란 말인가!
연적하가 말을 흐리자 이번에는 손연수가 나섰다.
“저기요, 그럼 오늘만 도와줘요. 다음부터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손연수는 연남천을 강하게 쏘아보았다.
백화궁의 여제자들은 어려서부터 험한 일을 가리지 않고 해 왔다.
지금도 장작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지 힘들어서가 아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서원 근처를 뒤져 어떻게든 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 셋이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늦어서 그럴만한 틈이 없었다.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듣기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다.
그런데 대놓고 ‘저기요’ 소리를 두 번이나 들으니 짜증이 났다.
“이봐……요. 아까부터 나를 ‘저기요’라고 부르는데, 나도 이름이 있거든요?”
“알아요. 이름. 도와주실 건가요?”
손연수가 그래서 어쩔 거냐는 얼굴로 연남천을 빤히 쳐다보았다.
“돕는 건 어렵지 않은데, 내 말은.”
아까부터 대화를 지켜보던 반화선이 끼어들었다.
“연남천, 맞죠? 도와주실 건가요? 저희가 시간이 빠듯해서 그래요.”
순간 연적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새로 생긴 사매들에게 사형 소리를 듣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 서로 소 닭 보듯 하면 나야 좋지.’
사형, 사형하면서 쫓아다니면 그건 그것대로 귀찮은 일이었다.
연적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손을 까닥였다.
“따라와요. 장작 쌓아 둔 창고를 가르쳐 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