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73
373회. 연남천이라고 불러 주세요
무당산.
상청궁.
무당산에 첫눈이 내리던 날.
황실의 고위 인사 두 사람이 무당파를 방문했다.
‘개봉’의 금의위 남진무사 동유수와 ‘십언’의 백호(百戶, 남진의 총기 열 명을 지휘) 왕무양이다.
두 사람을 호위하기 위해 동원된 병력만 무려 삼백여 명.
규모로 볼 때 단순히 도관에 참배하기 위해 온 게 아니라 공무였다.
상청궁의 도사들은 이게 길조인지 흉조인지를 두고 설왕설래했다.
장문인의 집무실.
무당파 장문인 영결상인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두 관인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무당파의 장문인 영결상인이라 합니다. 어인 일로 무당산까지 오셨는지요?”
남진무사 동유수는 고관답게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본관은 금의위 남진무사 동유수요. 연 공자가 무당파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를 만나게 해 주시오.”
“아, 동 대인이셨군요. 그런데 연 공자라면 혹 녹림의 태상호법 연적하를 두고 하신 말씀이십니까?”
영결상인은 동유수의 안색을 살폈다.
연적하가 무당파의 제자인지라 무슨 일로 그를 찾는지 알아야 했다.
만에 하나 나쁜 일이라면 적당히 핑계를 대고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맞소. 당금 강호에서 연 공자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 또 있겠소?”
“무슨 일로 그를 찾는 것인지 알아도 되겠습니까?”
영결상인의 물음에 동유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무당파 장문인이 연적하와 자신의 사이에 끼어드는 게 조금 불쾌했다.
하지만 그의 협조가 없으면 연적하를 만날 수가 없다.
결국 동유수는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험, 연 공자와 본관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요. 그의 매제 또한 금의위고. 나쁜 일로 만나고자 하는 게 아니니 염려할 것 없소.”
그제야 영결상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괜히 고관과 척을 지게 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럴 일은 없는 모양이다.
“그러시군요. 연 공자는 얼마 전 무당파의 속가제자가 되었습니다. 하여 결례를 무릅쓰고 무슨 일로 찾는지 여쭤 보았던 것입니다.”
영결상인의 말에 동유수는 흠칫 놀랐다.
천하의 연적하가 무당파 속가제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급히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덕담을 건넸다.
“연 공자를 속가제자로 받아들이셨다니 축하드립니다. 무당파의 이름이 더 높아질 일만 남았군요.”
동유수는 당장 말투부터 바꿨다.
연적하가 무당파의 속가제자가 되었으니 장문인의 아랫사람이라 할 수 있다.
장문인에게 잘 보여야 연적하를 움직일 수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영결상인은 동유수의 바뀐 태도를 보고도 못 본 척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뿌듯했다.
“연 공자는 청불노 노사의 기명제자입니다. 지금은 오룡궁에서 수련을 하고 있지요.”
“…….”
‘기명제자’라는 말에 동유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평범한 속가제자라고 해도 놀랄 일인데 무려 ‘기명제자’란다.
“기명제자라면 청불노 노사의 진전을 이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청불노 노사께서 좌탈입망하시기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아들인 제자지요. 스승의 법보까지 물려받은 무당파의 인재입니다.”
“그렇군요.”
동유수는 장문인의 말에서 무당파가 억지로 연적하를 속가제자로 삼은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연적하가 무당파 제자가 되었다니…….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군.’
연적하가 녹림인 게 다루는 데는 더 편하다.
그가 거부하면 녹림의 토벌을 명분으로 그를 압박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무당파 제자라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고려해야 할 것도 많고, 지금처럼 먼저 무당파의 허락을 득해야 한다.
잠시 고민하던 동유수가 입을 열었다.
“장문인.”
“예.”
“사람들은 모르는 일이나 연 공자와 우리 금의위에서는 오래전부터 유명교를 상대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녹림이 천지맹에 가입하게 된 것도 우리 금의위와 연 공자의 보이지 않는 노력 덕분이었지요.”
“아!”
영결상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금의위와 녹림의 연적하가 그런 일을 해 왔다니 실로 놀라울 뿐이다.
“황실에서는 유명교의 해악을 알고 견제를 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북진의 희생이 컸지요. 그 뒤 북진이 하던 일은 남진으로 넘어왔습니다. 남진은 연 공자와 함께 유명교를 저지하고 있습니다. ‘삼년지약’을 맺은 무림의 방파들과 달리 말입니다.”
‘삼년지약’이라는 말에 영결상인은 씁쓰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장문인께서는 ‘삼년지약’으로 연 공자를 묶어 두실 생각이십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말씀드렸다시피 연 공자와 우리 남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유명교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연 공자가 무당파 속가제자가 되었으니 여쭙는 겁니다. ‘삼년지약’을 이유로 그의 싸움을 금하실 건지를 말입니다.”
“흐음!”
뒤늦게 영결상인의 입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동유수의 질문은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칠파일문과 사대세가는 삼 년 동안 유명교를 적대시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연적하도 무당파와 행동을 같이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제자가 협의를 행한다는데 막기도 그렇다.
게다가 연적하의 위치는 독특해서 그를 무당파 제자라고만 할 수도 없다.
연적하의 행보를 두고 번민하던 영결상인은 적당한 답을 찾아냈다.
“전통적으로 본파는 속가제자들에게는 본산(本山)의 규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연적하를 구속하지 않겠다는 소리다.
동유수의 안색이 밝아졌다.
“우리 금의위와 연 공자가 함께 일을 해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제가 아니라 연 공자가 결정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무당파는 속가제자들의 선택을 항상 존중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한 결 가벼워지는군요. 감사합니다.”
동유수는 영결상인에게 공수(拱手)의 예를 올렸다.
만약 무당파가 연적하를 막으면 원소절(元宵節, 음력 1월 15일) 행사에 큰 차질이 왔을 것이다.
“별말씀을요. 오히려 드러내 돕지 못함을 이해해 주십시오. 약속은 약속인지라. 허면 지금 연 공자를 불러 드리면 되겠습니까?”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동유수는 처음의 광오한 태도와 달리 공손했다.
무당파가 연적하의 사문이니 그에 맞는 대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한 식경(약 30분)쯤 지났을까?
상청궁의 도사가 오룡궁에서 연적하를 데리고 왔다.
연적하는 동유수와 낯선 중년 남자를 힐금 보고는 영결상인에게 읍을 했다.
“부르셨어요?”
“그래, 수련에 진전은 있느냐?”
영결상인은 동유수가 보란 듯이 속가제자인 연적하에게 말을 놓았다.
“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동 대인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금의위와 드러나지 않게 많은 일을 했더구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동 대인과 인사 나누거라. 너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오셨느니라.”
“예, 동 대인. 오랜만에 뵙네요.”
동유수가 놀란 눈으로 얼굴이 부스럼으로 뒤덮인 청년을 보았다.
말하는 걸 보니 연적하 같은데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연 공자 시오?”
“예, 중독의 후유증으로 얼굴에 부스럼이 좀 올라왔어요. 그래도 독은 다 나았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대체 어쩌다가…….”
연적하는 간략하게 삼보절명 당운망과 얽힌 일을 들려주었다.
“세상에! 그래서 당운망을 남연객점으로 보냈다는 말씀이오?”
“여독이 남은 줄 알고 그랬어요. 그런데 남암궁에서 약사여래 백일운을 만났는데, 중독 증상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중독이 아닌데 얼굴은 왜…….”
“스승님께서는 제가 유명교주의 언령으로 저주를 받은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와 약속을 하고 지키지 않은 게 하나 있거든요.”
“헐! 언령의 저주.”
동유수가 기막힌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목소리와 말투를 보니 연적하가 맞았다.
“스승님은 약속을 지키면 곧 좋아질 거라고 하셨어요. 중독의 후유증에 저주가 달라붙은 거라서. 해독이 끝났으니 약속을 지키면 본래대로 되겠죠.”
“무공을 펼치는 데 어려움은 없소?”
“전혀요. 그냥 얼굴만 이렇게 된 거예요.”
그제야 동유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구려. 그런데 유명교주와 한 약속은 무엇이오?”
동유수의 얼굴에 가벼운 긴장이 어렸다.
유명교주가 금의위에 해가 될 만한 일을 시켰다면 그것도 고민인 까닭이다.
“명왕교에 있는 백두마군 하나를 잡아 달라고 하더라고요.”
“자기를 배신한 백두마군을 원했다는 거요?”
“예. 그가 가장 얄미웠던 모양이에요.”
“다른 이유일 수도 있소.”
“다른 이유요?”
무덤덤한 얼굴로 듣고 있던 영결상인도 동유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꼭 받아 낼 것이 있으니 잡아 오란 게 아니겠소?”
역시나 관인(官人)다운 시각이다.
하지만 왠지 영결상인은 동유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
배신자의 머리만 요구해도 되는데 굳이 산 채로 잡아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연적하의 신변에 관한 이야기가 끝날 즈음, 동유수가 운을 뗐다.
“연 공자가 오기 전에 장문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소. 연 공자가 무당파 제자가 되었으니 ‘삼년지약’을 지켜야 하는가를 두고 말이오. 장문인께서는 속가제자에게는 본산의 규칙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하셨소.”
동유수가 확인해 달라는 듯 영결상인에게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영결상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맞다. 무당파뿐 아니라 칠파는 속가제자들에게 본산의 규칙을 강요하지 않는다.”
실제로 칠파는 속가제자들이 자유롭게 살도록 내버려 두었다. 속인들에게 본산의 승려와 도사들처럼 살라고 할 수가 없어서다.
“해서 드리는 말인데, 이번에도 연 공자의 도움이 필요하오.”
“그렇지 않아도 오실 때가 됐다고 생각은 했어요. 아슬아슬하게 오셨네요?”
겨울에 개봉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여유가 없었다.
이제껏 침묵하던 왕무양이 한마디 했다.
“본래 금의위는 기밀 유지를 위해 넉넉하게 일정을 잡지 않습니다.”
연적하는 더 묻지 않았다.
기밀 유지를 위해 빠듯하게 움직인다는 데 무슨 말을 더할까.
“제가 금의위를 도와도 괜찮은 거죠? ‘삼년지약’ 뭐 그런 거 때문에 무당파가 곤란해지는 거 아니죠?”
연적하가 확인하듯 묻자 영결상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야생마처럼 날뛰던 녹림의 기인이 무당파를 걱정해 주니 감개무량했다.
“말하지 않았느냐? 속가제자들은 본산의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너는 무당파 도사가 아니라 속인이라 행동이 그만큼 자유로운 것이다.”
물론 대신에 무당파에서는 속가제자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연적하는 장문인의 거듭된 말을 듣고 나서야 동유수에게 답했다.
“매제(진우생)를 위해서라도 도와야겠죠? 하지만 제가 누구라는 건 밝히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
“진우생에게도 말이오?”
“네. 그냥 무당파 속가제자 정도로 해 주세요.”
“그렇게 하리다. 그렇지 않아도 술사가 필요하던 참이니 다들 의심하지 않을 게요.”
“잘됐네요. 제 도호(道號)가 남천이니 연남천이라고 불러 주세요.”
“알겠소. 세부적인 일정이나 필요한 것은 왕 백호와 논의하면 될 게요.”
동유수가 왕무양을 가리켰다.
“왕무양입니다. 이후로는 무엇이든 저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다음 날.
오룡궁의 궁주 천명 도사는 속가제자인 연적하에게 ‘적선수행(積善修行, 속세에서 선행을 하는 것)’을 명했다.
속가제자이지만 청불노의 기명제자이니 수행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렇게 연남천은 오룡궁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