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76
376회. 그냥 죽여 버릴까요?
구천노도 심통과 삼보절명 당운망은 상극이다.
예컨대 심통의 성정이 불이라면 당운망은 물이라 할 수 있다.
산공(散功)을 경험하고 새사람이 된 심통은 직설적이면서 화끈하게 변했다.
그에 반해 당운망은 속을 보이지 않으면서 음습했다.
마치 과거의 구밀복검 심양각처럼 말이다.
연적하를 대하는 방식도 달랐다.
심통은 연적하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를 주군이자 가족처럼 대했다.
하지만 당운망에게 연적하는 족쇄와도 같았다.
낙월독정의 해독이 끝날 때까지 그에게 붙들려 있는 셈이었으니까.
처음 당운망이 남연객점에 온 이후로 두 사람은 사사건건 다뤘다.
처음에는 기선제압에서 시작된 일이, 나중에는 견원지간(犬猿之間)처럼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거렸다.
무력으로는 심통이 압도적으로 강하지만, 당운망은 독을 다루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둘 다 연적하를 의식해 손을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심통의 조롱에 화가 난 당운망은 그의 어탕(魚湯)에 약을 쳤다.
물론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를 죽이면 자신의 인생도 끝장난다는 것을 알았기에.
복통으로 꼬박 하루를 고생한 심통은 그다음 날부터 당운망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심통도 낙월독정의 해약 때문에 당운망을 죽이지는 못했다.
마치 금제가 풀린 것처럼 그 뒤로 두 사람은 약을 쓰고, 두드려 패기를 반복했다.
폭력은 반복될수록 강도가 세지기 마련이다.
당운망의 약은 갈수록 독해졌고, 심통도 오늘은 유엽도를 뽑았다.
그러던 차에 연적하가 돌아온 것이었다.
남연객점의 사람들 중에 오직 당운망만 연적하를 알아보고 알은체했다.
“응? 연 공자? 약사여래 백일운을 못 만났나?”
“무슨 일이야?”
연적하가 당운망과 유엽도를 들고 서 있는 심통을 번갈아 보았다.
심통이 황당한 눈으로 새로 등장한 청년을 보았다.
도사복에 대나무 등짐, 거기다가 부스럼으로 뒤덮인 얼굴까지…….
아무리 봐도 자신이 알고 지내던 연적하가 아니다.
그런데 당운망의 태도와 청년의 말투를 보니 연적하가 맞긴 맞나 보다.
“진짜 공자님이십니까?”
“이 늙은이가 벌써 내 목소리를 잊은 모양이네?”
연적하의 반문에 심통은 급히 유엽도를 거두어들이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고! 공자님! 그 훤하던 얼굴이…….”
부들부들 떨던 심통이 당운망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 개만도 못한 놈! 감히 우리 연 공자님을 저 지경으로 만들다니!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캑! 캑! 놓아라. 연 공자! 백일운, 백일운은 어떻게 됐소?”
당운망의 물음에 연적하가 담담하게 말했다.
“만나 봤지.”
그 말에 심통은 당운망을 패대기쳤다.
바닥에 널브러졌던 당운망이 후다닥 일어나 연적하에게 물었다.
“해, 해약은?”
당운망은 얼마나 긴장했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해독의 성패 여부에 따라 자신의 남은 삶이 좌우되는 까닭이다.
“백일운을 만나 봤는데 노망이 났더라고.”
“그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진짜야, 늙어서 정신이 오락가락했어.”
연적하는 남암궁에서 백일운과 만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려주었다.
당운망은 독을 다루지만 의술에도 조예가 깊어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정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중독된 게 아니라고 했나?”
“그런 말을 했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연적하는 언령의 저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닌 일로 당운망을 놓아주고 싶지 않아서다.
당운망이 연적하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폈다.
백일운의 진단을 내세워 떠나고 싶었지만 상대가 연적하라 그러기는 어려웠다.
“백일운의 말대로 후유증일 수도 있기는 하네. 물론 노망난 사람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것도 우습지만. 그럼 이제 어쩔 생각인가?”
“후유증이면 저절로 낫겠지? 하지만 해독이 덜 된 거라면 낫지 않을 테고. 늙은이는 해약이나 제대로 만들어. 그때까지 안 나으면 해약을 먹어야 하니까.”
유명교주와의 약속을 지켜 보면 알게 되리라.
저절로 낫는지 아닌지를.
그때까지 연적하는 당운망을 놓아 줄 마음이 없었다.
당운망은 해약이나 만들라는 말에 크게 실망했지만 토를 달지 않았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
낙월독정의 여독으로 얼굴이 망가진 연적하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한단 말인가!
“그건 그렇고, 내 객점에서 왜 싸움질을 한 거야?”
순간 심통과 당운망의 입이 거의 동시에 열렸다.
“당가 놈이 음식에 약을 타서…….”
“저 늙은이가 주먹을 휘둘러서…….”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서로가 정당한 보복인 양 말하는 걸 보니 누굴 탓하기도 어려웠다.
“상도야.”
계산대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상도가 쪼르르 달려왔다.
“예 공자님.”
“두 늙은이가 언제부터 싸웠어?”
“말싸움은 당 노사가 처음 온 날부터 했고요, 몸싸움은 셋째 날부터 오늘까지 사나흘에 한 번 꼴로요.”
빠릿빠릿한 상도는 두 번 물을 필요도 없게 잘 정리해서 답했다.
“매상도 많이 떨어졌겠다?”
“예, 할아버지가 그러시는데 반 토막 났다고 하시더라고요.”
“반 토막이면 얼마나 줄어든 거야?”
“하루에 은자 열 냥 정도요.”
“당 늙은이가 온 지 넉 달쯤 되나?”
“그럴 거예요.”
심통과 당운망은 머쓱한 얼굴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연적하가 두 사람을 향해 돌아섰다.
“심 노인.”
“예?”
“자기 주루나 지키고 있지 왜 남의 객점에 와서 싸움질을 한 거야?”
“저는 객점 매상을 올려 주려고 하루에 한 번은 식사를 이곳에서 했습니다. 그런데 공자님께 독을 쓴 당가 놈이 거들먹거리는 걸 보니 화가 나서…….”
“정확히 말해 봐. 매상을 올려 주려고 온 거야? 싸움을 하려고 온 거야?”
“둘 다라고 할까요?”
“에라 이…….”
연적하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 참았다.
심통의 진심을 알아서다.
이번에는 당운망에게 물었다.
“늙은이. 해약을 만들라고 살려 보냈더니 남의 영업장에서 뭐 하는 짓이야?”
“그 점은 미안하오. 하지만 저 심가가 볼 때마다 깐족거려서 참지 못하고 그랬소.”
“그렇다고 음식 장사도 하는 객점에서 약을 써? 누구 망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
당운망은 변명하지 못하고 수염만 잡아 뜯었다.
“만들라는 해약은?”
“아직…….”
“야! 이 정신 나간 늙은이야! 벌써 넉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이라고! 내 얼굴을 보고도 아직이라는 말이 나와?”
연적하가 버럭 소리치자 당운망은 어깨를 움츠렸다.
하기야 자신이 저 얼굴이라면 하루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석 달, 늦어도 석 달 후면 해약을 만들 수 있소.”
“나더러 봄까지 이 얼굴로 지내라?”
“나는 단지 해약을 만들 거라고 했소.”
“그건 무슨 소리야?”
“전에도 내 해약을 복용했지만 해결이 안 됐으니 하는 말이오.”
“그러니까, 다시 만드는 해약을 먹어도 해독이 안 될 수 있다?”
“공자님, 버러지 같은 놈의 헛소리를 왜 듣고 계십니까? 그냥 죽여 버릴까요?”
심통의 말에 당운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말했다시피 백팔 개의 독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만들어진 게 낙월독정이오. 나로서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오.”
당운망은 억울했다.
자신이 화타나 편작도 아닌데 요구하는 게 너무 많지 않은가 말이다.
연적하가 물 만난 고기처럼 옆에서 나대는 심통을 제지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좋아. 봄까지 기다려 주지.”
“거듭 말하오만 얼굴의 부스럼까지 치유된다고는 보장하지 못하오.”
“알아. 하지만 내 얼굴이 치료돼야 늙은이도 객점에서 나갈 수 있다는 것만 알아 둬.”
“끙!”
당운망은 두통이 밀려오자 앓는 소리와 함께 양손 엄지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독 한 번 잘못 썼다가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다.
대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즈음, 이 층에서 남수경이 빨랫감을 한 아름 안고 내려왔다.
연적하가 반가운 마음에 손을 들어 올렸지만 남수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빨랫감을 안고 나가던 그녀가 상도를 향해 지나가듯 한마디 던졌다.
“오늘은 일찍 끝났네?”
당연히 심통과 당운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상도가 급히 한마디 했다.
“연 공자님께서 오셨어요.”
막 문을 열고 나가려던 남수경이 홱 돌아섰다.
“어디?”
상도가 심통의 옆에 서 있는 연적하를 가리켜 보였다.
남수경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연적하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건 알았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쪽이 정말 연 공자예요?”
“어, 친구. 여전히 바쁘네?”
돌아선 남수경은 빨랫감을 근처의 탁자 위에 내려놓고 그에게 다가갔다.
“어머, 말투가 정말 연 공자네. 일이 생겼다는 말은 들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된 거예요?”
“그렇게 됐어.”
남수경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연적하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붓고 진물도 많네. 아프지는 않아요?”
“괜찮아. 보는 것과 달리 별 느낌도 없어.”
“그래요? 굉장히 불편해 보이는데. 세수하기도 힘들겠다.”
“세수 안 한 지 며칠 됐어. 안 해도 표시가 안 나. 어때? 봐도 모르겠지?”
“아, 이상한 냄새가 좀 나던데 안 씻어서 그런 거구나. 그럴수록 청결해야 돼요. 남이 못 알아본다고 해도 세수는 꼭 하세요.”
남수경의 잔소리가 시작되자 연적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알았어, 할게.”
“그런데 옷이 그게 뭐예요? 무당파에 가더니 도사라도 된 거예요?”
“속가제자가 됐어.”
“진짜 도사가 된 건 아니죠?”
“적선수행 중이라 옷만 걸친 거야. 머리에 도관도 안 썼잖아.”
“적선수행은 뭐예요?”
“도사에게는 착한 일이 수행이래. 착한 일을 하면 법력이랑 수명이 늘어난다나?”
“아! 그래서 도사님들이 돌아다니면서 좋은 일을 하고 다니는 거구나.”
“네가 뭘 좀 아는구나. 나도 지금 그러고 다니는 중이야. 여기까지 오는 동안 부적도 많이 그려 줬어. 공짜로.”
“와아! 부적도 그릴 줄 알아요?”
남수경이 눈을 빛냈다.
민간에서 무당파 부적은 비싼 편이었다.
물론 미신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사기라고 비웃지만 말이다.
“당연하지. 이 등짐 속에 항상 재료를 들고 다닌다고.”
연적하가 으쓱한 얼굴로 지고 있던 대나무 등짐을 가리켜 보였다.
“잘됐다. 우리 남연객점에도 몇 장 붙여요. 장사 좀 잘되라고. 요즘 매상이 떨어져서 아주 고민이에요.”
남수경의 말에 심통과 당운망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딴청을 했다.
그날 밤.
연적하는 자신의 객점에서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개봉에 왔으니 이제는 금의위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쉬고 있으면 된다.
여유가 생기니 그리운 얼굴이 떠올랐다.
‘가만 그러고 보니 누님에게 알려 주지 않았네.’
십전무후 남궁연의 성격이라면 지금쯤 명의를 찾느라 분주할 것이었다.
‘누님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괜찮다는 걸 알려 줘야겠다.’
그는 서둘러 상도를 불러 지필묵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유등(油燈) 아래서 비록 악필이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편지를 썼다.
“상도야.”
“예, 공자님.”
시중을 드느라 늦게까지 남아 있던 상도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너 내일 개봉에 좀 다녀와야겠다.”
“무슨 일이신데요?”
“이 편지를 남궁세가로 보내야 하는데, 아는 곳이 있니?”
“신표(信標, 편지를 운송하는 일)는 개봉의 인의표국을 제일로 쳐줘요.”
“그래? 얼마면 될까?”
“편지는 거리에 관계없이 무조건 은자 한 냥이라고 들었어요.”
연적하는 은자 두 냥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한 냥은 편지 보내는 값, 한 냥은 심부름값이다.”
“헉! 공자님, 감사합니다!”
상도는 마다하지 않고 편지와 은자 두 냥을 냉큼 집어 들었다.
“참, 나 없다고 녹담평이 허튼짓하지 않디?”
“예. 모르는 사람은 녹 소협이 진짜 삼년상을 치르는지 알 정도예요.”
“그래?”
눈을 깜빡거리던 연적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보방의 녹담평이 정말 효자암에서 초막 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