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80
380회. 연무백이 인사 올립니다
호위들을 유인했던 금의위 백호왕 무양과 단여청의 조가 합류했다.
소기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금의위 시체를 마차에 실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숯처럼 새까맣게 탄 종사명의 시체를 마지막으로 전장 정리가 끝났다.
이윽고 마차가 건국사를 빠져나갔다.
마당에 현장 법사 호위의 시체가 남았지만 금의위는 손도 대지 않았다.
금의위 남진무사 동유수가 연적하에게 다가갔다.
“연 공자, 고맙소. 덕분에 살았소이다.”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법사가 달아나서 어쩌죠?”
연적하가 동유수의 안색을 힐끔 살폈다.
현장 법사의 척살에 실패했으니 그의 입장이 난처할 것 같아서다.
그런데 의외로 동유수는 무덤덤해 보였다.
“괜찮소. 현장 법사도 오늘 크게 당했으니 당분간은 외부 활동을 자제할 게요. 게다가 의외의 수확이 있으니 완전한 실패는 아니오.”
“수확요?”
“북진이 왜 실패했는지 알게 된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했다 말할 수 있소.”
“아.”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형형색색의 깃발을 들고 있던 기수(旗手)들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누구도 기수들을 눈여겨 보질 않았소. 단순히 유명교도이려니 생각했는데 그들이 현장 법사의 숨겨진 힘이었소. 무림의 방파들도 유명교 기수들의 실체는 모르고 있을 게요.”
“그렇기는 하네요.”
확실히 유명교의 기수들은 다른 방파들과 달랐다.
단지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수 하나하나가 무공과 술법의 달인이었다.
“관병들이 몰려오기 전에 떠나야 할 것 같소. 현장 법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면 다시 연락드리리다.”
동유수가 읍을 해 보이고 금의위들에게 돌아갔다.
주위를 둘러보던 연적하와 전진파 도사 백우선의 시선이 마주쳤다.
백우선이 먼저 공손하게 공수(拱手)의 예를 해 보였다.
연적하도 그에게 묵례를 했다.
금의위와 술사들이 현장을 떠나자 연적하도 산문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공자님.”
“왜?”
“아까 제가 저놈들의 정체를 물었을 때 ‘시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강시라는 말입니까?”
심통이 긴가민가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네 명의 기수들은 시종일관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시체라면 전설에 나오는 생강시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장난해?”
“아닙니까?”
“그건 내가 그들을 죽이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야.”
“아!”
뒤늦게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심통이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 공자님이 시체라고 하길래 강시인 줄 알았지 뭡니까?”
“심 노인, 머리는 장식이 아니야. 귀찮겠지만 생각도 좀 하라고.”
“흐흐. 공자님에 대한 저의 믿음이 그 정도라고 생각해 주십쇼.”
그건 과장이나 변명이 아니었다.
심통은 연적하가 ‘메주를 팥으로 쑨다’고 해도 믿을 사람이었다.
***
연적하와 심통은 화상촌으로 돌아갔다.
금월주루 앞에서 심통과 헤어진 연적하는 남연객점으로 향했다.
그가 객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탁자를 정리하고 있던 남수경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일은 다 끝났어요?”
“어.”
“그럼 이제 다시 무당산으로 가는 거예요?”
“왜? 무슨 일 있어?”
“없어요.”
남수경이 새침한 얼굴로 돌아섰다.
공동 주인이 객점을 너무 비우는 것 같아 물어본 건데 일이 있냐니!
연적하는 창가 자리에 걸터앉았다.
상도가 쪼르르 다가와 빈 잔에 따뜻한 차를 가득 붓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연적하가 흐뭇한 눈으로 객점을 둘러보았다.
객점 주인은 이런 점이 좋다.
특별히 뭔가를 요구하지 않아도 점소이가 알아서 챙겨 주니 편안하다.
깨끗한 행주로 탁자를 닦던 남수경이 지나가듯 말했다.
“그런데 효자암에 초막이 사라졌더라고요? 녹 소협도 사라지고. 연 공자가 그런 거예요?”
“어. 어차피 쓸데없는 짓이었잖아. 녹담평도 그 정도면 죗값을 치렀지.”
“그랬구나. 나는 녹 소협이 달아난 줄 알았어요. 말도 없이 사라졌길래.”
“내가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데 어딜 달아나? 집에 가서 살아 있는 부모나 잘 모시라고 했어.”
“잘하셨어요.”
“왜? 막상 녹담평이 안 보이니까 허전해?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눈에 띈다더니.”
“흥! 허전하긴요. 멀리서 초막만 봐도 불편했는데.”
남수경의 말에 상도가 끼어들었다.
“헤헤, 그래도 삼보방 사람들이 들락거려서 매상은 좀 올랐었잖아요. 녹 소협이 가져다 먹은 것도 짭짤했고.”
“얘, 그래도 난 싫더라.”
남수경이 질색을 하자 눈치 빠른 상도는 더 이상 녹담평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연적하의 목소리를 들은 삼보절명 당운망이 객실에서 슬금슬금 내려왔다.
“언제 왔소?”
“지금. 약은 잘돼 가?”
연적하가 약부터 묻자 당운망은 딴청을 부리며 가까운 자리에 걸터앉았다.
지켜보던 연적하가 한마디 했다.
“일하는 사람 번거롭게 하지 말고 이리 와.”
당운망은 연적하와의 합석이 불편했지만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무당파에는 언제 돌아갈 거요?”
“왜?”
“아니, 어차피 해약은 석 달 뒤에야 완성될 텐데 기다리기 지루할까 봐…….”
당운망이 말끝을 흐렸다.
그건 핑계고 실은 자신을 쥐고 흔드는 연적하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남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영감은 영감 일이나 해. 어디서 주접이야? 그러니까 심 노인에게 얻어맞지.”
“심가에게 맞은 건 사실이나,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 늙은이는…….”
“어떻게 되는데?”
연적하가 서늘한 눈으로 당운망을 보았다.
순간 당운망은 아차 싶었다.
연적하의 눈빛에 담겨 있는 끈적한 살기를 보니 실언을 한 것 같다.
“서, 설사를 심하게 할 거라는 말이오.”
“그 입, 조심하는 게 좋아. 심 노인은 패고 말겠지만 난 달라. 해가 될 성싶은 걸 보게 되면 바로 치워 버리거든. 등 뒤에 찜찜한 걸 달고 살 수는 없잖아. 안 그래?”
“꿀꺽, 나는 절대로 해가 될 사람이 아니오. 공자를 위해 해약까지 만들고 있지 않소?”
“뻔뻔하네. 내 앞에서 그런 말이 나와? 늙은이는 이미 해를 끼쳤어. 지금은 덤으로 살고 있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더 노력하겠소.”
“그래. 그런 마음 잊지 마. 다음에는 말로 끝나지 않아.”
“…….”
당운망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이래서 연적하와는 한자리에 앉고 싶지 않았다.
바늘방석이 따로 없다.
빨리 해약을 만들어 주고 떠나야지, 이대로는 못 살 것 같다.
문득 연적하가 상도를 불렀다.
“예, 공자님.”
“소면 한 그릇하고, 요즘 뭐가 잘 나가냐?”
“어향육사(魚香肉丝, 돼지고기 야채 볶음)와 우육탕(牛肉湯, 소고깃국), 쇄금반(碎金飯, 계란 볶음밥)이 맛있다고들 하더라고요.”
“그래, 난 그거 줘.”
상도는 단번에 연적하의 말을 알아들었다.
소면은 당 노인의 것이라는 뜻이다.
“예, 금방 준비해 올릴게요.”
상도가 실실 웃으며 주방으로 걸어갔다.
당운망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찻물만 연신 들이켰다.
잠시 후 음식이 나왔다.
역시나 당운망 앞에 소면이 놓였다.
당운망은 애써 담담한 얼굴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겨울에는 따끈한 소면이 최고지.”
뒤이어 연적하 앞에 여러 종류의 밑반찬과 어향육사, 우육탕, 쇄금반이 깔렸다.
연적하와의 식사는 당운망에게 고문과도 같았다.
그의 젓가락이 행여나 청채에라도 갈라치면 연적하가 젓가락으로 툭 쳐 냈다.
그냥 소면이나 먹으라는 뜻이다.
당운망은 꾸역꾸역 소면만 입에 집어 넣었다.
두 사람이 한창 식사를 할 때 낯선 사내가 객점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상도의 인사에 사내가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천응표국에서 온 표사다. 화상촌에 남연객점이 여기 하나뿐이냐?”
“예, 왜요?”
“이곳의 주인이 연씨에 적 자, 하 자 공자님이시고?”
“예.”
그러자 사내가 품 안에서 봉서를 하나 꺼냈다.
“연 공자님 계시냐?”
“…….”
상도는 무심코 연적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창 식사 중이던 연적하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리에 안 계세요. 직접 공자님께 전해야 하는 게 아니면 그냥 맡겨 두고 가세요.”
그러자 사내가 계산대로 다가갔다.
어린 점소이보다 계산대의 노인이 더 믿음직해 보였던 모양이다.
상일운이 엉거주춤 일어나자 사내가 그에게 봉서를 내밀었다.
“초대장이라 들었소. 연 공자님께 전해 주시오. 여기에 노인장 이름을 쓰고.”
사내가 품에서 종이를 꺼내 상일운에게 내밀었다.
봉서를 받은 상일운이 이름까지 적어 주자 사내가 당부의 말을 했다.
“잃어버리지 말고 연 공자님에게 잘 전해 주시오. 난 틀림없이 전달했소.”
상일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즉시 떠나갔다.
계산대에서 나온 상일운은 급히 연적하에게 가서 공손히 봉서를 건넸다.
봉서 안에서 나온 것은 붉은 배첩이었다.
[무림 말학 연무백이 인사 올립니다. 금년 이월 초하루에 낙양 고성 촌에서 연가무관의 개관식을 열고자 합니다. 왕림하시어 자리를 빛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무백 배상.]받는 사람 이름을 특정하지 않은 걸 보니 평범한 초대장인 모양이다.
언제 왔는지 남수경이 어깨너머로 보고는 한마디 했다.
“초대장이네? 아는 사람이에요? 성씨는 같은데?”
“배다른 형제.”
“어머! 그랬구나. 그런데 사이가 좋지는 않은가 봐요?”
“어떻게 알았어?”
“연가무관의 개관식에 와 달라는 거잖아요. 사이가 좋았으면 직접 와서 전해 줬겠죠. 낙양이면 고작 사나흘 거리인데. 게다가 받는 사람 이름도 따로 없고. 그냥 여기저기 막 뿌리는 초대장 같아서요.”
“그렇게 말하니까 마음 아프네.”
“미안해요. 그러라고 한 말은 아닌데.”
“괜찮아. 없는 말 한 것도 아니고.”
“형제들도 무인인가 봐요?”
“어, 나도 형제들도 가전 무공을 배웠어.”
“그렇구나. 그래서 갈 거예요?”
“글쎄. 모르겠네.”
연적하가 애매한 표정으로 배첩을 바라보았다.
삼장(백가장, 양가장, 와룡장)을 무너뜨린 뒤로 은원은 끝났지만 가서 축하해도 되는지를 모르겠다.
소면을 먹던 당운망이 넌지시 말했다.
“그래도 피가 이어졌는데 가 보는 게 좋지 않겠소? 연을 완전히 끊을 게 아니라면.”
물론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연적하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아서다.
“연이라…….”
연적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연씨들에게 미련은 없다.
그들과 함께 잘살아 보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적선수행’을 생각하면 매몰차게 모른 척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혈육의 일에 초대장까지 받고 외면하는 건 확실히 적선(積善)과 거리가 멀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연적하는 흠칫 놀랐다.
‘이런 제길, 내가 언제부터 적선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속으로 툴툴거렸지만 ‘적선’이라는 말은 머릿속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그날 밤.
연적하는 착잡한 마음에 금월주루를 방문했다.
그리고 심통과 대작(對酌)하다가 오늘 받은 배첩에 대해 털어놓았다.
“와룡검객 연무백이 개관식에 초대했다고요?”
“그렇다니까.”
“허, 거, 참. 애매하네요.”
“배첩을 보니까 무백 형도 내가 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아.”
그게 아니었다면 남수경의 말대로 직접 들고 왔을 것이다.
심통이 연적하를 힐끗 보았다.
청불노의 제자가 되기 전과 후의 모습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서다.
날카롭던 가시가 무디어진 모습이라고나 할까?